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지금 통합진보당은 남한 사회에서 조봉암의 진보당 이후 가장 저명한 진보정당이 되어 있다. 그러나 그 명성이 긍정적인 영향보다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비례대표 경선 부정 파동, 종북주의 논쟁, 애국가 논쟁 등을 지나치며 통합진보당은 자신의 지지율만 깎아먹는 것이 아니라 야권연대에도 지장을 미치며 민주당에게도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지금 남한 사회엔 통합진보당 말고는 일정한 세력이나 영향력을 가진 진보정당이 남아 있지 않다. 그래서 통합진보당을 비판한다 해도 다른 대안을 찾는 것이 녹록치 않은 상황이다. 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을 어떻게 해야 좋을까. 뾰족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드러난 문제만 해결되면 문제없단 식의 봉합론에서 벗어나 “진보의 탈출구는 어디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대담을 기획하게 되었다.

대담자로는 이택광 경희대 교수와 조성주 통합진보당 새로나기 특위위원, 김민하 진보신당 기획실 국장을 섭외했다. 이택광 교수는 1980년대 NL운동에 투신한 경험이 있는 386세대로 그후 주로 유럽 정치철학의 논의를 활용한 진보정치에 대한 제언을 펼치고 있다. 조성주 위원은 1990년대 학번 NL 비주류 출신으로 민주노동당 의원 보좌관과 청년유니온 정책기획실장 등을 거치며 실무역량을 쌓아오면서 정당 내외에서 진보운동을 고민해 왔다. 김민하 진보신당 기획실 국장은 ‘나우누리 폐인’으로 청소년기를 보냈고 2000년대에 민주노동당에 입당한 후 민주노동당과 노조 상근을 거쳤고 지금은 진보신당 상근자이다. 세 사람은 모두 책을 낸 경험이 있고 자신의 견해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필자이기도 하다.

입장과 처지가 다른 세 사람은 현재의 상황과 미래의 과제에 대해 서로 동의하기도 했지만 날카롭게 대립하기도 했다. 간단치 않은 문제들에 대한 세 사람의 격의없는 토론을 미디어스가 소개한다.


▲ 대담 중인 세 사람의 모습

‘새로나기’ 특위 보고서, 진성당원제의 후퇴?

미디어스: ‘새로나기 특위’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특위 보고서가 진보정당 혁신을 위한 올바른 방향을 담고 있느냐가 중요한 문제가 될 테니까요. 근데 이택광 교수님이 아직 안 오셨는데요. 당 바깥에 계시는 교수님은 잘 모르실 (웃음) 제도적인 문제부터 얘기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보고서에 보면, 당원 투표 과반 규정 삭제·주요 공직 선거 후보자에 대한 오픈프라이머리 실시·비례대표 100% 전략공천·정책 및 주요방향 공론조사 및 타운홀 미팅 등이 보완대책으로 적혀 있습니다. 이것들은 분명히 진성당원제 문제를 건드리고 있을 텐데요. 이 보완대책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먼저 두 분께서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조성주: 진성당원제의 기본 취지 자체는 옳죠. 우리가 민주노동당 때부터, 뭐 참여당 분들도 개혁당이나 열린우리당 때부터 가지고 있던 문제의식이지만 기존의 보수정당들엔 페이퍼 당원, 실제로는 당비를 내지 않고 자신이 당원인지도 잘 모르는 수백만 명의 당원이 있는 거거든요. 그런 형태의 보수정당들이 사실 올바른 정당으로 기능하지 못한다는 진보진영의 공격, ‘제왕적 총재’ 문화에 대한 비판 같은 것은 올바른 것이죠.

그래서 당원들이 당대표 등을 선출하고 당의 주요 결정에 참여한다는 것이 진성당원제의 취지였는데, 민주노동당 때부터 12년이 지나다 보니 이게 상당히 왜곡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있죠. 진성당원제가 지금은, 특히 구당권파의 시선으로는 당과 관련한 일은 당원이 결정한다며 국민의 눈높이는 거부하는 핑계가 되어있죠. 이런 측면은 보완해야 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새로나기’ 특위에서도 합의가 되었지만 당직의 경우는 당에서 뽑는 게 맞다고 봅니다. 그러나 공직은 다른 의미이지 않겠는가, 공직은 국민들에게 평가받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런 측면에서 보면 공직자 선출에 대해선 충분히 개방성을 가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파논리로 거부되어 온 것이죠. 이런 측면들을 보완하기 위해 이런 개혁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미디어스: 진보신당에 있다가 민주당으로 간 박용진 현 민주통합당 대변인의 경우에도 오픈프라이머리의 역동성을 칭찬하시기도 했는데요. 프랑스 대선 사회당 경선에서도 ‘1유로 당원’이라 해서 지지자가 1유로만 낸 후 선거에 참여하는 식의 오픈프라이머리가 이루어지기도 했구요. 하지만 또 한편에서는 이런 방향의 개혁이 진성당원제의 지나친 후퇴가 아니냐는 시각도 있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김민하: 저는 진성당원제의 취지 자체를 다시 한번 돌아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첫째는 재정의 문제겠죠. 보수정당은 다 페이퍼당원으로 유지되고요. 정치자금이 당원들에게서 오는게 아니라 기업이나 이익단체로부터 오는 과정에서 부적절한 유착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 정치적 문제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차원에서 필요하다. 이런 거고요. 둘째는 권리와 책임의 문제죠. 당원으로서 당의 의사결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자기가 선택한 당의 행동에 대해서 책임질 수 있으려면 진성당원제가 필요하다 뭐 이런 일이겠죠.

그래서 똑같은 진성당원제라도 많은 변형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성당원제의 이념을 일괄적으로 적용해서 모든 당원이 당의 모든 사안을 결정내려야 한다는 건 상당히 교조적인 것이라 봅니다. 그래서 보고서에 나오는 대책들이 납득되는 측면이 있고, 좋은 취지일 거라고 봅니다. 근데 혁신책이랄까 해결책을 제시할 때에는 그 하나만 필요한 게 아니라 앞뒤 맥락이 잡혀야 하는 것이거든요. 이런 변형을 가했다면 이 변형 하에서도 진성당원제를 올바른 방향으로 가져갈 수 있는 어떤 다른 보완책이 함께 나와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런 대책을 실시하더라도 당원에 대한 정예화, 당원교육을 이수한 사람에게만 당권을 부여한다든지, 당원규정을 상향화시키되 준당원 제도를 두어 투표권은 있지만 피선거권은 없는 이들을 완충장치로 둔다든지, 이런 장치가 필요할 거에요. 근데 특위보고서에는 주로 진성당원제가 일정 정도 후퇴하는 모습만 보인다는 인상이 듭니다. 가령 당원투표과반 규정 삭제를 보면, 이 규정의 원래 취지가 있잖아요. 조직 절반 이상의 사람이 대표자를 선출해야 정당성을 확보한다는 것이죠. 이런 취지가 퇴색해버린 측면이 있고, 이걸 삭제한다고 과연 정파 간 심한 경쟁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 이기려고 경쟁을 하다 보니 50%가 넘는 거지, 50%를 못 넘을 거 같아서 정파가 경쟁하는 게 아니거든요. 비례대표 전략공천도 그렇습니다. 당원에 의한 상향식 공천이라는 의미가 있었는데 100% 전략공천이라 하면 너무 심하지 않은가. 기타 대책들도 하나로만 놓고 보면 좋은 보완책일 수 있는데, 맥락을 다 같이 놓고 보면 진성당원제에 대한 일정한 후퇴가 아니겠느냐, 그것도 한시적인 것이 아닌 원칙의 후퇴가 아니겠느냐, 그런 인상이 듭니다. 새로나기 특위 보고서가 진보의 방향을 제시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면 더욱 그런 것이죠. 뭐 이 보고서의 진성당원제 건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부분을 봐도 그렇습니다.

