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7.8회는 다소 의아한 전개였다. 국제해커조직의 디도스 공격 등으로 숨 가쁘게 몰아쳤던 지난주에 비하면 느슨하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국가기간시설을 위기에서 구해낸 사이버수사팀이 고등학교 자살사건에 투입된 것을 쉽게 납득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소지섭과 유강미는 그처럼 여유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우선 팬텀 엄기준이 기자를 동원해 소지섭에게 접근하고, 그것을 과격한 키스 시도로 가짜 연인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것은 신효정 사건 그리고 진짜 김우현을 죽게 한 폭발사건의 진범이 존재한다면 반드시 지금의 김우현에게 접근해올 것이라는 예상과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두 사람은 바짝 긴장해야 할 상황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팬텀의 지시를 받고 접근한 구연주(윤지혜)를 등장시키고, 그것이 팬텀의 접근이라는 것을 알게 해놓고는 갑자기 발을 빼서 학교 살인사건으로 두 사람이 전념하는 모습이 뭔가 자연스럽지는 않다. 이렇게 긴장이 빠지고, 부자연스러운 전개가 될 것을 작가라고 모를 리 없을 것이다. 분명 거침없이 나가던 유령의 뒷걸음질의 이유를 찾아봐야 한다.

먼저 성연고에서 벌어진 사건과 그 배경이 디도스 공격보다 작겠느냐는 질문부터 해보자. 가상이지만 재학생의 절반이 아이비리그로 진학하고, 서울대 진학률도 가장 높은 이 학교의 졸업생들은 유강미가 그렇듯이 사회 엘리트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이런 아이들 중 하나가 장학금을 위해서 살인을 한 사실보다도 그 아이의 윤리의식이 마비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팬텀이 삐뚤어진 정신으로 살인을 밥 먹듯 하는 것처럼 의식이 병든 아이는 친구를 둘씩이나 죽여 놓고도 아무런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 그리고 10년 전 유강미 역시 비슷한 상황에서 친구의 죽음에 방관했다. 학교와 사회는 그 아이들에게 사람을 가르치지 않았다. 그런 아이들이 학교의 자랑이 되는 한 미래는 더 절망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성연고의 괴담이 될 뻔한 살인사건은 결코 디도스 공격보다 작지 않다고 할 수 있다.

팬텀을 유령으로 만든 것에 대한 힌트는 조금씩 알려주고 있다. 성연고 사건 역시 그 유령이 만들어지는 배경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볼 수 있다. 박기영 역시 경찰 아니 권력의 치부에 의해 좌절한 나머지 하데스라는 해커로 어두운 길을 가게 됐던 것처럼 이 사회의 일그러진 가치들이 모양과 성격은 다르지만 무수한 유령을 만들어내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 같다.

유령의 바이러스는 한마디로 자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작가의 말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김은희 작가는 싸인에 이어 유령까지 이어지는 주제는 자본이라고 했다. 자본의 전지전능한 지배 속에서 언제든지 유령은 나타날 수 있다. 자본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에 그릇된 욕망을 가질 때 스스로 유령이 되거나 혹은 유령의 좀비가 되는 것이다.

바이러스에 감염된다고 모두가 유령이 되는 것은 아니다. 유령이 될 뻔했지만 가까스로 위기를 넘긴 사람이 바로 박기영과 유강미이다. 그렇지만 유강미를 유령의 위기에서 넘겨준 김우현조차도 이후 어떤 이유로건 팬텀의 조력자가 됐다. 깊이 생각하면 참 슬픈 일이다. 비록 다시 돌아서기는 했지만 김우현이 팬텀의 하수인 역할을 했었다는 것은 의외로 충격적인 사실이다.

결국 성연고 에피소드를 넣어야 했던 이유는 이 드라마가 팬텀을 쫓는 페이스오프 해커의 사연이 아니라 어떻게 유령이 태어나는지에 대해 좀 더 근원적인 문제제기를 위한 숨고르기가 아니었나 싶다. 그런 이유로 인해 시청률은 좀 떨어졌지만 오히려 작가에 대해서는 더 신뢰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그래선가 유령이 끝나기도 전에 벌써부터 차기작이 궁금해질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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