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지난 16일 조선일보와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은 ‘방 사장과 고 장자연 씨와 연관 있다’고 보도한 언론사와 시민사회단체대표 등을 상대로 냈던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패소했다. 이 판결을 계기로 장자연 사건에 대한 여론의 관심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장자연 사건과 관련해 조선일보의 입장은 지난 2011년 3월 9일자 실린 ‘장자연 소속사 대표 김종승 씨 평소 스포츠조선 전 사장을 '조선일보 사장'으로 부른게 오해 불러’란 제목의 기사에서 확인된다. 이 기사에서 조선일보는 “장자연 사건과 방상훈 사장은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장자연 소속사 대표인 김종승 사장은 평소 '스포츠조선 사장을 조선일보 사장'이라고 불렀다”고 주장했다. 여론에 회자된 ‘조선일보 사장은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이 아닌 스포츠조선 전 사장’이란 주장이었다.

조선일보의 패소 판결을 계기로 조선일보의 주장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 것인지 살펴봤다. 취재 과정에서 새로운 내용도 확인됐다. 법원 역시 ‘조선일보 사장’이 누구인지를 정확히 밝혀주고 있지 않은 가운데 장자연 리스트에 등장하는 진짜 ‘조선일보 사장’은 누구인지 또 그는 실제 장자연과 어떤 관계였는지를 추적해봤다.

‘조선일보 사장’은 스포츠조선 전 사장인가?

▲ 2011년 3월 9일자 조선일보 12면. 이 기사에서 조선일보는 “장자연 사건과 방상훈 사장은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장자연 소속사 대표인 김종승 사장은 평소 ’스포츠조선 사장을 조선일보 방 사장‘이라고 불렀다”고 주장했다.
2011년 3월 9일자 기사에서 조선일보는 “장자연 씨가 쓴 ‘조선일보 사장’은 조선일보 계열사인 스포츠조선의 전 사장인 것으로 명백히 확인됐다”며 이러한 오해가 생긴 것은 “언론 내부의 이념적 갈등과 경쟁 관계 등이 작용”한데다 “연예기획사 대표 김종승 씨가 평소 스포츠조선 전 사장을 그냥 ‘조선일보 사장’으로 불렀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의 불기소 결정문을 토대로 한 조선의 이러한 주장은 그러나 ‘조선일보 사장’을 보호하기 위해 계열사인 스포츠조선 전 사장을 사실상 ‘인격살인’한 것으로 매우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높다. 여론의 관심을 살 만한 인물을 흘리면서, 사주의 무고함을 확실하게 각인시키기 위해 기본적인 ‘사실 관계’마저 왜곡했단 것이다.

<미디어스>가 당시 참고인 조사를 받은 이의 진술서와 검찰의 불기소 결정문을 대조해 확인해본 결과, 조선일보의 보도와는 달리 연예기획사 대표 김종승 씨는 ‘조선일보 사장’과 ‘스포츠조선 사장’을 충분히 구분해 사용하고 있었고, 사건을 수사한 경찰 역시 그러한 내용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당시 장자연 소속사 대표 김종승 씨를 조사하며 김 씨가 ‘조선일보 사장 소개’와 ‘스포츠조선 ㅇㅇ사장 소개’를 나누어 주소록에 저장했단 점을 확인했던바 있다. 상식적으로도 연예기획사 대표가 ‘조선일보 사장’과 ‘스포츠조선 사장’을 구별하지 못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실제, 김 대표의 컴퓨터 주소록에는 ‘조선일보 사장 소개’와 ‘스포츠조선 ㅇㅇ사장 소개’가 구분되어 적혀 있었다.

‘조선일보 사장 오찬’ 스케줄은 스포츠조선 전 사장과 만난게 아니다

또 다른 정황도 있다. 김종승 씨의 스케줄표를 보면 ‘2008년 7월 17일 조선일보 사장 오찬’이라고 되어 있는 부분이 있다. 이 약속은 매우 중요하다. 이 약속에 대해 검찰과 조선일보는 ‘조선일보 사장이 아닌 스포츠조선 전 사장을 지칭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취재 결과 스포츠조선 전 사장은 그 시간 다른 사회적 인사 2명(재미교포 사업가, 경제지 대표)과 식사를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김종승 씨의 실제 약속은 조선일보 출신의 기자 조 모씨와 오찬이었는데, 조선일보 출신기자와의 오찬 약속을 비서가 ‘조선일보 사장 오찬’이라고 잘못 적은 것이다. 이에 대해 김종승의 비서는 경찰에 “사장이 알려주는 대로 기재하였을 뿐, 실제로 누구를 만났는지는 알 수 없다”고 진술했다.