조성주: 그 부분은 사실 이 보고서 자체를 통해 진보 전체 혁신 과제를 낼 것이냐 아니면 현재 통합진보당에 요구되는 전국민적 쟁점에 대한 혁신과제를 낼 것이냐에 대한 사전 토론이 있었습니다. 토론 결과 특위 내에서는 전자보다는 후자에 방점이 찍힌 거죠. 먼저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국민들이 답변을 요구하는 쟁점에 대한 입장이었단 것이죠. 그래서 이 보고서만 보고 진보 혁신의 방향을 찾는 건 좀 무리한 측면이 있습니다. 이것은 이 보고서의 성격을 감안해 주셔야 하구요.

김민하: 예, 저도 보고서를 통해서는 볼 수 없는 당내 논의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합니다.

조성주: 또 당원의 정예화 이런 측면도 토론이 되었어요. 근데 이 부분은 국민참여당 쪽이 우리보다도 기준이 더 높습니다. 예전에 국참당은 9개월 동안 당비를 내야 당권을 받을 수 있었어요. 우리 쪽만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던 일도 아닙니다. 다만 저로서도 아쉬웠던 점은 새로운 진보의 가치를 확립하는데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정치적 공격에 대한 방어만 했다는 인상을 주었다는 거지요. 애초에 그런 한계를 가진 보고서란 걸 감안해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반면 보고서가 말씀하신 그런 맥락적 대책을 포괄하고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럼 국민 입장에서는 질문하지도 않았고 이해하지도 못할 얘기가 왜 이렇게 많냐고 짜증을 낼 수도 있는 것이거든요.

국민들의 의구심과 진보정당 선거의 전략성 문제

김민하: 절반 정도는 동의합니다. 동의가 안 되는 지점은 이 보고서의 성격인데요. 이 보고서에도 엄연히 총론이라는 부분이 있고 이 부분은 진보의 방향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습니다. 물론 말씀하신 것처럼 이것이 정치적 판단에 의한 것일 수 있죠. 하지만 보고서 내용 자체는 이것이 국민들의 의문에 대해서만 핵심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식으로 기술되지는 않았어요. 주요 공직 선거 후보자에 대한 오픈프라이머리나 정책 및 주요방향 공론조사 및 타운홀 미팅 등은 말씀하신 것처럼 국민들의 의혹을 해소할만한 지점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당원 투표 과반 규정 삭제나 비례대표 100% 전략공천은 아니지 않은가요? 솔직히 이 부분은 국민들이 별로 관심없는 부분이거든요. 들어도 무슨 소린지 잘 모릅니다. 이 부분에 관심이 있는 건 오히려 당에 소속감을 가지고 정파 문제에 상처입은 당원들이죠.

▲ 엿을 먹는 김민하 진보신당 기획팀 국장의 모습

조성주: 관심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국민들이 제기하는 의혹은 이석기나 김재연 같은 사람이 선출된 이유가 뭐냐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답은 정파구도가 있어 그런 이들을 집단적으로 찍기 때문이란 것이구요.

김민하: 글쎄요. 그런 식으로 따지면 국민들은 그들이 비민주적 방식으로 선출되었다는 것 보다는 종북주의 국가관을 가졌는지도 모른다는 데에 불안해하고 의문을 가지고 있죠. 물론 말씀하신 그런 의혹도 있지만, 그런 부분은 다른 대책에서 충분히 설명했어요. 근데 비례대표 100% 전략공천의 함의가 뭐가 되냐면, 단순하게 얘기하면 참여계와 경기동부가 모여서 비례명부를 짤 것 같은 생각이 든단 말입니다. 그렇게 될 경우 문제가 있는 사람이 전략공천에서 떨어질 가능성이 높을까요? 사실 100% 전략공천은 이석기와 김재연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죠.

조성주: 제가 느끼는 더 근본적인 문제는 뭐냐하면요, 진보정당의 비례대표에 전략성이 없다는 겁니다. 가령 새누리당은 다문화주의라는 포인트를 잡아 이자스민을 전략공천할 수 있지만 진보정당은 못하거든요? 근데 지금 구조는 진보정당이 후보 문제에 있어 전략성을 발휘하기 힘든 구조입니다. 정파에서 인준받고 표를 많이 받아야 들어올 수 있는 측면이 있으니까요. 전략공천이면 정파 간에 전략을 합의해서 이자스민에게 공천을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선거를 하면 어느 정파도 이자스민에게 1순위 투표를 하지는 않을 거란 말이예요. 100%가 너무 심하다고 문제삼으셨지만 이것은 한시적인 상황입니다. 통합진보당은 이번에 비례 의석을 6석 얻었구요, 최대 10석 정도를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10석 정도 상황이라면 최대한 전략성을 발휘해야 하는 것 아닌까요? 만일 우리 당이 민주당 수준으로 커져서 20석을 가질 수 있다면 또 얘기가 다를 겁니다. 그래서 이 대책은 과도기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그리고 100%가 심하다고 하시니 전략 50% 경쟁 50% 룰로 가본다면, 그게 이번 선거 상황이에요. 당선자 6명 중 3명이 전략이었습니다. 그래서 1, 2, 3번 사퇴하라고 얘기하게 된 것 아닙니까? 그래도 문제가 터졌으니 전략 비율을 높여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이죠.

미디어스: 전략성 문제는 동의합니다. 진보신당의 경우도 이번 비례 1번에 청소노동자 김순자 님을 공천하여 호응을 얻지 않았습니까? 이게 다분히 전략적인 측면이 있는데, 사실 기존 규정대로라면 1번은 ‘여성 장애인’이 되었어야 했을 거란 말이죠. 그런 점에서 어떠한 ‘유도리’도 필요한 것인데.

김민하: 진보신당 비례 1번 문제는 당헌 당규에 대한 해석의 문제가 좀 있습니다. 일단 그렇구요. 당 입장에서 유효한 전략 짜는 데 정파들의 투표가 방해가 되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런데 조위원님 말씀하셨다 시피 통진당 비례 공천에 전략명부가 있었고 경쟁명부가 섞여 있긴 했지만 여기서 당이 어떤 전략을 보여주느냐고 하면 회의적이거든요. 이번 선거에서 통합진보당의 4, 5, 6번 후보가 그 당의 어떤 전략을 보여주는 것인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조성주: 왜 전략이 없나요? 전교조 추천, 참여연대, 환경운동 출신 등이 섞여 있는 것인데요.

김민하: 그런 건 부문별 할당이라 봐야 하지 않나요? 사실 통합진보당이 시민사회와 노동계를 열린 자세로 받아들였느냐에 대해서도 의견이 다릅니다. 잡음도 있었어요. 4번 정진후의 경우 조직 내 성추행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고 봉합하려 했던 이라서 비판받았던 그런 측면도 있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전략명부를 하더라도 정파들의 정치적 조건 때문에 당의 전략을 발휘하기가 힘듭니다. 원칙의 측면에서도 그건 별도의 문제죠. 사실 경쟁명부 도입하더라도 당원 사이 정파구도가 강고한 것이 아니라 당의 진로에 대해 당원들이 명확하게 파악하고 합의하는 구도만 존재한다면 투표 결과를 통해서도 당 전략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반대상황도 충분히 이야기가 가능하다는 거지요.

