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장학회는) 개인의 것이 아니고 공익법인인데, 제가 이사장을 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관계없는 제가 이사장을 관두라고 하는 게 말이 되는 것인가요?" 지난 10일, 대선 출마를 선언한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은 '아킬레스건' 정수장학회 문제에 대해 "나와 관계없는 일"이라며 일관된 단호함을 보였다. 2005년, 2007년 두 차례 '국정원 과거사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와 '진실 ·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강제헌납"이라고 결론내렸음에도 이는 '정치공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영장도 없이 끌려갔던 1962년의 기억

▲ <미디어스>는 정수장학회 창립 50주년을 하루 앞둔 13일, 고 김지태씨(전 삼화고무 회장) 미망인 송혜영씨를 만났다. ⓒ곽상아

지난 14일은 정수장학회 창립 50주년 기념일이었다. 부일장학회가 강제로 국가에 헌납돼 정수장학회로 넘어간 지 벌써 반백년의 세월이 흐른 것이다. <미디어스>는 정수장학회 창립 50주년을 하루 앞둔 13일, 고 김지태씨(전 삼화고무 회장) 미망인 송혜영씨를 만났다. 1962년 송씨는 남편인 김지태씨가 일본에 가 있는 사이 김지태씨의 귀국을 종용하기 위한 인질용으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1달 반 가량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가슴 속에 피맺힌 한이 있다"는 송혜영씨는 50년 전 영장도 없이 새벽에 끌려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새벽에 갑자기 두 사람이 찾아왔어요. 중앙정보부에서 왔다고 하더군요. 영장도 없이, 다짜고짜 '할 이야기가 있으니 가자'면서. 무슨 죄목인지도 모른 채 중앙정보부 부산지부에 끌려가야 했지요. 아침에 도착했었는데, 점심이 지나도록 굶기면서 그냥 기다리게 하더니 오후에는 형무소에 집어넣었어요. 제가 회장님(남편인 고 김지태 회장을 의미)과 독일여행에서 기념으로 사가지고 온 다이아반지와 카메라에 대해서 '밀수'라고 하면서…. 정말 기가 막혀서…. 그때 당시 장신구 하나 정도는 승낙됐기 때문에 저 역시 손에 낀 상태에서 (세관원에게 반지를) 보여주었고 그게 자동 신고되는 거였거든요.

이후에 제 재판이 시작됐고, 세관원도 재판에 불려왔는데 그 사람이 뭐라고 하겠어요? 당연히 '정상통과된 물건이고, 밀수가 아니다'라고 하지요. 그런데 며칠 있다가 그 사람이 세관원 자리에서 해고되더군요. 그 가족은 어떻게 됐을까요? 참 그때는…기막히는 일이 많았지요. 제가 그때 감옥에서 한달 반 정도 있었어요. 회장님은 건강이 안좋아 일본에서 치료중이셨는데, (제가 인질로 잡혀있으니까) 귀국했고, 귀국하자마자 중앙정보부에 끌려갔지요. 그후 저는 사흘만에 풀려났구요…."

박근혜가 연봉 20억 받는 사이, 돈 되는 것 다 팔아 생활비 충당

▲ 송혜영씨가 남편인 고 김지태씨가 남긴 수첩을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 ⓒ곽상아
사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9년 10월 26일 갑작스럽게 사망했을 당시 김지태 회장 측은 '이제는 부일장학회를 돌려받을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강탈한 장본인이 죽었으니까 조만간 되찾게 될 줄 알았다"는 것. 그러나, 상황은 유족들의 바람과 정반대로 흘러갔다. 뒤이어 들어선 전두환 정권은 5.16장학회(부일장학회)를 고 김지태씨 가족들에게 돌려주기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남은 가족들에게 '사유재산'으로 안겨주었다.

"절망했습니다. 박근혜 의원은 김 회장님이 '자발적으로 장학회를 기증한 것'이라고 하는데, 사실이 아니예요. 회장님께서 장학회에 대해 큰 애정을 가지고 좋은 일도 많이 했는데, 이렇게 강도질할 수 있는 건가요?

정수장학회는 지난 50년간 3만여명에게 장학금 혜택을 주었다고 하는데, 왜 남의 돈을 뺏어서 장학금 준다고 생색을 내는 걸까요? 부일장학회는 1년에 3000명씩 장학금을 주었고, 그걸 50년으로 환산하면 15만명이에요. 만약 부일장학회가 계속 그대로 남아있었다면, 훨씬 더 많은 학생들이 장학금 혜택을 받지 않았겠습니까?"

