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은 시청자에게 의심병을 안겨주었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을 의심스럽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권해효는 가장 의심스러운 인물이었다. 단역을 할 배우가 아닌데, 단역처럼 등장하는 것이 가장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권해효는 공조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소지섭과 곽도원보다 한 발 빨리 단서에 접근한 훌륭한 형사였다.

권해효의 죽음으로 확실히 알게 된 것은 화면을 믿지 말라는 것이다. 처음부터 유령의 이슈는 경찰 내부 공조자가 누구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연출은 마치 권해효가 그 대상인 듯 유인했지만 결국 그것은 교묘한 낚시에 불과했다. 그리고 또 다시 작가는 시청자 낚기에 나섰다. 체포된 엄기준의 행동대장 염재희(정문성)가 조사실에서 살해되자 사이버수사대 3인방은 누가 공조자인가를 집중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고민은 곧바로 시청자의 고민이다. 우선 용의자로 떠오른 사이버수사대 네 명에 대해서는 거꾸로 의심을 버릴 필요가 있다. 의심갈 수 있는 단서들이 화면에 존재하지만 이 역시 권해효 케이스처럼 단지 낚시에 그칠 공산이 크다.

그러나 소지섭과 곽도원은 공조자를 찾기 전에 자신들이 범한 치명적인 실수에 대해서 반성할 필요가 있다. 권해효의 목숨과 바꾼 USB에는 당장은 알 수 없지만 엄기준을 잡을 중요한 단서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그것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물론 경찰 공조자의 소행이 분명하지만 그 이전에 그 증거를 복사조차 하지 않은 태만에 대해서는 용서하기 힘들다.

컴맹인 권해효조차 증거는 반드시 복사를 해야 한다는 매뉴얼을 지켰기 때문에 증거를 남길 수 있었다. 그러나 소지섭, 이연희 누구도 그 USB를 복사하지 않았다. 경찰청이기 때문에 방심했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이미 경찰내부 공조자의 존재를 알고 있으면서도 선배 형사의 목숨과 바꾼 증거를 복사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은 변명할 여지가 없다.

적어도 평소의 이연희라면 안전하게 복사부터 했을 것이다. 또한 엄기준이 만나러 왔다고 해서 이연희까지 중요한 증거를 그대로 방치한 채 우르르 몰려나간 것은 가뜩이나 연기력 논란에 힘든 이연희를 민폐의 죄까지 안겨준 것과 같았다.

이는 USB를 사라지게 하기 위한 작위적인 결과이다. 어느 정도의 작위는 불가피하더라도 이미 완성도에 대해 고득점을 기록한 유령이라면 세심한 검증은 피할 수 없다. 그런데 사실은 권해효의 죽음부터 염재희의 체포까지 커다란 허점들이 있다.

먼저 염재희는 왜 악성코드를 심어둔 USB를 수거해가지 않았냐는 것이다. 사이버수사대가 쫓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신들의 범행의 중요한 단서를 그대로 방치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또한 소지섭이 염재희의 깨진 안경알을 고스란히 찾아오는 것도 허술했다. 시골동네 손님 없는 안경점이라도 깨진 렌즈 조각을 고스란히 회수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게다가 쓰레기통에 버려진 조각들이라면 유전자가 오염됐을 가능성도 높다. 염재희의 안경이 깨진 것은 권해효와 몸싸움을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깨진 렌즈를 찾기보다 권해효의 방어흔에서 염재희의 유전자를 찾는 것이 증거확보에 더 결정적이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법의학드라마 싸인을 썼던 작가라면 당연히 증거를 다루는 더 세심한 터치가 필요했다. 유령 12회는 빠른 전개와 스파이 찾기에 가려진 옥에 티들이 무척 많았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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