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저항을 공포정치로 억압하면 파국을 재촉할 뿐이다-

한승수 국무총리가 오늘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내용인즉, 사랑하는 국민을 위해 미국산 쇠고기를 들여온 것이니 조건없이 정부를 믿어달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정부의 이런 순수함을 믿지 못하는 국민에게는 철퇴를 가하겠다는 협박을 덧붙였다. 과연 무엇을 위한 대국민 담화였는지 의심스럽다.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최상재, 이하 언론노조)은 오늘 정부가 거리에 나온 선량한 민주시민을 향해 ‘더러운 꼴 보기 싫으면 잠자코 집에 틀어박여 있으라’는 말을 배운 사람답게 애둘러 표현했을 뿐이라고 판단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식 날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라고 선언했다. 대통령 스스로도 국민을 섬기겠다고 머슴론을 들먹이며 비위를 맞췄다. 국민들은 이명박 정부가 눈과 귀를 열어놓고 뜻을 받들어 국정을 수행하겠다는 겸손함인 줄 착각했다. 하지만 오늘 비로소 착각에서 벗어나게 됐다. 오늘 담화는 이명박 정부의 본질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정책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국민은 이명박 정부의 국민이 아니니 따끔하게 혼내고 말 잘 듣는 국민만을 데리고 살겠다는 오만함을 천명한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외치며 거리로 나선 전국의 수만 국민을 정부가 나서서 대놓고 불온한 세력으로 낙인찍었다.

통합과 화합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약속도 헌신짝처럼 버렸다. 국론을 분열한 것은 거리로 나온 국민도 아니요, 광우병의 위험을 경고한 용기있는 언론도 아니다. 오히려 편가르기와 낙인찍기로 민주적 의사 표현을 봉쇄하고 엄정대처 운운하며 공포정치를 조장하는 이명박 정부가 바로 국론 분열의 주범이다.

재협상은 없다고 버티다가 여론이 심상치 않자 입장을 번복한 것도 ‘미친 소가 웃을 일’이다. 힘없는 민초들일 뿐이라고 얕잡아보다가 당황한 나머지 물러선 것일 뿐이라는 기색이 역력하다. 거리로 나선 국민의 수가 적었다면 이명박 정부는 절대 이런 번복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기에 진정으로 반성하는 기색도 없다. 졸속 협상, 사대주의적 협상에 대한 사과도 없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명박 정부는 힘의 통치를 원할 뿐 대화와 타협 같은 민주적 의사결정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을 자인한 셈이다.

검찰과 경찰도 공포 정치, 공안 정치에 개입해 공을 세우겠다는 생각을 아예 버려라. 검찰과 경찰이 할 일은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는 것이다. 정권을 지키는 게 검찰과 경찰의 본분이 아니다. 정권은 국민이 선택한다. 그리고 정치는 국민이 하는 것이다. 검찰과 경찰은 국민을 지키는 기관이지 정권의 파수꾼이 아님을 명심하라.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수만의 목소리가 소통하는 것을 전기통신사업법 위반이니 업무방해죄니 하며 수사 운운하는 것은 스스로 정권에 충성했던 독재시절 검,경으로 돌아겠다고 고백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면밀한 법리적 검토와 확정도 없이 수많은 국민을 상대로 수사와 처벌을 흘리는 것은 그야말로 공포, 공안 정국을 조장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검찰과 경찰은 재산 공개와 청문회에서 드러난 고위직 인사의 비위 사실을 신속히 수사해 사법처리하는 게 본분이다. 세상에 드러난 비리 혐의조차 수사하지 않는다면 수사기관이 존재할 이유가 전혀없다. 신뢰저해사범은 거리의 국민이 아니라 바로 이명박 정부의 고위직들이다. 그들이 국민의 기대와 신뢰를 철저히 배신했기 때문이다.

언론노조는 정부와 수사기관의 대국민 협박을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보고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제각각 목소리가 한데 모아지고 소통돼 여론이 되고 국론이 되는 과정을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불온시하는 작태를 묵과하지 않을 것이다. 국민의 목소리를 지켜내지 못하면 언론 역시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국민의 소리를 전하는데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언론노조는 이명박 정부에 촉구한다. 민주주의를 갈망하고 생존권을 위해 하소연하는 국민을 손보겠다는 생각을 당장 걷어치워라. 그리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협상에 즉각 나서라. 문제가 생기면 조치하겠다는 미봉책으로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려 하면 더큰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당장 졸속 협상을 주도한 책임자를 문책하고 다시는 공직에 몸담지 못하게 하라. 국민의 뜻에 따라 국정을 펴겠다고 약속하라. 길만이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정권의 파국을 조금이나마 지연하는 유일한 길임을 명심하라.

2008년 5월 8일
전국언론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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