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영욱 ⓒ연합뉴스
‘자신이 가진 가치판단의 기준과 대중이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가 너무나도 크다.’ 비슷하기는 하지만 내분을 넘어 분열의 위기까지 말하는 특정 정당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 이야기는 정파에 따라 기준에 따라 저마다 할 이야기가 많을 것이고 그에 따라 전혀 다른 결론을 말하기도 하겠죠. 하지만 이 글에서 다루는 주제는 그런 상대적인 평가와는 전혀 동떨어진, 여차하면 쉽게 빠지기 쉬운 간격, 자신의 일은 전혀 다른 이야기라며 말하기 쉬운 착각에 빠진 한 연예인의 잘못된 도덕관념에 관한 이야기이죠.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며 이제야 서서히 자신의 자리를 잡는 듯하다가 순식간에 나락으로 빠져버린 남자. 고영욱의 끔찍한 착각에 대한 이야기에요.

룰라의 전 멤버이자 방송인으로 여러 프로그램에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하던 고영욱이 순식간에 화제의 중심으로 떠올랐습니다. 그의 절친 신정환이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지금 케이블에서 같이 호흡을 맞추기 시작한 이상민처럼 연예면이 아닌 사회면의 톱에 자신의 이름을 올린 것이죠. 제목은 미성년자 성폭행 혐의에 의한 사전 구속영장 청구. 가뜩이나 미성년자에 대한 성범죄에 관련해 비난 여론이 심하고, 연예 기획사를 비롯한 관련 분야에서 연예인 지망생에게 가하는 부당한 대우와 성착취에 대한 우려와 비난이 비등한 현실에서 최악의 사건이 터진 것이죠. 그는 어떤 연예인이라도 결코 재기를 꿈꾸기 힘든 구렁텅이에 빠져버렸습니다.

물론 남자와 여자 사이의 문제는 제 3자가 판단하기 어려운 복잡한 요소들이 뒤엉켜 있습니다. 몇몇 기사가 전하는 고영욱 측 지인들의 말처럼 금전 관계가 얽혀 있을지도 모르고, 고영욱과 피해자의 관계가 어떻게 지속되어 왔는지도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연예인을 꿈꾸는 지망생과 유명(?) 연예인 사이라는 갑과 을의 관계이기 쉬운 위치이기는 하지만 경찰이 밝힌 정황만 본다면 의아한 사건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이 두 사람 사이에는 지속적인 연락이 있었다고 하고, 성폭행이 이루어진 정황만 본다면 과연 일방적인 강요에 의한 것이었을까하는 갸웃거림이 드는 것도 사실이에요.

고영욱이 직접 홈페이지에 올렸다는 심경고백, 혹은 사과문에 이런 억울함이나 답답함이 묻어나오는 이유도 그가 생각했던 피해자와의 관계와 대중에게 비추어지는 것이 전혀 다른 데서 나오는 감정이겠죠. 사실은 그런 비도덕적인 관계가 아니었다는,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지만 자신은 자못 억울하다는 토로는 지금의 상황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마음이 묻어나옵니다. 그의 절친 신정환이 저지른 치명적인 과오처럼 팬들과 대중 앞에서 솔직하겠다는 다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하는 것도 그 스스로 논란에 대한 송구함만큼이나 속상함이 겹쳐져 있다는 반증입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저는 고영욱의 사과문에서 소름끼치는 도덕적인 무감각함, 잘못된 성인식에 놀랐습니다. 그는 피해자가 미성년자인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를 만난 계기 자체가 같은 방송에서의 출연이었고, 그녀의 프로필이나 배경에 대해 충분히 알아볼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서로간의 나이 차이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성에게 반하는 계기나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에 대해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서로간의 엇갈린 감정이나 잘못된 의사소통, 일방적인 관계의 파기나 배신을 지적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 이전에 사람이라면 당연히 지켜야 할 아주 기본적인 상식. 그는 미'성'년자를 상대로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어서 자신의 욕망을 채웠다는 것이 문제란 거죠.

그 어떤 변명도 통용되기 힘든 잘못입니다. 그런데 그의 글에서는 이런 중대한 잘못에 대한 어떠한 사과나 문제 인식도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그저 지금의 상황이 힘들다. 우리는 그런 부도덕한 관계가 아니었다. 거짓말 없이 진실을 말하겠다는 언급이 전부이죠. 관계가 어떠하던 간에, 그 안에 숨겨진 실제 사실이 무엇이건 간에, 피해자의 의도가 어떠하건 간에 고영욱은 미성년자와 부적절한 관계를 했고,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나가버렸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 가장 심각한 문제에 대해서는 별다른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아 보입니다. 그냥 우린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잘못된 사이가 아니었으니 더 이상 오해하지 말아달라는 억울함뿐이에요.

한숨만 나옵니다. 하긴 10대 소녀들의 섹스어필이 당연하게 되어 버린 아이돌의 세상에서 굳이 고영욱의 이런 무감각한 성 인식만을 지적해야 무엇하겠습니까. 어쩌다가 미성년자 소녀와의 관계를 그다지도 떳떳하게 비도덕적인 사이가 아니라고 항변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지금의 연예계 한편에서 활동하고 있다니. 아무리 텔레비전 속의 세상이 명암이 갈리는 곳이라지만 이런 어두운 속살이 발견될 때마다 무섭고 떨립니다. 웃고 즐기고 누리기만 하기에는 너무나 소름끼치는 것들이 득실거리는 세상이에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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