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는 방송을 장악하는 자가 권력을 잡는다는 미몽에 사로잡혀 있는 듯하다. 방송통신위원회의 대통령 직속화에 이어 신문·방송 겸영금지를 규정한 신문법 폐지를 추진하는 데서 그 속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정치후견인을 방통위 위원장에 앉힌데 이어 대선참모들을 방송사 사장, 방송관련기관장에도 심으려는 움직임에서도 방송을 손안에 넣으려는 의도를 감추려하지 않고 있다.

한나라당의 뿌리는 멀리 군사정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공화당→민정당→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으로 말이다. 방송을 장악해본 경험이 있는 그들이니 권력은 방송에서 나온다고 철칙처럼 믿는 것같다. 방송을 정치권력의 하수인으로 만들어야 정권창출을 이어나갈 수 있다고 말이다. 그들이 말하는 이른바 ‘잃어버린 10년’ 동안 방송을 그토록 집요하게 공격한 속셈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구 방송법은 6월항쟁 이후 방송민주화 투쟁이 일구어낸 결과물이다. 방송 현업인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싸워서 방송법에 방송의 독립성과 공공성을 담아낸 것이다. 합의제 독립기구인 방송위원회가 그것이다. 이것은 사회적 합의다. 그런데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자마자 그것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방통법을 만들었다. 정체성이 불분명한 통합민주당이 가세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 초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들이 지난 3월 26일 현판 제막식을 갖고 있다. ⓒ정영은
이명박 정부가 대선에서의 승기를 여세로 업고 대통령 직속제 방통법을 몰아붙였다. 언론노조 집행부가 시민단체와 손잡고 고투를 벌였지만 역부족이었다. 통합민주당이 한통속인데다 현업자들이 따라붙지 않아 동력이 딸렸던 것이다. 그 틈을 타서 방통위원장 내정자가 온갖 허물을 뚫고 인사청문회를 아무 탈없이 벗어났다. 나머지 위원들은 통과의례조차 없었다. 현업자들이 방송장악이란 예견된 사태를 강 건너 불처럼 보니 그 꼴이 되어 버렸다.

불과 2년 전 3기 방송위 출범을 앞둔 시점과는 너무나 판이한 모습이다. 그 때는 거명되는 인물들을 일일이 검증했다. 성명서가 난무하고 저지투쟁도 치열했다. 5년 전에는 대통령 후보의 언론특보라는 이유로 KBS 사장으로의 입성이 무산됐다. 그런데 지금은 철저하게 정파성으로 무장된 인사들이 무혈입성을 준비 중이다. 그러나 현업자들은 아무런 반응이 없다. 낙하산 투하를 위한 우호적인 분위기가 조성된 셈이다.

방통법은 방통위의 회의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방통위는 방통법을 무시하고 자의적으로 회의를 비공개로 할 수 있도록 규칙을 제정했다. 밀실결정을 통해 정보접근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려는 행태다. 정책결정의 투명성·공정성을 저버렸으니 앞으로 어떤 방송통신정책이 나올지 우려스럽다. 그런데도 현업자들한테서는 그 비민주성을 질타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니 이명박 정부가 서슴없이 신문법을 없애겠다고 호언한다. 신문법 폐지를 통해 신문·방송 겸영금지를 해체하겠다는 기세다. 한나라당이 주장해온 '1공영 다민영'은 KBS 2TV와 MBC를 민영화하겠다는 소리다. 권력과 결탁한 자본에게 주려면 구태여 신문법을 없앨 필요가 없다. 그런데 굳이 신문법을 공격하는 것은 집권의 대가로 족벌신문에게 지상파 방송사를 하나씩 주려는 속셈일 것이다. 여차하면 종합편성채널이라도 주려는 계산일 터이다.

이것은 방송계를 조중동을 중심으로 재편해서 보수전선을 강고하게 구축하겠다는 전략적 계산이다. 이와 함께 방송계 수뇌부를 정파적 색채가 강한 인물로 포진함으로써 집권논리를 조직적으로 전파해 나가겠다는 전략적 실천일 것이다. 여론전쟁에서 확실하게 승기를 잡아야 집권 5년간의 안정적 국정운영이 가능하며 재집권의 장애를 제거할 수 있다는 정치적 판단일 것이다.

이제 현업자들이 깨어나야 한다. 방송의 소중한 가치인 독립성, 중립성, 공공성, 공정성, 공익성은 현업자들이 나서 지킬 소중한 가치다. 암울하던 시절 방송이 정권의 나팔수 노릇을 할 때 국민은 귀를 막았다는 사실을 잊지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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