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일자 조선일보 4면기사


TV조선이 일주일 전 김현희의 인터뷰를 보도한 이후 조선일보가 6.25를 맞이해 ‘KAL 858 폭파 사건’에 대한 보도에 나섰다. 참여정부 시절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국정원 진실위)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김현희를 가짜로 몰아가고 이민까지 종용했다는 것이 핵심적인 취지다. 이것은 김현희가 TV조선 인터뷰에서 증언한 내용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여기서 논란이 될 만한 것은 두 가지다. 첫째, KAL 858 폭파 사건의 실체적인 진실은 무엇인가라는 점, 둘째, 김현희의 주장처럼 참여정부 시절 위원회와 국정원과 방송들이 짜고서 그녀를 ‘가짜’로 몰아간게 사실이냐는 점이다.

문제는 두 번째 주장의 유일한 근거가 김현희의 발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김현희는 국정원 진실위의 끈덕진 노력에도 불구하고 위원회와 접촉하지 못했다. 위원회와 접촉하지도 못한 김현희가 대체 어떻게 자신을 ‘가짜’로 몰아가려는 ‘참여정부의 음모’를 지각했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국정원 진실위 종합보고서 Ⅲ. 주요 의혹사건편 下권>의 “KAL 858 폭파사건 진실규명” 편을 보면 아예 “김현희 면담 추진 상황”이란 별도의 챕터를 달고 무려 세 페이지(p218-220)에 걸쳐 그녀와의 면담시도와 그것이 좌절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즉 김현희는 진실위와도 진실화해위와도 접촉한 적이 없다. 만나지 못한 이들의 의도를 추정하고 규탄하는 한 사람의 일방적인 발언을 ‘언론’이라 주장하는 집단에서 여과없이 받아쓰는 저의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 오늘자 조선일보 1면 기사

한편 오늘자 조선일보 1면을 보자면 진실화해위에서 KAL 858 사건을 담당했던 김지영 전 조사관의 "KAL기 사건은 조작되지 않았으며, 김현희는 북한 공작원이 확실하다"라는 발언을 싣는다. 이 발언은 물론 실은 국정원 진실위의 보고서 자체가 KAL 858 사건이 테러리스트 김현희의 소행이 맞다는 것을 지지하는 강력한 증거다. 따라서 오늘자 조선일보 보도는 첫 번째 논점에 대해선 훌륭한 해명일 것이다. 그런데 참여정부 시절 국정원 진실위에서도 인정한 이 논점을 다시 반복해야 하는 이유를 묻는다면, 결국 김현희 발언에 나온 두 번째 논점에 대한 해명이 필요한데, 이 보도는 두 번째 논점이 과연 논의할 필요가 있는지조차 의심하게 만든다. 대체 진실화해위 조사관도 ‘처음엔 의심했지만 조사해보니 맞더라’고 말하는 상황에서 위원회와 국정원과 방송이 짜고 치고 김현희를 ‘가짜’로 만들려고 했다는 주장의 근거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조선일보가 물고 늘어질 수 있는 부분은 일단은 방송국과 국정원의 연계 의혹일 것이다. 보수언론들은 특히 PD수첩 측이 김현희의 거주지를 알아냈다는 사실에서 국정원 측에서 정보를 제공받았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그러나 PD수첩의 담당자는 "당시엔 아직 김현희가 '잠적'을 할 때가 아니라 그 지역에서 잠행 취재를 하다 보면 김현희의 거주지를 찾아낼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한다. 국정원 진실위 민간측 간사였고 진실화해위 위원장이었던 역사학자 안병욱 교수는 "국정원은 인권을 이유로 위원회에도 김현희의 거주지나 연락처 정보를 주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위원회에도 안 준 정보를 방송국에 줬다고 믿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이다.

