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신사의 품격>은 여성 판타지 충족이 아니라, 남성 판타지 충족 드라마입니다. 여성들이 꺼려하는 소재를 적나라하게(?) 털어놓고 있지만 그럼에도 <신사의 품격>은 시청률 30%을 목전에 둘 만큼 큰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주 시청자를 여성으로 하는 드라마임에도 여성들이 싫어하는 주제로도 선전하는 김은숙 작가의 능력에 경의를 표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보통의 로맨틱 코미디를 표방하는 트렌디 드라마들과 달리, <신사의 품격>은 남자주인공들의 나이를 41세로 대폭 상승시켰습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나이들이라 20~30대들과는 달리 과거사가 화려합니다. 아리따운 20대 여성과의 로맨스로 한 축을 담당하는 김민종은 상처한 과거가 있고, 메인 주인공 장동건은 장성한 아들을 둔 미혼부(?)입니다.

그래도 김도진(장동건 분)의 경우 그의 연인 서이수(김하늘 분)가 그의 엄청난 과거를 받아들이는 걸로 칩시다. 뒤늦게 나타난 도진 아들 콜린(이종현 분) 때문에 콜린의 친모 김은희(박주미 분)와 다시 만나는 것도 아니고, 아들은 아들대로 각자의 삶을 행복하게 영위하기로 아주 '쿨'하게 매듭지었으니까요.

그런데 최윤(김민종 분)과 임메아리(윤진이 분)의 상황은 썩 좋지 않습니다. 아시다시피 임메아리는 최윤의 절친 임태산(김수로 분)의 여동생입니다. 그것도 임태산이 고등학생 때 태어난 늦둥이입니다. 그래서 태산에게 메아리는 친오빠 이상의 보호자나 다름없습니다.

메아리가 초등학교 다닐 때 이미 애 아빠 나이가 되어버린(?) 오빠는 동생 이마에 상처를 낸 남자아이 집에 찾아가 우리 메아리 미스코리아 나갈 건데 이마에 상처내면 되나며 격하게 항의할 정도로 여동생을 끔찍이 아꼈습니다. 그렇게 태산에게 메아리는 세상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동생이 사랑하고, 또 동생을 사랑하는 남자가 하필이면 세상에 둘도 없는 인연 최윤이랍니다. 사람 자체로만 보면 흠잡을 데 없는 멋진 남자 최윤이지만, 그는 4년 전 상처한 아픔이 있고 무엇보다도 최윤과 메아리는 무려 17살의 나이를 극복해야 합니다. 최윤은 이제 태산에게 자기의 분신과 다를 바 없는 '좋은 놈'에서 메아리 인생 전체를 상처 내 버릴 '나쁜 놈'이 되어버립니다.

아마 메아리가 태산의 동생이 아니었다면, 태산과 도진, 이정록(이종혁 분)은 최윤을 "도둑놈"이라고 놀리면서 내심 그의 능력을 부러워했을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도 남자들은 여전히 젊고 예쁜 여자를 탐하며, 적지 않은 나이에도 늘 나이 어린 여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남자를 부러워하니까요.

하지만 최윤의 그 젊고 예쁘고 집안도 좋은 여자는 태산의 여동생이고, 최윤, 도진, 정록이 또한 친동생이나 다를 바 없는 관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진과 정록은 누구의 편도 쉽게 들어줄 수 없습니다. 메아리를 정말로 사랑하는 윤이를 보면 당연히 윤이를 응원해야 할 텐데, 그 때문에 속앓이를 하는 태산이를 보면 태산의 심경도 충분히 이해가 가니까요. 아니 제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보호자라면 당연히 태산이 입장이 될 수밖에 없지요.

요즘 일본에서 최윤과 임메아리 나이 차이 정도의 중년 남성과 젊은 여성들의 결혼이 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젊은 여자와 커플이 되는 일부 연예인들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지만, 솔직히 메아리와 비슷한 또래 여성의 시각에서 봤을 때 썩 좋아 보이는 모습은 아닙니다.

드라마와 달리 실제 김민종은 아직 미혼이고, 40대임에도 보통 20~30대 웬만한 남성보다 더 훌륭한 외모에 비교적 안정적인 경제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나, 그럼에도 17년의 벽을 뛰어넘기란 상당히 역부족으로 보입니다. 상처한 아픔 빼곤 드라마 속 최윤이 워낙 멋지니까 또 신인임에도 상큼한 매력으로 시청자를 사로잡는 윤진이 때문에 많은 시청자분들이 최윤과 임메아리의 사랑을 응원하고 있지만, 실제 내 동생이 혹은 후배, 그리고 친구가 이런 사랑을 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임태산이 될 것입니다.

아니 드라마 속 임태산이 반대하는 것보다 더 심하게 대응하겠죠. 실제 임메아리 같은 24살 아가씨가 41살 중년 남성을 만난다고 했을 때, 최윤같이 재력 있고 젠틀하고 핸섬하기까지 한 남자는 드라마 속에나 가능한 비현실적인 판타지니까요.

물론 최윤처럼 멋있고 잘생기지 않아도, 실제 임메아리와 같은 사랑을 하는 여성들 입장에선 그 남자와 함께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진심으로 '행복'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제3자가 봤을 때는 과연 그 사랑과 행복이 지속될지는 의문입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아가씨가 잠깐의 불장난에 깊숙이 빠져 남은 인생의 전체가 힘들어지지 않을까 걱정되고 도시락 싸면서 말리고 싶은 게 보호자의 마음일 테니까요.

쉽게 이뤄질 수 없는 최윤과 임메아리의 사랑도 가슴 아프지만, 그들을 반대할 수밖에 없는 태산의 마음이 더 절절히 와 닿는 현실. 최윤과 임메아리의 사랑앓이는 드라마 <신사의 품격>에서나 가능한 걸로 쳐야할 것 같습니다.


연예계와 대중 미디어를 통해 세상을 보고자합니다.
너돌양의 세상전망대 http://neodol.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