조성주: 하지만 정파구도가 하루 아침에 사라질 것도 아니고 현재 경쟁명부가 문제가 된 것인데,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는 건 너무 ‘나이브’하단 생각이 듭니다.

미디어스: 입장 차이가 확연한 것 같은데요. 네, 이교수님 오셨습니다. (오간 논의 설명) (이: 난 거기엔 별로 할 말 없어요)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웃음) 여기서 다 합의할 수 있는 건 아니니만큼 다음 문제로 넘어가도 될 것 같습니다. 애국가 논쟁으로 가보죠.

애국가 논쟁, 80년대 운동권들의 시대지체?

김민하: 애국가 논쟁에 대해서는 내부 논의 과정부터가 궁금합니다. 이 문제가 왜 제기됐고 어떤 논의과정을 거쳐서 보고서에 담겼는지가 궁금합니다.

조성주: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어요. 일단 유시민 전 대표가 문제제기를 했지요. 저도 왜 그 시국에 그런 문제제기를 하셨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통합진보당원들은 그 당은 애국가를 안 부른다더라는 소문을 진화하러 다녔던 경험이 있습니다. 유시민 전 대표가 유세현장에서 질문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만, 유세현장에서만 그럴 뿐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많이 문제가 되는 얘기입니다. 시/구의원들의 경우, 지역 사회에서 보수정치인들이 그런 소문을 내서 공격하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그래서 생뚱맞은 얘기는 아닙니다.

▲ 유시민 전 대표는 애국가 논쟁을 제기하는 등 최근 통합진보당 내 논쟁에서 큰 역할을 했다. ©연합뉴스

미디어스: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이 합당할 때에도 이 문제에 대해서 논의가 치열했던 것으로 압니다. 왜 그랬다고 보십니까?

조성주: 음, 그 문제는요. 참여당 사람들이 애국가를 몹시 부르고 싶어한다는 게 아닙니다. 반대로 참여당 사람들이 민중의례를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불편해 한다는 거죠. 내부적으로는 거기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었어요. 민중의례를 꼭 해야 하느냐 하는 그런 문제제기였지요. 그래서 대신 애국가를 부르자는 안도 나왔고 다 하지 말자는 의견도 나왔고 봉합안도 나온 것이죠.

이택광: 기본적으로 애국가 문제는 시대지체의 문제라 봐요. 사실 80년대에 학교를 다니고 운동하던 사람들은 당연히 애국가 안 부르고 민중의례 하는 것이 관례였어요. 그때는 운동권들이 대한민국에 대한 체제전복을, 그러니까 혁명을 생각하고 있을 때였죠. 그게 강할 때에는 민중의례가 운동권 내부에서 상식이면서 합의된 형식이었던 겁니다. 문제는 그들이 노선 변경을 하게 된 후에도 새로운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이걸 관성적으로 지속했던 것이죠. 보수진영에서 애국가 안 부르는 이들은 혁명세력인 것처럼 묘사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타당하지는 않으나 역사적으로는 설득력이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국민의례 말고 민중의례를 해야 하는 새로운 이유를 합의한 적이 없으니까.

이 운동세력들이 세월이 지나고 자연스럽게 진보정당이나 대중운동의 영역으로 나오면서 자기들 내부에 여러 가지 스펙트럼과 온도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차이가 충분히 논의되지도 못했고, 그 위에 이후 세대들이 유입되었단 말이지요. 80년대에 사로잡힌 진보정당 내 세력들이 바뀐 환경에 적응 못하는 부분에서 괴리가 발생했던 겁니다. 문제는 제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그런 문제에 대처할 수 있는 역량이 준비가 안 되어 있었어요. 까놓고 말해 총선에서 많은 사람들이 통합진보당이 약진하리라 예측했지만 오히려 통합진보당 스스로가 이렇게 많이 관심받을 줄은 몰랐던 것 아닌가요? 어쩌면 그 관심 자체가 좀 오해였던 겁니다. 진보진영이 사람들이 기대하는 그 진보의 수준에 미달했다는 거에요. 그래서 이 문제는 보수들이 하는 것처럼 진보를 이념적으로 질타하거나 친북으로 몰아 마녀사냥을 할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무 문제가 없는 건 아니고 진보 전반의 해결 과제라고 봐요. 이런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공간이 진보정당이나 진보주의자들 사이에 있느냐, 없다는 거에요. 그게 제일 심각한 문제인 거거든요. 그래서 우파 담론이 치고 들어와 진보 담론을 눌러 버리는 거지요. 휩쓸려 가버리는 겁니다. 진보에 대해 막연하게 생각한 자유주의 진영도 같이 쓸려 가버리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석기의 돌출행동이 ‘떡밥’을 계속 주고 있어요.

▲ 문화평론가 경희대 이택광 교수의 모습

미디어스: 우리가 흔히 애국가 논쟁을 국가주의 문제로 계열화하지만 실은 80년대 운동권의 시대적응 문제로 볼 수 있단 것이군요.

이택광: 국가주의 문제로까지 가야 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심상정 의원은 ‘상식’의 문제라 얘기했는데요. 상식이 단일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니까, 좀 다르게 말하자면 ‘어떤 상식’을 받아들일 것이냐의 문제라고 봅니다. 좌파적 관점에서 봐도 진보정당 운동은 궁극적으로는 부르주아 정치구조를 인정하는 것이거든요. 그러면 일반적 유권자들이 생각하는 상식 내에서 움직여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을 매개로 해서 민중정치든 뭐든 전개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현재의 진보정당이 자신들의 이러한 이중적 위치에 대한 전략이 있느냐 의심이 듭니다. 단순하게 말하면 그냥 혁명운동 하다가 그거 폐업하고 제대로 재고품 정리도 안 된 상태에서 합법운동하겠다고 간 것 아닌가, 뭐 그런 겁니다. 이미 해결됐어야 할 문제가 계속 나오는 거에요.

조성주: 동의합니다. 분당 전 민주노동당 시절에도 이런 토론이 필요했는데, 솔직하게 해본 적이 없어요. 사실 당에서 배출한 공직자들, 국회의원 구청장 시/구의원들은 공식행사에서 다 합니다. 그런데 당 공식행사에선 이걸 안 했고 당원들 사이엔 국민의례를 거부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많았거든요. 이 사이에서 쉬쉬하고 얘기를 안 한 것이고 내재된 문제였던 게 맞습니다.

김민하: 여기서 좀 다른 의견을 얘기해야 제가 주목을 받게 되겠지요? (웃음) 저도 민중의례하자고 하면 솔직히 불편합니다. “님을 위한 행진곡”에 담긴 여러 맥락도 알겠고 이걸 부르는 의미가 있을 거라고 봅니다만 저로선 일단 곡이 아름답지 않은데 매번 불러야 하는가 하는 그런 문제의식이 있습니다. 그냥 의례 자체를 안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국민의례만 해도 일반적인 사람들은 학교 졸업하면 별로 할 일이 없습니다. 제가 공익근무를 해봐서 아는데 관공서 행사에서도요. 원칙적으로는 하게 되어 있지만 실질적으론 높은 사람이 올 때나 합니다.

