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후보 김두관이 19일 여의도 캠프에서 모병제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선 김두관 후보가 19일인 일요일 자신의 공약으로 징병제 폐지 및 모병제 도입을 주장했다. 김두관 후보는 이날 서울 여의도 선거대책 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북 정책의 일환으로 평화와 군축을 위한 ‘선제적 모병제’를 제안했다. 김두관은 모병제엔 4조원 정도의 추가 재원이 필요하며 전체 군을 30만명으로 줄일 경우 35조원 정도의 GDP 상승효과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두관의 노림수는 왜 조간을 장식하지 못했나

▲ 오늘자 한겨레 6면

김두관의 대담한 공약은 경선 과정에서의 불리함을 극복하기 위한 한 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선언은 월요일 아침 조간신문에 비중 있게 보도되지 않고 있다. 한겨레 6면 3단에만 <김두관 “모병제 도입해 군인 절반 감축”>이란 제목의 단독 기사가 실렸을 뿐 다른 언론에선 별도의 기사로 다루어지지 못했다. 내용 보도가 된 것도 경향신문 6면과 한국일보 5면에 실린 야권 후보들 동정기사 정도였다. 공약발표 직후인 19일 오후 조선일보와 경향신문 인터넷판에서 곧바로 기사로 나온 상황과도 차이가 있었다.

이는 김두관의 ‘모병제’ 공약 발표가 조회수는 모을 수 있다 여겨졌지만 기사 가치의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단 사실을 의미한다. 실제로 ‘모병제’ 공약 기사는 인터넷상에서 볼 때는 가장 많은 댓글이 달린 축에 속했는데, 그 관심이 월요일자엔 반영이 안 되었다. 특히 조중동과 같은 보수언론에 보도가 나오지 않은 정황은 흥미롭다. 왜냐하면 보수언론의 입장에서 이런 공약은 충분히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황을 살펴보면 오늘 보도가 없었던 것이 이해가 되는 구석도 있다. 그의 공약은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조선일보 8월 15일자 5면을 보면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을 보도하며 ‘다급해진 김두관’이 신혼주택 100만 가구 무상융자 및 모병제 공약을 충격요법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같은 날 동아일보 5면에선 아예 “대선주자 인터뷰”의 일환으로 김두관에게 한 면 전체를 할애하며 “집권 5년내 軍 30만명으로 감축… 모병제로 전환하겠다”를 제목으로 달았다. 즉 김두관의 공약은 구체적인 내용은 지금과 다소 차이가 있더라도 8월 15일 즈음엔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그래서 이미 한 번 보도를 한 보수언론의 입장에서는 이번 발표를 가지고는 보도가치가 없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 지난 15일자 동아일보 5면

한 일간지 기자는 “대선후보 관련 기사는 새누리당과 민주당을 나누고, 그 안에서 또 후보별로 분배를 하기 때문에 김두관의 공약이 그렇게 크게 돌출되기는 쉽지 않다”라고 설명했다. 통상적인 정도의 관심이었단 설명이지만 뒤집어 보면 그 공약이 인터넷상 관심과는 다르게 ‘통상’을 뛰어넘을 잠재력을 보여주지는 못했다는 얘기가 된다.

그 기자는 “정책적으로 아주 새로운 얘기도 아니고 허점이 있다고 볼 수 있지 않겠나. 모병제해서 감군하면 GDP 올라간다고 하는데 이건 군대 안가는 청년들이 모두 중소기업에 취업할 경우에 성립하는 말이다. 기자들끼리도 ‘GDP가 아니라 실업률이 올라가지 않겠는가’라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또 그는 “경선이 시작되지 않은 지금은 아직 본격적인 정책 싸움이 시작되기 전이라 볼 수 있다. 경선이 중반으로 접어들면 서로 치고 받으면서 정책에 대해 보도할 것들이 늘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모병제는 과연 평화․군축 정책인가

그렇다면 과연 김두관이 내세운 모병제가 향후 정책검증 국면에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제안일까. 모병제라는 정책 자체는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경선 과정에서 유시민 후보도 꺼내들었던 것으로 낯선 것이 아니지만, 과연 이 정책이 평화․군축의 맥락으로 포섭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선 의문도 많다.

