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제헌절 자체 최고 시청률 22.6%(AGB 닐슨 미디어 리서치 기준)을 기록하며 인기리에 종영한 SBS <추적자>. 하지만 처음엔 어느 누구도 <추적자>의 성공을 가늠하기 어려웠습니다.

손현주, 김상중, 박근형 등 연기파 배우 총출동에 부당한 권력에 의해 딸을 잃은 아버지의 복수극이란 소재는 흥미로웠지만, 멜로 장르가 강세인 한국 드라마 시장에서 <추적자>와 같은 묵직한 주제가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 의문이었습니다. 요즘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기 아이돌도 없고, 연기력은 최고이지만 스타성과 화제도가 약한 주연들로 <추적자>의 성공 가능성을 확신하긴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추적자>는 이 같은 우려를 깨고 2012년 한국 드라마 시장에 일종의 '센세이션'을 일으킨 명작으로 이름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작품성, 연기력은 물론 흥행까지 완벽했던 작품이 되었습니다. 요즘 대세라는 인기 톱스타들이 대거 포진한 작품과 동시간대 맞붙긴 했지만, 인간의 권력욕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품 내용과 그에 걸맞은 깊이 있는 배우들의 연기로 흥미진진하고 긴장감 있게 풀어낸 <추적자>가 압승을 거둡니다.

<추적자>의 기대 이상의 성공은 여러 가지 면에서 고무적입니다. 일단 멜로 일색 한국 드라마 구도에 사랑 이야기 없이도 시청자에게 어필할 수 있다는 좋은 예를 남겼습니다. 물론 <추적자>에도 사랑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극의 중심이 아니었고, '남녀 간의 사랑' 때문에 잘 나가던 드라마가 꼬이는 일은 결코 없었습니다.

그래서 달달함과 아련함은 상대적으로 떨어졌지만, 대신 <추적자>에서는 인간과 인간 간의 갈등, 배신, 음모, 적재적소에 배치한 세상 비유로 한 회, 한 회를 성실히 채워나갔습니다. 그간 쉽게 볼 수 없었던 이야기이기에 신선함을 갈망하던 시청자들은 <추적자>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리얼한 정치 풍자와 해법으로 수많은 시청자들을 열광케 합니다.

또한 <추적자>는 고액의 출연료를 자랑하는 한류 스타 혹은 아이돌 없이도 흥행이 가능함을 입증했습니다. 드라마 관계자들이 수억 원의 출연료를 들어 톱스타를 기용하는 이유는 '시청률'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톱스타들이 자신의 출연료에 비례하는 연기를 보여주면 별말이 없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경우가 수두룩했기에 톱배우들의 고액 출연료가 도마에 오르곤 했습니다. 고액의 출연료를 받는 톱배우들의 출연작이 시청률, 화제도 면에서 반드시 성공을 거두는 것도 아닙니다.

이제 시청자들은 지명도만 높은 인기스타에 열광하기보다 극에 걸맞은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들을 보고 싶어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어느 배우 하나 빠지는 이 없이 완벽한 앙상블을 보여준 <추적자>는 소위 '발연기'에 극한 피로감을 느끼던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호강시켜 주었습니다. 손현주와 김상중, 혹은 박근형과 김상중의 대면씬이 방영되는 동안에는 멍하니 TV를 응시하며 딴 짓을 못할 정도로 강한 몰입도와 긴장감을 불러일으킵니다.

박근형, 김상중, 손현주 세 명의 연기대상 공동 수상이 거론될 정도로(?) 누구 하나 빠지는 이 없이 완벽한 연기를 보여줬던 <추적자>였지만, 역시 다수의 시청자들에게 가장 큰 인상을 남긴 배우가 있다면 이 시대의 아버지 역할을 200% 소화한 손현주입니다.

박근형이 맡은 서 회장, 그리고 유력 대선후보였던 강동윤(김상중 분)과 달리 백홍석(손현주 분)은 오로지 가족밖에 모르던 평범한 가장입니다. 그런 그가 권력자들의 헛욕심에 가족을 잃자, 법정에 총기를 난사하고 도주하였을 때 시청자들은 그가 저지른 죄를 질책하기보다 백홍석의 복수가 성공적으로 끝나길 간절히 기원했습니다. 백홍석이 강동윤, 혹은 서 회장의 계략에 무너질 때마다 시청자들은 마치 내가 당한 일인 양 분통을 터트리기도 했습니다.

백홍석이란 캐릭터 자체가 보통 서민들과 다를 바 없는 얼굴이긴 합니다. 하지만 손현주라는 진짜 배우가 작가의 상상에서만 머물던 인물에 누구에게나 닥칠 이야기처럼 느껴지게 하는 '공감'을 불어넣었기에 더욱 백홍석에게 귀를 기울일 수 있었습니다.

특히나 <추적자> 4회에서 딸에 이어 아내까지 잃은 백홍석이 그녀들이 쓰던 숟가락을 부둥켜 잡고 오열하는 장면에선 시청자들도 참았던 눈물을 펑펑 쏟아내게 합니다. 부당한 권력에 의해 만신창이가 된 백홍석의 파멸은 개인의 아픔을 넘어 시대의 비극이니까요.

<추적자>의 백홍석은 법정에서 총기 난사와 도주죄가 적용되어 징역 15년을 선고받았고, 애꿎은 소녀를 잔인하게 짓밟아놓고도 뻔뻔하게 청와대로 들어가고자 했던 유력 대선 후보 강동윤은 화려함의 정점을 찍기 전에 몰락했습니다. 15년 이상 감옥에 갇혀있어야 하는 백홍석은 자신의 무죄를 포기하는 대신 비행 청소년으로 억울하게 낙인찍혔던 딸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데는 성공합니다.

죽은 딸의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일념 하에 거대한 골리앗과 맞서 싸우길 주저하지 않았던 아버지의 용감함만 강조하기보다, 뒤늦게라도 진실을 알고 힘을 모아 악당을 쓰러트린 시민의식의 위대함을 보여주었던 <추적자>. 드라마 속에서만 가능한 판타지를 넘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용기를 설득력 있는 연기로 불어넣어준 이 시대 최고 명품 작가와 배우들에게 이제는 그에 걸맞은 '상'과 '대우'로 화답할 차례가 아닐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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