또 조선일보가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부분은 김현희가 ‘가짜’라고 믿고 있는 ‘이정희의 남편’ 심재환 변호사 및 일부 유가족의 주장일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여전히 승복하지 못했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방송 보도가 나오고 진실위가 구성되는 상황 모두를 “진실을 부정하려는 음모”로 몰아간다면 우리는 정부 발표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할 권리를 박탈당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는 북한 출신 테러리스트의 말을 그대로 믿고 민주주의 정부에 의혹을 제기하는 신문사가 할 수 있는 말은 아닐 것이다. 사실 KAL기 폭파사건은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한 문제적 사건이었음에도 의혹 제기에 대한 답변이 부실했기 때문에 음모론이 양산된 측면이 있다. 안병욱 교수는 “진실위나 진실화해위의 활동은 차라리 안기부에 대한 세간의 의혹을 풀어주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조갑제와 보수언론들이 당시에도 KAL기 사건의 진실을 뒤집으려 한다는 식의 터무니없는 말을 늘어놓았다. 김현희도 보수언론의 비호 속에 조사를 회피했다. 상식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게 얼마나 말도 안되는 얘기인지를 알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400여쪽에 달하는 진실위 보고서가 엄연히 나온 상황에서도 조선일보는 이때의 논리를 반복하고 있다.

▲ 오늘자 조선일보 5면 기사

안병욱 교수의 발언은 진실위 종합보고서의 중심적인 내용과도 일치한다. 먼저 종합보고서의 “의혹 확산의 원인과 현황” 부분을 보면 “그동안 ‘KAL858기 가족회’와 ‘KAL858기 진상규명 시민대책위’ 등이 사건 재수사, 수사자료 공개, 그리고 명확한 증거 제시 등을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안기부와 검찰을 비롯한 정부는 하루아침에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의 순수한 바람조차 북한이 내세우는 주장과 동일한 것으로 취급, ‘사건의 본질에는 변함이 없다’며 이를 거부해 왔는데” “이러한 정부당국의 무성의한 태도가 유가족들의 분노를 유발하고 나아가 정부가 사건의 실체를 숨기고 있다는 의구심을 확산시켜 결국 사건 본질에 대한 의혹으로까지 확대되는 원인이 되었”(p210-211)다고 설명한다. KAL기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결정적으로 뒤집겠다는 내용은 없다.

이후 진실위 보고서는 사실상 그 모든 의혹들을 해명하는데 노력을 쏟는다. 모든 사람이 제기한 KAL기 사건 관련 의혹 320여가지를 중복된 것을 정리하고 주제별로 분류한 후 그것들에 대해 해명한다. 1. 안기부 및 제3국의 사전 인지 또는 공작 여부에 대한 의혹 64건, 2. 김현희·김승일의 북한 출신 여부 및 행적 관련 의혹 30건, 3. 김현희·김승일의 폭파 범행 여부에 대한 의혹 21건, 4. 폭탄의 종류와 양에 관한 의혹 4건, 5. 잔해 수색 문제 관련 의혹 26건, 6. 사건의 정치적 이용 여부 의혹 2건, 7. 재판과정과 사면 이후 관리의 적절성 여부의혹 1건이 검토된다. 보고서를 보면 의혹들의 대부분은 과장된 언론보도나 김현희의 오락가락하는 진술, 대필작가에 의해 쓰여진 고백록 등을 ‘사실’로 간주하고 그것들 사이에 모순이 발생한다는 점을 주요한 근거로 삼고 있다. 그러나 김현희가 ‘가짜’임을 김현희의 ‘거짓말’을 통해 증명하려는 이런 시도는 애초에 성립하기가 어렵다. 진실위 보고서는 당시 상황에 대한 맥락을 얘기하면서 대부분의 의혹을 해명한다. 한홍구 교수는 2009년 시사in 80호에 기고한 칼럼에서 “필자가 보기에 폭약 문제를 제외한 모든 의혹은 다 설명되었다고 할 수 있다”고 단언했다. 폭약 문제에 대한 김현희의 설명은 미심쩍지만, 폭약의 작동원리에 대해서는 김현희도 잘 몰랐다고 보는게 합리적인 생각일 것이다. 즉 진실위 보고서는 김현희를 ‘가짜’로 몰아가기는커녕 KAL 858 사건에 대한 ‘음모론 반박대전’이라 불려야 마땅하다.