중부대 고은태 교수는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평화주의자의 시선에서 모병제와 징병제를 비교해보자는 제안을 했다. 그는 “평화주의자의 입장에선 모든 나라에 군대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좋겠지만, 일단 지금의 상황은 군대가 있긴 있어야 하는 상황이란 걸 전제해야 한다”며 “그 가정 하에서 징병제와 모병제를 현실적 대안으로 평가하려면 징병제의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병제로 이행해야 하는지를 물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러면 징병제가 실시되는 동안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고은태 교수는 “첫째로 개인의 자유․선택권에 대한 침해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이에 따라 대표적으로 나타나는 폐해로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 등이 있다. 또 다른 하나로는 징병제가 개개인들에게 주는 부담이 워낙 커서, 군필자들의 피해의식을 낳는 등의 폐해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정리했다.

그런데 문제를 이렇게 정리할 경우 과연 징병제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대안이 모병제인지가 의심이 간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고은태 교수는 “첫번째 문제는 대체복무제의 폭넓은 허용으로 해결될 수 있다. 참여정부 때 계획했던 정도면 상당부분 해결이 된다. 그리고 문제는 두 번째인데, 이 부분을 해결하려면 사병의 생활여건의 개선을 위한 폭넓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징병제를 모병제로 전환할 경우 이런 문제에 대한 논의 자체가 중단될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말하자면 지금은 군인들이 ‘국민의 아들’로 여겨지는 지라 그들의 문제가 나라의 문제로 인식되지만, 모병제 군대가 될 경우 아예 관심사에서 멀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김두관 후보의 기자회견장에서 몇 사람이 제기했던 ‘모병제 군대의 계층화 문제’와도 통한다. 모병제 군대가 될 경우 중간층 이하 자녀들만 군대를 채울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고은태 교수는 여기에다 인권문제에 대한 우려를 덧붙인다. 그는 “모병제 군대는 ‘국민의 군대’의 위상을 벗어나 격리된 특수집단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들에게 가령 질 낮은 고기를 먹인다 해도 국민들이 예전처럼 신경쓰지 않을 수 있다. 군대의 인권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 격리수용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 경인일보 7월 14일자에 실린 군부대 불량급식 관련 기사. 모병제가 되면 최악의 경우 이런 기사를 읽고도 사람들이 분노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또한 그는 “해외파병의 경우도 그렇다. 국군의 해외파병에 대한 시민들의 심리적 반감이 징병제 때보다 줄어들 것이다.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파병된 군대가 해외에서 반인권적인 행동을 쉽게 하게 되지나 않을지 우려된다. 군필자들의 정서는 지금보다 더 편협해질 수 있고, 최악의 경우 지금 우리가 비판하는 용역과 같은 '기업 사병' 비슷한 위상으로 보이게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 볼 때 모병제를 지지할 수 있는 논거들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논거들은 평화나 군축에 관련된 것이라기 보단 군의 합리화 및 첨단화, 즉 효율성의 문제라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모병제가 굳이 북한에 대한 ‘선제적 군축’의 대안으로 제시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한국군이 모병제로 재조직되면서 전투력이 더욱 향상될 수 있다면 북한 핵의 포기나 북한군 감축과 이 문제가 연동될 필요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모병제 과정에서 군재편이나 무기구입에 더욱 공격적인 투자가 필요하다면 이 정책을 ‘군축’으로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보수진영에서 모병제를 공격하는 부분이 대체로 여기에 있다. 북핵이 타결이 안 될 때에도 할 수 있냐고 묻거나, 북한이 군축을 안한다면 어떻게 되느냐고 묻는다. 모병제 정책의 성격에 대한 김두관 캠프의 좀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는 점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모병제는 어느 정도의 실현가능성이 있나

또 하나 제기될 수 있는 문제는 모병제의 실현가능성 문제다. 김두관 측은 모병제에 소모되는 예산으로 최고 4조원 정도를 제시했는데, 이에 대해선 너무 적게 잡았다는 시선이 대부분이다. 산술적으로만 봐도 김두관이 말한 월급 200만원의 병사를 30만 명 유지하려면 1년에 인건비로만 7조 2천억원이 들어간다.