그런데 보고서에 서술된 내용을 요약해 보자면, 좀 야박하게 들리실 수 있겠습니다만 이렇습니다. “운동권 정서를 대변하는 민중의례를 해야 할지, 헌법 정신을 존중하고 대한민국 공당으로서의 책임을 지는 국민의례를 해야 할지에 대해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 이건 말이 논의를 해보자는 것이지 사실 중립적인 서술이 아니지요. 그런데 국민의례가 정말 ‘헌법 정신을 존중하고 대한민국 공당으로서의 책임을 지는’ 걸 다짐하는 것인가요? 국민의례를 안 하면 그걸 보증받을 수 없나요? 내부 구성원에 대해 ‘국민의례를 하지 말자’라는 묵계를 제시하는 것과 당 행사에서 국민의례를 할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추구하는 가치를 표현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당에서 국민의례 하지 말자고 누가 정해놓은 게 아닌 이상 특위 보고서에 이런 식으로 서술할 필요가 있는가의 문제가 있는 겁니다. 더 나아가 여기서 애국가 논쟁을 벗어나 보자면 이런 우려가 있습니다. 통합진보당이 내놓은 ‘새로나기’라는 방향이, 기존 과정에 대해 부정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새로 가고자 하는 방향이 진보정치를 고민하는 사람으로서 동의할 수 없는, 혹은 바람직하지 않은 길이 아닌가. 우리가 대변하고자 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정책적 고려를 충분히 하지 못하는, 서유럽 사민주의 정당이 그랬던 것처럼 포괄정당의 길로 가는 것이 아닌가.

통합진보당 혁신, 민주당과 차별점이 있나

조성주: 앞서 얘기했듯 국민들이 제기하는 쟁점, 의문 중심으로 보고서가 작성된 겁니다. 그렇다면 역으로 진보신당은 국민의례를 하냐는 질문이 온다면 뭐라 답하시겠습니까? 지금 통합진보당에 제기되는 질문은 정확히 너희가 애국가와 국민의례를 인정하지 않느냐고 묻는 것이거든요. 그리고 이 보고서가 말하는 것은, 당 행사에서 국민의례를 할지 말지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지만, 이런 질문이 들어왔을 때 “우리는 국가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어서 국민의례를 거부합니다”라고 답변해야 하느냐 마느냐를 판단내리는 것이지요. 지금까지 진보진영에서는 그러한 답변이 많지 않았습니까? 보고서는 우리 공직자들도 공직행사에서 국민의례를 하는 상황에서 그런 정도의 문제의식으로 그걸 거부한다고 선언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는 겁니다. 당에서 할지 말지에 대해선 아직 얘기가 된 게 아닙니다.

김민하: 그런데 보고서의 존재가 진보진영에 물음을 던지고 있는 겁니다. 애국가 논쟁이 유시민 대표가 주도적으로 제기한 문제인 만큼 이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이 진보진영을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가려고 한다는 예측이 있고 그에 대한 우려를 자아내는 지점이 있는 것이죠.

조성주: 그런 우려는 당연한 것이고 감수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섣부르다는 생각도 있습니다.

김민하: 저는 통합진보당이 대표적인 진보정당으로 존재하는 지형에서 이 보고서의 지향을 본다면 이런 질문이 가능하다고 보는 거에요. 지금 민주당이 잘 하고 있는데, 오픈프라이머리 통해 국민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느낌을 받게 하고, 정치에 주도적으로 나서게 하고, 정권교체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데, 이런 지형에서 통합진보당의 존재 의의는 뭐냐는 거지요. 보고서대로 간다면 우리는 민주당이 두 개 있는 상황에 처할 거 같거든요. 앞서 말한대로 통합진보당 역시 포괄정당화된다면 민주당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리고 민주당이 두 개 있을 바엔 하나만 있는 게 낫지요. 같은 포지션이라면 더 커다란 민주당이 더 잘하고, 또 같은 포지션을 가진 이들이 힘을 합치면 더 잘 하게 될 겁니다. 이에 대해 진보진영 일반이 가질 수 있는 의구심이 있습니다. 책임감 있는 답변과 행보가 필요합니다.

조성주: 글쎄요, 그것은 정책적 영역에서 구분할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의 정책적 성향이 같아질 거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김민하: 이 시점에 굳이 유시민 전 대표가 애국가 문제를 제기했고요. 보고서에서 제기하는 정책의 흐름이 있습니다. 보고서 작성과정에서 정태인이나 천호선 등이 참여해서 주장하던 것들이 있거든요. 가령 성장담론을 고려 않고 진보운동을 할 수 없다든지, 자유주의와 진보운동의 접목이라든지. 그러한 논점에 대한 고려가 보고서를 작성하는데 포함되었다고 봅니다. 그런 바탕에서 재벌해체론이나 주한미군 철수에 대한 비판적 검토도 나온 것이지요.

이택광: 말씀하고자 하는 바는 보고서가 애국가 문제를 통해 통합진보당의 정체성을 묻는다는 시각인데요. 보고서는 앞서 얘기되었듯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내용들에 답변하는 방식이라 명쾌하지 않은 분위기인 듯합니다. 결론을 내리기 보다는 토론의 논제를 던지는 분위기에 가까워요. 이렇게 되면 이 문제들을 언제 어떻게 논의하느냐는 문제가 또 생기죠. 민주당과의 관계 설정이나, 진보적 의제들과의 관계 설정의 문제가 계속 문제가 될 겁니다. 말하자면 여러 가지 정체성 논쟁이 생기는 것이죠. 앞서 말했듯 저도 그것이 애국가 논쟁의 본질이라 봅니다. 단순히 애국가에만 해당하는 논쟁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인정하느냐 불인정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통합진보당의 방향의 문제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보고서에 이 문제에 대한 답이 명쾌하게 나와야 하는데 안 나온 것 같네요.

조성주: 지금부터 그 문제를 토론하자는 것이 이 보고서의 결론이겠지요. 앞서 얘기했듯이 새로운 진보적 가치의 확장이나 노선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기하기보다는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치적 공격에 대해 방어를 했다는 측면이 있습니다. 물론 전자를 제기하지 못한 것은 아쉬운 점이구요.

미디어스: 좀 요약하자면 이렇게 될 것 같습니다. 낡은 진보를 새로운 진보로 바꾼다는 당위에는 모두들 찬성하고 계시죠. 그런데 김국장님이 주도적으로 제기하는 의문은, 그 ‘혁신’의 방향이 잘못되어 있지 않느냐, 진보만 문제를 드러낸 것이 아니라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기간 동안 자유주의 세력도 많은 문제를 드러냈는데, 이런 종류의 쇄신안은 낡은 진보를 그저 낡은 자유주의로 대체하자는 것이 아니냐, 뭐 이런 것인 듯합니다.

이택광: 여기서 드러나는 문제가 뭐나면 진보의 재구성 문제가 일종의 헤게모니 싸움 문제가 되었단 거에요. 이름은 ‘진보’라 달아놓았고 사실상 다른 경쟁자도 없으니, 누가 ‘진보’를 사칭해서 이 정당 내에서 정파 헤게모니를 쥐느냐는 문제가 된 겁니다. 헤게모니의 이동을 ‘진보의 재구성’이라 부르게 되는 것이지요.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려면 진보의 가치를 명쾌하게 제시해야 한다고 봅니다

조성주: 보고서가 충분히 역할을 하지 못한 부분이 그런 것이지요.

이택광: 우편향이라는 말도 나오지 않았습니까?

조성주: 보고서가 재벌해체론 문제를 지적하는 걸 보고 우편향이라 하시는 모양인데, 솔직히 동의는 못하겠습니다.