보고서 마지막의 “위원회 의견”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 진실위는 이번 조사를 통해 ‘KAL858기 폭파사건’의 실체가 북한 공작원에 의해 벌어진 사건임을 확인하였음

- 따라서 앞으로는 이 사건의 실체와 관련해 더 이상의 불필요한 논란이 지속되지 않도록 근거 없는 의혹 제기를 중단하는 한편 관계기관에서도 법적 공방 중단과 사건 관련 기록의 조속한 공개 등을 통해 그동안의 대립과 갈등이 종식되어 진정한 국민화합의 기틀이 마련되기를 희망함

- 또한 진실위는 정부가 김현희를 ‘역사의 산증인’으로 활용할 목적으로 특별 사면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당초 목적에 부합하는 진실위의 조사에 협조하지 않아 필요한 조사를 진행할 수 없었음을 고려하여 이에 대한 적절한 법적·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함

- 아울러 진실위가 나름대로 성실하게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KAL858기 동체 발견에 실패하였으나 이후에도 관계기관에서 관심을 갖고 동체 잔해 등의 수색 노력을 지속해 주기를 요청함

- 국정원은 ‘KAL858기 폭파사건’처럼 실체가 명백한 사건도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할 경우 오히려 그 진정성이 훼손되고 사건의 실체에까지 불필요한 오해와 의혹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뼈아픈 교훈으로 새기고 다시는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는 어떠한 활동도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반성과 각오가 필요하며 나아가 국가와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는 선진정보기관으로서의 기틀을 세우기 위해 분발할 것을 촉구함 (p560-561)

안병욱 교수는 “위원회와 내 생각은 김현희가 KAL기에 탑승하였고 테러를 저질렀다는 점과, 김현희가 북한에서 보낸 공작원이라는 점이 확실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안기부 조사가 성급하고 부실이 있었더라도 북한 소행은 틀림없다는 것이다. 다만 북한이 왜 이런 짓을 저질렀는지 여부는 우리가 북한을 조사할 권한은 없었기 때문에 해명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진실위에서 활동했던 한홍구 교수의 경우 2009년 시사in 80호에 실린칼럼에서 북한의 의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추정한 바 있다.

“시민사회 일각에서는 북한이 KAL기를 폭파할 아무런 이유가 없지 않느냐고 주장한다. 그러나 진실위 조사 과정과 발표 이후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북한 측이 이런 짓을 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북한 정보기관 처지에서 볼 때 KAL기 사건은 엄청나게 성공한 공작이었다. 독약을 먹고 죽으려 하던 김현희씨를 살렸기 망정이지 만약 김현희씨가 죽었다면 이 사건은 아마도 꼼짝 없이 안기부가 저지른 짓으로 남았을 것이다.

이번에 진실위에서 조사하면서 보니 1987~1988년의 조사 기록은 김현희씨의 진술을 확인해나가는 방식으로 작성된 것이었다. 만약 김현희씨가 그때 죽어버렸다면 안기부는 지금 제시하는 것과 같은 KAL 858기 폭파 사건의 진상을 절대로 재구성할 수 없었을 것이다.

수구 세력에게서 ‘친북 좌파’ 소리를 듣는 진보 인사로 구성된 진실위가 정성을 기울여 조사한 결과를 발표해도 안기부 조작설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마당에, 그때 김현희씨를 살려내지 못했다면 안기부는 KAL기를 폭파했다는 누명을 벗을 길 없었을 것이다.“

보수언론과 조갑제와 변희재 등은 이런 결론을 내고 이런 발언을 했던 안병욱과 한홍구가 ‘종북세력’이며 종북세력에 의한 조사가 안기부 발표를 뒤집으려고 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처럼 간단히 사실확인만 하면 오류로 판명나는 조선일보의 선무당질을 믿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 한국 사회의 언론 환경의 척박함을 증명한다고 하겠다. ‘KAL기 음모론’을 참여정부 전체의 일로 확산시키는 그들의 방식은, 경기동부연합의 문제를 야권 전체의 문제로 확산시키는 최근의 보도와 정확히 일치한다. 한국 사회의 보수는 정녕 이 나라가 종북주의자로 가득해야 자신들의 존재근거를 찾을 수 있는 모양이다.

