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여옥 의원의 <일본은 없다>가 표절이라고 대법원이 최종 판결을 내렸다. 충격이다. 문대성을 비롯한 학위논문 표절인 경우에는 본인의 양심을 저버린 것과, 우리나라 학문질서를 문란케 했다는 죄가 있다. 전여옥의 표절은 그것과 다른 것이, ‘살아있는 특정한 피해자’가 있기 때문이다.

학위논문 표절은 우리 공공질서를 어지럽히긴 하지만, 표절당한 그 개인에게 특별히 엄청난 해를 끼치는 건 아니다. 표절당한 사람은 이미 논문을 발표한 상태이기 때문에 그가 원저자라는 걸 누구나 알 수 있다. 원저자는 계속 살던 대로 연구하면 된다. 학위논문 표절할 정도의 사람이 학문연구에 종사할 리도 없기 때문에, 원저자 입장에선 딴 세상의 잡음일 뿐이다.

▲ 전여옥 전 의원(왼쪽)ⓒ연합뉴스
전여옥의 표절은 누군가가 책을 쓰기 위해 취재한 내용을 자신이 출판한 케이스다. 학위논문 표절이 거대한 곳간에서 슬쩍한 공금횡령이라면, 이 경우는 ‘강도질’에 가깝다. 다른 사람의 피땀을 빼앗았고, 그 때문에 원래의 취재자는 자신이 받았어야 할 과실을 박탈당했다. 다시 말해 학위논문 표절은 공적인 죄로서 우리 국민 전체가 추상적인 피해자인 반면, 전여옥 케이스는 구체적인 한 명의 피해자가 있다는 얘기다.

옛날에 맹자가 ‘전쟁터에서 수십만의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엔 눈도 꿈쩍 안 하더라도 당장 눈앞의 사람이 애닯게 우는 모습엔 안타까워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라고 했었다.

이런 논리로 학위논문 표절은 구체적인 피해자가 눈앞에 없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양심의 가책을 덜 느낄 수 있다. 반면에 전여옥은 자신이 평소 만나던 사람의 피땀을 빼앗았다. 그것이 그 사람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안겨줄지 뻔히 알 수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이건 맹자가 말한 인지상정을 저버린 행위다.

그래서 일반적인 학위논문 표절보다 더 충격이다. 학위논문 표절의 문제점을 인식하기 위해선 이성적 사유가 필요하지만, 이 경우엔 원초적 인륜 차원에서 걸린다.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어떻게 아는 사람에게 그럴 수 있을까? 원수도 아닌데?

- 더 큰 문제는, ‘왜 이제야?’ -

그런 사람이 국회의원을 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보통 의원이 아니라 가장 목소리를 높이며 공직자들을 비판하고 여러 방송프로그램에 나와 도덕을 논하던 의원이었다.

이러니 국회의원을 비롯한 이 나라 상층부에 대한 신뢰가 생길 수가 없는 것이다. 보통 사람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버젓이 저지르는 사람이 최상층부에 앉아 국민을 향해 설교하는 나라.

더 큰 문제는 이 판결이 나오기까지 무려 8년이 걸렸다는 데 있다. 전 의원이 살아있는 권력으로 서슬이 퍼렇던 시절엔 판결이 한없이 미뤄지다가, 이번에 새누리당에서 ‘팽’당하면서 낙선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판결이 나왔다.

도대체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아무리 파렴치한 사람이라도 권력만 쥐고 있으면 사법부가 건드리지 않는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얼마나 많은 ‘전여옥’들이 지금 국회의원을 하거나 고위공직자를 하고 있을까? 이런 나라에서 국민이 어떻게 살란 말인가?

사법부는 국민의 신뢰를 마지막으로 지켜야 할 보루다. 우리가 비록 태어날 때부터 불평등하게 태어나고, 인생행로도 불평등하게 엇갈리지만, 적어도 잘못을 했을 때만큼은 모두가 똑같은 처벌을 받는다는 최후의 믿음 말이다. 그래야 아무도 반칙을 하지 않는 사회가 된다.

이번처럼 사법부의 판단이 권력에 의해 좌지우지된다는 느낌을 국민이 갖는다면, 그 어느 국민이 공동체의 질서를 믿을 수 있겠나? 상층부부터가 반칙으로 뒤범벅되어 있다고 여겨지는 판인데 누가 반칙을 하지 않을까? 나라꼴이 말이 아니다.

문화평론가, 블로그 http://ooljiana.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성룡과 퀸을 좋아했었고 영화감독을 잠시 꿈꿨었던 날라리다. 애국심이 과해서 가끔 불끈하다 욕을 바가지로 먹는 아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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