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메테우스>는 걸출한 SF 영화 두 편을 남긴 리들리 스콧이 해당 장르로 회귀한다고 하여 일찌감치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 두 편의 영화가 다름 아닌 <에일리언>과 <블레이드 러너>라는 것을 안다면 지극히 당연한 반응입니다. 더욱이 초창기에 <프로메테우스>는 SF 호러의 표본이자 1997년에 4편을 끝으로 종적을 감춘 <에일리언>의 프리퀄이라고 하니 더 열광할 수밖에 없었죠. 30년도 더 흐른 시점에서 기어코 본인의 출세작과 다시 조우하려고 한 리들리 스콧은 과연 어떤 이야기를 준비했을까요? 그걸 논하기기 이전에 잠시 <에일리언>부터 살펴보고 가겠습니다.

1979년에 제작된 <에일리언>은 우주를 항해하며 화물을 운반하는 수송선인 '노스트로모'를 배경으로 합니다. 지구로 귀환하던 중에 수면상태에 들었던 승무원이 깨어나는데, 알 수 없는 신호를 반복적으로 수신하자 발신지로 목적지를 변경합니다. 그렇게 하여 도착한 곳에서 불시착한 또는 추락한 것으로 보이는 우주선을 발견합니다. 내부로 들어가 탐사를 시작하지만 이내 승무원 중 한 명이 사고를 당합니다. 이 사고란 건 바로 에일리언의 유충 상태인 'Facehugger'에 의해 발생한 것입니다. 다행히 깨어난 승무원은 사고로부터 무사한 줄 알았으나 곧 죽고 에일리언이 출몰합니다.

<프로메테우스>와 연관성을 가진 <에일리언>은 대략 이런 내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 영화를 이어주는 연결고리는 <에일리언>에 등장한 '스페이스 자키'입니다. '스페이스 자키'는 노스트로모의 승무원이 발견한 우주선의 내부에 있던 거대한 외계생명체를 가리킵니다. 리들리 스콧은 줄곧 스페이스 자키의 정체가 무엇인지, 왜 거기에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고 있었다고 하죠. <에일리언>에서 보면 스페이스 자키는 흉부가 내부에서 폭발한 듯한 상처를 가지고 있습니다. 두 말할 것도 없이 에일리언에게 당한 것으로, <프로메테우스>는 마지막까지 이 지점을 향해 나아갑니다.

<프로메테우스>의 등장인물들은 인류의 기원을 찾으려고 하는 과학적 욕구를 충족하려고 합니다. 두 명의 과학자가 고대벽화를 발굴하면서 하나의 공통점을 찾게 되는데, 이것이 인류를 창조한 외계인의 거점을 알려주고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이에 '웨이랜드 기업'으로부터 천문학적인 자금을 지원받아 우주로 떠납니다. (웨이랜드 기업은 에일리언 시리즈에 줄곧 등장합니다. <에일리언 대 프레데터>에서도 웨이랜드가 각 분야의 전문가를 모아 남극으로 보냅니다) 마침내 도착한 곳에서 자신들의 조물주를 찾아나서지만 이들은 뜻하지 않은 결과와 맞닥뜨리게 됩니다.

일찌감치 말씀드렸듯이 <프로메테우스>는 기획 초기엔 분명 <에일리언>의 프리퀄이었습니다. 즉 1편 이전의 이야기를 다루기로 했었죠. 그러나 도중에 노선을 바꿔서 독립된 영화로 변경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최근까지도 리들리 스콧은 <프로메테우스>가 <에일리언>의 프리퀄로 인식되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반면에 시사회 직후의 해외 반응을 보면 프리퀄이라는 표현을 자주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프리퀄인지 아닌지는 차치하더라도 일단 <프로메테우스>는 예고편에서 보인 스페이스 자키만으로도 어떻게든 <에일리언>과 관련이 있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었습니다.

거두절미하고 <프로메테우스>는 <에일리언>의 프리퀄이라기보다는 스핀오프에 가깝다는 게 제 결론입니다. 분명 둘 사이에 연결되는 지점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거기에는 물론 스페이스 자키가 자리하고 있고요. 하지만 <에일리언>과는 달리 초점은 어디까지나 스페이스 자키, <프로메테우스>에서는 '엔지니어'라고 불리는 외계종족에게 맞춰져 있습니다. 시고니 위버의 앨런 리플리를 대신하여 주인공 역할을 하는, 누미 라파스의 엘리자베스 쇼도 마지막까지 그들로부터 어떤 질문에 대한 답을 갈구하죠. 결국 <프로메테우스>가 <에일리언>에게 기대고 있는 건 에일리언의 기원뿐입니다.

