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백분토론>에서 통합진보당 이상규 당선인이 북한 핵문제, 3대세습, 인권문제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변을 회피하여 ‘돌직구 녀’가 화제가 된 가운데, 미디어오늘에선 질문을 하는 이들의 사상검증이 문제라는 견해를 담은 김기협의 인터뷰 기사를 게재했다(링크). 미디어스는 이 인터뷰 기사 내용에 대한 진중권의 견해를 물어보았다.

▲ 미디어오늘의 어제자 인터뷰 기사. '종북' '희화화'에 대한 우려를 담고 있다.

미디어오늘 조현호 기자는 어제 기사에서 “특히 진보적인 인사라 알려진 이들조차 이 당선자에게 종북주의자인지 아닌지를 만천하에 고백하라며 답하지 못하겠으면 공직에 나서지 말라고까지 몰아세웠다”라며 역사학자 김기협의 인터뷰를 게재했다. 김기협은 “자기 믿음을 남에게도 요구하는 것이야말로 폭력적인 태도”이며 “이는 비양심적인 수구집단의 특징”이라 주장했다. 하지만 진중권은 이에 대해 "종북이냐고 묻는 상황이 아니었고 시민 패널의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요구하는 상황이었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진보성향의 한 변호사는 페이스북에서 “사회주의자라거나 공산주의자, 종북주의자라고 고백을 강요당하는 것은 사상의 자유의 침해이지만, 그의 사상이 어떠하든 북핵문제와 인권문제, 3대 세습 문제는 주요한 공적 관심사이고, 남북관계에 대응하는 정치인의 정치력과 성향을 가늠하는 주요 기준이기에 정치인으로써 책임있는 답변이 필요하며, 그에 관한 토론은 자유롭게 보장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질문 받는 것 자체를 사상검증이라며 거부하는 이상규의 태도가 정치인으로서의 책임을 방기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런데 이를 진보언론이 상황을 정리하면서 진중권의 주장을 ‘개인이면 몰라도 공직에 나가려면 종북인지를 묻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라고 요약하며 그들이 사상검증을 했던 것처럼 기술하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백분토론 녹취록에서 확인한 해당 부분의 진중권 발언은 다음과 같다.

한 사람에 대해서 당신 주사파냐, 이렇게 묻는 것은 실례입니다. 우리는 양심의 자유가 있어요. 하지만 의원이라면 자기를 대표하는 게 아니라 유권자를 대표해야 돼요. 유권자가 그 사람이 뭐 하는지도 몰라요. 그런 사람들 앞에서 자기 양심의 자유를 얘기할 순 없는 겁니다. 그걸 지키고 싶으면 공직에 나오시면 안 됩니다. 유권자에게 자기 이념과 정책을 뚜렷하게 밝혀야 되고 그 사람들을 대변해야 되는데 양심의 자유를 지키려면 공직을 맡아선 안 되는 거죠.

‘주사파’란 말을 썼으므로 해당 기사처럼 요약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진중권의 설명대로 애초 시민패널의 질문이 “당신 종북주의자냐?”라고 묻는 맥락이 아니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이에 덧붙이는 진중권의 얘기 역시 정치인의 책임을 강조하는 쪽이다. 이런 식이라면 만약 재벌그룹 임원 출신이 진보정당에 입당해 당직선거에 나가려고 하는데 당원들이 ‘재벌개혁 문제에 대한 당신 입장은 뭐냐’라고 묻는다면, 그것도 사상검증이란 비판을 받을 수 있다.

▲ 이상규 당선인에게 세 가지 사안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시민논객의 모습

김기협은 인터뷰 기사에서 이 문제에 대해 “공인이 개인과 다른 방식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측면에서 타당한 얘기인 것 같지만 책임지는 데에는 여러 방법이 있다”며 “진씨의 주장은 답변을 권유하는 근거는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런 주장으로 답을 강제할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진중권은 그러한 김기협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식품을 파는데 식품첨가물을 밝히지 않았다고 치자. 그런 상품이 시장에 유통되는 걸 방치하겠는가? 그런 걸 먹으려면 너네들끼리 먹으라는 얘기다"라며 쏘아붙었다.

또한 시민논객과 진중권은 국가보안법과는 달리 양심의 자유를 침해할 수단이 없었다는 사실이 고려될 필요가 있다. 이상규는 실제로 자신의 표현의 자유를 당당하게 지키고 나갔고, 이에 대한 정치적 평가의 몫은 시민들에게 남았다. 그렇다면 김기협의 주장은 국회의원에게 지역구를 옮기지 말고 지역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비판했더니 “지금 거주이전의 자유를 침해하시는 거죠?”라고 반문하는 것과 흡사하다 볼 수 있다. 진중권은 이에 대해 "가령 우리는 재산상태를 남들에게 알릴 임무가 없지만 공직자들은 재산공개를 한다. 이런 것도 사생활 침해라고 말할 것인가"라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서 복수의 진보진영 관계자들은 ‘공안정국’에 대한 진보진영의 오랜 공포가 진영 내부의 여론을 바꾸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한다. 검찰이 통합진보당 당원 명부를 들고 간 것을 계기로, ‘사상의 자유’를 무시로 침해당했던 그간의 오랜 경험이 현재의 여론 동향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시민패널과 진중권의 의도와는 별개로 이상규 당선인의 발언은 일종의 ‘종북주의자 커밍아웃’으로 넷우익들에게 소비된 상황이다.