물론 이 수치 역시 대한민국의 재정, 그리고 국방재정에서 결코 감당하지 못할 수치는 아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국방예산은 30조가 넘고, 민주당이 무상복지 시리즈로 내건 3+1 공약의 예상 재원 역시 16조 4천억원에 달하기 때문이다(무상급식 1조, 무상의료에 8조 1천억, 무상보육 4조 1천억, 반값등록금 3조 2천억). 현실과 비교해보나 다른 종류의 계획과 비교해보나 ‘지르지 못할’ 제안은 아니다.

▲ 지난 2010년 6월 1일자 매일경제에 소개된 사병월급 변동 그래프. 김두관은 월급 200만원짜리 직장을 만들자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모병제가 하루 아침에 실현될 수 있는 정책 제안인지에 대해선 당연히 여러 가지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조금만 생각해봐도 예비군제 및 현역편제 개편, 무기도입 계획의 변경, 막사 등 징병제 사병에 특화된 시설의 보수 및 전환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큰 부분은 군대라는 조직을 총체적인 측면에서 적어도 30만 명의 젊은이를 유인할 수 있는 직장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일 게다.

여기에선 과연 모병제라는 대안이 어느 정도 시점에서부터 가능한지를 따져보는 것이 중요해진다. 가령 징병제 사병의 경우 월급을 점진적으로 올리고 예산을 확보하는 것을 정책기조로 삼을 수 있다. 그러나 일단 모병제로 전환하려면 30만명의 젊은이의 자발적 선택을 유도할 수 있는 임금수준을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결국 예산을 한꺼번에 ‘짠’하고 늘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병력 축소 및 임금인상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어느 순간 모병제로 이행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현재 사병 월급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동결된 상황이다. 17대 국회 열린우리당 의원이었던 임종인의 사병월급 인상안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엔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임종인 전 의원은 당시 독일 및 대만 등의 사례에 비추어보았을 때, 한국의 징병제 사병들 역시 최저임금의 25% 정도는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여정부는 그의 주장을 전적으로 수용하진 못했지만 사병월급을 20만원까지 올리는 중장기계획을 세웠다. 모병제로 이행하려면 최소한 이 계획이 더 가파른 상승폭으로 시행되어야 한다. 최저임금의 10%도 주지 못하던 군대가 갑자기 최저임금 이상을 주는 직장으로 변신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임종인 전 의원은 2006년 국정감사 당시 '병사인권 개선을 위한 10대 정책제안'으로 병사 월급 30만원으로 인상, 의무복무기간 18개월로 축소, 내부반의 침대형 교체, 미군의 75%(6,912원)까지 식대 증액, 휴대전화 및 인터넷 사용 확대. 병사 징계영창 폐지 등을 내걸었다. 이런 조치들 역시 병사인권을 개선하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모병제가 실현되기 위해선 군조직 내부에 필요한 변혁들이다. 모병제를 주장하려면 적어도 이 이상의 개혁 프로세스를 어떤 기간 안에 수행하자고 주장해야 한다.

본지가 접촉해본 결과 임종인 전 의원은 현재 논의되는 모병제에 대해서는 반대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임종인 전 의원은 "모병제를 하면 중상류층은 군대를 안 갈 것이고, 그렇다고 이들에게 세금을 더 내게 하는 식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도 힘든 일이기 때문에, 당분간은 징병제를 유지하면서 사병의 인권 및 복지를 개선하는 것이 정답이라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 17대 국회 당시 의정활동을 하던 임종인 (전) 의원의 모습 ⓒ연합뉴스

이렇게까지 말한다면 모병제라는 정책엔 모종의 딜레마가 있는 것 같다. 만약 한국 군대가 군대조직을 사회로부터 격리하지는 않는 수준에서 정책적으로 타당한 방법으로 모병제로 전환하려면, 이를 위해 필요한 여러 가지 개혁 조치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그 조치들이 다 실현될 수 있다고 본다면, 그렇게 변한 징병제 체제는 차라리 모병제 체제보다도 장점이 많아 보이는 것이다.

물론 김두관 후보 측의 정책이 이 딜레마를 넘어설 수 있는 세부적인 내용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문제는 한국 사회에서 단순한 문제가 아니고 이미 그가 큰 파문을 던진 만큼, 향후 정책검증 과정에서 좀 더 치열하고 세밀한 논의가 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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