14일 오후 서울YWCA 대강당에서 열린 '개인정보보호 대책과 제도개선' 토론회(녹색소비자연대전국협의회,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주최)에서 각계 참석자들은 개인정보 유출 예방법과 관련해 현행 주민등록번호 수집의 개선 등을 놓고 열띤 논쟁을 벌였다.

구체적인 방안에서는 소비자단체들이 '각 기업의 주민등록번호 수집·보관 금지'를 제안하자 정부와 온라인업계 참석자는 암호화 보관 등을 강조하면서 '미성년자의 식별을 위한 대책마련이 우선'이라고 주장하는 등 서로 입장 차이를 보였다.

"개인정보 유출 막으려면 기업들의 주민번호 수집 금지해야"

이날 '개인정보보호의 현 주소와 개선방안'을 발제한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정책위원은 외국의 사례를 들어 "상거래 행위는 신용을 담보로 이루어지므로 신원과 본인확인은 필수적인 사항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현재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자상거래 표준약관에도 필수 수집정보에 주민등록번호는 포함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전 위원은 또 "이미 옥션사태로 1천만명 이상의 주민등록번호가 유출돼 소비자의 사생활과 안전아 위협받는 상황"이라며 "더 이상 사업자의 관리와 비용상 편익을 이유로 주민번호 수집을 허용해선 안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현재 수집되어 있는 고객들의 주민등록번호도 예방차원에서 즉각 삭제·폐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14일 '개인정보보호 대책과 제도개선' 토론회에서 김기중 변호사(법무법인 동서파트너스)가 발언하고 있다. ⓒ 정영은
이어진 지정 토론에서 이숙자 대전주부교실 사무국장도 "(신원 요구가 문제의 핵심이므로) 주민등록번호 제도 및 수집에 대한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아이디, 비밀번호, 전화번호를 다 바꿔도 주민등록번호는 평생을 따라다니는 것 아니냐"며 대규모 개인정보 노출 사태의 반복에 따른 불안감과 문제점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이창범 한국정보보호진흥원 법제분석팀장은 '주민번호 등의 암호화 보관 의무화'를 대책으로 제시하면서 "개인정보제공의 편의와 안전을 동시에 추구할 방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창범 팀장은 "주민번호 수집을 못하게 할 경우 미성년자 정보접근(가입시 식별)을 어떻게 할 지 답을 못 내리고 있다"면서 "미국의 경우는 수집은 가능한데, 수집한 것을 암호화하여 외부에 공개시키지 말라는 입장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윤태 한국온라인쇼핑협회 사무국장도 "미성년자의 정보접근 문제가 가장 어려운데 이를 해결할 묘책이 현재 없다"면서 "주민번호가 아니면 신용카드나 공인인증서, 휴대폰을 이용하면 되지만 이 경우 노인이나 청소년 아동 등 사회적 약자들은 실제 이용에 상당한 제약을 받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나 김기중 변호사는 "미성년자인 청소년들의 식별을 위해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해야 한다"는 주장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현재에도 청소년들이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할 경우 이를 방지할 대책이 전혀 없지 않느냐"고 반박하면서 "발급 이후 평생 갖는 주민번호는 한번 유출되면 계속적으로 유통되기 때문에 주민번호의 수집행위는 굉장히 위험하다"고 밝혔다.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정책위원도 "신용사회로 나가는 가장 장애물은 주민번호 수집"이라며 "다소 불편하더라도 신용카드, 휴대폰 등 신용이 없는 사람들은 사전예치제 등의 선불제 제도를 활용하는 것이 과소비로 인한 신용불량을 막는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사업자 입장에서는 후불거래가 매출을 늘리는 데 유리하니까 (주민번호 수집 필요성을) 그렇게 말하는 것 아니냐"고 꼬집기도 했다.

"정부 대책 아이핀(i-Pin) 도입으론 문제해결 안돼 "

최근 방송통신위원회가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내놓은 '주민번호 대체수단 아이핀(i-Pin) 의무화'에 대한 문제도 제기됐다. 전응휘 정책위원은 "개인정보 유출은 상거래에서의 불필요한 본인 확인(주민번호 수집)으로 발생한 문제"라면서 "정부는 아이핀(i-Pin) 도입으로 문제의 본질을 왜곡하면서 기업의 그릇된 관행을 묵과했다"고 비판했다. 주민번호 수집의 대체수단인 아이핀(i-Pin) 도입은 개인정보 유출 불안감이 여전히 남아 '미봉책'이라는 설명이다.