▲ 안병욱 교수의 모습 ⓒ연합뉴스
국정원 진실위 민간측 간사였고 진실화해위 위원장이었던 가톨릭대 안병욱 교수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이 사안에 대해 자세히 물어보았다.

- 조선일보에서 다시 KAL기 사건을 꺼내들었기 때문에 전화드렸다.
“그런 일이 있었나. 조선일보를 읽지 않아서 모른다.”

- 오늘자 조선일보에는 진실화해위 출신 조사관 인터뷰도 실렸다.
“그 사람이 누구인가.”

- 2007년 8월 전문계약직 조사관으로 진실화해위에 채용돼 2009년 8월까지 이 사건을 전담한 김지영 서강대 연구교수라 한다.
“그 사람이 그 사건을 전담했던 이가 맞다. 그런데 진실화해위는 보고서를 내지는 못했다. 조사 의뢰를 했던 유족들이 위원회 조사를 믿을 수 없다며 의뢰를 취소했기 때문에 보고서가 나오지 않았다.

- 그래서 국정원 진실위 보고서는 있는데 진실화해위 보고서는 없는 것이었나. 진실위에서 이 사건의 조사관을 했던 사람은 누구인가?
“진실위의 경우 (진실화해위와는 달리 ) 특정한 담당 조사관이 있지는 않았다. 대체로 함께 일을 했다. 그리고 조사관의 신원을 밝히는 것은 인권문제이기 때문에 답변할 수 없다.”

- 양측 위원회에 모두 깊숙이 관여하셨는데 안병욱 교수님의 KAL기 사건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는 어떠한가.
“안기부 발표가 대략적으로 옳다는 것이다. 위원회와 내 생각은 김현희가 KAL기에 탑승하였고 테러를 저질렀다는 점과, 김현희가 북한에서 보낸 공작원이라는 점이 확실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안기부 조사가 성급하고 부실이 있었더라도 북한 소행은 틀림없다는 것이다. 다만 북한이 왜 이런 짓을 저질렀는지 여부는 우리가 북한을 조사할 권한은 없었기 때문에 해명되지 않았다.”

- 그런데 조선일보에서는 참여정부 당시 위원회와 방송과 정권이 작당하여 김현희를 ‘가짜’로 몰고 안기부 발표를 뒤집으려 했다고 보고 있다.
“말이 안 되는 소리다. 그런데 조사 당시에도 그들은 그렇게 얘기했다. 진실위나 진실화해위의 활동은 차라리 안기부에 대한 세간의 의혹을 풀어주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조갑제와 보수언론들이 당시에도 KAL기 사건의 진실을 뒤집으려 한다는 식의 터무니없는 말을 늘어놓았다. 김현희도 보수언론의 비호 속에 조사를 회피했다. 상식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게 얼마나 말도 안되는 얘기인지를 알 것이다.”

- 일부 유족들은 여전히 KAL기 사건이 북한의 소행이 아니라고 믿고 있는 것 같다. 조사과정에서 유족들의 항의가 있었을 것 같다.
“유족들이 위원회와 나에 대한 불만이 있었다. 위원회 내부에서도 우리가 안기부의 고민을 이렇게까지 덜어줘야 하느냐는 볼멘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진실은 진실로 규명할 뿐이다. 어쨌든 진실위는 보고서를 냈고 진실화해위는 보고서를 내지 못한 상황도 일부 유족들의 불만 때문이었다. 그분들은 KAL기 폭파를 북한이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 김현희의 면담이 이루어졌다면 유가족들이 더 납득할 수 있지 않았을까.
“김현희는 이 사건의 중요한 증인이기는 하지만 그녀의 증언이 없다고 해서 실체적 진실에 대한 추적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두 가지는 구별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미 김현희에 대해선 국정원이 철저하게 조사를 했고 방대한 자료를 남겨두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자료를 검토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면담을 한다면 더 확실해지는 것도 있겠지만, 아닐 수도 있다. 김현희가 나와서 하는 말이 다 진실이라는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국정원은 김현희가 면담을 거부했기 때문에 그녀의 인권을 위해 연락처를 넘길 수 없다고 했고 그런 경우 위원회는 그녀를 면담장소로 끌어낼 권한이 없었다. 그러나 면담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조사가 부실해 졌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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