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 때린다'는 말이 있다. 결코 실례되는 표현, 속된 단어가 아니다. 상황이나 말이 너무 상식에서 벗어나 있어 어이가 없을 때 쓰는 말이다. 국어사전에 버젓이 표기되어 있다. 대책이 없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떳떳하게 써보자. 여러분, 정말 골 때리지 않으세요? 골 때리는 게 아니라, 속이 뒤집어지지 않소? 대통령의 미국 캠프 데이비드 방문 기념으로 성사된 미국과의 쇠고기 협상을 보니 그렇고, 그에 관해 대통령과 농림부 관료의 황당한 설명을 들어봐도 그렇다.

▲ 동아일보 5월 3일자 사설
화나고 슬프다. 조중동이 '사설'이라 써대는, 인용할 가치조차 없는 궤변을 읽으니 더욱 그러하다. 너무나 기가 차고, 어이가 없다. 상식에서 한참 빗나가 있고, 또한 대책이 없는 현실이기에 머리 지끈지끈 아프다. 머리 속이 텅 비어 버렸다. 앗!

▲ 경향신문 5월 3일 4면
인터넷 상 대통령 탄핵에 나선 70만의 민중이, 지난 MBC <PD수첩>을 지켜본 수백만 시청자가, 그리고 미국 '휴메인 소사이어티'의 참혹한 동영상을 본 누리꾼들이 모두 이런 참담한 심정이리라. 어찌 정신 멀쩡한 사람치고 치를 떨지 않을 수 있겠나? 생명을 사랑하는 인간으로서 도축 자본과 무능 정권이 협심해 낳은 기만과 감언, 선전의 야수적 상황에 어찌 질리지 않겠는가?

물론 이런 와중에도 배운다. 자본에 친절하고 제국에 아부하며 오직 다중에게만 위압적인 신자유주의 자본국가의 실체를 확인하는 학습의 장이 만들어졌다. 독점기업의 축적에 도움 되면 찬성하고 이에 불리하면 반대하면서도, 늘 헛소리처럼 '국민'을 내세우는 수구 신문의 정체를 간파할 또 다른 기회가 되었다.

맞다. 전면 개방되어 미친 소들이 들이닥치기 전에 이미 상식적 인민, 합리적 시민은 광우병에 질려버렸다. 그러면서도 정신을 완전히 잃지 않고 돌아가는 꼴을 영민하게 간파한 것이다. 번뜩 정신을 차리게 된 셈이다. 값 싸고 맛 좋은 미국 쇠고기를 실컷 먹을 수 있어 행복하겠다고 했던 바로 그 대중이 '이건 아니야!'라 외치고 나섰다. 모든 게 '국민'을 위한 것이고, 모두 다 '국익'에 도움 되기 때문에 하는 것이라는 설명에 '그건 아니지!'라고 반박한다. 지젝은 관타나모의 수감자들을 우리 시대의 '호모 사케르(homo sacer)', '벌거벗은 생명'이라고 했다. 이제 대중은 수용소에 감금된 '그들' 소수만이 아닌, '우리' 모두가 살아있으면서도 죽은 자 즉 '호모 사케르'임을 자각한다.

대중은 현명하다. 대화만 가능하다면, 정보만 제공된다면, 정확하게 판단하고 진실을 분별해 낼 정도로 지성적이다. 대중은 <PD수첩>이 진실을 소개코자 한 선의의 저널리즘인 것을 안다. 광우병 취재를 맡은 김보슬 프로듀서가 '진실의 용기'를 낸 선량한 언론인 중 한사람임을 안다. '휴메인 소사이어티'의 동영상에 주목하고, 그리고 인간 광우병으로 의심되는 환자의 죽음을 끝까지 추적하여, 마침내 그 어머니와의 안타까운 인터뷰를 성사시킨 김 피디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박수를 보낼 정도로 예의가 있다. 푸코가 말하는 '두려움 없는 발언' 즉 파르헤시아(parrhesia)를 행한 프로그램을 가려볼 줄 알며, 사회를 보호하고 다중을 배려한 공(익)적 서비스를 평가할 안목을 지니고 있다.

국가와 자본이라는 이중 권력, 그리고 이를 감시하겠다고 떠드는 신문들이 엄두도 내지 못한 진실 발굴의 노력에 응대하는 책임감 높은 시민이다. 대중의 힘이 그런 지혜에서 나오며, 바로 이 대중지성이 움직이고 있기에 조직적인 거짓말도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다. 지난 황우석 사태 때처럼 <PD수첩>을 가해자로 몰아가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파렴치한 행동은 삼가는 게 좋다.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착한 대중과 선한 언론의 진실을 근거로 한 교통·교제를 누구도 말릴 수 없다.

그게 부러우신가? 그렇다면 조중동의 모든 기자들도 광우병의 진실, 한미자유무역협정의 거짓을 밝히는 데 나서면 된다. 그러면 진실 추구의 A급지로 오를 수 있고, 지금과 같이 싸구려로 취급받지도 않을 것이다.

물론, 잘 안다. 그게 얼마나 터무니없는 기대인지. 가당찮은 기대는 하지도 않는 게 편하다. 그건 수구신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공포는 근거 없는 것이라 굽쇼? 반대 여론이 지나치게 과장되고 부풀러져 있으며 이 모든 게 <PD수첩> 등 ‘일부 언론’의 탓이라고요?

▲ 5월 2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 일대에서 열린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규탄 촛불 문화제' ⓒ서정은
어찌 우리가 그대들에게 진실을 말하라 할 것이오. 마찬가지로 그대들도 우리에게 진실을 외면하라고 하지 마시오. 내일 아침 또 무슨 사설을 싣고 또 어떤 정부의 변명을 늘어놓을지 모르겠지만, 봇물 터진 진실의 흐름을 어찌 그대들이 막을 수 있겠는가? 진실 발언의 ‘파르헤시아스트’로 나선 무수한 누리꾼들이 시뻘겋게 눈을 뜨고 진실을 캐는 소리가 들리는데 어찌 두렵지 않겠소? 아직까지 대중의 뇌는 스폰지가 아니기에, 희망이 있다!

지금처럼 '비평의 무기'를 예리하게 연마하고 정확하게 사용해야 할 때가 있을까? 벼락같은 이성의 도끼질, 결을 거스른 감수성의 대패질에 열중하지 않을 수 없다. ‘래디컬’한 저널리스트로의 변신. 자본권력과 국가권력, 매체권력, 지식권력이 나의 상대다. 가끔 참패당하고 때로는 붙잡고 버티지만, 그래도 결정적인 왼손펀치 한방을 가진 선수로 남고 싶다. 인민은 착하고 또 무섭다. 이들과 함께하는 비평 말고 그 어떤 것이 후기근대, 후기자본의 불모지대를 넘어갈 수 있겠나? 목청 낮춘 채 예의주시하는 보통사람들의 삶, 이들의 언어에 스며들어 비평의 유격전을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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