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신사의 품격>이 완전히 살아났습니다. 첫 회 남자 주인공치곤 상당히 찌질하고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라 배우 장동건이 가진 매력까지 반감시킨 김도진 씨는 평소 그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서이수(김하늘 분)를 퐁당 빠트렸고, 나이에 맞지 않게 오버한다고 혹평(?) 받았던 김하늘은 좋아하는 남자에게 외면당해 실의에 빠진 감정을 진지하게 표현해 서이수 캐릭터에 대한 몰입도를 배가시켰습니다.

초반 한국 로맨틱코미디 시청자들에겐 낯선 미드식 구성과 찌질한 남자 주인공으로 어색하기만 했던 <신사의 품격>이 24일 10회 들어 김은숙 작가의 주전공이 가미되면서 시청자들도 가슴 졸이는 신품앓이가 시작된 거죠.

좀 많이 늦은감이 없지 않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멜로 라인을 완성시키고 앞으로 쭉쭉 갈 일만 남은 <신사의 품격>의 저력은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그동안 <신사의 품격>은 메인 커플인 장동건-김하늘 뿐만 아니라 김민종(최윤)-윤진이(임메라이) 커플 등 다른 러브라인에도 남다른 공을 들여왔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지금은 장동건-김하늘뿐만 아니라 김민종-윤진이 결말도 기대하게 할 정도로 두 마리의 멜로 토끼를 모두 잡는 데 성공을 거둡니다.

하지만 정말 다행인 것은 이제야 비로소 장동건과 김하늘이 <신사의 품격> 메인커플다워졌다는 것이죠. 한국남성판 <섹스 앤더 시티>를 본격적으로 표방하긴 했으나, 수많은 배우들이 등장하는 일일, 주말 연속극에서도 원톱 주인공이 있는 한국 드라마에서 장동건은 두 말할 나위 없는 메인입니다.

그러나 그동안 시청자의 눈에 장동건은 김민종, 김수로, 이종혁과 더불어 꽃중년 4인방 중 한 명에 불과했습니다. 분명 4인방 중에서 많은 분량은 할애하는데 워낙 캐릭터가 찌질한 탓에 눈에 들어오지 않는 메인 장동건과 덩달아 매력 없는 어장관리녀(?)로 보인 김하늘. 오죽하면 초반에는 서이수의 당시 감정선에 따라 당연히 예정되어 있는 김도진이 아니라 임태산(김수로 분)과 서이수가 연결되었으면 하는 기대도 가질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초반 지나칠 정도로 김도진을 한 트럭 줘도 거부할 못된 남자로 만들어 놓은 김은숙 작가는 어메이징하게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김도진을 정상적인 멜로 남자주인공 궤도에 올려놓습니다. 갑작스런 "우리 도진이가 달라졌어요"에 그동안 김도진에게 꿈쩍도 안 하던 서이수 선생은 완전히 돌아버릴 정도입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남자는 임태산이 아니라 김도진이라는 사실을 이제야 각성했는데 정작 김도진이란 남자는 "서이수 선생은 내 마음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듯"하면서 애써 서이수 선생을 멀리하려고 합니다.

물론 서이수 선생와 거리감을 두면서 힘겹게 헤어짐을 준비하는 김도진도 가슴이 아팠겠지만, 본의 아닌 김도진 씨의 밀당에 가장 급해진 이는 서이수 선생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윤리 선생님으로서의 도도한 자존심도 무릅쓰고 자신의 연락을 회피하는 김도진 씨의 집에 불시에 찾아가 그를 만나고자 합니다. 하지만 엇갈린 타이밍과 여전히 굽힐 줄 모르는 알량한 자존심이 두 사람의 사랑을 가로막는다 싶었습니다.

원래 서이수도 김도진을 잊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김도진이 사준 노트북과 보기만 해도 눈에 아른거리는 명품 지미치 구두까지 과감하게 버리러 나갈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서이수의 노트북을 보게 된 세라(윤세아 분) 덕분에 우연히 김도진이 자신의 노트북 폴더 파일에 남긴 육성 녹음을 듣게 된 서이수는 그제서야 김도진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해왔는지 그의 진심을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이미 지나가버린 김도진 버스는 다시 잡기 어려웠습니다. 김도진 씨가 보통 자존감이 센 신사가 아니잖아요. 비록 그의 마음이 서이수 선생이나 다수의 시청자에게는 '장난'처럼 보여서 거부감을 일으킨 적도 있었지만 확실히 김도진은 서이수를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서이수 선생은 하필이면 자신의 절친을 짝사랑했고, 태산 여동생인 메아리의 장난에서 비롯되긴 했지만 태산에 대한 마음을 숨기고자 도진에게 두 번 고백하는 '우'를 범하게 됩니다.

처음에야 메아리의 장난 때문이고 서로 쌓일 대로 쌓일 관계니까 그러려니 지나갈 수도 있었으나, 서이수에게 어느 정도 자신의 마음이 알려졌는지 확신해왔던 김도진에게 서이수의 두 번째 위장 고백은 크나큰 상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오랜 세월 많이 힘들겠지만 약 1년동안 꿋꿋이 지속한(?) 서이수를 향한 짝사랑을 포기하려고 합니다. 허나 김도진이 남긴 '폴더'를 통해 뒤늦게 김도진의 '감정'을 알아차린 서이수는 그동안 쑥스러워 임태산에게 친구를 뺏긴 숙맥 맞나 싶을 정도로 김도진에게 저돌적으로 달려가는 놀라운 변신을 선보입니다.

다행히 김도진과 서이수는 마지막에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게 됩니다. 서이수는 온 마음을 다해 유리창 키스를 통해 김도진을 향한 사랑을 고백합니다. 민망함도 느껴지고 좀 무리다 싶은 장면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자신이 누굴 마음에 두고 있는지도 확신이 서지 않았던 서이수의 애틋한 '각성'이 10회 내내 각인되면서, 김하늘의 유리창 키스는 TV로 보고 있는 구경꾼들의 마음까지 설레게 합니다.

물론 장동건, 김하늘이니까 가능한 고백이긴 하지만 이번 10회 그들이 선보인 폴더 고백과 유리창 키스는 이제 막 지독한 짝사랑에 종지부를 찍고자 하는 풋풋한 연인들에게 '효자' 아이템으로 자리잡을 징조입니다. <파리의 연인>, <시크릿 가든>에서처럼 수백만 명의 시청자들을 쥐어흔드는 유행어는 아직까지 나오지 않고 있지만 온 몸으로 선보인 김하늘의 유리창 키스는 한 시대를 풍미한 멜로 영화의 아름다운 한 장면처럼 그렇게 <신사의 품격> 시청자들에게 오래오래 회자될 듯하네요.

멜로드라마 같지 않다, 현실 반영이 거세되어 있다는 만만치 않은 혹평 속에서도 꿋꿋이 <신사의 품격>을 기다려주던 시청자들의 믿음에 결코 실망시키지 않았던 김은숙 작가의 저력. 이렇게 김은숙 작가와 시청자들 간의 길고 긴 밀당은 이미 멜로에 대해선 도가 트인 김은숙 도사님의 완승으로 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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