온라인쇼핑협회 김윤태 사무국장은 "상거래는 주민번호 이외의 확인수단이 많이 있지만 포털의 경우는 주민번호(혹은 대체수단)에 의해서만 인터넷실명제 실시에 따른 본인확인이 가능하다"고 상황을 설명한 뒤 대체수단 도입 시 발생하는 기업들의 새로운 비용부담을 문제로 제기했다. 그는 "주민번호 대체수단(아이핀) 관리를 6개 민간업체에서 담당할 예정이라던데 만일 이들 업체가 해킹당했을 경우에 대한 대비책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하나로텔레콤이 일간지에 게재한 사과광고
김기중 변호사는 "아이핀은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그나마 민간부문에서는 주민번호가 '동의'에 의한 수집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공공부문에서는 동의도 없이 수집돼 집적되고 있다"면서 "단순히 유출을 막는 문제를 넘어서서 자기를 공개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개인의 자기정보 통제권'이라는 인권의 측면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나로텔 사태는 불법적인 업계 관행의 대표 사례"

하나로텔레콤의 고객정보 무단 판매 사건과 관련해 업계의 개인정보취급을 둘러싼 불법적인 관행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현재 '정보통신이용촉진및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는 △개인정보 제3자 제공과 관련 세부요건의 동의를 의무화하고 △취급위탁에 대해서는 완화된 공지요건으로 통지가 동의를 대신할 수 있게 했다. '제3자 제공'이란 원래 수집자가 이와 다른 목적으로 개인정보를 제공할 경우를 뜻하고 '취급위탁'은 원래 개인정보 수집자가 수집목적을 위해 개인정보를 처리관리할 때 아웃소싱을 하는 경우다.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정책위원은 경찰청 수사 결과를 인용하면서 이러한 법 조항을 변칙적으로 오남용한 대표사례가 최근 하나로텔레콤이라고 주장했다. 하나로텔레콤이 '취급위탁'의 개념으로 위장해 불법적으로 2년 동안에만 6백만명 고객 개인정보를 1천여개의 '제3자' 업체에게 제공·판매했다는 것이다. '취급위탁'은 경우에 따라서는 고객 본인 동의를 받지않아도 홈페이지 공지나 이메일 통지만으로 가능하다. 게다가 법위반시 '제3자 제공'은 5년 이하 징역이지만 '취급위탁'은 1천만원 이하 과태료에 그쳐 처벌 기준의 차이도 상당하다.

이창범 한국정보보호진흥원 법제팀장은 "제3자 제공은 자기 사업이 아닌 다른 사업을 뜻하고, 위탁은 자기사업과 관련된 주문배송 및 인바운딩 상담 등의 아웃소싱에 해당한다"면서 "하나로텔레콤이 신용카드 신규모집을 위해 고객정보를 제공한 것은 명백히 제3자 제공"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경찰청은 이러한 고객정보 관리의 불법적 관행과 관련, KT와 LG파워콤 등 다른 초고속서비스사에 대해서도 수사를 벌이고 있다.

전응휘 위원은 "불법적 관행으로 벌어진 개인정보 유출은 소비자의 사생활과 안전까지도 위협받는 결과를 초래했다"면서 "하나로텔레콤 피해자 소송 신청인이 14일 기준으로 6천5백명을 넘어섰다는 것은 얼마만큼 고객들의 불만이 누적돼 폭발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황"이라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개인정보 보호대책 진단, "사전통제 취약 vs. 사후통제 강화"

현재 정부의 개인정보보호 대책에 대한 진단에서는 각기 다른 의견이 나왔다. 소비자단체에서는 사전예방의 중요성을 강조한 반면 정부 쪽에서는 사후 처벌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숙자 대전주부교실 사무국장은 "정부는 늘 헛다리를 짚어가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믿을 수 없다"면서 "기업의 정보화는 빠른 속도로 가고 있지만 사전의 소비자들을 위한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노력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김기중 변호사도 "우리의 제도는 정보유출을 방기하고, 피해가 생긴 후에야 강력한 처벌을 두고 있다"며 "중요한 것은 놓치면서 생색내기하는 식"이라고 정부 정책을 비판했다. 개인정보 유출은 2차, 3차에 걸쳐 끊임없는 피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사후구제의 효력이 적다는 주장이다. 이어 김 변호사는 "정권과 산업에서 독립된 별도의 기관을 통해 정책이 수립되어 추진돼야 한다"면서 '개인정보보호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김윤태 온라인쇼핑협회 사무국장은 "옥션의 경우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보안 분야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기업"이라면서 "이렇게 보안에 투자하는 기업들에게는 인센티브를 마련해줘 보안의식 강화를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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