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시니스트’라는 아이디가 말해주듯 그는 매우 공손하다. 처음 보는 이들에겐 ‘굽신굽신’할 기세다(‘굽신굽신’은 표준어가 아니고 올바른 표기는 ‘굽실굽실’이다). 그러나 그 공손함은 그가 세계를 대하는 어떤 조심스러운 태도에서 나온 것이기에, 어떨 때는 까다로움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그는 인터뷰 내용을 기자가 임의로 정리하여 기사로 만드는 것을 부담스러워 했다. 결국 실제로 대면했음에도 인터뷰 내용의 상당수는 서면으로 다시 정리되었다. 사진 역시 그가 직접 찍어서 ‘셀카 각도’가 나왔다.

▲ 박정희 기념관의 모습

자가용을 몰고 온 김선웅씨는 기자를 태우고 어디론가 가자고 했다. 녹음이 우거진 길을 지나니 박정희 기념관이 나타났다. 기자는 처음 오는 곳이었고, 김선웅씨는 두 번째라 했다. 국민의 혈세와 독지가들의 기부로 지은 곳이라 입장료는 없었다. 기자는 기념관 내부를 보며 얼핏 몇 년 전 한 번 가본 야스쿠니 신사의 박물관을 연상했다. 박물관 순례 후 식사를 하지 않았다는 그를 위해 음식을 시키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 박정희 기념관의 모습 2. 적혀 있는 사람들의 이름이 인상적이다.

시사in에 연재를 하게 되기까지

▲ 굽시니스트가 차에서 스스로 찍은 사진과 인터뷰를 하면서 찍은 사진

- 원래 만화가가 될 생각이 있었는지?
물론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연습장에 끼적 끼적 만화를 그려왔다.

- 그럼 어린 시절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던 건가?
그리는 걸 좋아했으니까 만화를 그렸겠지.

- 그린 만화를 디시인사이드(dcinside.com)에 연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디시야말로 인터넷 하위 문화의 메카가 아닌가.

- 당신의 만화를 보면 풍부한 맥락이 포함되어 있다. 역사나 밀리터리 얘기도 많고, 드라마, 게임 등 각종 대중문화에 관한 맥락을 포괄한다. 실제로 본인이 즐기는 것들은 어떤 분야들인가?
역사에 대한 이런 저런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좋아하고, 전쟁 장르의 게임들을 좋아한다. 애니메이션, 영화, 미드 같은 건 특정 분야를 파는 정도는 아니고 당대의 대세작이랄 만한 것들 정도만 보는 거다.

- 디시에 ‘2차세계대전 만화’를 그리다 출판사에 바로 발탁이 되었다. 그때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드디어 와룡이 몸을 떨쳐 일어난다! (웃음) 라기보다는 계약금이 걸린 일이라 꽤 정신적으로 부담이 되고, 책임감 같은 게 생기더라.

▲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 굽시니니스트가 자신의 블로그(homa.egloos.com)에 올린 만화의 일부분

- 단행본도 예상치 못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출판시장에서 아무도 움직이지 못한 20대 남성을 끌어냈다고 하더라(웃음). 그런데 ‘굽본좌’를 좋아하던 이라도 그가 갑자기 시사만화를 그리게 되었단 사실엔 놀랐을 것 같다. 어떤 경로로 시사in만화를 연재하게 되었는지?
시사in 신호철 기자님이 내 블로그를 살펴보시다가 광우병 촛불 시위나 노무현 추모 정국 당시의 만화에서 일종의 정치적 성향을 보고 픽업해준 것으로 안다.

- 제의를 받았을 때 무슨 생각이 들었나?
‘이야, 이건 좀 어렵지 않을까나. 독립언론으로 유명한 저 시사 정론지의 두 페이지라니, 몇 회나 버틸 수 있을까 모르겠네.’라고 생각했다. 비유하자면 런던 필하모닉에 고등학교 밴드부원을 끼워넣는 격인기라.

- 겸손이 심하다. 그렇다면 제의를 수락한 이유가 뭔가? 원래 정치/시사 분야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건가?
원래라는 건 도대체 언제부터가 원래인가. 태어나기를 정치/시사 홀릭으로 태어나는 사람도 있남? 내 경우는 대충 군대 다녀오고 나서부터, 정치/시사 쪽 -즉 세상의 큰 문제에 대한 좀 더 자세하고 그럴듯한 이야기에 관심을 두게 된 것 같다.

- 근데 정치/시사 분야도 관심을 가지려면 시간이 제법 들어간다. 그에 대한 관심, 그리고 대중문화 전반에 대한 폭넓은 관심은 병행될 수 있는 걸까? 혹은 서로 도움을 주는 면이 있는지? 본인의 경우는 어떤가?
일단 나님은 대중문화 전반에 대한 폭넓은 관심이 없습니다요. 내가 좋아하는 몇몇 잡스러운 부분들만 관심권에 둘 뿐이지요. 평균적인 한국인이라면 어느 정도의 문화생활은 영유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리고 나님 역시 대중의 일원으로서, 대중과의 교감에 대해 말하자면, 대중과 함께하는 문화생활은 그 대중이 만들어가는 정치/시사의 흐름을 함께하는 데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바탕이 아닐까 싶다.