진보정당이 말하는 ‘재벌개혁’은 무엇인가

김민하: 편향 문제가 아닌 경제정책 지향점의 문제라 봅니다. 이정희 대표가 총선공약으로 재벌해체론을 내놓아 논란이 되었죠? 그런데 이정희의 재벌해체론은 어떤 부분에선 재벌의 소유구조를 바꾸어 재벌이 기업으로서 제 역할을 하게 한다는 방향도 있었습니다만, 실질적으로는 신자유주의가 요구하는 기업 투명성/투자 효율성 요구에 편승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가 있었습니다. 요즘 ‘장하준 논쟁’이라 불릴만한 재벌개혁에 대한 논쟁 구도가 있는데 그 지점에서 제가 보기에 이 보고서는 장하준/정승일이 주장하는 맥락을 수용한다는 것으로 읽힙니다. 보고서에서 말하는 것 자체가 재벌해체론에 대한 공약을 수정했다는 내용이고요. 구체적인 내용으로 재벌이 과연 해체의 대상인지 아니면 개혁해서 관리되어야 할 대상인지 토론이 필요하다고 서술되어 있는건데 앞서 국민의례 서술과 마찬가지로 이걸 보면 재벌개혁 논쟁 양자 간에 선택을 한다기 보다는 중립을 가장한 채 후자에 방점을 이미 찍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조성주: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습니다. 제 경우엔 특위 내에서 재벌해체론을 빼자는 얘기가 나왔었는데요, 절대 안 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제가 재벌해체가 인생의 목표라 그런 것은 아니구요. 이것도 빼면 진보정당은 경제정책이 없다는 위기의식이 있는 겁니다. 도대체 우리의 경제정책은 뭐냐는 거죠. 지금 경제민주화 핵심인 재벌을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해 학자들이 논쟁중인데 진보정당 입장은 대체 뭐냐는 겁니다. 원래는 이런 논쟁은 진보정당 운동 내부에서 벌어져야 하는데 지금 학자들 논쟁에 손가락만 빨고 있는 거지요. 솔직히 말하면 진보진영이 도대체 어떤 것을 재벌해체라고 보는지조차 명확하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문제를 좌우편향 문제로 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어떻게’를 얘기하지 못하는 무능력한 진보정당에 대한 문제제기라고 봅니다.

▲ 박원석 새로나기 특위 위원장이 특위 최종보고서를 발표하고 있다. 좌우로는 조성주 위원과 황순식 위원의 모습 ©연합뉴스

김민하: 저도 대안 없는 막연한 구호에 염증을 내고 있고요, 구체적인 정책적 경로를 상정하지 못하는 입장은 없으니만 못하다는 생각이므로 말씀을 이해합니다. 우리가 그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활동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이 보고서가 그 문제를 얘기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어떤게 무능력하다고 지적하는지도 모르겠구요.

조성주: 이정희가 강력하게 미는 재벌개혁의 핵심 공약이 30대 대기업을 3천개 기업으로 쪼개자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것들이 문제였다고 보는 겁니다.

김민하: 아까 특위 보고서가 국민을 상대로 정치하기 위한 보고서라고 말씀하셨는데 정작 일반적 진보진영이 가진 문제의식에는 소홀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재벌해체론에 대한 마땅한 대안이 없고 기업을 쪼개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 말씀하셨는데요. 그렇다고 재벌해체가 대안이 없는 일이니 하지 말자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는 있는 것인지요. 국민의 시선에서도 구체적으로 재벌기업에 의한 피해가 발생하고 있고 이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는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는 것이 답이지 무능력을 우려해서 구호를 비판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충분히 우려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닐까요?

조성주: 진보신당의 우려가 아닐는지요? 이번 총선 공약은 그 현실성에 있어 학계와 시민단체의 비웃음을 살 수준이었다는 게 문제입니다.

이택광: 그러면 현실적인 정책은 뭐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조성주: 이번에 나온 것 중에 현실적인 정책이 없었다고 보는 겁니다.

이택광: 문제는 재벌해체 요구가 무엇인지에 대해 제대로 정리된 바가 없다는 겁니다. 재벌해체는 관성적인 요구에요. 80년대 PD운동권들의 신식국독자론, 그러니까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론에서부터 출발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민중의례를 지금껏 성찰없이 하고 있는 것처럼 이 말을 지금껏 그대로 쓰다보니 재벌을 없앤다는 것인지 합리화한다는 것인지도 정하지 못한 채 오늘날에 이르고 있습니다.

가령 장하준 교수는 재벌이 효율성이 높아서 자본 축적이 잘된 것이 아니란 사실을 모릅니다. 자본 축적이 잘된 건 운이 좋았던 측면이 있지요. 이건희는 막스 베버의 관점에서 볼 때 수전노이지 자본가는 아닙니다. 자본가로서의 미덕을 갖추지 못했지요. 현대는 삼성에 비해서 좀 다르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재벌도 재벌 나름이고 케이스 바이 케이스인데 뭉뚱그려 얘기하고 있는 거에요. 족벌 경영이라 불리는 방식의 핵심은,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기본적으로 재벌-대기업은 열심히 일하지 않습니다. 일할 필요가 없거든요. 오히려 일하면 잘리는 경우도 생깁니다. 일을 열심히 하기보다는 술을 열심히 먹는 사람이 생명력이 높은 거에요. 왜냐하면 족벌 대기업에서 위에 있는 사람은 대체로 줄을 잘 선 사람들이니까요. 파워 있는 사람을 잡으면 기업 내에서 살아남게 되는 것, 그게 우리나라 기업문화이고 노동환경을 구성하는 주요한 문제입니다. 이런 상황을 경험적으로 아는 일반인들의 입장에선 재벌해체가 무엇을 의미하고 무엇을 바꿀 것인지를 알아들을 수도 예측할 수도 없는 것이지요.

만일 진보가 재벌해체를 주장해야 한다면 이를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성장정책을 포기하자는 것일 겁니다. 그런데 진보니 보수니 하는 문제를 떠나서 한국 사회에서 이런 주장이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요? 김종철 선생이 말하는 것과 같은 그런 식의 근본적 생태주의는 한국 사회에선 농담일 뿐 정치이념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이것이 현실성인 것이죠. 진보의 현실성이란 것은 좁은 절벽입니다. 이쪽으로 가도 떨어지고 저쪽으로 가도 떨어져요. 좁은 길을 가야 하는데, 그러려면 여기서 어떤 사회를 갈 것인지에 대해 제시되는 어떤 전망이 있어야지요. 재벌 해체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이 없다는 것도 이 전망이 없다는 사실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겁니다. 이것은 진보의 전망이 없다는 것과 같은 얘기거든요. 민주당이나 심지어 새누리당까지 경제민주화를 이야기하는데 진보가 차별적으로 가져갈 내용이 있으려면 이러한 전망이 필요합니다. 통합진보당 뿐만이 아니라 진보신당에게도 제기되는 문제죠.

조성주: 재벌해체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합의가 안 되더라도 재벌해체론에는 재벌을 통제하거나 해체하는 다양한 정책수단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떤 전망을 꼭 필요로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이택광: 전망이 있어야 설득력을 말할 수 있다고 봅니다. 지금 순서가 거꾸로 되어 있어요. 그게 아니면 실용주의적 논쟁을 하자는 것 밖에 안 되거든요. 전망을 논의하지 않는다면 재벌에 대한 효율적 정책이 뭐냐는 것을 알 수가 없어요. 뭐가 효율인지를 모르니까요. 이윤이 많이 나는 기업으로 만들 것인지 아니면 인간적인 기업으로 바꿀 것인지 여러 가지 비전이 나올 수 있고 그에 따라 어떤 정책이 효율적인지를 따질 수 있을 텐데 비전이 나오지도 않은 상황입니다.

