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트맨 3부작은 일종의 변증법적 구도로 축성돼 있다. <배트맨 비긴즈>와 <다크 나이트>가 테제(These)와 안티테제(Antithese)라면, <다크 나이트 리턴즈>는 진테제(Synthese)다. 각각의 장편 역시 영화 내에서 자족적이고 단순한 통일성을 담지한 최초가 반정립의 제약과 부정을 통해, 전체적인 결론으로 고양되는 구조다.

 

배트맨의 탄생은 트라우마로부터 기원한다. 어릴 적 눈앞에서 부모를 잃은 브루스 웨인은 슬픔과 죄책감을 안고 살아간다. 슬픔은 분노가 되고, 트라우마는 복수심으로 이어진다. 이 시기의 웨인은 양가적인 정서와 가치가 통일된 모순적 상태에 처해있다. 청진기로 물화된 아버지의 정신적 유산과 살인범에게 복수하기 위한 권총. 정의와 공동체의 수호, 그리고 분노와 복수심이다. 서서히 달궈지던 분노의 총량은 라즈 알굴을 통해 대립물적 현상으로 양질 전화한다. 아버지와 레이첼이 가르쳐 준 정의는 법과 조화였다.

하지만 라즈 알굴이 주입하는 정의는 복수, 즉 균형이다. 최초의 웨인은 양가적 통일 상태에서 부정을 만나고, 변증법적 대립을 통해 그 부정의 부정, 양자가 모두 부정되면서 통합된 상태, 배트맨이 된다. 법을 벗어난 상태로 폭력을 통해 균형을 유지하면서도, 복수가 아닌 법을 수호하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다.

<다크 나이트> 배트맨은 경찰과 공조하며 법에 규율 받지 않는 자경단으로 암약한다. 배트맨의 양가성은 사회적 찬반 논쟁의 대상이 된다. 초법적 수단을 통해 법을 보호한다. 이것은 전적으로 배트맨의 절대적인 물리적 권능에 의해 가능한 것이다. 법을 벗어난 힘이 법을 수호하는 것이 정당한가. <다크 나이트>의 배트맨 내부에도 모순적 대립이 미봉돼 있다. 배트맨의 강대한 물리력에 내재된 선악의 혼종은 조커란 악의 화신을 소환하며 현상화 된다. 배트맨은 조커로 인해 존재 방식에 대한 고뇌에 빠진다.

조커는 배트맨에게 말한다. "경찰처럼 굴지마. 넌 저들과 달라. 저들의 도덕, 윤리 모두 개소리야. 네 놈의 정의감을 누가 알아줘?". 조커의 광기가 고담시를 혼돈에 빠트린 뒤 웨인은 알프레드에게 토로한다. "내가 원한 건 정의였지 광기나 폭력이 아니었어요". 이차적 변증 대립에 의해 웨인은 고담시에 필요한건 자경단이 아닌 백기사 하비덴트, 온전한 정의의 사자란 결론을 내린다. 법의 규율 안팎에 걸쳐 있던 배트맨은 다크 나이트가 되어, 법의 영역 밖의 완전한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배트맨은 자신을 암전 속에 가두며 평화를 완성했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듯, 그 평화는 거짓된 지반위에 건축한 평화다. 모순과 위선은 또 다른 재앙을 불러들이고, 세계는 배트맨을 호출한다. 이 과정은 브루스 웨인을 둘러싼 주변 인물들에 의해 추동된다. 셀리나 카일(캣 우먼)은 웨인의 지문을 훔치며, 그에게 세상을 환기시킨다. 존 블레이크(로빈)은 웨인가를 찾아가, 상황의 심각성을 호소한다. 웨인이 배트맨으로 다시 나서야 한다며 설득한다. 고든 청장은 웨인의 주저함을 다잡으며 확신을 부여한다.

 

하지만 시간은 8년이 흘렀다. 배트맨은 노쇠했고, 고담시의 '악' 그 자체가 되었다. 알프레드는 예전 같지 않음을 경고하고, 8년만의 출동 끝에 경찰은 주식시장 습격범이 아닌 배트맨을 포위한다. 여기서 고담시의 수호를 위해 배트맨이 여전히 필요하다는 '당위'와 예전과 같은 초법적 무력행사란 방식이 옳은가, '판단'의 문제가 대립한다.

고담시로 복귀한 배트맨 안에 잠복한 대립물의 모순적 통일. 이 정의와 폭력의 관념적 대립은 폭력의 화신 베인에 의해 구체적으로 한정된다. 크리스찬 베일이 얘기했듯, 베인은 전편을 통틀어 육체적으로 배트맨을 능가하는 유일한 적이다. 조커가 배트맨 (초월적 무력)이 담지한 선악의 가치체계를 헝클었다면, 베인은 그 힘 자체의 유효성을 되묻는다. 배트맨이 고담시의 수호자 (다크 나이트의 엔딩에서 고든은 배트맨을 수호자protector라고 말한다.)라면, 베인은 탈리아 알굴의 수호자(protector)다. 양자의 힘은 동일한 근원 (라즈 알굴과 어둠의 사도)에서 비롯된 갈래다.

베인은 조커와는 다른 의미에서 배트맨의 또 다른 분신이다. 폭력을 통해 정의를 수호하는 수호자, 배트맨의 허리를 또 다른 수호자의 폭력이 부러뜨린다. 육체적 힘은 꺾이고, 절망의 밑바닥에 감금된다. 빛을 피해 어둠 속에 거하는 다크 나이트를 어둠속에서 태어나 어둠을 지배하는 베인이 쓰러뜨린 것이다. 놀란은 배트맨을 추락시키며, 지금 고담시에 필요한 가치와 영웅의 역할은 무엇인지 가리킨다. 감옥의 노의사가 말했듯, 절망의 심연을 딛고 일어서기(rise) 위해 필요한 것은 육체의 힘이 아닌 영혼의 의지다. 그것은 곧 희망과 같은 말이다. 베인은 배트맨의 육체를 부서트리지만, 영혼은 꺾지 못했다. 경제적 위기와 황폐를 극복하는 힘은 더 이상 패권을 떠받치던 무력과 오만이 아니다.

 

배트맨은 베인이란 현상화된 모순과의 대립을 통해, 어둠에서 빛으로 다시금 자신을 정초시킨다. 그리하여, 브루스 웨인이 추구하던 최초의 정의는 균형이 아닌 조화로서 완전히 자리매김한다. 법 너머의 힘으로 법을 수호하던 배트맨은 법의 자장에서 완전히 이탈한 어둠의 기사가 되었다가, 순교를 통해 법과 정의의 동심원에 자리잡는 희망이 된다. <배트맨 비긴즈>, <다크 나이트>, <다크 나이트 라이즈>. 배트맨 3부작은 탄생하고, 추락했다, 비상함으로서 변증법적 운동을 완성한다. 브루스 웨인, 배트맨은 유한자에서 무한자적 상징으로 승화하며 자신이 구현하려 했던 아버지의 가치로 자기 내 복귀한다.

 

- 다음 편에 계속 -

 

필자> 일상과 세상의 경계를 모로 걸으며, 조심스레 두리번대고 글을 쓴다. 사회, 문화, 정치의 단층을 채집하여 살펴본 이면의 수런거림들을 블로그(blog.naver.com/yke0123)에 편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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