이는 비서들이 대표의 약속을 편의적으로 기술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실수였던 것으로 보인다. 경찰 역시 김종승 씨가 만난 이가 조선일보 사장도 스포츠조선 사장도 아닌 조선일보 출신 기자 조 모씨였단 점을 알고 있었단 것이다.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통화기록을 확인했고, 당일 김종승 씨가 ‘조선일보 사장 오찬’ 스케줄에서 누굴 만났는지를 당연히 확인했다. 스포츠조선 전 사장은 7월 15일 김종승과 마지막으로 통화했을 뿐이다.

즉, 수사당국은 김종승의 ‘조선일보 사장 오찬’이 조선일보 사장도 스포츠조선 전 사장과의 만남도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었단 얘기다. 당연히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은 관련이 없다. 그리고 역시 당연히 스포츠조선 전 사장도 관련이 없다. 이에 대해 조선일보로부터 당사자로 지목된 스포츠조선 전 사장 A씨는 “수사 과정에 알리바이를 입증했고, 당연히 경찰 역시 이를 알고 있었다”며 “참고인 조사를 받을 당시 찾아온 경찰이 이러한 사실을 직접 확인까지 했으며, 당시 다른 사람과 밥을 먹은 영수증도 경찰이 확인했다”고 밝혔다. ‘조선일보 사장=스포츠조선 사장’이란 조선일보의 주장은 전혀 설득력이 없는 셈이다.

그렇다면 장자연 리스트에 등장하는 조선일보 사장은 누구인가?

그렇다면, 장자연 사건에 등장하는 ‘조선일보 사장’으로 인식된 사람은 누구일까? 이에 대한 단서는 이미 경찰 수사과정에서 드러났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인 진술을 했던 이들이 이미 장자연 씨가 참석한 모임에 누가 왔었는지를 경찰에 진술했었기 때문이다.

▲ 장자연 사건과 관련해 경찰이 참고인 조사를 받았던 진술서들. 이들 진술서에 따르면 경찰은 장자연 씨가 참석한 모임이 코리아나호텔 방용훈 사장이 주재한 자리였다는 점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후 경찰은 방용훈 사장을 조사하지 않은채 수사를 마무리하며 방상훈 사장은 혐의가 없다고만 발표했다. ⓒ미디어스

2011년 3월 9일자 조선일보 보도에는 중국음식점 모임이 중요하게 보도된다. 김종승 씨가 장자연 씨를 스포츠조선 전 사장에게 소개했다고 알려진 모임이다. 이 중국음식점 모임은 검찰의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 불기소 결정문에서도 매우 중요한 모임으로 언급된다. 이 모임에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은 없었고, 그의 무혐의 역시 이 모임에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충분히 입증된다. 하지만 여기엔 또 다른 ‘방 사장’이 있었다. 코리아나 호텔 사장으로 조선일보 대주주이자 방상훈 사장의 동생인 방용훈 사장이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 스포츠조선 전 사장 A씨는 ‘중국음식점에서 김 대표가 장자연 씨를 스포츠조선 전 사장에게 소개했다’고 보도한 것과 관련해 “김종승 대표로부터 장자연 씨를 소개받은 사실 자체가 없다”며 “김종승 대표가 말한 식사자리는 2007년 11월 역삼동 소재 중국음식점 이닝에서 있었던 모임인데, 이 자리에 김종승을 오라고 한 것은 맞지만 기본적으로 이 자리는 조선일보 대주주이자 이사인 코리아나호텔 방용훈 사장이 주재했던 자리였다”고 밝혔다. 알려진 것과는 달리 그날 식사 자리에는 자신을 비롯해 “윤 모 주한미대사관 공사, 이 모 CNN 한국 지사장 등 여러 명이 어울린 자리”였으며 “장자연을 누구에게 소개하고 말고 할 성질의 자리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A씨는 자신은 “코리아나 호텔 방 사장이 주재한 모임에 갔던 것뿐이며, 김종승 대표를 부른 것은 개인적으로 다른 부탁을 하기 위해서였다”고 밝혔다. 그는 조선일보의 보도에 대해 “그 식사자리의 좌장은 방용훈 사장이었는데, 그 자리에서 자신을 좌장의 형님되는 ‘조선일보 방 사장’이라고 소개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되물었다.

