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노조의 파업이 100일을 훌쩍 넘어 7일로 168일을 맞았다. 국민일보 노사가 오랜 시간에 걸쳐 잠정 합의안을 마련했을 때, 6개월 넘게 월급을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적인 압박 때문이라도 노조가 쉽게 합의안을 받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하지만 국민일보 구성원들은 끝내 합의안을 거부하며 쉽지 않은 투쟁을 다시 한 번 택했다.

▲ 손병호 국민일보 노조 쟁의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한 노조 집행부가 재협상을 촉구하며 5일 오후 국민일보 사옥에서 단식 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잠정 가합의안 부결하자마자 업무복귀명령 내려

국민일보 노사는 지난 5월22일 잠정 가합의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이 가운데 회사 쪽이 노조원들에게 제기한 민·형사상 고소, 고발 취하 부분이 문제가 됐다. 노사는 합의안에서 △노사는 파업 종료와 동시에 상대에게 제기한 민형사상 고소 고발 및 진정에 대한 취하 조치에 착수하며 회사는 파업과 관련된 이유로 징계를 하지 않지만, 단 노조 전·현 쟁의대책위원은 예외로 하며 해고자 신분인 조상운 전 노조위원장의 문제도 법원의 결정에 맡긴다고 밝혔다. 하지만 회사가 고소, 고발 및 소송을 당한 23명의 노조원 가운데 민사 소송을 당한 3명에 대해서만 소송을 취하하고 노조위원장에 대한 징계를 예외로 한다는 부분에 대해 “결코 용인할 수 없다” “안건 상정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비판이 노조 내부에서 거세게 나왔다.

결국, 국민일보 노조는 5월30일 오후 1시부터 6시간 넘게 조합원 총회를 한 끝에 이번 잠정 합의안에 대한 찬반투표를 진행하지 않기로 하면서 잠정 합의안을 거부했다. 노조는 이후 1일 성명을 내어 회사 쪽을 향해 4일 오후 2시까지 재협상에 나설 것을 공식적으로 요구하고 나섰다.

그러나 돌아온 건 노조원들을 향한 업무복귀명령이었다. 국민일보는 지난 4일 김성기 사장 명의의 담화문을 통해 7일 오전 9시까지 업무에 복귀할 것을 명령했다. 국민일보는 이 과정에서 노조 쟁의대책위원회 위원장과 회사 쪽 교섭 대리대표인 경영전략실장이 가서명한 ‘노사합의문’을 언급하며 “서명 자체로 효력이 있다”며 업무복귀명령을 내렸다. 국민일보 노조의 단체협약 체결권을 갖고 있는 언론노조 위원장이 최종적으로 서명하지 않았고, 더욱이 노조 총회 의결 절차를 걸치지 않았음에도 이를 핑계로 업무복귀를 내린 것이다.

결국, 국민일보 노조 집행부는 재협상을 거부하고 있는 회사의 태도를 규탄하며 5일 오후 6시부터 여의도 국민일보 빌딩 5층에서 무기한 철야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이번 단식에는 손병호 쟁의대책위원장을 비롯해 한장희, 정승훈 부위원장, 태원준 공동쟁의대책위원장 등 노·사 협상 교섭대표 5명이 참여 하고 있다.

“국민일보, 신문 정상화 위해서라도 재협상 나서야”

▲ 손병호 국민일보 노조 쟁의대책위원회 위원장 ⓒ국민일보 노조
손병호 쟁의대책위원회 위원장은 7일 오후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국민일보를 향해 거듭 재협상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그는 국민일보 노조 뿐 아니라 언론노조, 더 나아가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속해 있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까지 국민일보 사태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 나섰다는 점을 강조했다.

다음은 손병호 쟁의대책위원장과의 전화 인터뷰 내용이다.

오늘이 168일째다. 많은 이들의 기대와는 달리 상황이 좋아질 기미가 안 보이는 거 같다.

= 지금은 뭐 재협상이 안 되고 있다. 그렇기에 재협상 요구를 하는 단식농성하고 있다. 현재 문제 상태로는 타결이 되어도, 노조원들이 복귀를 해도 정상화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거다. 신문 정상화를 위해서라면 회사가 바로 재협상에 나서야 할 때다.

회사 쪽과 노조가 합의한 잠정 합의안을 노조원들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파업이 길어지고 있음에도 구성원들의 뜻이 명확한 거 같다.

= 노조원들이 잠정 합의안을 부결시킨 것은 6개월 동안 파업을 벌인 동료들이 희생당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취지였다. 회사는 7일 오전 9시부로 업무복귀명령을 내렸다. 사실 여기에 불복하면 향후 징계도 있을 수 있음에도 노조원들은 오늘 업무에 복귀하지 않고 5일에 이어 규탄집회를 두 번째로 열었다. 그만큼 노조원들의 투쟁 의지와 재협상에 대한 요구 의지가 강하다는 증거다.