가장 궁금하실 부분에 대해 말씀드렸으니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해외 반응처럼 <프로메테우스>는 리들리 스콧의 다른 SF 영화 두 편이 오른 반열에 닿지는 못합니다. 실망할 정도는 아니지만 확실히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일단 각본이 적잖이 엉성합니다. 시간에 쫓기는 듯한 인상도 몇 차례 받았고, 무엇보다도 소재로 삼고 있는 고대 문명과 외계인의 접촉설은 이 장르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것에서 거의 나아가질 못합니다. 리들리 스콧이 직접 밝혔듯이 이 해묵은 음모론의 주창자인 에리히 폰 다니켄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영화는 <프로메테우스>외에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런 이야기가 <프로메테우스>의 커다란 단점은 아닙니다. 이미 개봉 전에 '모아이 석상'을 연상시키는 물체도 보지 않았습니까. (포스터에도 보란 듯이 등장했고요) 게다가 에일리언을 활용한 새로운 변주 - 예전부터 제기됐던 에일리언의 생성 목적이긴 하지만 - 도 가미하고 있긴 합니다. 정작 큰 문제는 역시 각본이 엉성하다는 겁니다. 철학적인 척하지만 정작 그런 해석을 가할 여지가 적고, 논리적으로 맞지 않거나 어물쩡 건너뛰는 부분이 꽤 많습니다. 예를 들어 <프로메테우스>에서 세운 가설 혹은 추측과 같은 일이 진짜 벌어졌다면 이 영화는 절대 속편이 나올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안일하게 허비하는 캐릭터가 너무 많습니다. 그나마 엘리자베스 쇼와 마이클 패스빈더가 연기하는 데이빗이 제 역할을 하는 편이지만, 사실 이마저도 썩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속편에서 드러낼 모양이긴 합니다만 이 두 캐릭터에게도 석연치 않은 대목이 많습니다. 다른 몇몇 캐릭터는 뭔가 큼지막한 배경이 숨겨진 것처럼 보여졌으나 실질적으로는 명분도 약하고 결국에는 허망하게 사라집니다. 특히 샤를리즈 테론이 연기한 비커스는 거의 웃음거리로 전락하고 맙니다. 영화의 마지막을 앞두고 일말의 고민도 없이 영웅주의를 향하는 세 명의 캐릭터는 또 어떻고요.

이야기를 지적했으니 말인데 어쩌면 중반부까지 지루하다고 토로할 수도 있겠습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그런 불평은 아마도 <에일리언>을 보지 않으신 분들로부터 나올 확률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에일리언>도 에일리언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전까지 장장 1시간 가까이 걸립니다. 그 전까지 리들리 스콧은 밀도 높은 긴장을 형성하는 데 할애하죠. 반면에 <프로메테우스>는 <에일리언>과 비교하면 밀도는 다소 떨어진 대신, 액션과 호러의 강도가 보다 세고 직접적인 표출을 더 즐깁니다. 리들리 스콧의 연출은 이번에도 비슷한 구성을 가졌지만 스타일은 사뭇 달라졌습니다.

엉성한 이야기의 공백을 메우고 있는 것은 단연 눈부시게 발전한 영상미입니다. 시각효과와 미술 등에서 당연하게도 <에일리언>과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프로메테우스>의 시간적 배경이 몇 십 년 전이라는 것에 거부감이 들 지경입니다. 아무리 봐도 '프로메테우스'에 쓰인 기술력은 '노스트로모'의 그것에서 훨씬 진보했거든요. 아이맥스로 보는 영상미와 3D 효과는 과장을 조금 보태서 환상적입니다. 3D 영상이 아주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서 눈의 피로라거나 이질감은 전혀 느껴지질 않습니다. 이 정도면 리들리 스콧을 설득해 3D로 촬영하게 한 다리우스 울스키에게 고마울 따름이죠.

결말부에 다다르면 <프로메테우스>는 <에일리언>과 동일한 방식으로 문을 닫지만, 아울러 그에게서 멀어지는 노선으로 향합니다. 여전히 속편에서도 에일리언을 등장시킬 여지는 잔존하나 설마 그렇게 이어가진 않을 것 같습니다. <프로메테우스>가 <에일리언>의 프리퀄보다는 스핀오프에 가까워지려면 이쯤에서 에일리언을 버리는 것이 현명합니다. 완전히 소멸시키는 건 무모하고, 활용도를 지금보다 더 낮춰야만 독립적인 영화가 될 수 있습니다. 만약 제 바람을 벗어난다면 리들리 스콧 스스로가 프리퀄이 아니라고 한 것이 궁색한 거짓말(?)에 불과한 게 될 겁니다.

★★★☆

덧 1) 해외 반응 중에 의문을 남긴다고 하는 것이 많았는데 전 별로 공감이 안 되네요. 그 이유는 둘 중 하나입니다. 저 나름대로 해답을 찾았거나, 의문을 가질 만큼 흥미를 느꼈던 부분이 없었거나. 뭐 둘 다일 수도 있겠네요.

덧 2) 노스트로모와 프로메테우스가 도착한 행성은 다릅니다. 그런데 <프로메테우스>의 결말부를 보면 나중에 <에일리언>과의 연계성을 경감시키고자 두 행성이 다른 것으로 수정한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블로그 : http://blog.naver.com/nofeet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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