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년 전쯤, 백수 시절 때의 일이다. 주말을 맞이해 부모님이 계신 고향에 내려갔다. 복작복작한 도시와 달리 그곳은 정말 아무 것도 없는 시골 마을. 제일 가까운 슈퍼마켓을 가려해도 차를 타고 나가야 할 정도로 외진 곳이었다. 그래서 읍내(?)에 나온 김에 모 마트에 들러 먹을 만한 것을 사가지고 가기로 했던 나.

삼겹살은 느끼해서 싫어했고 오랜만에 쇠고기를 구워먹고 싶었는데, 마트에는 호주산·국내산·미국산 쇠고기가 있었다. 당시 나는 '광우병'을 주제로 논술 준비를 하느라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2006년 10월 29일에 방송된 <KBS 스페셜> '얼굴없는 공포, 광우병'을 다시보기로 돌려보면서 "미국 쇠고기 절대 안먹어"를 반복했으면 뭐하나. 머리로는 먹어선 안 됨을 알고 있었으나, 내 손은 나도 모르게 미국산 쇠고기를 집어들고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설마 내가 광우병 걸리겠어?'하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가장 저렴하니까 현실적으로 손이 갈 수밖에 없었다.

지난 29일 방송된 MBC <PD수첩>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는 이런 나에게 광우병의 위험성을 재차 확인해주었다. 싼 가격 때문에 '설마'하면서 사먹었던 나의 행동이 얼마나 위험한 일이었는지 말이다.

"한국인, 광우병에 매우 취약"

MBC <PD수첩>은 인간 광우병 사례, 비위생적인 미국 도축시스템, 일본의 경우, 정치자금을 매개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거대축산자본 등등을 주목했던 <KBS 스페셜> '얼굴없는 공포, 광우병'에서 좀더 나아가 새로운 사실을 몇가지 알려줬다.

이중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한국인이 광우병에 매우 취약하다는 사실. 광우병 유발 물질인 프리온 유전자 가운데 129번째 나타나는 유전자형은 총 3가지인데 이중 지금까지 광우병에 걸린사람 159명은 모두 MM형이었단다. 그런데 이번에 한림대학교 일송생명과학연구소가 한국인 500여명의 유전자를 분석 조사한 결과 한국인은 MM형이 94.3%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인의 경우 MM형이 36.8%, 미국인이 50%임과 비교할 때 엄청나게 높은 수치다. 광우병에 걸릴 위험이 영국인에 비해 3배, 미국인에 2배 정도 높은 것이다. 당장 다음 달부터 미국산 쇠고기가 전면 개방되면 '광우병에 취약한 유전자'를 지닌 한국인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두 번째로 새로운 사실은, 미국이 자국산 쇠고기 안전의 주요 근거로 들어왔던 국제수역사무국(OIE, Office International des Epizooties)에 실제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이었다.

수전 슈워브 미 무역대표부 대표는 "OIE에서 미국을 위험통제국가로 분류했다"며 이는 곧 "국제적 과학적 평가기준에 의해 미국 쇠고기른 섭취용으로 안전하다는 의미"라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미국 소비자연맹 수석연구원인 마이클 핸슨씨의 생각은 다르다.

"OIE는 과학보다 정치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정부는 OIE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OIE는 지난해 광우병위험국가기준을 간단하게 바꿔서 결국 미국이 다른 나라로 쇠고기수출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줬다. 상세히 알아보면 OIE에서 일하는 사람들은…예를 들면…미국식품의약국(FDA, Food and Drug dministration)에 속하는 사람이다."

2005년 이전 광우병 관련 OIE 등급은 5단계였다. 당시 광우병 의심사례가 1건이라도 발생하면 해당국에서 수입을 전면금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2003년 미국에서 광우병 발생 후 미국이 주도해 광우병 발생국도 수출할 수 있도록 3등급으로 조건을 완화시켰다는 것이다.

지난해 미국이 '위험통제국' 지위를 받을때 미국과 동맹국인 일본은 이에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다. 미국이 사료규제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향후 실태조사를 할 필요성이 있으며, OIE 가맹국들에게 그 자료들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은 OIE의 '통제된 위험(Controlled risk)' 기준을 "위험이 아직 무시할 수 있을 정도에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는 뜻"으로 보고 있다.

"미국 도축 시스템…허술"

세 번째는 올해 초 미국에서 공개된 동영상이다. 미국 동물보호단체가 위장 잠입해서 찍은 이 동영상은 제대로 걷지 못하는 소를 (때려서) 일시적으로 일으켜세운 다음 검역을 통과시킨 장면을 담고 있다. 놀랍게도 해당 도축장은 지난해 미국 농무부가 '최우수 업체'로 선정한 곳. 결국 광우병 의심소들은 전부 유통됐고 학교 점심 급식재료로 사용되기도 했단다. 이는 미국의 '허술한' 광우병통제시스템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네 번째는 이러한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국내 쇠고기 업자들은 다음달부터 미국산 쇠고기를 당장 내다 팔려고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 쇠고기 업자들은 프로그램에서 취재팀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당연히 환영하죠. 광우병 안 좋기는 해도 싸고 맛있게 드실 수 있는 거니까. 미국산이 대세죠, 일단 들어오게 되면 미국산으로 70% 이상 돌아갈 겁니다"

"미국산 먹으면 죽는다 어쩌고 저쩌고 떠들어도 나는 미국산만 판매합니다"

"미국산 갖다가 팔려고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한두사람이 아니다"

정부는 광우병에 대해 뭐라고 말하고 있는가. 이명박 대통령은 "강제로 미국산 쇠고기 먹이는 것 아니다"고 말한다. 먹을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어 놓고, '먹기 싫음 안 사먹으면 되지 않냐'는 식이다. 민동석 농수산부 농업통상정책관 역시 "광우병위험이 지나치게 과장됐다"며 "특정위험물질(SRM)만 제거하면 99.9% 안전하다"고 주장한다. 민 정책관은 이를 '독을 제거하고 복어를 아무 걱정 없이 먹는 것과 같다'고 비유하기도 한다.

하지만 미국 도축장들은 기계톱을 사용해 쇠고기(살코기)에 뼈, 내장, 신경조직 등이 섞여 들어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쉴새없이 돌아가는 작업 라인에서 특정위험물질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는 것이다. 이번 협상 관계자들은 이러한 점을 모르고 있는 것일까.

MBC <PD수첩> '다시보기' 안돼…"신종 언론탄압이냐" 의견 줄이어

'위험천만한' 미국산 쇠고기의 실체에 대해 조목조목 짚어준 MBC <PD수첩>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편은 다시 보는 게 불가능하다. 평상시라면 지금쯤 올라오고도 남을 시간이지만 '초상 및 저작권 문제'를 이유로 30일 오후 2시(현재)까지 올라오지 않았다. 현재 MBC <PD수첩> 홈페이지의 시청자 의견란에는 "손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다" "왜 국민들의 눈과 귀를 자꾸 막으려고 하나" "신종 언론탄압이다"는 의견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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