회사가 내린 업무복귀명령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 노사 간 잠정 합의문에 가서명 하면서 ‘이는 잠정안에 불과하고, 노조 총회를 거쳐서 (최종적으로) 서명을 하자’는 기록이 녹취록이 남아있다. 회사 뿐 아니라 노조도 이 녹취록을 확보하고 있는 상황이다. 녹취록을 봤더니 회사가 당시 서명할 때 세 차례에 걸쳐 이 같은 발언을 했다. 법률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해보니, ‘노사 모두 명백하게 당시 합의문에 대해 총회를 거쳐서 정식 합의문을 작성한다’는 공감대가 있는 게 확실하다고 하더라.

공식적으로 재협상을 촉구한 이후, 회사의 반응은 없나? 그렇다면 다른 쪽의 반응은?

= 현재까지는 회사 반응은 없다. 여의도순복음교회도 소속돼 있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단체 안에 정의평화위원회가 있는데 지난 5일 노조 사무실에 와서 의견 청취를 했다. 그러면서 ‘적극 중재에 나서겠다. 산하 교단이 소속돼 있는 사업장에 관여를 못했는데 장기화 되고 있어서 적극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의평화위원회는 7일 오후 2시 김성기 사장을 면담한다. 언론노조도 재협상을 촉구하는 차원에서 회사에 ‘가합의안은 유효하지 않다’는 공문을 보냈다. 정치권에서도 국민일보 사태의 조속한 해결 위해서 적극 중재에 나선 걸로 알고 있다. 회사 내부에서도 지금 처한 상황을 감안해 ‘재협상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고,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도 ‘회사가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그런 상황이다.

종교계까지 움직인다면 회사 쪽에서 적지 않은 압박을 느낄 거 같다.

= 압박을 떠나서 지금 해당 사업장의 직원들 100명 이상이 고통 받고 있는 상황이다. 진정성이 있는 경영진이라면 하루 빨리 사태 해결에 나서는 게 게 의무이자 근본이다. 국민문화재단은 지난 3월 사장을 임명하면서 김성기 사장에게 국민일보 사태를 조기에 해결하라는 요구를 했었다. 그런데 전혀 나서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현재 파업에 참여하고 있는 구성원들이 겪는 생활고도 만만치 않을 거 같다.

= 6개월, 이렇게 장기 파업 할 줄은 몰랐는데 아이가 있고, 외벌이 인 집들은 힘들어 하고 있다. 그래서 부업 투쟁을 벌이고 있는 노조원들도 많다. 투쟁 기금도 많이 바닥이 나서 한우를 판매하는 등 극한 상황에 놓여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단한 대오를 유지하고 있는 거 자체가 우리가 부르짖는 목소리가 정당하고 정의로운 싸움이라는 자부심이 있다는 거다. 그렇기에 물리적, 심적 고통에도 불구하고 계속 (투쟁을) 유지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국민일보 노조의 파업은 다른 방송사의 파업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 초반에 상황이 많이 그랬다. 아무래도 방송사들은 유명한 아나운서, 앵커들이 파업에 나섰으니까. 지금은 다행스럽게도 국민일보 파업에 대한 관심이 많이 높아지고 있고 언론노조 뿐 아니라 언론노조 산별이 아닌 다른 금융 노조, 다른 사업장에서도 많이 지지해 주시고 후원해 주신다. 격려 방문도 해주신다. 매주 목요일에 회사 앞에서 목요 기도회를 하는데 일반 시민들도 오셔서 같이 참여해 주시고, 진짜 이름 없는 무명의 소액 후원자도 생겨나고 있고 그렇다. 처음에는 상당히 어렵고 힘들었지만 지금은 괜찮다.

국민일보 노조가 잠정 합의안을 거부했을 때 트위터 등 SNS 상에서는 쉽지 않은 결정을 내린 노조를 지지하고 투쟁을 격려하는 글들이 잇따랐다. 국민일보 투쟁을 지지하는 분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

= 저희가 투쟁을 하면서 가장 큰 힘이 되었던 게 많은 분들의 응원이었다. 응원을 받으면서 싸우고 있는 우리의 싸움이 아주 정의로운 싸움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 이전에는 언론인이라는 생각만 있지 언론노동자라는 점에 대해서는 안이했는데, 이제는 지면 뿐 아니라 현장에서도 다른 분들에게 도움을 드리는 노조, 언론인으로서 거듭날 것을 약속드린다.

국민일보 노조는 지난해 12월23일, 임금 및 단체협상 결렬에 따라 파업에 들어갔다. 100여명의 노조원들은 ‘국민일보 사유화 반대’와 ‘편집권 독립’을 주장하며 6개월째 무임금 상태로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국민일보로부터 고소·고발을 당한 노조원은 모두 23명에 달한다. 국민일보 회사 쪽은 조상운 전 노조위원장 등 노조 집행부 4명을 업무방해 혐의로 검찰에 고소한 데 이어 조민제 당시 사장 집 앞에서 유인물을 돌린 것과 관련해 평 노조원 15명을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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