▲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 굽시니니스트가 자신의 블로그(homa.egloos.com)에 올린 만화의 일부분

‘시사만화가’ 굽시니스트에 대해

- 시사만화에 표현되는 것은 굽시니스트의 정치적 견해인가? 혹은 특정 성향 잡지의 청탁에서 나온 상품일 뿐인가?
당연히 나님의 정치적 견해지! 근데 사실 내 정치적 견해라는 게 그렇게 특정 사안별로 구체적인 건 아닌지라... 특정 사안, 개별 사건에 대한 작화는 대충 나님의 더 광범위한 정치적 지향점을 위한 전선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방향을 잡지요.

- 그럼 특정 사안, 개별 사건을 만났을 때 자료조사는 어떤 식으로 하는지?
물론 웹서핑입니다.

- 근데 종종 궁금해 한 게, 시사in 특집 기사와 당신 만화가 같은 소재를 다루는 경우가 제법 되더라. 어떻게 된 일인가? 시사in 기자들이 미리 특집기사 아이템 제보라도 해주나?
그런 거 없다. 한주에 있었던 일이 뻔해서 서로 고민하다 보면 일치하기도 하고 그런 것 아니겠는가.

- 근데 2면 전체를 사용하는 만화는 기존 시사만화와는 사뭇 다른 형식이다. 대부분의 시사만화는 한 컷이니까. 완전히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낸 것 같기도 한데. 혹시 무엇을 참고했는지 알려 줄 수 없나?
완전히 새로운 건 아님. 옛날 일요신문같은 주간 정치/시사 신문들에 그런 형식의 정치 만화들이 실렸었다. 그런 것들을 본 기억을 떠올리며 그리고 있다.

- 이런 형태의 만화로는 다른 시사만화보다 훨씬 호흡이 긴 서사를 담을 수 있다. 주로 어떤 형태의 서사를 좋아하는가?
님도 말했지만 두 페이지짜리 만화는 한 컷으로 이슈를 이미지화한 시사 만평이나 네 컷으로 번득이는 해학을 보여주는 신문 만화와는 사실 다루는 소재만 같을 뿐, 완전히 다른 장르가 아닌가. 호흡이 길다 짧다로 구분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나도 언젠가 커리어를 두껍게 쌓고, 머리에 뭔가 채워넣는다면 시사 만평의 자리를 얻을 수 있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예 다른 것을 추구하는 거다. 아무튼 나님이 좋아하는 서사 형태는 자기완결성이 명확한 단편만화류의 서사다.

- 정당 로고를 의인화해서 얘기를 풀어나가는 게 참신하다는 해석이 굉장히 많다. 다른 시사만화와 비교했을 때 이런 방식의 장점은 뭐라 생각하나?
시사 만화에서 정당 의인화는 딱히 참신하달만한 기법은 아닌데... 로고로 캐릭터를 만들다고 그러는 거겠지? 각 정당에 전통적인 이미지가 없다 보니 로고를 한참 쳐다보고 캐릭터를 만들어 내야 한다. 암튼 이런 방식의 장점은 정당 대표의 캐리커쳐를 공들여 그리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아닐까. 하지만 이번에 보았듯 정당들이 당명과 로고를 바꿀 때마다 좀 귀찮아진다. ... 오늘날 양당제가 고착화되가는 우리 정치에 미국의 코끼리&당나귀같이 전통있는 마스코트가 생겨나기를 바란다.

‘생활인’으로서의 굽시니스트

▲ 굽시니스트의 데뷔작이자 출세작인 <본격 제2차 세계대전 만화 1>의 표지

- 본인이 그린 만화 중에서 특별히 마음에 드는 것이 있다면?
물론, <본격 제2차 세계대전 만화>다.

- 그럼 시사만화에 얽매여 다른 작업의 진척이 느린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시사만화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지? 시사인 만화를 그리기 전과 비교해 생활과 세계관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내가 시사인의 두 페이지를 차지하고 앉아 있다는 데에 대해서는- 그럴 자격이 있는 지에 대한 의문은 일단 접어두고- 내 콧대를 아파트 옥상까지 세우고 다니게 만드는 속물적인 자부심을 안겨준다. 내가 시사인 만화를 그린다!! 에헴!

생활적인 측면을 보면 정기적인 원고료 덕분에 끼니를 이어 나갈 수 있다는 점이 크다. 그리고 세계관에 있어서는 시사in 기사들을 꼬박 꼬박 챙겨보다 보니 10년 전의 바보와는 사뭇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

- 앞으로의 작업 일정을 소개해 달라.
서양 미술사 만화, 잡상만화, 기타 등등을 계속 그려야 한다.

