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7회 성연고 연쇄 살인사건의 범인은 놀랍게도 피해자와 같은 학교에 재학 중이던 한 학생이었습니다. 유강미(이연희 분)의 모교이기도 한 성연고에는 유강미가 다니던 2003년이나 2012년 현재도 남을 위한 배려 따위는 없었습니다. 입시 지옥에서 승리하여 더 좋은 학교에 입학하고, 비싼 학비를 면할 수 있는 장학금을 받는 게 유일한 목표인 성연고 학생들에게 있어서 동급생들은 모두 자기가 짓밟고 올라가야 하는 경쟁자일 뿐이니까요.

9년 전 '전설의 답안지'를 받았다고 친구들에게 감금당한 권은솔의 자살, 2012년 '전설의 답안지'를 미끼로 한 연이은 학생 살해사건으로 드러난 대한민국 최고 명문 고등학교 성연고의 상태는 심각해 보였습니다. 같은 학교 친구를 죽이면서까지 1등을 하고 싶어 하는 성연고 학생들은 마치 최후의 승자만 살아남는다는 영화 <배틀 로얄>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였습니다.

드라마 속 성연고는 한 학기 당 천만 원이 넘는 등록금에, 최고 시설과 커리큘럼을 자랑하는 일명 '귀족 학교'입니다. 하지만 웬만큼 사는 집안도 반년동안 천만 원이 넘는 등록금을 부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죠. 그래서 학생들은 성연고에서 살아남아 최고의 명문대를 가야하는 목표 외에도 '장학금'을 받아 부모님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는 '강박관념'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말 그대로 목숨 걸고 공부하고, 학교는 그런 학생들을 더욱 몰아넣습니다.

심지어 한 학교에서 학생이 두 명이나 죽었음에도 학교 선생님들은 '기말고사'를 운운하며 문상조차 가지 못하게 합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밟히고 싶지 않으면 밟고 일어서,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경쟁자다. 한눈팔면 낙오자가 되는 세상이다"라면서 다그치기 바쁩니다. 학생들 또한 친구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슬퍼하기보다 '전설의 답안지'와 '시험지 유출'만 걱정하며 결국 시험지 받은 애가 전교 1등 하는 게 아니냐면서 시험을 망쳤다고 괴로워할 뿐입니다.

정도의 차이지 오직 공부와 1등만을 부추기는 성연고는 씁쓸하게도 우리의 학교 현장과 닮아 있습니다. 10년 전 제가 학교 다닐 때에도 대놓고 학생들 간의 경쟁을 조장하진 않았지만 성적순으로 학생들을 평가하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특히나 대학 진학을 앞둔 고3이 되니 성적으로 인한 차별은 갈수록 심화되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때도 학생들간 협력이나 상생을 가르쳐주진 않았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 시절에는 그렇게 강조한 '협동', 그리고 학교 다니면서도 타인과 친구를 배려해야 한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는데, 현실에서는 남을 제치고 좋은 내신 성적 받고 더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게 급선무였습니다.

문제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학교는 이전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는 점입니다. 아니 차라리 내가 학교 다닐 때가 더 낫다 싶을 정도로 지금 학교는 '학교 폭력'에 '입시 지상주의'에 심한 골병이 들어있습니다. 현실의 '성연고'에 들어가기 위해서 걸음마 뗄 때부터 특목고 입시 준비에 돌입하는 교육에서, 그리고 초등학생 애들도 '학업 성취도 평가' 명분으로 시험을 보게 하고 성적이 뒤쳐지는 아이들을 밤늦게까지 남아서 공부시키는 학교에서 진정한 '상생'과 '협력'을 모색할 수 있을까요.

드라마 <유령> 속 성연고는 비싼 학비에도 특수목적고, 국제중, 자립형 사립고 진학에 목숨 걸고 학생들 간 과도한 경쟁을 부추기는 학교 현장의 적나라한 실체를 보여주는 듯합니다. 과열된 경쟁 속에서 성연고 학생들은 점점 미쳐갔고, 학교 선생님의 주된 가르침에 따라 다른 학생들에게 밟히지 않기 위해 자기가 먼저 학생들을 짓밟는 끔찍한 범행을 일으킵니다.

하지만 학생들을 총성 없는 전쟁터에 몰아넣은 어른들은 더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친구까지 죽이는 아이들만 탓할 뿐, 아이들과 교육을 병들게 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의지는 전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수월성 교육을 앞세워 학생들 간 줄세우기를 더욱 강요할 뿐입니다.

차라리 <유령> 7,8화에 선보인 '학교 괴담' 에피소드가 김은희 작가가 재미를 위해 꾸민 이야기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현실'이기 때문에 더욱 아프게 하는 '성연고' 학교 괴담은 수많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엉킨 채 늘 그래왔던 것처럼 씁쓸하게 미봉책으로 끝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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