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일 KBS 1TV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 3일 '대통령의 귀향 봉하마을 3일간의 기록'>의 한 장면이다.

경남 김해시 진영읍에서도 2시간에 한 번씩 버스가 다니는 봉하마을. 조용하던 이 마을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귀향 이후 연일 떠들썩하다.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봉하마을을 찾은 사람들은 노 전 대통령의 사저 앞에서 "대통령님, 나와주세요"를 연신 외친다.

방송은 봉하마을을 찾는 사람들의 소박한 마음과 노 전 대통령의 72시간 동안의 소소한 일상을 담고 있다.

지난 2월 25일 퇴임 후 진영읍 봉하마을에 전입신고를 한 노 전 대통령. 그의 귀향 후 두 달 동안 봉하마을을 찾은 방문자는 대략 23만 명 정도가 된다고 한다. 아침 일찍부터 노 전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단체로 관광버스를 타고 오는가 하면 매일 이 곳에서 게시판(방문객들이 노 전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말을 남기는 공간)과 마을 보수를 담당하는 열혈팬도 생겼다. 사람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얼굴을 보기 위해 수 시간 기다리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전남 화순에서 봉하마을을 찾았다가 결국 노 전 대통령을 만나지 못한 온 조이남씨(62세)는 '다큐멘터리 3일' 카메라를 향해 이렇게 아쉬운 마음을 표하기도 했다.

"발길이 안 떨어져서 어쩔쓰까요. 대통령님께 꼭 좀 보여주세요. 우리 전라남도 화순에서 왔거든요. 환갑이 넘어갖고 밭 매갖고 25000원씩 받아가지고 옷도 하나 사 입고 신발도 이놈 사 신고. (옷을 가리키며) 이것도 메이커여~"

찾는 사람이 많아진 만큼 봉하마을도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몰려드는 사람들을 위해 마을회관을 개조해 식사를 제공하기도 하고 심으면 7년 후에나 결실을 볼 수 있는 감나무 대신 장군차밭을 조성하고 있다. 또 노 전 대통령의 적극적인 지지 아래 마을 논에 친환경 오리농법을 시작해 새로운 농촌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방송을 통해 노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청와대 비서관들의 까맣게 그을린 얼굴을 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다. 반듯한 양복이 아닌 편안한 옷과 등산화 차림의 이들은 동네 주민들과 "형님"이란 인사를 주고받으며 동네 주민이 되어가고 있다.

참여정부 말, 노 전 대통령은 스스로를 '인기없는 대통령'이라 했다. 재임 시절동안 노 전 대통령은 수많은 논란, 그 한 가운데 있었다.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와 보수신문의 집중 공격,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 논란, 코드인사 논란, 당시 야권과의 불화 등으로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라는 웃지 못 할 말까지 돌기도 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의 퇴임 후, 상황은 달라졌다. 봉하마을을 찾은 수많은 사람들의 외침에 하루에도 열 번씩 집 앞으로 나와 손을 흔들어야 할 정도로 사람들은 노 전 대통령을 찾고 있다.

제법 희끗희끗한 흰 머리, 수수한 옷 차림과 밀짚모자, 그리고 자전거를 즐겨 타는 모습. 이렇게 노 전 대통령은 스스로 권위를 내려놓고 소박한 삶의 현장으로 돌아왔다. 봉하마을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멈추지 않는 것은 바로 이처럼, 섬김을 받기 보다는 스스로를 낮추며 국민과 소통하는 자세를 지닌 노 전 대통령의 모습 때문은 아닐까.

"요즘 행복하십니까" 라는 제작진의 한 마디에 노 대통령은 환하게 웃으며 "아주 행복합니다"라고 답했다. 그토록 원했던 고향에 돌아가서 행복한 것인지, 뒤늦게 국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기 때문에 행복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노 전 대통령은 진심으로 행복해 보였다.

"손님이 되도록이면 적게 와야 손님이 오시면 탁주라도 한 잔씩 주거니 받거니 하고 하는데 손님이 이렇게 많이 오시니까 뭐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는 제가 죽어버리지요. 일 할 때는 욕을 엄청 하더니 일 안하고 노니까 좋대요."

전직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서 현직 이명박 대통령의 퇴임 후 모습이 갑자기 궁금해진다. 사람들은 임기가 끝난 이명박 대통령의 사저 앞에 찾아가 어떤 말을 할까. 국민들에게 이 대통령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

문득 광우병 논란을 부르고 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성난 민심'이 지난 주말 연일 촛불을 밝히며 '너나 먹어 이명박'을 외치던 모습이 겹쳐진다. 퇴임 후 이 대통령의 사저 앞에서도 지금의 봉하마을처럼 소박하고도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질 수 있을지 지금부터 걱정하는 건 좀 '오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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