김민하: 관련해서 일반적으로 진보진영에서 받아들이는 재벌해체론의 문제가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재벌해체론엔 두 가지 차원의 철학이 혼재되어 있다고 봅니다. 첫째로는 부의 분배가 제대로 안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구요. 둘째로는 경제주체인 기업/재벌이 부적절하게 국가/정치권력과 결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두 문제에 대한 정책 해법은 서로 다른 방향일 거라고 봅니다. 그런데 두 문제가 혼재된 상황에서 진보진영이 받아들이는 지점은 1997년 이후 제기된 재벌에 대한 민중적 요구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것이거든요. 그래서 재벌해체를 실질적으로 어떻게 할 거냐란 현실성 문제도 중요하지만 정책의 방향이 뭐냐는 것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정치권력과의 결탁 문제는 비자금 문제와 얽혀 있고 결국 기업 내부의 자금구조를 들여다 볼 수 있는 투명성을 요구하는 거에요. 그리고 이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는 신자유주의 시장원리에 충실하고 투자자의 이익에 부합할 수 있는 것이죠. 기업이 훤히 들여다 보여야 자유로운 투자가 가능하니까요. 반면 부의 분배 문제는 재벌의 소유구조 문제를 다룹니다. 신자유주의와는 다른 측면을 건드리는 것이죠. 이것들이 혼재된 상황에서 진보진영이 구호를 반복하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문제라 봅니다. 이것을 확장해서 얘기하자면 진보정당의 주체가 국가를 통치할 수 있는 준비가 안 됐다고 말할 수 있는 겁니다. 경제정책이야말로 국가 통치의 방향인데, 그런데 그 방향이 책임 있게 구성되어 있지 않아요. 말하자면 스탈린주의가 가졌던 국가 통치철학에서 이탈하면서, 스탈린주의를 반대한다는 것만 알았지, 다른 것을 세우지 못한 상황입니다. 재별개혁 문제는 ‘이념’을 상실한 진보진영이 사회를 변혁시키고자 하는 방향, 통치 행위의 방향이 부재한 상황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예라고 평가합니다.

진보정당, 실력증진을 위해선 통치경험이 필요하다!

미디어스: 그래서 말인데, 언론에선 연일 학자들이 재벌개혁 논쟁을 벌입니다. 크게 장하준과 김상조의 논쟁이라 볼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매번 드는 의문이, 진보는 여기서 어느 편이냐는 겁니다. 장하준 편도 아니고, 그렇다고 김상조 편도 아니요, 양자 중에서 취할 것만 취하자는 것인지 아니면 양자의 대립이 별 의미가 없다고 봐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구체적인 정책실무를 가장 많이 겪은 조위원님은 어떻게 보십니까?

조성주: 대립이 별 의미가 없다고 보는 쪽입니다. 지금 언론이 말씀하신대로 장하준 vs 김상조 대립구도로 프레임을 짜는데 사실 장하준 교수 이야기도 급진적 측면이 있어요. 장하준 교수는 금융이 핵심이라고 봅니다. 한국 경제의 슈퍼갑을 외국 자본이라 보는 거죠. 반면 김상조 교수는 한국 경제는 미국이나 신자유주의 이후 타국 경제와 차별성이 있고 한국 경제의 슈퍼갑을 재벌이라 봅니다. 여기서 차이가 있는 건데, 규제방안은 양쪽이 다 취할 바가 있어요. 자꾸 양쪽을 대립시키는 건 과도하다고 봅니다. 장하준을 재벌 옹호론자라 보기 어렵고 김상조를 주주자본주의의 신봉자라 보기 어렵죠. 주주자본주의의 신봉자는 사실 장하성 교수이니, 장하준 교수는 사촌끼리부터 정리를 하고 와야 해요. (웃음) 진보진영은 이런 측면에서는 의견차가 개개인마다 있을 듯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정태인 교수의 견해에 많이 끌립니다. 정책 문제는 깊이 논의하면 할수록 진보와 보수를 명확하게 할 수 없습니다. 이런 영역에서 실력발휘를 하지 못하면 진보의 자리는 점점 없어진다고 봐야 할 겁니다.

김민하: 이야기한 맥락에 조금씩 동의합니다. 장하준의 대안인 제도경제학류를 진보정당의 경제정책의 핵심으로 삼는다면 아마도 그것과 가장 친화적인 이념은 스탈린주의일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와서 스탈린주의하자고 할 순 없잖아요. 새로운 진보의 갈 길, 세계적 흐름 속에서 새로운 좌파정당이 갈 길을 찾아야 하는데, 어떠한 방향을 택해야 할 지 총론적 차원서는 합의된 바가 없습니다. 엊그저께 이철희 선생이 프레시안 기고문에서 심상정 노회찬 유시민 등에게 민주당에 들어와서 경선치르라 얘기했을 때 같은 진보 진영의 사람으로서 기분이 나빴습니다. 문제는 기분은 나쁜데 여기에 어떻게 반론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거에요. 물론 그와 별개로 단일화만 자꾸 하면 지지율이 높아지고 정권교체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이철희 선생의 시각엔 동의를 못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다만 길을 모르기 때문에 더더욱 집권에 집착하고, 대선 국면에서 진보적 정권교체 이루겠다거나, 연립정부론 등이 징후로써 나타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통합진보당이 여러 문제에 휩싸여 있는 것은 어쩌면 주변적인 것이 아닌가 하고, NL/PD/경기동부 등의 프레임은 이전 세대에 형성된 흐름인데 여기서 벗어나지 못한 제 세대에 대한 자기연민도 생깁니다. 앞으로의 논의는 좌파가 어떻게 수권정당이 될 것인가부터 시작해서, 만약 이런 통치론의 측면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는게 아니라면 진보정당이 민주당 류와 구분되는 자기 담론을 어떻게 만들고 설득할 것인지에 대해 이전의 정파 구도와 단절된 형태로 새로 틀을 짜야 한다고 봅니다.

이택광: 통합진보당 구성을 보면, 노선끼리 공통점 때문에 온 것인지 정파 헤게모니 때문에 온 것인지 알 수가 없지요. 국민참여당의 경우 민주당 내에서 힘을 발휘할 수 없었기 때문에 온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있어요. 그래서 아까 이것들을 헤게모니 싸움이라 본 것이구요. 그래서 가치의 싸움이 아니고 헤게모니 싸움이기 때문에 당내 민주주의 문제가 불거졌는데 정체성 문제라는 우파의 프레임으로 스스로 들어갑니다. 왜 통합을 해야 했는지, 진보적 가치로 연대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가 보이지 않아요. 그러니 싸움이 소모적으로 가고 있는 것이지요. 당권파라는 특정 정파만 제거하면 되는 문제가 아니라 당내 민주주의의 문제였고, 그들이 당내 결정을 따르지 않는 데 대한 문제였단 것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습니다.

조성주: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정당의 실력의 문제라 생각하고 그 실력을 보여줘야 한다고 봅니다. 현재 처한 당내 민주주의 문제도 실력의 문제입니다. 국민참여당이 통힙진보당에 들어와서 크게 활약하고 있다고 보는데요. 사실 진보는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이 저열했던 겁니다. 진보정당의 민주주의는 노동조합의 민주주의만큼도 안 되는 상황이었던 거죠. 마찬가지로 국가운영의 차원에서도, 관념이 아닌 현실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국가모델 및 사회적 비전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전히 과거에 사로잡혀 과거와 연관된 비전을 내야 한다는 착각 및 강박관념이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사민주의적 비전이라도 지금 시기에 제출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통치능력이란 건 통치를 해 봐야 생기는 것이거든요. 진보정당은 무슨 무협소설 마냥 산 속에서 수련하다 내려오면 자신들이 실력이 생긴거라 생각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런 게 없어요. 당장 국회만 들어가도 첫 번째로 확인이 됩니다.