정수장학회가 사실상 박근혜 의원의 사조직으로 전락해가는 사이, 장학회의 원 소유자였던 김지태씨의 미망인 송혜영씨는 힘겨운 삶을 살아가야 했다고 한다.

"가지고 있는 것 중에 돈 되는 것은 모두 팔아서 생활비로 써야 했어요. 하도 생활이 힘들어서 62년에 박정희 정권이 '밀수죄'라고 했었던 다이아반지와 카메라도 다 팔아서 생활비로 썼어요. 그 물건들 때문에 난생 처음으로 형무소까지 갔었고 온갖 고초를 당했기 때문에, 웬만하면 팔지 않으려 했었는데…생활이 곤란해서 팔지 않을 수 없었지요….

지금도 생활이 매우 힘들어요. 위수술, 뇌수술 등 큰 수술을 5번이나 해서 건강도 안좋은데 병원비도 없고. 택시 탈 돈도 없어서, 65세 이상이 사용할 수 있는 무료 지하철 표를 이용하면서 다닙니다. 그런데…저와 달리 박근혜 의원은 정수장학회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연봉으로 20억 넘게 가져가지 않았나요? 이게 정상적인 것인가요?"

"박근혜 측이 정수장학회 털고간다"고? 정치적 쇼다

박근혜 의원 측이 대선을 앞두고 고 김지태씨 유족과 접촉하는 등 '정수장학회' 문제를 털고 가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언론보도가 나왔으나, 송혜영씨는 이 보도에 대해 "전혀 사실 무근의 보도"라며 격앙된 모습을 보였다. "박근혜 의원 측에서 전혀 연락온 바가 없다"며 "박근혜 의원이 실제로 유족들과 논의한 것도 없으면서 마치 해결의지가 있는 것처럼 정치적 쇼를 하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는 것.

"만약 우리와 접촉을 했다면 (대선출마를 선언할 때) 어떤 여지가 있었을 텐데, 강경한 태도로 일관하지 않았습니까? 박근혜 의원이 대통령이 되어서 새 시대를 열겠다고 하는 걸 보면서 해묵은 정수장학회 문제도 잘 해결될 것으로 기대했는데, 출마선언날 밝힌 내용을 보고 대단히 실망했어요.

부디, 박근혜 의원이 저희 유족들의 뜻을 헤아려 주셨으면 합니다. 재산을 강제로 헌납당한 이후, 저는 생활비 걱정을 하면서 사는데…. 계속 이러는 것은 인간된 도리가 아니지 않아요?"

송혜영씨는 '사회환원'이라는 김지태씨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서는 "박근혜 의원 측 이사진은 전부 물러나고, 예전의 부일장학회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송씨는 지난 6일 차남 김영우씨가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를 통해 "우리가 원하는 것은 박근혜 전 대표의 사과도 아니고, 최필립 이사장을 비롯한 이사진의 강제퇴진이나 그런 게 아니다"라며 "유족들이 추천하는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인사들이 장학회를 운영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라고 밝힌 것에 대해서는 "차남의 의견일 뿐 유족 전체의 뜻이 절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현재 차남이 가족들과 동떨어진 생각을 혼자서 하고 있다. (차남을 제외한) 나머지 가족들이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차남 한 명의 말만 듣고 '유족의 뜻'이라고 보도해선 절대 안 된다"는 것.

마지막으로, 송씨는 "박근혜 의원이 좋은 일 하는 셈 치고, 이제 그만 정수장학회를 유족들에게 돌려줬으면 한다"며 "내가 죽기 전에는 반드시 부일장학회를 되찾아서, 남은 가족들끼리 '사회환원'이라는 회장님의 유지를 받들고 싶다"고 호소했다.

"제 나이가 80을 넘겼습니다. 살면 얼마나 살겠습니까? 병 투성이인데…. 제가 굉장히 한이 많은 사람입니다. 죽기 전에 한 좀 풀고가고 싶어요. 돌아가신 회장님께서 부일장학회를 되찾고자 얼마나 애쓰셨는지 몰라요. 죽어서라도 '영감, 생전에 그렇게 되찾고 싶어하던 부일장학회를 드디어 원상복귀시켰어요. 좋지요?'라고 말할 수 있도록이요…. 아버지가 한 나쁜 짓을 딸이 바로잡는다면, 아버지도 살고 자기도 사는 길이 될 텐데 왜 저렇게 붙들고 있는 건지 정말 도통 이유를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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