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에 대한 징계에 있어서는 무엇보다 교육적 차원으로 배려해야 한다. 감금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출교 조치는 그 정도가 지나치게 가혹하다.”

▲ 경향신문 10월5일자 16면.
지난해 4월 이른바 ‘교수 감금 사태’와 관련해 고려대가 학생들에게 내린 출교 처분은 무효라면서 법원이 내린 판결문 가운데 일부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1부(한명수 부장판사)는 4일 고려대 출교생 7명이 학교를 상대로 낸 출교 처분 무효확인 청구 소송에서 “출교 조치가 절차적 정당성 없이 이루어졌고, 처분이 지나치게 가혹하다”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 “출교 조치가 절차적 정당성 없이 이뤄졌다”

재판부는 “자신들의 일방적인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교수들을 감금한 원고들의 행위는 학문적 스승을 상대로 무리하게 의사를 관철하고자 한 것으로 대학사회의 도덕적, 민주주의적 건강성을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당시 감금됐던 학생처장이 상벌위원회 위원장으로 징계 심의를 주재하고 의결권까지 행사한 것은 사건 당사자가 자기 사건의 재판장을 맡는 것과 같다”며 절차에 문제가 있음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또 “출교생들이 해명이나 자신들의 의견을 진술할 기회도 충분히 부여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번 재판부 판결의 핵심은 무엇일까. 바로 다음과 같은 부분이다. “대학은 다른 단체와 달라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곳인데, 출교는 교육을 포기하는 것이다. 원고들의 행위는 계획적인 것이 아니라 경솔함과 민주주의 소양이 부족한 데서 온 것으로, 원고들이 배움과 성숙의 과정에 있는 학생들임을 감안해 학생 신분을 유지한 채 반성과 성찰의 기회를 갖도록 하는 교육적 배려가 필요하다.”

재판부의 ‘교육철학’에도 미치지 못하는 고대 교수들의 ‘철학적 빈곤’

“원고들이 배움과 성숙의 과정에 있는 학생들임을 감안해 학생 신분을 유지한 채 반성과 성찰의 기회를 갖도록 하는 교육적 배려가 필요하다”는 ‘교육적 충고’를 학교가 아니라 재판부의 판결문을 통해 ‘들어야’ 하는 상황이 참 비극적이다.

▲ 한겨레 10월5일자 사설.
사실 ‘고려대 학생 출교 파문’은 대학 당국의 비교육적 처사에도 문제가 있지만 그 과정에서 불거진 ‘마녀사냥식 언론보도’와 ‘대학의 자본화’에 더 큰 문제가 있다.

한겨레가 오늘자(5일) 사설을 통해 이 같은 대학현실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촉구한 것도 이 점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한겨레는 사설 <법원, ‘고려대 출교는 교육을 포기하는 것’>에서 “더 근본적인 것은 반지성적 권력 공간으로 피폐해지는 고려대의 현실”이라고 언급한 뒤 “교수 감금사태의 뿌리도 여기에 닿아 있다”고 비판했다. 한겨레 사설 내용을 좀 들여다보자.

“고려대는 2000년대 들어 학교의 기업화에 앞장섰다. 학교에는 삼성관, 엘지-포스코 경영관, 에스케이 정보관, 씨제이인터내셔널하우스, 이명박(한나라당 대통령후보) 라운지 등의 건물과 강의실이 등장했고, 특정 재벌에 교과목 설계 및 계약교수 파견권까지 주었다. 압권은 100주년 기념 삼성관을 개관하면서 재벌 회장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준 것이었다. 학생들은 이런 흐름에 저항했고, 학교 당국은 학생 자치활동을 위축시키려 했다. 문제의 보건대생 투표권 시비는 이 과정에서 빚어졌다. 학교 당국은 지난해 3월 징계 조항에 출교 조처를 신설하고, 징계절차를 대폭 간소화했다.”

비교육적 처사 이면에 숨겨진 대학의 반지성 움직임

▲ 조선일보 2006년 4월20일자 11면.
교수들로 상징되는 대학 당국의 비교육적 처사 이면에 ‘자본화’ ‘보수화’ ‘반지성화’ 되어가는 대학사회에 대한 학생들의 저항 움직임을 위축시키려는 의도가 있다는 주장인 셈이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오늘자(5일) 아침신문 가운데 동아 조선 중앙은 이 문제를 전혀 보도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이 사건이 불거졌을 때 대학 당국의 조치에 비중을 실은 보도를 ‘일방적으로’ 내보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보도태도다.

▲ 조선일보 2006년 4월20일자 11면.
당시 고려대가 학생들에 대한 출교조치를 강행했을 때 “학생들의 교수 감금 행위는 비판 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출교 처분을 내릴 만한 사안은 아니다”라는 여론이 있었다. 하지만 이는 철저히 언론에 의해 ‘묵살’당했다. 교육기관으로 과연 적절한 행동이었는지는 물론 적법한 절차도 밟지 않은 학교 측의 처사를 문제 삼는 언론도 거의 없었다.

7명의 출교생들은 학교 본관 앞에서 천막을 치고 지난 4일까지 533일째 농성을 벌여왔다. 이들의 ‘잃어버린 세월’을 누가 보상해 줄 것인가. 조중동이 ‘침묵’으로 일관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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