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의 국무회의 코멘트를 두고 많은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당사자로서는 미국 쇠고기 수입 협상으로 인한 사회적 파장이 적지 않은 만큼, 관련 정부부처 장관들이 저마다의 사태 수습을 자임하고 나서는 마당에 한두 마디 거든 것을 두고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을 가질 지도 모르겠다.

▲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그러나 최시중 위원장은 방송 관련 정책과 규제를 총괄하는 주무기관의 수장이다. 그리고 쇠고기 협상 문제는 언론이 관심을 가지고 주시해야 하는 외교 현안이자 민생 사안이다. 언론이 이 문제를 깊이 있게 파고드는 것은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는 적극적 활동이며, 당연한 권리이고 책무다. 그런 만큼 언론이 쏟아내고 있는 비판은 충분히 정당하며 이는 국민적 지지 속에서 입증되고도 남음이 있다.

다양한 언론과 다양한 의견의 존재는 민주주의를 튼실하게 만드는 초석이다. 비판적 감시가 자기 책무인 언론에게 정부의 보도자료에만 의존한 충성도 높은 기사를 쏟아내라고 주문한다면, 이는 그동안의 우리 사회 변화를 무시한 낡은 관행이고 구태의연한 프레임인 것이다.

'방송·심의 독립성 보장'은 방통위원장 기본 직무

그런데 이러한 언론의 기능과 속성을 적극적으로 이해시켜야 할 위치에 있는 최 위원장이 국무회의에 배석한 장관들과 차별화된 목소리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이에 부응해 "쇠고기 문제와 관련한 언론의 문제제기가 계속되면서 확대되고 있는 양상"이라며 본말이 전도된 발언을 함으로써 사태의 원인을 언론의 탓으로 돌리는데 일조한 것은 매우 유감이다.

더구나 "방송심의위원회의 기능은 사후적인 것인데 그런 측면에서 미리 언론홍보에 대응하는 게 미흡한 것이 아닌가를 지적하고 싶다"는 발언으로 정부와 언론의 코드 맞추기를 주문하고 있는 것은 더욱 충격이고 실망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부적절 인사 시비가 이어지는 상황 속에서 방송의 독립성을 반드시 보장하겠노라 약속해 온 그가 아닌가?

'방송통신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 제1조는 방송통신위원회가 "방송의 자유와 공공성 및 공익성을 높이고 방송·통신의 국제경쟁력을 강화하며 방송통신위원회의 독립적 운영을 보장함으로써 국민의 권익보호와 공공복리의 증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즉 방송의 자유와 공공성을 보장하는 문제는 위원장 개인의 선택 사안이 아닌 의무이며 책임이라는 것이다.

▲ 지난 4월 16일 방통위 전체회의를 시작하며 최시중 방통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정영은
분명한 것은 방송통신위원장의 사소한 발언조차도 방송 제작진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만큼 불필요한 말은 아끼고 또 아껴야 한다. 더구나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프로그램에 대한 공공연한 불만을 표출하는 것, 이것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다. 이는 방송통신위원장의 기본 직무인 방송의 독립성 보장을 위협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관할도 아닌 방송통신심의위 직무에 이러쿵저러쿵 '위험천만'

심의를 운운한 대목도 무책임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사후심의가 충성도에 따른 괘씸죄를 단죄하는 수단이 아닌 다음에야 이 같은 발언이 곁들여질 이유는 전혀 없었다. 더구나 자기 관할도 아닌 독립기구의 직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은 출범도 하지 않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들을 무시한 부당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누구나 아는 바와 같이 심의기구는 법에 명시된 민간독립기구다. 이는 위원들의 자율성이 철저히 보장되어야 함을 의미하며, 그 결정 내용의 토씨 하나도 바꿀 수 없는 처분권한을 통해 기속됨으로써 현실화될 것이다. 이는 결코 형식적인 것이어서는 안 되며, 국가권력의 시장개입을 최소화하자는 이명박 정부의 기조와도 부합하는 내용이다.

심의기구의 독립은 민주주의에 바탕을 둔 사회라면 반드시 실현시켜야 하는 기본 중의 기본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방송통신위원회가 대통령 직속 기구로 합의되는 순간 재론의 여지없이 민간 영역으로 정리된 것도 그만큼 당연한 내용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그런데 방송통신위원회의 위원장이 심의기능과 관련한 내용을 정부의 시책 반영과 관련해서 함께 언급했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은 정권 초기다. 작은 실수로도 큰 신뢰를 잃을 수 있다. 더구나 방송통신위원회는 거대한 방송과 통신영역을 아우르는 중차대한 역할을 부여받고 있으며, 사회문화적으로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주요 방송사들을 규제의 대상으로 포괄하고 있다. 민간기구의 형식인 합의제행정기구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변동시켰다는 점에서도 주목을 피할 수 없는 영역이다. 여기에 대통령의 최측근이라는 최 위원장의 위치도 부정하기 어려운 관심사다. 그만큼 많은 언론이 방송통신위원회와 위원장의 행보를 예의 주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언론의 감시기능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이는 거스를 수 없는 추세다. 시민들의 권리의식 또한 계속 빠른 속도로 진화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을 구시대적 관행으로 돌파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계산착오이며 후유증이 큰 모험이 될 것이다. 원칙에 충실하고 진정성으로 승부할 때 국민들의 마음은 비로소 움직인다. 부디 자신의 직무인 방송의 독립성 보장에 충실하며 법과 절차를 존중하는 방송통신위원장의 행보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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