- 프리랜서로 살게 되었는데, 예정했던 인생 행로인가? 여기서 계속 있을 텐가? 아니면 기자처럼(웃음) 월급쟁이로 이탈할 것인가?
인생은 풀잎에 맺힌 이슬과 같아서 만날 때가 많지 않은 것 아닌가?

내가 망상하는 인생 행로라면, 강남에 빌딩 다섯 채 정도 올리고, 최초로 달에 간 한국인으로 이름을 남기겠지.

그저 이름없는 만화가인 지금의 나는 기회가 눈앞에 열리는 대로 따라갈 뿐.

- 한 매체의 전속작가인데, 그 정도면 먹고 살만 한지 남들이 궁금해 할 것 같다.
어휴, 이런 3류 만화가에게는 과분한 대우입죠. 만화가 한 몸 먹여 살릴 정도는 되지요.

- 친구들과 만나면 무슨 얘기를 하나? 친구들과 얘기를 할 때 어떤 점이 다르거나, 혹은 달라진 것 같나?
여자 얘기한다. (웃음) 친구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취직해 성실하게 사는 걸 보면, 내 나태한 삶이 부끄럽다.

굽시니스트의 정치평론

▲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 굽시니니스트가 자신의 블로그(homa.egloos.com)에 올린 만화의 일부분

- 만화 보면서 정치평론가들 밥그릇 걷어차는 만화가란 생각을 많이 했다. 오늘은 활자로 그 실력을 맘껏 뽐낼 기회를 드려야 겠다. 먼저, 실제로 본인이 정치에 대한 관심이 많다고 생각하시는지?
정치에 대한 관심을 업으로 삼고 사는 사람입니다.

- 선생님, 대선전망 해주세요(웃음).
안철수 아니면 박근혜겠지...(웃음)

- 노무현 서거 때 공짜 만화를 그렸다. 지금도 이렇게 생각하나?
뭐 딱히 생각이랄 게 있나 모르겠음. 죽음을 통해 정치적·역사적인 깃발에 수놓인 인물은, 그 인물이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그 이름이 어떤 정파의 어떤 생각을 대변하는 지가 중요할 뿐이다. 개인으로서의 그 인물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역사책 속에서 그 어떤 비중도 가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렇게 그렸다.

- 본인의 정치성향은 어떻다고 생각하나? 안철수처럼 안보는 보수이고 경제는 진보인지? (웃음)
안보는 보수고 경제는 진보니 하는 그런 식으로 단순무지하게 성향을 설명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다니, 실망이다. 조국의 안보에 대한 가장 심대한 타격들은 보수 군사 정권 때 가장 끔찍하게 터져 나왔었다는 걸 기억하라.

내 성향은 일단 공리주의적인 설명보다는 이상주의, 절대주의적 설명에 끌리는 편이다. 어떤 흐름을 지지한다면, 그것이 보다 더 많은 이익을 내기 때문에 지지하기 보다는 그것이 더 옳고 폼나고 아름답게 보이기 때문에 지지하고 싶다.

- 본인의 정치성향을 특정 정치인이나 특정 정당을 조합하여 설명해 본다면?
제임스 케어 하디가 참으로 훌륭한 정치인이더구만요. 내가 자신의 구체적인 성향을 설정하기는 힘들지만, 어떤 정치인이 남긴 발자국을 흠모한다면 역시 제임스 케어 하디. 그렇다면 정당은 역시 영국 노동당인가... 어라?

- 지지하고 싶은 정치인의 유형을 말씀해 주신다면?
폼나는 이상을 가슴에 품고, 선거에서 이기는 정치인. 이기는 게 중요해.

▲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 굽시니니스트가 자신의 블로그(homa.egloos.com)에 올린 만화의 일부분

- 옛날 고수(?)들에 대한 간단 인물평을 부탁드리겠다. 적어서 보내드리는 인물에 대해서 평해달라(이건 완전히 서면으로 했다).

이승만/ 프린스 리, 미국을 강림시키다
김구/ 한국사 최후의 전사.
박정희/ 중2병 독재자는 자신의 거대한 작품에 자아도취하다
전두환/ 옛날에는 땅크 잘 모는 놈이 대통령했는데.
노태우/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6공화국 창조자.
김영삼/ 강한 남자
김대중/ 질긴 남자
김종필/ 운 나쁜 남자.

- 요즘 고수(?)들에 대한 간단 인물평도 부탁드리겠다. 적어서 보내드리는 인물과 그 외 넣고 싶은 사람 한 두명 임의로 넣어도 괜찮다(이것도 완전히 서면으로 했다).

박근혜/ 김근혜였다면 대통령되도 상관없었을 텐데...
안철수/ 제발 박근혜를 이겨주세요.
문재인/ 경희대에서 대통령이 나오면 엄청 배아프겠지.
(기자 주 : 김선웅씨는 한국 외대 출신이다)
김두관/ 설마 진짜로 대통령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손학규/ 이 중에서 유일하게 내가 실제로 만나본 사람. 눈웃음이 포인트.
유시민/ 와, 지금 저 포지션은 3년 전이라면 상상도 못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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