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4일 오전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영화배우 김부선씨였다. 김씨는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을 우려하는 자신을 '반미 좌파'로 매도하는 한나라당과 조·중·동의 행태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며 분개했다. 딸 가진 엄마가 식탁의 안전을 걱정하는 건데, 이게 왜 반미가 되고 좌파가 되냐며 반문했다. 이 물음에 대해 나는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못했다.

이와 관련, 특히 눈여겨봐야 언론과 언론인은 조선일보와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다.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을 걱정하는 10대와 '엄마'들에게 이들은 앞장서서 '반미'와 '좌파'라는 낙인을 찍었다. 이들을 비롯한 보수 언론이 오랜만에 한 목소리로 이념투쟁에 나서준 덕분에 정작 당사자인 이명박 대통령은 멀찍이 떨어져서 한숨 돌릴 수 있게 됐다.

조선일보와 조갑제 전 대표가 왜 그랬을까. 보수언론이니까? 이것만으로는 약하다. 이명박 정부에 대해 조선일보와 조 전 대표가 그동안 어떤 스탠스를 취해왔는지 유심히 살펴본 사람이라면 고개를 갸웃거릴 대목이다. 적어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직후부터 조선일보와 조 전 편집장은 이명박 정부가 하는 일에 대해 일방적으로 편들지 않았다.

▲ 조선일보 5월 7일자 4면
광우병을 걱정하는 10대 등으로부터 반미와 좌파 코드를 찾아내는 '조선일보식 라벨링 기법'도 과연 놀랍다. 더 황당한 것은 여기에 대한 설명도 없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언론이라면 거리로 쏟아져나온 10대들을 '반미 좌파'로 규정하기에 앞서, 그 이유와 배경을 설명해주는 것이 옳았다. 얻어맞을 때 맞더라도 이유라도 알고 얻어맞아야 덜 억울한 법 아닌가.

하지만 조선일보는 앞으로도 광우병을 걱정하는 10대들에게 반미가 뭐고, 좌파가 뭔지 설명해 줄 생각이 없는 듯하다. 해답은 스스로 찾는 수밖에 없다. 힌트는 이명박 대통령의 미국 방문에 숨어있다. 미국산 쇠고기 파동이 불거지기 직전 보수주의자를 자처하는 한나라당 관계자를 만났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 이명박 대통령의 미일 방문 성과는 대단한 것이었다. 특히 참여정부 5년 동안 훼손됐던 '한미 전략동맹'을 복원한 것이야말로 <한겨레21> 기자는 쉽게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굉장한 성과였다. 앞으로 한국이 계속 발전하려면 우리는 결국 미국과 함께 가야 하는 것이다. 이번에 이명박 대통령은 한국에 등을 돌렸던 미국을 겨우 다시 설득하고 온 것이다."

물론 한나라당 관계자의 사견이기는 하지만 이른바 보수 진영의 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궁금증의 일부가 풀린다. 미국산 쇠고기 전면개방 협상은 한미정상회담 직전에야 급하게 이뤄졌다. 정부에서는 '우연의 일치'일 뿐이라고 발뺌하지만, 미국산 쇠고기 협상이 타결된 시점과 말이 안 되는 개방 조건에 주목한다면 '조공용'이란 의혹이 제기되는 것도 당연하다.

▲ 조선일보 5월 5일자 4면
뭐,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과 '한미 전략동맹 복원'이라는 두 개의 사실이 인과관계에 있든 정부 주장처럼 단순한 상관관계에 있든, 보수 진영에서는 후자가 가져온 강렬한 감동에 단단히 사로잡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멀어질 뻔했던 '아버지 나라' 미국의 토라졌던 마음을 되돌려놓고 왔는데, 국내에서 감히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 '광우병' 운운하고 있으니 얼마나 걱정이 되겠나.

그러니까 이제 와서 '미국산 쇠고기 먹기 싫다'고 운운하는 철없는 10대들의 행태는, 그들이 보기에 '반미 세력'이 맞다. 기껏 복원한 '한미 전략동맹'까지 위협할 수 있는 '반미 세력' 말이다.

광우병을 걱정하면 '좌파'가 되는 논리도 마찬가지다. 조선일보식 관점으로 볼 때 시민들의 집단행동은 체제에 대한 '좌파식 반항'의 경험과 단단히 결부돼 있다. 그러니까 10대의 집단행동도 당연히 좌파의 선동이나 조직적 괴담의 유포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자발적으로 의견을 교환하고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10대의 '자신감'을, 조선일보와 조갑제 전 편집장의 사고 체계로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까 광우병을 걱정하면, 반미주의자도 되고 좌파도 되는 것이다.

최성진은 현재 한겨레21 정치팀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한때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방송작가 생활을 경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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