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리부트를 표방한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이 마침내 선을 보였다. 2007년 '스파이더맨3' 개봉 이후 5년 만에 등장한 이 작품은 스파이더맨의 주인공인 피터 파커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서 시작된다. 이야기의 구성상 2002년에 개봉했던 '스파이더맨'과 여러모로 비교하게 된다.

일단 2002년 '스파이더맨'은 피터 파커의 고등학교 시절부터 바로 시작된다. 하지만 10년 후에 다시 만들어진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에서는 유년 시절의 피터 파커를 보여주면서 시작된다. 비밀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피터 파커의 부모는 피터를 그의 숙부에게 맡긴 채 어디론가 홀연히 떠나고 만다. 떠나는 부모님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피터 파커는 어느덧 고등학생 하이틴으로 성장했고, 모든 것이 어리숙하고 어설펐던 전작의 피터 파커와는 다르게 이번 시리즈의 피터 파커는 자신감이 넘치고 과학에 천부적인 재능을 갖춘 캐릭터로 묘사된다.

이미 전작 시리즈에서 봤던 스토리라 영화 초반에는 다소 지루한 감이 들기도 한다. 이 영화의 연출을 맡은 마크 웹 감독은 2009년 <500일의 썸머>라는 작품을 통해 섬세한 연출력을 인정받은 바 있는데, 이번 영화에서도 특유의 섬세함을 살려 인물들의 캐릭터를 보여주는 데 꽤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어차피 관심은 피터 파커가 어떻게 거미에 물리고 스파이더맨이 되는가이다. 그런데 그 계기는 아버지와 함께 일했던 과학자 커트 코너스 박사를 직접 보기 위해 그가 근무하는 오스코프 타워를 찾아가면서 형성된다. 그곳은 인류의 운명을 뒤바꿔 놓을 수도 있는 중대한 실험이 비밀리에 진행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아주 중대한 실험이 진행되는 장소치곤 보안이 허술하기 그지없다. 주인공 피터 파커는 처음 찾아가는 낯선 빌딩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제 집 드나들듯이 빌딩 구석구석을 돌아다닌다. 하지만 관객들은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줄 수 있다. 왜냐고? 이제 곧 피터 파커가 유전자 변형 거미에게 물릴 시간이 다가오기 때문에...

관객의 기대(?)대로 피터 파커는 거미를 이용한 유전자 변형 연구가 진행되는 실험실에 들어갔다가 몸속에 잠입한 거미에게 물리게 되고, 그때부터 피터의 몸은 거미처럼 변하게 된다. 거미에게 물리고 난 후 기이한 능력을 얻은 피터는 학교에서 자신에게 굴욕을 줬던 힘센 아이에게 복수하게 되고,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고 오만을 피우다가 숙부를 저 세상으로 떠나게 만든다. 10년 전 토비 맥과이어가 나왔던 '스파이더맨'의 줄거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거미가 되는 과정이나 되고 난 이후의 묘사가 다를 뿐이다.

영화 초반부 어린 시절 피터 파커의 부모님을 보여준 장면을 제외하곤 이미 10년 전에 보았던 줄거리가 태연하게 반복 재생된다. 그런데 숙부를 잃은 이후의 줄거리는 10년 전의 1편과 다소 차이가 난다. 우선 스파이더맨의 여자 친구가 되는 그웬 스테이시의 존재이다. 10년 전에 등장했던 메리 제인(커스틴 던스트)은 어두운 집안 환경에 반항기가 가득하고 영화배우가 되려는 꿈을 꾸지만 동네 별 볼일 없는 바에서 아르바이트로 하루하루 먹고 살기 바쁜 반면에, 그웬 스테이시는 똑똑하고 과학에 상당한 재능을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그웬의 아버지는 다름 아닌 뉴욕 시민을 보호하는 뉴욕 경찰서장이었다.

그리고 남녀 주인공의 로맨스에서 차이나는 부분은 10년 전의 피터 파커는 메리 제인에게 철저하게 자신이 스파이더맨인 것을 숨기려 드는 반면에, 앤드류 가필드가 연기하는 피터 파커는 자신의 거미줄 생산장치를 활용해 그웬을 무장해제 시키고 태연하게 자신이 스파이더맨임을 밝힌다.

그웬 스테이시의 캐릭터는 메리 제인에 비해 훨씬 능동적이며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는 사건의 해결장치가 되는 주요 역할을 맡기도 한다. 10년 전의 메리 제인은 늘 위기에 처하고 벼랑 끝에 매달려 스파이더맨을 바쁘게 했지만, 똘똘한 그웬 스테이스는 억척스러움과 지성미를 겸비하였다.

관객들이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스파이더맨이 보여주는 다이나믹한 액션을 만끽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에 비해 액션의 강도는 그다지 차별화된 부분이 눈에 뜨이지도 않고, 영화 제목처럼 어메이징하지도 않다. 오히려 스파이더맨의 인간적 고뇌를 전작 시리즈보다 더 섬세하고 진지하게 그려낸 부분이 더 차별성이 강하다.

차라리 전작 시리즈들을 3D로 새로 편집해서 보여주는 편이 어쩌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리자드맨과의 결투도 생각보다 박진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스파이더맨의 신나는 거미줄 타기가 언제 봐도 스릴감이 넘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새로운 스파이더맨 앤드류 가필드는 토비 맥과이어에 비해 훨씬 매력적이고 틴에이저 분위기가 물씬 풍겨난다. 향후에도 외모 관리만 잘 이루어진다면 새로운 스파이더맨으로서 롱런할 가능성이 엿보인다.

이 영화는 리부트를 표방하고 있지만, 전작 시리즈에 비해 차별화된 요소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샘 레이미도 원작 코믹스의 분위기를 나름 충실히 표현해냈기 때문이다. 헐리웃 영화 중 가장 성공적인 리부트 시리즈는 2005년에 개봉한 '배트맨 비긴즈'이다. 1989년 팀 버튼의 '배트맨'과 영화 분위기에서 확실한 차별화가 느껴지고 원작 코믹스에 최대한 충실한 흔적이 보이기 때문이다. '배트맨 비긴즈'의 구성과 스토리도 팀 버튼의 '배트맨'과는 전혀 다르다. 하지만 '스파이더맨' 리부트는 스토리가 10년 전의 영화와 큰 차이가 없다보니 리부트라기보다는 포맷하여 기존의 윈도우를 다시 설치한 컴퓨터를 보는 느낌이다.

어찌하여 10년 전의 스토리를 마치 새로 만드는 것처럼 천연덕스럽게 포장해서 선보일 수 있었을까. 혹시라도 10년 후 앤드류 가필드의 꽃미남 외모가 퇴색되고 아저씨 모드로 바뀌게 된다면 그때 또 다시 천연덕스럽게 스파이더맨 시리즈가 새로 나올지 궁금하다. 그때 제목은 어떻게 달고 나올까? 이번에 '어메이징(Amazing)'이란 단어를 썼으니 다음에는 '익사이팅(Exciting) 스파이더맨' 정도가 되지 않을까?

대중문화와 스포츠는 늙지 않습니다(不老). 대중문화와 스포츠를 맛깔나게 버무린 이야기들(句), 언제나 끄집어내도 풋풋한 추억들(不老句)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나루세의 不老句 http://blog.naver.com/yhjmania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