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드라마의 후반부 완성도 실종은 이제 말하기조차 지칠 상황이다. 유령도 예외는 아니어서 매회 옥에 티를 거르지 않는데, 마지막 2회를 남겨둔 상황이니 대본과 촬영이 실시간 중계 상황과 크게 다를 바 없이 진행되고 있음은 굳이 보고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방송사고가 나지 않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싸인의 컬러바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 작가를 봐서는 더욱 그렇다.

그렇지만 정식 방송사고만 없었다 뿐이지 후반 들어 유령은 초반의 짜임새를 잃었고, 납득하기 어려운 전개들이 눈에 띄었다. 게다가 18회의 경우는 재방송이나 다름없는 긴 회상씬으로 많은 시간을 충당하는 정직하지 못한 모습도 노출했다. 그보다 더 문제는 유령 엄기준의 정체성이 모호해졌다는 점이다.

엄기준은 갈수록 대범하게 살인을 저지르고 있는데, 급기야는 김우현의 아들 선우까지 협박에 이용하는 비열한 모습까지 보일 지경에 이르렀다. 그 모습으로 지금까지의 카리스마는 단숨에 무효가 됐다. 추적자의 경우 박근형과 김상중은 끝까지 악인으로서의 품격을 지켰다. 그래서 호평을 이어갈 수 있었으며 드라마가 끝난 뒤에도 여운을 가져갈 수 있었다.

이대로라면 유령은 멋진 결말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그러기에는 작가가 시간에 너무 쫓겨 있어 보인다. 분명 작가의 머릿속에는 잘 짜인 그림이 존재한다는 것은 알 수 있다. 예컨대 18회 대형팀이 일망타진되는 부분이 그렇다.

이삿짐트럭으로 위장한 것은 기발한 아이디어였고, 경찰서 앞마당으로 끌고 와 트레일러 적재함을 연 것은 아주 고소한 체포였다. 그렇지만 그 과정의 연출이 다소 밋밋했던 것이 아쉬웠다. 그러나 어쩔 도리가 없다. 생방송이나 다름없이 촬영되는 후반부에 대본에 없는 연출을 기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한 염재희 살인과 증거인멸로 경찰에 쫓기고 있는 강응진(백승현)이 이태균(지오)형사에게 CK전자 백신베타 원본을 강탈하러 갔다가 거꾸로 이연희에게 체포됐다. 이 못된 배신자가 잡히는 것은 분명 속 시원한 일이지만 그 과정의 개연성은 희박했다.

신경수(최정우)국장에게 이태균이 혼자서 원본을 분석하고 있다고 말은 했지만 강응진이 이태균을 만나러 혼자서 간다는 것은 너무도 무모한 일이다. 이태균도 명색이 형사인데 무기도 없이 혼자서 중요한 증거를 빼앗을 거라 생각하기는 어렵다. 분명 잡힐 만한 때에 나름 멋지게 잡기는 했지만 과정은 그다지 후련하지 않았다.

모든 이유는 한 가지뿐이다.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유령에게 희소식이 전해졌다. 올림픽 중계로 인해 2주간 결방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결말 2회만을 앞두고 무려 2주간이나 결방하는 것이 아쉽고 불만일 수밖에는 없지만 완성도를 위해 오직 시간만이 필요했던 작가와 제작진에게는 이보다 더 반가운 일은 없을 것이다. 이렇게 번 시간을 통해서 유령은 마지막 결말을 멋지게 장식할 희망을 얻게 됐다.

그러나 그토록 시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소지섭, 이연희를 통해서 모 전자회사 제품은 빼곡하게도 PPL을 넣는 장면은 씁쓸하기만 했다. 그것이 멋진 배우들을 보기 위해서 치러야 할 비용이겠지만 통화 중인 휴대폰 화면에 제품 광고카피가 그대로 나오는 것은 도가 지나친 의욕이었다. 새삼스럽게 PPL을 탓하고 싶지는 않지만 해도 엔간히 하면 좋겠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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