▲ 조성주 통합진보당 새로나기 특위 위원의 모습

이택광: 그런 것이 노무현 정부의 문제이기도 했지요.

조성주: 네, 그리고 진보정당도 마찬가지구요. 저는 연립정부든 어떤 방식으로든 집권에 참여하는 것에 긍정적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산 속에서 우리끼리’ 검증되지 않은 실력을 주장하는 집단이 되어 도태되고 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택광: 통합진보당 내부의 입장은 어떤가요?

조성주: 복잡합니다. 선거연대, 정책연대, 연립정부까지 제각각이죠. 총선에선 이제 선거연대를 처음 실험해 본 것에 불과합니다. 최소 수준의 선거연대를 하는 연합정치에는 대부분 동의합니다만, 어느 수준까지인지는 각자 고민이 있죠. 저는 앞서 말했듯 개인적으로는 연립정부 등 높은 수준의 연합정치까지 경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택광: 그런데 그런 입장을 고려하더라도 이석기/김재연 문제로 연합정치의 가능성이 좁아지는 상황이죠. 정파들이 각자 제 이념에 따라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어요. 아무리 좋은 연합정치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통합진보당을 만들었다 해도 결국 결과는 이렇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진보의 실력은 겨우 이 정도가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조성주: 이념적이진 않습니다. NL에서 연립정부를 찬성한다고 많이 생각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NL도 ‘군자산의 맹약’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게 아니라 그때그때 다른 생각을 합니다. 과거의 사례, 비판적 지지나 자주민주정부 수립 등을 기억하고 현재로 얘기를 끌고 들어오면 NL이 연립정부를 주장하고 PD가 반대할거라고 생각하게 되지요. 근데 연립정부엔 심상정이 제일 적극적이었고요. NL은 대부분 선거연대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 같은 사람은 (주류) NL은 아니지만 연립정부를 과감하게 주장하는 상황이구요.

이택광: 그렇더라도 그렇게 생각이 다르다 보니 선거연대에 대해 각자 다르게 해석하는 바가 있습니다. 이석기의 경우는 이번 선거 연대의 성과를 자기 정파의 승리라 해석하겠지요.

김민하: 실력문제와 관련해서, 저는 연립정부 찬성하지 않습니다만, 통치경험 이전에 진보정당 사람들이 세상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만히 보면 내부 분파 얘기에만 밝을 뿐 라디오도 신문도 안 봐서 요즘 이슈가 뭔지도 모릅니다. 부르주아 정치에 개입할 접점을 못 찾는 겁니다. 그리고 저는 연합정치와 연립정부 주장하는 흐름이 존재한다는 것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또한 2013년 이후 진보정치가 만들어나갈 분리된 흐름이 필요하다는 게 진보신당의 지향입니다. 이 점은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조: 이해합니다) 이 2013년 이후의 지향을 밝혀야 하는데, NLvsPD의 퇴행적 노선 논의가 아닌 과거 논의와의 단절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토양확보의 문제 : 민주노총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택광: 안타까운 것은 우리나라가 인물 중심의 정치를 하기 때문에 이런 사태가 발생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인물 중심의 정치가 극복되지 않는다면 정치가 제한적 인력 풀 내에서 유지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면 때문에 기본적으로 풀 자체를 넓히는 운동 필요합니다. 선거도 중요하지요. 선거철이 되면 대중들이 선거에 개방적으로 바뀌고 진보정당을 위한 공간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전에 우리가 대중조직이라 믿는 것들이 대중조직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지 따져봐야 합니다. 민주노총만 봅시다. 저는 이게 대중조직이 아니라 봅니다. 이미 ‘죽어 있는 조직’이라 봐요. 그저 활동가들 중심의 소수의 충성파들이 모여 있는 조직일 가능성이 클 거에요. 김국장님 말처럼 정당운동가들은 현실감각이 없습니다. 대중과의 접촉을 넓히기 위해 어찌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해요.

진보진영 전체가 위기라 보며 이는 우리나라의 일만도 아닙니다. 근데 우리의 경우 인력 풀이 좁으므로 특히 더 위기인 겁니다.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를 거치며 여러 인물들이 소진되었고 대중도 극히 보수화되었습니다. 연립정부를 통해 진보적 과제를 관철시킬 수 있다 말씀하셨는데 이를 하려고 해도 강력한 백업이 필요합니다. 뒤에서 받쳐주는 힘이 없는 진보정당은 정책연합에서 강력한 의지를 관철시킬 수가 없어요.

사실은 복지국가 논의도 80년대의 관성입니다. 복지국가가 사회주의 혁명보다는 쉬울 것이라는 생각에 빠져 있는 거에요. 근데 한국에서는 복지국가도 힘듭니다. 조직화도 안 되어 있는 상황에서, 자기 주머니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문제인데 누가 좋아하겠어요? 훌륭한 정책을 제시하고 훌륭한 능력을 보이면 대중이 선택할 것이라는 것은 수세적이며 문화선택론입니다. 그런 방식으로는 성공한 예가 없어요. 스웨덴 복지국가의 성공은 노조와의 대타협이며, 강력한 노동운동의 뒷받침 없이 이루어낼 수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한국 진보는 심상정과 노회찬이 능력이 있고 잘 할 것이니 지지해달라는 수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당과 함께 운동을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구요. 정당정치 속에 진보정당을 가두어서는 안 되는 겁니다.

조성주: 동의합니다. 진보정당은 정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뿐더러 운동을 조직하고 활성화시키지도 못했지요.

미디어스: 야구로 비유하자면 조위원님은 지금 뛰는 선수들의 기량을 끌어올리자고 하는 반면 이교수님은 2군구장을 짓고 지역고교에 투자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아무도 야구를 몰라 안 웃음)

조성주: 그런데 저는 통합진보당의 가능성을 좀 달리 보는데요. 민주노총을 죽어 있는 조직이라 보면 한국 사회에 살아 있는 조직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 그건 그렇죠.) 여전히 산별노조들은 그 분야에서 볼 때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력한 집단이라고 저는 평가합니다. 지금 주어진 역량에서도 진보정당은 정치 역량을 발휘 못하고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막말로 자기 투쟁사업장에서 농성하는 방법밖에 몰라요. 다른 영역의 개입이 가능함에도, 제도를 활용하는 방식을 몰라요. 제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모르기 때문이지요. 지금의 진보정당 운동은 정부 재정이나 예산의 문제에 개입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똘똘한 산별노조 정도만이 약간이나마 이에 개입하고 있어요.

이택광: 말씀하신대로 실천적 매개를 만드는 활동을 진보정당이 하지 못하고 있죠. 근데 산별노조 안에 있으면 또 전체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 전체를 볼 수 있는 보완 역할을 해야 하는게 진보정당의 정치죠. 이것들은 국회라는 재현기구에 와서 종합되어야 하고 그런 것들의 상호 결합이 운동과 정치의 결합입니다. 사실 민주노총은 한국에서 강한 조직이지 역사적으로 보면 강한 조직이 아닙니다. 굉장히 약한 노동운동이고, 상당한 부분에서 중간계급화 되어 있어요. 진보정치가 유권자를 선택해야 한다면 본인에게 친화적인 유권자들은 다 수도권에 몰려 있습니다. 이 유권자들은 노동문제를 잘 모르는 이들이에요. 그래서 운동과 함께 하지 못하다 보니 진보정당이 점점 노동을 소홀히 하게 되는 겁니다.

