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 13일‘망 중립성 가이드라인 기준(안)'공개로 망 중립성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촉발되는 분위기다.

그 동안 방통위는 망 중립성 정책자문위원회 회의자료 수거하고, 회의참관 신청을 거부하는 등 망 중립성 논의를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해 시민사회단체들로부터 비판을 받아왔다. 이런 가운데 공개된 기준(안)에 대해서도 통신사,콘텐츠사업자,이용자단체 모두 비판적인 의견을 내놓고 있다.

콘텐츠 사업자와 이용자 단체들은 트래픽 관리를 위해 특정 서비스 차단을 명시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하고 통신사들은 서비스 차단을 위한 구체적 단서조항들 때문에 트래픽 관리를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방통위는 지난해 12월 망 중립성 및 인터넷 트래픽 관리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제정한 바 있다. 가이드라인은 지난 해 4월 통신사, 콘텐츠사업자, 시민단체, 관련 전문가 등이 참여한 '망중립성 정책방향 수립을 위한 포럼'에서 나온 논의 결과였다. 가이드라인 내용은 △이용자의 권리 △인터넷 트래픽 관리의 투명성 △차단금지 △불합리한 차별금지 △합리적 트래픽 관리 등이다.

방통위 이번에 내놓은‘망중립성 가이드라인 기준(안)은 12월의 가이드라인을 구체화한 것이다. 방통위는 지난 2월부터이 기준안을 위해'망 중립성 정책자문위원회'를 구성해 매달 한 차례 회의를 가진 바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방통위가 내놓은 기준안은 망중립성 가이드라인 정책자문위원회 내부에서조차 반발이 생겨나는 등 최종 확정되기까지는 아직 정리해야할 쟁점들이 남아있는 상황이다.

미디어스는 그동안 망중립성 논의를 둘러싸고 형성돼왔던 쟁점들을 정리해보고 앞으로 남은 과제를 전망해보았다.

삼성스마트TV 송출 차단 전투에서 mVoIP 전투로

망중립성 논의 관심 불러일으킨 KT의 '삼성 스마트TV 차단' KT는 지난 2월 스마트TV의 인터넷 접속을 제한하면서 망중립성에 대한 쟁점이 단지 사업자간의 이슈가 아닌 이용자들의 생활에 직접적으로 맞닿은 이슈로 체감하게 됐다. KT는 스마트TV가 망사용 대가없이 과도한 트래픽을 유발하고 있다는 이유로 선발사업자인 삼성스마트TV의 인터넷 접속을 차단하는 조치를 취했다.그러나 여론은 KT에 비판적이었고 결국 방통위는 지난 5월 KT에 대해 ‘경고' 조치를 내렸다. 당시 방통위의 경고조치는 비판여론에 비해 통신사업자에 대해 너그러운 조치였는데, 방통위가 '솜방망이 처분'이란 비판을 감수하면서 앞에 내세운 명문은 '망 중립성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점을 고려한다"는 것이었다. 망중립성 논의가 진행중이기 때문에 KT의 차단행위에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었다.

▲ 지난 2월 10일 KT가 삼성전자 스마트TV의 트래픽 과부하를 이유로 TV를 통한 인터넷 접속을 차단했다. 이날 오후 서울 용산구 전자랜드 가전매장에서 TV 화면에 인터넷에 연결하라는 메시지가 떠 있다. ⓒ 연합뉴스

스마트TV 차단 사건 이후 한동안 잠잠했던 망중립성 논란은 다시 지난 6월 초 문자서비스인 '카카오톡'이 mVoIP(무선인터넷전화) 서비스를 시작함에 따라 또 다시 촉발됐다. 우리나라에만 3,500만명의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는 카카오가 보이스톡이라는 mVoIP 서비스를 제공함에 따라 통신사들도 이에 대한 대응에 고심하게 됐다.

기존에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었던 다음의 '마이피플', NHN의 '라인'등 mVoIP서비스에 대해 SKT와 KT는 3G는 '54요금제' 이상, 4G는 '52요금제' 이상 가입한 고객들에게만 부분적으로 허용해 왔으며 LGU+는 아예 전면 금지해 왔다. 하지만 지난 6월 초 3위 통신사업자인 LGU+가 mVoIP의 전면허용 입장을 밝히면서 망중립성 논쟁이 새국면으로 접어드는 듯했다.그러나 호언장담했던 LG U+의 호기는 얼마가지 못한 채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6월말 요금제에 따라 차등적으로 mVoIP 데이터 제공량을 제한하는 내용의 약관을 신고한 것이다. 결국 망중립성 논쟁은 돌파구를 찾지 못한채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야 했다. 이 과정에서 방통위는 mVoIP 논란에‘시장자율’에 맡긴다는 원론적인 기존 입장만 반복해, 기존 통신사업자의 손을 계속 들어준 다는 비판을 받게 된다.


mVoiP 해외사례를 둘러싼 '일합'

'카카오톡'의 mVoiP서비스로 다시 촉발된 망중립성 논쟁은 mVoIP 허용에 대한 해외사례에 대한 해석을 놓고도 격렬하게 맞붙었다. 민주당 장하나 의원이 "해외에서는 망중립성을 채택해 이동통신사들이 mVoIP를 전면 허용하고 있다”며 국내 이통사들의 망중립성 위반을 주장하자 SK텔레콤은 해외에서는 고가의 기본요금이 책정된 요금제에서만 mVoIP를 허용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에 다시 시민단체에서 바로 반격에 나섰다. 시민단체는 유럽 전자통신규제기구(BEREC)이 지난 5월에 내놓은 보고서를 내놓으며 통신사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공박했다.
지난 13일 방통위 주최 토론회에서도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이사는 BEREC 조사결과 23%만이 mVoIP 차단하거나 부분 허용하고 있다”면서“방통위 기준(안)은 23%에 속한 3가지 사례만을 소개했다”고 비판하며 통신사 진영에 타격을 입혔다.