종합해 보자면, 이날 모임을 주재했던 방용훈 사장은 코리아나 호텔 사장이지만 조선일보의 대주주이기에 ‘조선일보 방 사장’으로 불리거나 인식되었더라도 완전히 '틀린'말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장자연의 사건에서 언급되는 그 '조선일보 방 사장'이 그를 지칭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조선일보가 스포츠조선 전 사장을 '조선일보 방 사장'으로 몰아 갈 수 있었던 빌미가 된 그 날의 그 모임에서는 '조선일보 방 사장'으로 이해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방용훈 사장'이라는 사실이다.

경찰은 ‘조선일보 사장’이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다?

경찰은 분명히 그날 코리아나 호텔 방용훈 사장이 장자연과 동석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중국음식점 모임에 참석한 참고인들이 이미 그렇게 진술했기 때문이다.(사진 참조) 이에 대해 A씨는 “이미 경찰 조사에서 이러한 사실을 다 말했는데, 경찰이 방용훈 사장은 조사하지도 않은 채, 방용훈 사장 주재로 9명이나 있었던 자리를 마치 본인과 장자연, 김종승 3명만 있었던 것처럼 호도했다”고 비판했다. A씨는 “경찰로부터 참고인 방문 조사만 한 차례 받고 검찰에는 불려간 적조차 없는데, 검찰이 본인 확인도 않은 채 결정문을 썼다”며 “스포츠조선 사장을 오래하다 보니 업무관계로 연예기획사 대표인 김종승 씨를 알긴 했지만, 김종승 씨 역시 본인을 잘 알기에 방 사장이라고 부른 적이 없고 부르지도 않았다”며 ‘조선일보 사장=스포츠조선 사장’으로 규정한 “조선일보의 기사는 한 마디로 사주 일가의 연관성을 덮기 위해 자신을 이용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A씨의 주장대로라면 방상훈 사장이 무혐의인 것은 맞지만 또 다른 ‘방 사장’이 분명 이 일과 연관되어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A씨를 비롯한 참고인들이 이 사실을 이미 경찰에 말했었단 점이다. 하지만 경찰은 어찌된 일인지 방용훈 사장은 조사조차 하지 않았고, 당연히 관련이 없는 방상훈 사장은 서둘러 무혐의 처리했다.

▲ 지난 2009년 4월 60여개 여성, 시민 단체가 서울 중구 조선일보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장자연 사건에 대한 경찰의 성역없는 수사’를 촉구하는 모습ⓒ곽상아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사건의 관련자들은 “경찰은 처음부터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에 대한 무혐의만을 강조하려 했었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한 조선일보 출신 기자는 “방상훈 사장이 관련 없다는 것은 조선일보 내부에서도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사주가 관련 있단 얘기가 돌았고, 이에 대해서는 함구하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스포츠조선 전 사장 A씨 역시 마찬가지 얘기를 했다. A씨는 조선일보에서만 37년을 근무한 ‘조선일보 맨’이자 원로 언론인이다. 스포츠신문 사장을 오래 지내 평소 김종승 씨를 알고 지냈지만, 장자연 사건과 직접적 연관이 있지는 않다. 하지만 자고 일어나보니 사건의 주역이 됐다. 이에 대해 A씨는 “조선일보가 사주 일가와 장자연의 연관성을 덮기 위해 아무런 관계가 없는 자신을 끼워 넣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조선일보의 보도 이후 A씨는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어려울 정도의 곤란을 겪고 있으며, 해명을 해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 곤란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부 무책임한 언론과 네티즌에 의해 조선일보의 기사가 아직도 인터넷에서 나돌며 사실인냥 취급되고 있다"고 개탄했다.

장자연 리스트에 등장하는 ‘조선일보 사장’은 따로 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장자연 리스트’는 여전히 묻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큰 권력을 갖고 있는 조선일보 사주의 문제를 덮기 위해,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만들고, 조선일보는 지면을 사유화해 또 다른 개인들에겐 다시 한 번 용서할 수 없는 짓을 저지르고 있는 것은 아니냐고 말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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