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배우, 방송인의 이미지를 결정하는 것은 시간보다는 찰나인 경우가 많습니다. 연예인이 대중과 꾸준하게 소통한다는 것은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며 대중에게 자신이 어떠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납득시키는 과정이지만, 정작 그가 대중에게 어떻게 기억되는가의 여부는 꾸준함보다는 반짝임일 때가 훨씬 더 빈번하게 일어나니까요. 오랜 무명, 혹은 밋밋하고 평범한 경력을 단 한번에 반전시키는 배역이나 장면, 혹은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활약, 또는 개인사의 재발견이나 돌이킬 수 없는 실수 같이 그에 대한 인식을 대중의 기억 속에 깊숙하게 새겨 놓으니까요. 그야말로 인생 한 방의 순간이죠.

이런 역사적인 한순간은 때로는 긍정적으로, 혹은 부정적으로 연예인들의 생명력을 바꾸어 놓습니다. 고영욱은 치명적인 개인사의 폭로로 회복 불가능의 이미지를 얻었습니다. 나가수에 출연한 가수들은 매주, 매번의 무대로 자신의 명운이 뒤바뀌는 롤러코스터 궤도 위에 몸을 실었구요. 토크쇼 한 번이 끝날 때마다 그날 게스트의 연예인으로서의 상품가치가 오르락내리락 하기도 하고, 좋은 배역과 인상적인 장면 하나만으로도 오래지 않아 다양한 변주와 함께 여러 광고에서 그를 만날 수도 있습니다.

차인표는 이런 이미지 변화의 진폭을 무수하게 거쳐 온 백전노장입니다. 그의 신데렐라 같았던 첫 출연작 자체가 연기력보다는 배역의 이미지에 크게 기대고 있고, 오랜 침체 끝에 분노의 양치질과 같은 특이하게 비틀어진 풍자 이미지로 부활의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힐링캠프에서의 봉사와 희생의 에너지를 발산시키며 긍정적인 파급력까지 획득했죠. 물론 이런 변화의 고저 밑에는 꾸준하고 성실한 연기 활동과 지속적이고 헌신적이었던 봉사활동, 그리고 깔끔하고 절제된 개인사가 깔려 있는 것이 사실이구요.

다소 밋밋할 수 있는 금융사의 광고 하나가 눈길을 끄는 이유도 바로 이것입니다. 자산 운용 서비스 가입을 유도하는 무수히 많은 광고들은 하나같이 신뢰와 원칙, 안정감과 성과를 강조하는 반면 이번 삼성자산운용 광고는 그런 딱딱함에서 살짝 벗어나 있습니다. 오히려 조금은 우스운 그리고 공감이 가는 독창성을 뽐내고 있거든요. 누구보다 금융권 광고에 어울리는 배우 차인표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그 중심 테마를 ‘분노’에 맞추고 있으니까요. 한 인물이 가진 다양한 이미지를 적절하게 활용하고 있다고 할까요?

금융 투자에 실패한 경험, 친구를 믿다가 뒤통수 맞은 슬픔, 중요한 기념일도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챙기지 못하는 비루함. 이 모든 속상한 사연을 분노라는 감정으로 통일시키지만 그런 화를 표출하는 주체가 차인표라면 짐짓 웃음이 날 수 밖에 없습니다. 분노의 양치질에서 만들어진 이미지 덕에 그의 분노는 진정한 폭발이나 격렬한 감정의 표현이면서도 동시에 친근함과 즐거움으로 기억되고 있으니까요. 투자에 실패한 이들의 분노를 위로하면서도 대안을 제시하고자 하는 광고의 목적에 이보다 적합한 배역 선택과 내용은 찾기 어렵습니다. 그야말로 적절해요.

거기에 약간의 보너스 선물처럼 무엇을 해도 어설픔이 매력인 개그맨 김경진에게 동일한 컨셉과 내용의 광고를 덧붙인 것도 소소한 즐거움을 줍니다. 그의 소탈함과 격이 없음은 짐짓 나와는 상관없는 것만 같은 자산운용 서비스를 보다 친근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으니까요. 여러모로 흥미 있는 접근이자 재미난 해석입니다. 한 연예인의 이미지는 바로 이렇게 활용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보여주는 1분의 미학. 광고를 보는 재미가 바로 이런 것 아니겠어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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