▲ 망 중립성 논의 촉발 시킨 카카오톡

이에 대해 정태철 SKT CR전략실 전무는 같은 자리에서 “BEREC의 조사대상 중 23%만 차단 또는 부분 허용하고 있는 것은 맞다”면서도“그러나 23%의 사업자가 나머지보다 가입자 수는 더많다”고 밝혔다. 일단, 해외사업자논쟁에서 망중립성을 허용하는 통신사가 더 많은 것으로 파악된 점으로 볼때, 해외 사례 논쟁에서는 '통신사'측이 판정패에 가까운 양상으로 논쟁의 승패가 갈리고 있는 셈이다.

트래픽 관리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양진영의 논쟁에서도 그러나 망 혼잡 시 트래픽 관리의 필요성은 모두 인정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트래픽 관리를 위해 특정 서비스를 우선 차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인지 혼잡상황을 야기하는 트래픽을 차단하는 것인 지에 대한 의견대립이 있다.

'망중립성 이용자 포럼'의 오병일 진보넷 활동가는 "망 혼잡이 발생했을 경우 해당 혼잡을 유발하는 트래픽만 관리하면 된다”면서“특정한 서비스를 차별하는 것은 망 중립성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통신사들은 과도한 트래픽을 쓰는 서비스나 해비 유저들에 대한상시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김효실 KT 상무는 지난13일 열린 토론회에서“해비유저에 대한 관리는 특정조건하에 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고 상시적으로 이뤄져야하며 대용량 콘텐츠(P2P)도 상시적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로 주장이 상충되는 상황에서 논의의 진전을 위해서는 통신사들의 투명한 정보공개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방통위 기준(안)에 따르면 안이 확정된 날로부터 6개월 이내에 통신사들은 트래픽 관리 정보를 자사의 인터넷 홈페이지 등에 공개해야한다. 트래픽 관리정보에는 망부하시 트래픽 관리와 상시 트래픽 관리로 나눠 적용조건, 대상,방식, 적용후 영향, 적용기간 등이 포함돼 있다.

결국, 문제는 '망 투자비용'

스마트폰 보급으로 무선 트래픽 양은 폭발적인 증가 추세에 있다.통신장비 업체 에릭슨은 6월 초 내놓은 보고서에서 2017년까지 모바일 트래픽은 지금보다 15배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이런 추세라면 폭증하는 트래픽을 수용하기위한 망 고도화가 시급한 문제다.

망 고도화를 위한 비용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통신사들은 ‘무임승차론’을 주장하며 콘텐츠 사업자들도 망 투자비용을 분담해야한다고 말한다. 또 통신사들은 mVoIP와 같은 통신사 역무와 중복되는 서비스까지 망 중립성을 이유로 무제한 허용한다면 수익악화로 망투자여력이 없어져 결국 ICT 생태계 자체가 붕괴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콘텐츠 사업자나 소비자들은 망 투자비용은 통신사들이 해결해야할 문제이지 지금 내는 이용료 이외에 망 투자비용에 대해 또 다시 분담하라는 것은 부당하고 주장하고 있다. 오병일 진보넷 활동가는 "통신사들이 요금체계 조정, 혁신 서비스 개발 등을 통해 해결할 문제지 다른 사업자들에게 망 비용을 부담 시키는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이 논쟁에서는 시각의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지난 6월 말 공공미디어연구소가 주최한 토론회에서는 망은 공공성과 사회성의 성격을 띠고 있으니 망 투자비에 대해 기금을 조성해 망 투자비를 지원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 지난 13일 망 중립성 토론회가 방송통신위원회 주최로 열렸다. 이날 공개된 트래픽 관리 기준(안)에 대해 이해당사자 모두 불만족스러운 입장을 보였다.ⓒ미디어스

조준상 공공미디어연구소장은 이날 토론회에서 “(망 사업자의 수익성이 악화됐을 때) 네트워크 투자비용이 이용자들에게 전가하는 경우가 우려된다”며 “일정 규모 이상의 수익을 내는 콘텐츠 제공사업자는 망으로 수익을 얻는 만큼 망투자비를 일정하게 분담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병일 활동가는 지난 12일 기자회견에서“(망중립성 논란은) 무선인터넷 전화를 쓰거나 가격을 낮추는 문제가 아니다”라면서 “이번 일은 앞으로 인터넷이 개방과 공유, 참여에 기반한 자유로운 환경이 될 것인지 통신사에 의해 자의적으로 통제되는 환경이 될 것인지 가늠하는 중요한 사건”이라고 밝혔다.

방통위는 지난 13일 열린 토론회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올해안에 망 중립성과 트래픽 관리에 관한 기준안을 마련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창희 방통위 통신경쟁정책과장은 13일 토론회에서“정부에서 양쪽 모두를 만족시키는 안을 제시하기는 쉽지 않다”면서 “양쪽 모두를 만족시키는 안을 만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공개한 망중립성 가이드라인 세부안에 대해 여론은 방통위가 사업자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의혹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는 상황이다. 방통위가 망중립성의 원칙과 현실을 모두 수용할 수 있는 솔로몬의 지혜를 내놓을 수 있을 지 지켜 보는 일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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