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28일 동아일보와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이 인터뷰를 했다. 아니 방송통신위원회와 방송과 신문 현업, 그리고 언론관련 시민사회단체를 향해서 ‘도발을 했다.’ 동아일보의 기사를 보면 핵심은 이것이다.

‘신문 방송 통신 자본 간 장벽을 제거해야 한다.’ ‘언론계의 5공 잔재를 청산하겠다.’ ‘미디어 관련 법안을 일괄 개정하겠다.’

이미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이 25일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샤인빌리조트에서 열린 한국방송학회 언론학회 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 광고홍보학회 등 4개 학회가 공동 주최한 학술세미나에서 문화부의 포괄적인 미디어 정책 방향으로 위의 내용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 동아일보 4월 28일자 8면
600명에 가까운 학자와 현업인들의 발표와 토론은 한 줄도 보도되지 않고 신차관의 발언만 대서특필. 한국의 미디어학자들의 위상에 똥칠을 한 장면으로 기록될 일. 어쨌든 단 한 번의 축사로 스타플레이어의 반열에 올라 졸지에 전국구가 되어버린 신차관께 축하드린다. 그러나...

신차관의 발언을 보면, 일단 컨셉이 요란하다. ‘언론계의 5공 잔재를 청산하겠다’는 것이 컨셉이다. 작위적인 흔적이 묻어 있는 ‘5공 잔재’를 언급했다. 우리 사회에서 ‘5공 잔재’는 ‘공공의 적’이거나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부정적 개념’이다. 카피라이트의 치밀한 노림수가 보인다. 도발의 첫 번째 징후다.

신차관의 발언에 대해 동아일보의 평가를 본다.

신 차관의 발언은 신문 방송 통신 등을 아우르는 정책 방향을 처음 밝히는 것이어서 그 파장이 작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신 차관은 25, 27일 본보와 한 인터뷰에서 “언론계에 시장 원리를 적용하는 것은 피할 수 없다”며 “문화산업을 둘러싼 글로벌 경쟁에서 이기려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미디어 그룹이 탄생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서 신차관은 신문 방송 통신을 아우르는 정책방향을 ‘밝혀버렸다.’ 졸지에 방통위원회는 바지저고리로 전락 당한다. 문화부가 방송통신위원회를 향한 분명한 그러면서 공개적인 도발이요, 헤게모니 전쟁을 선포하는 출사표로 보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지금 방통위와 문화부는 업무분장이 마무리되지 않은 채 팽팽한 신경전을 펼치고 있는 중이다. 콘텐츠 진흥 기능 중 방송 프로그램 진흥기능을 문화부는 갖고 싶어 한다. 방송발전기금 중 콘텐츠 진흥관련 기금을 문화부 소관으로 둘려 한다. 코바코와 KBI를 산하 기관으로 묶어 두려한다. 이 때문에 문화부는 방송통신위원회와 합의하기로 되어 있는 모든 영역에 대해서 독자적인 정책의 입장을 갖추고 하나하나 방송통신위원회와 대결국면을 연출하고자 한다.

여기까지는 대충 예상한 바. 그러나 통신까지 아우르는 정책방향은 실로 충격이다. 문화부가 방송통신위원회 자체를 의도적으로 뭉개려고 하는 의도 외 다른 것을 읽기 힘든 지점까지 나가버렸다.

신차관의 도발행위를 인터뷰에서 좀 더 밝혀보자.

다채널 시대 콘텐츠 확보 경쟁이 치열할 텐데….

“채널이 많아지면 콘텐츠 수요가 더욱 커진다. 미국은 세계 문화산업에서 점유율이 40% 이상인데 우리는 2%에 불과하다. 앞으로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IPTV를 쏘면 어떻게 막을 것인가. 국내에서 가장 큰 신문사도 연 매출액이 4000억∼5000억 원에 불과하다. 국내 미디어 기업은 중소기업 수준이다. 강력한 자본력과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큰 미디어 그룹이 탄생해야 한다. 그래야 문화산업 분야의 세계적인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 궁극적으로 신문 방송 통신 자본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벽을 제거해야 한다. 다만 한꺼번에 없애면 자본력이 큰 곳이 독식할 수 있다. 점진적으로 해야 한다.”

한국일보에 입사 조선일보를 거친 신차관의 눈에는 신문사 밖에 보이지 않는다. 현재 국내에서 4000-5000억 원에 불과(?)한 연매출액을 올리는 신문사는 조선일보 밖에 없다. 조선일보를 어떻게 하든 미디어그룹으로 만들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동아일보’ 지면에서 피력했다는 점이 아이러니다.

