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얼마 전만 해도 얼굴에 주름살 박힌 아저씨, 그것도 청춘스타 출신 아닌 배우가 미니시리즈에서 주연을 맡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시도는 있었겠지만 시청자들의 관심을 크게 받지 못했기에 시청률과 스타성을 중시 여기는 드라마 시장에서 흔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2012년 상반기 브라운관을 이끈 주역들은 <해를 품은 달>로 일약 스타로 자리잡은 김수현을 제외하곤 대부분 40대입니다. <신사의 품격>의 장동건은 데뷔 이래 20년 동안 톱스타 자리를 놓치지 않은 인기 배우이지만, 장동건과 함께 흥행 배우로 이름을 나란히 올려놓은 손현주는 상당히 의외입니다. 하지만 수많은 시청자들에게 각인된 배우 손현주의 존재감과 연기력은 이미 장동건의 그것을 훨씬 능가한 상황입니다.

여기에 손현주의 <추적자>가 끝나자마자 <추적자> 시청자를 일정 부분 흡수하며 올림픽 기간에도 선전하고 있는 <골든타임>의 이성민까지 가세하며 40대 아저씨들의 전성시대는 이제 시대의 흐름이 된 상황입니다.

현재 한국의 '리암 니슨'으로 극찬 받고 있는 손현주는 문영남 작가의 작품, 가족극에 한정되긴 했지만 꾸준히 주연을 맡아온 데 비해 <골든타임>의 이성민은 아직까지도 다수의 시청자들에게 낯선 얼굴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랜 세월 연극 무대에서 활약해온 그가 브라운관에 진출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거든요.

게다가 이성민은 얼마 전 <브레인>에서 옆에 있으면 한 대 쥐어박고 싶을 정도로 얄미운, 주인공의 성장에 방해가 되는 감초 악역에 불과했습니다. 그랬던 그가 갑자기 주인공의 형으로 잠깐 등장하여 짧은 시간 등장에도 군주의 품격을 보여주더니((더 킹 투 허츠>), 이제는 단박에 주연으로 승격되어 자신의 최근 전작을 180도 뒤집는 진정한 의사로 재탄생하게 됩니다.

사실 이성민은 주연이긴 하지만, 원톱은 아닙니다. 손현주 또한 맨처음 이름이 올라가긴 했지만 매 회 새로운 장르의 변주를 꾀하는 <추적자>인지라 어느 회에서는 고작 몇 분도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추적자>는 손현주 뿐만 아니라 김상중, 박근형, 류승수 등의 역할도 비중 있게 다뤄지는 작품이다 보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골든타임>은 엄연히 이선균과 황정음을 앞세운 드라마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여자 주인공 황정음의 입지가 축소되고, 어느새 이성민이 한시도 없으면 안 되는 이성민의 '원맨쇼'가 되어버린 분위기입니다.

불혹의 나이를 넘겨서야 드라마 주연을 맡고, 뒤늦게 스타로 주목받은 아저씨들의 반란. 상당히 늦은 감이 있지만 오직 연기력만으로 승부하는 중년 배우들이 단순 조연, 주인공 아버지, 삼촌을 넘어 당당히 드라마 주연을 맡고 큰 관심을 받는 것은 당연한 현상입니다.

아이돌이기 때문에, 톱스타라서 배역과 어울리지 않음에도 단박에 주연부터 꿰차는 무늬만 배우들이 점령하던 드라마 시장이었기에, 정작 진짜 배우들은 연기 안 되는 주연의 서포트로 전락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연기력은 물론 존재감도 주연을 압도한다는 '명품 조연'이란 수식어가 나오기 시작했고 심지어 시청자가 체감하기에는 아예 주조연이 바꿔버린 웃지못할 경우도 허다했습니다.

그동안 연기력보다 미모와 인기만 앞세우던 톱스타들의 발연기 향연과 기본적인 이야기 구도조차 성립되지 않는 막장극의 홍수에 질릴 대로 질려있던 시청자들인지라 <추적자>, <골든타임> 같은 수준 높은 장르극에 열광하는 것입니다. 덩달아 손현주, 이성민 등 흔히 말하던 스타성만 부족했을 뿐, 연기자로서는 완벽한 배우들이 재조명받는 반사이익 효과인지도 몰라요.

하지만 시청자들은 <뿌리깊은 나무>의 한석규, <브레인> 신하균에 이어 <추적자>의 손현주, <골든타임> 이성민의 완벽한 연기에 눈이 높아질 대로 높아진 상황입니다. 이제 시청자들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한국 드라마 시장은 연기력을 상향평준화시켜야 한다는 새로운 과제를 부여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인기와 스타성만으로 고액의 출연료를 받는 무늬만 배우들이 판치는 드라마 시장에서 오히려 배우로서 기본인 진짜 연기 잘하는 배우들은 찾기 어렵게 되었고, 그래서 기본적인 연기력이 담보된 배우들을 찾는 사람들이 늘다보니 진짜 배우들의 몸값이 오르게 되는 필연적인 현상이 도래했습니다.

이참에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주목받고 그에 따라 진정한 배우들의 등장이 줄을 잇는다면 시청자로서는 대환영입니다. 배우뿐만 아니라 어느 분야에서도 진짜 실력 있는 사람들이 대접받아야 세상이 살맛나게 돌아가는 법이니까요.

다들 힘들 것 같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결국은 흥행가능성이 희박한 작품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이 시대 최고스타로 우뚝 서게 된 손현주, 이성민. 그들에서 시작된 진짜 배우들의 유쾌한 전성시대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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