조성주: 그 점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진보정치가 노동을 소홀히 했는가의 문제에 대해선 평가가 엄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민주노총과 진보정당의 관계로 평가될 수는 없어요. 노동운동 자체에 이미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진보정당의 목적은 진보의 가치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살아가는 노동자/서민 등에게 이득을 줄 수 있고 삶을 개선할 수 있는 실질적 영향력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봅니다. 제도 정당으로 들어간 이상 그런 쪽으로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이택광: 노동자가 원하는 실질적 이해관계가 무엇인가를 묻는다면 그 이해관계는 이미 상당히 중산층화되어 있습니다. 그런 접근으로는 진보정당이 중산층화 될 수밖에 없지요.

조성주: 맞습니다. 그런데 제 얘기는 정규직 뿐만이 아니라 노동자 전체의 실질적인 이득을 대변하자는 것이지요.

이택광: 그런 총체적 관점을 가져야지요. 그런데 그게 그냥 되지가 않습니다. 그런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오늘 이런 자리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론 그런 논의 공간이 너무 부족합니다.

김민하: 정책으로 어필하는 진보정당의 모습이 필요하다는 말씀이 나왔는데 진보정당의 역할이 장기 투쟁사업장서의 집회 참여에 국한되지 않았냐는 말씀은 뼈아픕니다. 그런데 정책적 대안을 만드는 역할을 민주노동당이 하지 못한 것 아니죠. 민주노동당 시절의 자료를 보면 그 시절 분명히 정책을 중요한 순위에 놓고 활동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정책적 역량 상당수가 흩어져 있죠. 진보정당이란 영역을 떠난 겁니다. 민주당 의원실로 간 사람, 새누리당 의원실로 간 사람, 교육감 쪽으로 간 사람 등 많아요. 민주노동당 시절 진보적 정책을 개발했음에도 그것이 오늘날 진보정당 운동으로 이어졌느냐 하면 그러지 못했다는 거죠. 왜냐하면 문제가 정책이 아니라 정치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책은 이미 있었지만, 진보정치의 전략 차원에서 그걸 강조하기 보다 민주당과 함께 야권 단일화를 통한 감동을 만들어내는 정서에 편승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 교수님이 말씀한 인물의 정치에 편승한 것이죠. (미디어스: 현실적으로 편승하지 않을 선택지는 있었을까요?) 조위원님 말대로 정책 중심 진보정당 모델을 만들려면 현장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진보적 차원에서의 대중적 접촉면을 넓히는 과정이 전제되어야 하고 (인물 정치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 진보적 정치의 구조가 형성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구조의 모델을 준비하면서 지금 정세에 반응하는 것도 진보정당의 몫이죠. 결과적으로 통합진보당 사태 같은 것들은 재생산 가능한 진보정치의 구조가 형성되지 않으면 되풀이될 겁니다. 민주노동당 때에도 비슷한 사태가 이어졌으나 개선되지 않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아큐파이 통진당, 새로운 진보정당 등 대안이 논의되고 있으나 어떤 경우든 진보정치의 구조 변화가 전제되지 않으면 통합진보당 사태의 탈출구가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

미디어스: 종북주의 문제는 얘기도 하지 못했는데 시간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모두 진보정당의 북한 편향에 대해선 비판적인 분들이니까 다른 논의를 심도있게 한 것으로 만족해야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좌담회를 끝맺기 위한 구체적인 질문을 드릴건데요. 조위원님께는 앞으로 진보신당/녹색당 등 다른 진보야당들과 통합진보당이 어떤 관계를 구축하기를 바라는지를 질문드리겠습니다. 김국장님께는 진보신당이 대선에 나올 것인지를 여쭈어 보겠습니다. 이교수님은 두 질문 모두에 대해 떠오르는 바를 말씀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조성주: 통합진보당 사태는 어차피 터질 일이었습니다. 어떻게든 정리가 되어야 하고요. 통합진보당이 진보신당이나 녹색당 등 통합진보당이 못하는 부분을 하고 있는 당들의 문제의식을 받아들여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당에 대한 배려가 필요합니다. 솔직히 지난 총선에서는 전혀 통합진보당의 배려가 없었다고 인정합니다. 거제와 같은 곳에서 통합진보당의 문제가 있었고, 또한 진보신당도 유연하지 않은 부분이 있어 서로 손해를 보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대선의 야권연대가 어떻게 될지 모르나 진보신당과 녹색당과 연대해야 하고 통합진보당이 많이 양보해야 할 거라 생각합니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같이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김민하: 진보신당에서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 고마운 말씀입니다. 그리고 저희 대선 얘기를 하자면, 통합진보당 대선 전략과 떠나서 얘기하기 어려우니 좀 예측을 해보겠습니다. 통합진보당의 대선 전략은 둘 중 하나일 겁니다. 첫째로는 못 나올 가능성, 둘째로 나오더라도 연립정부 참여 등의 반대급부를 받으며 단일화할 가능성이죠. 그리고 진보진영 내에는 통합진보당의 그러한 대선행보에 동의 못하는 세력이 있습니다.

그런 세력 사이에서 어떤 여론이 있느냐 하면 백기완 이후 대통령 선거에서 좌파 진영의 대선 후보가 없었던 적은 없다. 저는 이게 지나치게 당위론이라고도 생각합니다만, 여하튼 통합진보당의 선택과 구분되는, 2012년 이후 정부가 들어섰을 때 정부에 실망하고 다른 대안을 찾는 사람에게 어필할 수 있는 정당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선에 후보를 내면 좋겠다, 이런 것이겠죠. 반면 진보신당 내부의 다른 의견은 당이 해산되고 당원과 지지자 실망이 극에 달했는데 대선에서도 1%를 받으면 2012년 말에 어떻게 될지 모르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결국 대선전략에 동의하는 세력끼리 이합집산한 이후에야 윤곽이 드러나겠죠.

제 개인적인 생각은 대선을 모든 판단의 종착점으로 보지 말고 2013년 지방선거를 종착점으로 보자는 것입니다. 진보정당의 성공에 필요한 것은 돈인데, 돈 문제의 핵심은 등록취소가 되었기에 더 이상 국고보조금을 지원을 못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국고보조금이라는 자원이 확보한 지점은 대선이 아니라 지방선거가 될 겁니다. 지방선거가 결국 당 명맥이 끊어지느냐 아니냐를 최종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죠. 지금부터 지방선거를 준바하지 않는다면 진보신당엔 더 이상 기회가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미 모든 기회가 상실되었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만...(웃음) 이런 가운데 대선 전략을 이야기해야 하고, 전략 전술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택광 : 특정한 선거가 진보정당에 대단히 중요한 목표가 되기보다는, 전략적인 선택을 해야 할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선거에서 보여줄 것은 능력인데, 이 능력주의는 자주 그랬듯 민주당과 새누리당의 프레임에 휘말릴 수 있거든요. 그것을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지가 고민이겠죠. 이런 고민 없이 관성적으로 선거에 개입하는 것은 득이 안 될 수도 있습니다. 후보를 내느냐 안 되느냐는 특정정당의 선택이므로 제가 대응에 대해 평하는 것은 웃긴 일이 되겠죠. 그런데 기본적으로는 존속의 측면에서도 그렇고 선거용지에도 그렇고, 진보정당이 없는 것보단 있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미디어스 : 그런데 존속이 이렇게 힘든 상황인 것 같습니다. (웃음) 세분 모두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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