또 문화산업 경쟁력을 운운하는데, ‘신문사를 미디어그룹으로 만들어줌으로써 콘텐츠 점유율을 높일 것인가?’ 아니면 ‘현재 방송사의 진흥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줌으로써 콘텐츠 점유율을 높일 것인가?’에 대한 최소한의 고민도 하지 않은, 방통위를 향한 도발만 염두에 두었지 정책에 대한 무식함만 고스란히 드러낸 발언이 ‘웃긴다.’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더니. 굳이 이런 표현이 감정적으로 비칠 것 같아 우려스럽지만, 이 표현 외 적절한 표현이 없어 쓴다. 오로지 산업밖에 보이지 않는 신차관의 ‘난시’를 비웃어 줄 수 있는 유일한 표현이다. 민주주의니 여론독점이니 국내미디어시장 교란이니 하는 것은 전혀 보이지 않고, 오로지 전체 미디어 산업마저 위태롭게 하는 조선일보, 좀 넓게 보더라도 조중동의 산업만 진흥하고자 하는 꼴만 노출시킨 신차관이 안쓰럽다.

백번 양보! 하지만 신문과 방송 그리고 통신의 교차소유 및 겸영은 신차관이 소속된 문화부가 주무부처가 아니라 방송통신위가 주무부처라는 점에서 아주 계산된 의도적 도발을 한 것이다. 문화부는 신문법 15조 2항에 한해서 개정을 국회에 청원을 할 수 있다. 15조2항? 쉽게 말해 조중동과 연합뉴스는 보도전문채널과 종합편성채널을 경영하는 것을 금지시켜 놓은 법이다.

방송에 관한 것은 방송통신위의 소관이다. 속으로야 어떤 입장을 가졌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방통위는 최시중 위원장이 국회 인사 청문회에서 밝힌 ‘신중하게 검토’라는 발언을 최소한 지금까지 공식적인 입장으로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문화부가 도발한 것이다. 방통위를 향해. 최시중 위원장을 향해. ‘신차관이 최위원장의 얼굴에 똥물을 끼얹는 장면’으로 기록할 수 있겠다.

▲ 조선일보 4월 26일자 2면

언론계 ‘5공 청산’의 의미는….

“1980년 5공 정권이 들어선 이후 KBS 2TV가 생기는 등 언론 통폐합이 있었다. (방송문화진흥회가 대주주인) 현재 MBC의 소유구조도 5공 때 탄생했다. MBC 문제는 구성원의 생각도 중요하지만 국민의 의견, 전문가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결정해야 한다. 반드시 민영화를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공영방송을 원한다면 공사 형태로 가서 광고를 줄이고 공영성을 강화해야 하며, 민영방송을 원한다면 확실하게 시장으로 가야 한다. 5공 청산의 차원에서 MBC의 소유구조는 정상화해야 한다.”

MBC를 겨냥한 5공 청산? 5공의 은덕을 가장 크게 입은 조선일보. 그 조선 출신 신차관이 할 말은 아니지만 해버렸다. ‘5공 때 탄생한 모든 것은 청산되어야 한다’는 독설을 퍼부었다는 점에서 시비꺼리가 생긴다. 확실히 신차관은 ‘난시’다. 5공 때 탄생한 모든 제도를 청산 대상으로 삼고 있는 발언이다. 선악의 구분, 장단의 차이마저 감별할 수 없는 ‘난시’다. 신차관의 시력교정이 절실한 때이다.

신차관은 시력은 난시일지언정, 성대묘사는 뛰어나다. ‘공영방송과 민영방송 둘 중 하나를 MBC가 선택하라’는 주장인데, 많이 들어본 목소리다. 한나라당의 정병국 의원이 올 초 내내 부르짓던 주장이다. 신차관이 제법 개인기가 있다. 정의원의 성대묘사까지 해 내는 걸 보면.

그런데 이것은 방통위, 순수 방통위 소관이다. 방통위가 입장을 정리해야 할 사안을 방통위 건너뛰고 한나라당, 그것도 정병국 의원의 입장을 그대로 가져다 썼다. 정의원 입장에서는 앵무새 하나 생겨서 좋겠지만, 최위원장 입장에서는 까마귀의 소음일텐데...

글이 너무 길다. 일단 신차관의 방통위를 향한 도발 중 일부만 정리했다.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은 그 동안 소문만 무성하고 나름의 논리적 근거도 제시되지 않은 채 ‘교차소유 및 신문방송 상호겸영론’이 일방적으로 미디어를 배회했으나 이제 그 쥐꼬리 수준의 논리라도 신차관의 도발에 의해서 드러났다. 하나하나 반박할 수 있는 기회를 준 신차관께 고맙다. 그리고 최시중위원장의 반응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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