익명의 진보신당 관계자는 “아무리 미워도 30여년을 보면서 운동을 함께 했던 사람들이고,그들이 사상에 의해 감옥에 가는 것을 바라지 않다 보니, 정치인에 대한 문제제기와 사상 및 양심의 자유를 지키는 문제가 혼동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라는’ 진보진영의 심정이 ‘내재적 관점’으로 이해가 안 가는 바는 아니다. 또한 지금 실제로 검찰이 자라를 꺼내들지도 모르는 상황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문제에 구별해서 대처하지 못한다면 범진보세력이 유권자의 신뢰를 얻게 되는 것은 요원한 일일 것이다.

▲ 진중권 동양대 교수 ⓒ연합뉴스
다음은 진중권 동양대 교수와 전화 인터뷰의 전체 내용이다.

- 이상규 당선인에 대한 사상검증을 했다는 주장이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황당하다. 일종의 범주 오류다. 유권자에겐 지지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정치인의 견해를 알 권리가 있고, 정치인이 그걸 감추고 넘어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가령 우리는 재산상태를 남들에게 알릴 임무가 없지만 공직자들은 재산공개를 한다. 이런 것도 사생활 침해라고 말할 것인가.

- ‘종북’인지 아닌지 밝히라고 물었다고 비판받는 상황이다.
종북이냐고 묻는 상황이 아니었다. 시민패널이 세 가지 질문을 했다. 그러면 그 세 가지 사안에 대해서 정치인이 자신의 견해를 얘기해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얘기도 안 하고, 그걸 자기들끼리 ‘종북’에 대해 물었다고 정리한다. 이쯤되면 도둑이 제 발 저린 상황 아닌가.

- 역사학자 김기협은 정치인의 책임 문제로 권유는 할 수 있어도 강제는 할 수 없다고 비판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한다.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 질문을 하면 그에 대한 대답을 해야 한다. 그런 의무가 없다면 정치적 토론이 무의미하다. 질문을 하면 대답을 해야 표를 구할 수 있는 권리가 생긴다. 그분들이 자꾸 자신들이 유권자의 선택을 받았다고 하시는데 내가 보기엔 선택받은 거 아니다. 야권연대나 이정희의 이미지의 덕을 보았고, 자기들 생각을 밝히지 않고 넘어갔다. 가령 다른 영역에 비유한다면, 식품을 파는데 식품첨가물을 밝히지 않았다고 치자. 그런 상품이 시장에 유통되는 걸 방치하겠는가? 그런 걸 먹으려면 너네들끼리 먹으라는 얘기다.

- 최근 새누리당이나 보수언론에서 ‘주체사상파’들의 원내진입을 법으로 금지한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말도 안 되는 초법적인 발상이라 본다. 공인이 공적인 언행을 통해서 문제가 드러난다면 거기에 대해서 징계를 논의할 수 있다. 그러나 공인이라도 사적인 차원의 ‘양심의 자유’는 보장해야 한다. 아직 의회에 들어오지도 않은 사람을 왜 금지해야 한다는 것일까? 주사파를 검증한다고 하는데, 대체 무슨 방법으로 어떻게 검증할 건가? 과거에 무슨 일을 했다는 이유로 의회진입을 금지할 건가? 그런 식이라면 새누리당 의원들을 뒤져서 군부독재 정권에서 일한 사람, 군부독재 정권을 찬양한 전력이 있는 사람들 다 걸러내야 한다. 헌정질서를 전복하는데 기여했거나, 그 전복된 체제에 부역했거나, 그 행동을 찬양한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가령 박근혜가 자랑하는 그 ‘퍼스트 레이디’ 경력은 뭔가.

나는 (국회의원의 특정 사상에 대한) 법적 금지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가령 제기된 문제에 대해, 북핵은 자위적 수단이고, 3대세습은 불가피한 것이었으며, 인권 문제도 각 나라마다 기준이 다르다고 밝힐 수 있다. 이렇게 밝히고 선출된다면 그걸 금지할 수 없다고 본다. 지금은 아예 견해를 밝히기를 거부하기 때문에 그건 정치인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이란 거다.

- 독일의 경우도 나치는 공직 활동이 금지된다고 들었다. 해당 국가의 역사적 경험에 따라 다른 종류의 룰이 필요하단 견해가 가능하지 않을까?
독일에서 공직 활동에 문제가 되는 것은 ‘나치 이념’이 아니라 ‘나치 전력’이다. 나치 체제에 부역한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사상이 아니라 행동의 차원이다. 사실 이런 차원으로 들어가면 통합진보당보다는 새누리당이 훨씬 더 문제가 된다. 국가가 이념을 검증하겠다고 나서면 통상적인 방법으론 이념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개인의 내면을 투명하게 들여다보기 위해 온갖 인권유린을 저지르게 된다. 그래서 그런 일은 용납되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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