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쇠고기 관련 방송에 대처하겠다’는 최시중 씨 발언 및 인터넷 댓글 삭제 논란에 대한 논평 -

미국산 쇠고기 전면수입개방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와 분노가 들불처럼 번져나가는 가운데, 6일 정부는 국무회의를 열고 이에 대한 대책을 논의했다. 하지만 이날 국무회의는 국민의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근본 대책을 내놓기는커녕 여론 악화의 원인을 ‘허위 사실을 유포한 일부 언론’ 탓으로 돌리며 언론을 성토하는 자리로 변질되었다.

한승수 국무총리부터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과 관련하여 쇠고기 수입재개를 비판하는 여론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며 “비난 여론의 원인은 일부 언론이 확실히 검증되지 않은 것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부풀려 보도한데 있다”고 언론을 탓했다.

이영희 노동부 장관도 “일부 언론은 비판적인 수준을 넘어서 정부에 대한 공세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사실보도보다는 여론 악화를 적극적으로 부추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거들었다.

미 쇠고기 수입 주무부처인 정운천 농수산부 장관은 “4월29일 MBC PD수첩 보도 이후 이 문제가 전 국민의 관심사로 확대되면서 특히 인터넷상이나 아주 일부 언론에 사실이 아닌 괴담 수준으로까지 번지고 있어서 상당히 어렵다”며 “일부 언론의 허위사실 유포에 대해서는 강력히 대처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국무위원들이 단순히 ‘언론 탓’만 한 것이 아니라 ‘강력한 대처’의 필요성까지 거론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자 이날 장관급인 방송통신위원장 자격으로 국무회의에 처음으로 참석한 최시중 씨가 나서 “쇠고기 문제와 관련해서 언론의 문제 제기가 계속되면서 확대되고 있는 양상”이라며 “방송심의위원회가 제대로 구성되지 못했었는데 최근에야 구성돼서 앞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최 씨 자신이 나서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PD수첩> 등 광우병 관련 방송프로그램의 심의를 하도록 만들겠다는 말인가.

방통위 설치법에는 “방송 내용의 공공성 및 공정성을 보장하고 정보통신에서의 건전한 문화를 창달하며 정보통신의 올바른 이용환경 조성을 위하여 독립적으로 사무를 수행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둔다”고 규정되어 있다. 방통심의위는 ‘독립적인 민간기구’인 것이다.
최 씨가 아무리 방통위원장이라 해도 민간 독립기구의 심의 업무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다. 그런데도 최 씨는 방통위원회나 방통심의위가 방송통제기구인줄 알고 있는가.

국무회의가 열리기 전 이미 수구보수신문들은 일제히 ‘방송의 광우병 부풀리기 무책임하다’는 식으로 <PD수첩> 등 일부 프로그램과 방송을 문제 삼았다. 수구보수신문의 논리를 명색이 국무위원들이 그대로 쫓아간 것이다. 정부와 수구보수신문들은 ‘인터넷 괴담’ 운운하며 인터넷도 탓했다.

5월 7일 조선일보에는 <방송통신심의위 출범 못해 속수무책>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는 “최근 사실과 다른 ‘인터넷 괴담’의 확산으로 사회불안이 커졌지만, 이를 제지할 정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며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출범이 늦어지면서 심의기능이 사실상 정지됐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또 “인터넷 포털사이트가 괴담을 양산하기 쉬운 구조적 문제점을 갖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며 “포털사이트들이 수익성을 위해 괴담을 방조·악용하는 측면이 분명 있는 것으로 본다”는 한 대학교수의 발언을 인용했다. 사실상 인터넷, 특히 포털 사이트의 ‘미 쇠고기 수입반대 여론’을 꺾기 위한 방통심의위의 압력 행사를 요구한 것이다.

그러자 같은 날 방송통신위원회는 ‘머니투데이’ 등 언론 보도를 통해 “광우병과 관련된 인터넷 댓글은 허위사실 여부 보다는 대통령 명예훼손 소지가 있어 포털이 스스로 모니터링을 통해 조치를 취하고 있다”며 “최근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와 관련,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성 댓글에 대해 블라인드 처리를 (포털측에) 요청했다”고 밝혔다.

또 ‘미디어다음’은 5월 6일 ‘공지사항’을 통해 “현재, 전국민적 관심사인 미국 쇠고기와 관련해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댓글을 통해 무분별하게 유포하는 사례가 잦아지고 있다”며 “허위사실을 쇠고기 이슈과 관련하여 유포할 경우에는 미디어다음 게시판 운영원칙에 의해 즉시 해당글을 삭제하고 작성자의 ID를 일시 또는 영구 정지할 수 있다”고 밝힌바 있다.

지난 ‘민주정부’ 10년 동안 네티즌들은 대통령에 대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비판의 자유를 누렸다. 인신공격에 가까운 표현들도 적지 않았지만 ‘절대권력’에 대한 표현의 자유 확대, 민주주의 신장의 한 측면으로 이해되어 왔다.

네티즌들 또한 지나친 표현들은 알아서 걸러내며 공론의 장을 확장시켰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고 인터넷을 통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쏟아진다고 해서 방통위가 섣불리 ‘대통령 명예훼손’ 운운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한 발상이다.
아울러 “방송과 통신 이용자의 복지 및 보편적 서비스의 실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한 방통위 설치법을 스스로 벗어난 법률 위반에까지 해당한다.

미 쇠고기 수입 협상의 문제점을 따지고 광우병의 위험을 다룬 방송 프로그램과 인터넷에 올라오는 대통령에 대한 비판과 비난 주장에 방송통신위원회가 ‘대처’, ‘심의’ 운운하는 것은 방송의 독립성과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훼손하는 행위다.

우리는 대통령의 최측근인 최시중 씨가 방통위원장에 임명되는 자체가 방송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일이라고 밝힌 바 있다. 최 씨는 국무회의에 처음으로 참석하는 자리에서 다시 한 번 방통위원장 자격이 없음을 스스로 입증했다.

방통위원장은 정부에 비판적인 방송프로그램에 대해 ‘대책’을 세우는 사람이 아니고 방통위는 정부를 홍보하는 기구가 아니다. 자신의 본분이 무엇인지 모르는 최시중 씨는 지금이라도 방통위원장 자리를 내놓아야 한다.

2008년 5월 7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