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의 질문에 대답하는 이택광 교수 ⓒ이데일리

기자가 진행하는 이데일리 시사경제why의 한 꼭지에서 통합진보당 문제를 소재로 문화평론가 이택광 경희대 교수를 만났다. 이택광 교수는 지금은 서구 철학이론에 ‘타락’(?)했지만 대학시절 열혈 NL 운동권이었고 울산에서 활동한 적도 있는 사람이다. 보통의 시청자를 대상으로 하는 시사경제why에서 다루기 힘들 것으로 보이는 몇몇 심층적인 얘기들을 미디어스 인터뷰 기사로 정리해 본다.

달라진 언론환경이 당권파에 불리하게 작용해

한: 상황이 묘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NL 정파의 이름들을 이렇게 줄줄 읊는 시대가 올 줄은 몰랐다. (웃음) 소위 통합진보당 당권파란 사람들은 사태가 이렇게 커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 같다. 진보언론에선 ‘며칠 치다가 말겠지’라고 생각했을 텐데, 일주일 넘게 때리고 있다. 참여당계가 끼어 있기 때문에 더 적극적으로 문제제기해서 그렇다는 시선이 있는데 이에 대해선 어떻게 보시나?

▲ 통합진보당 내 계파구도를 분석한 오늘자 한겨레 4면의 이미지

이: 그럴 수도 있겠는데, 그게 핵심이라곤 생각을 안 한다. 일단 통합진보당의 주목도가 과거 민주노동당보다 비할 데 없이 높다. 2004년의 민주노동당과 의석수는 비슷한데도 비교해보면 그렇다. 그리고 매체환경의 변화가 있다. 예전에 비해서 뉴미디어를 활용한 매체가 엄청나게 많이 늘어났다. 조중동이 여론을 통제할 수 없는 것처럼, 한경오 등 진보언론도 여론이 통제가 안 된다. 그들이 안 써도 남들이 쓸 거다. 이 정도 사건이 터졌으니 매체들이 한 번씩은 다 통합진보당 특집을 해야 하는 상황 아닌가? 아까 보니 모든 주간지가 이 문제를 특집으로 삼고 있더라. 웹 매체나 팟캐스트 등도 한 바퀴 돌아야 할 것 아닌가? 그래서 당권파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여론주목도가 높은 심각한 사건이 될 수 있었다 본다.

한: 이번에는 많이 보도를 하고 있지만 과거 민주노동당 시절 당내투쟁에서도 NL정파는 비슷한 행태를 보였는데, 지금까지 이런 보도가 별로 없었다.

이: 나는 그 문제를 통합진보당을 넘어서는 사회 전체에서 NL의 문제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각 진보언론사에도 NL 출신들은 있다. 이런 분들이 과거 민주노동당 시절 NL들의 몰상식적 행태를 들으면 “뭐 이게 중요해? 민주당 기사나 쓰지...”라고 하면서 문제를 덮은 측면이 있다 본다. 한겨레에 비해서는 경향신문이, 오마이뉴스에 비해서는 프레시안이 좀 더 비판적인 모습을 보여줬지만 말이다. 그래서 대안언론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미디어스도 분발해야 한다. (웃음) 근데 비슷한 상황이 민주당에서도 펼쳐진다. NL 운동권이, 민족모순이 한국 사회의 기본적인 문제라 생각해서, 통일을 최우선적 문제로 취급해야 한다고 믿었던 이들이, 통합진보당에만 가 있나? 아니다. 따지고 보면 민주당에도 많이 가 있다. 특히 학생회장 출신들, 이인영이나 우상호, 이런 사람들이 대표적이다. 물론, 민주당에 간 그런 사람들은 예전에 '자주적 학생회파'라고 해서, NL 이념을 가졌어도 학생회 활동을 가장 중시했다. 그런데 원래 NL 이념은 그렇지 않다. ‘통일전선론’이라 하여, 어떤 조직에 들어가던 그 조직은 NL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그래서 조직에 충성하는 게 아니라 내부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수단·방법 안 가린다. 이번 경선 부정선거도 그런 성향을 보여주는 거고, 그렇게 해서 권력을 잡으면 그 조직을 NL 이념을 실현하는 도구로 사용한다.

한: ‘통일전선론’ 애기는 미디어스에 기고한 김민하씨도 지적했다. 그런 얘기를 듣다보면 우리가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지만 폐지가 된다고 그들이 솔직하게 자신의 이념을 밝힐지 의문이 든다. 또 어떤 이들이 말하듯 진보정당에 정파등록제가 실시된다고 NL정파가 공개적인 정파로 등록할지도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다.

이: 동감하는 바이다. 그런 상황에서, 지금 문제가 되는 통합진보당 당권파, 그러니까 경기동부연합 사람들이 민주당 내 NL들을 만났을 때 상황을 상상해 보자.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나. 내 생각엔 민주당 사람들의 말빨이 딸린다. 자기들이 포기하고 떠난 걸 후배들이 아직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다.

한: 취직한 운동권 선배가 아직 운동하는 후배들에게 술 사주는 상황 같은 것일까?

이: 비슷할 수 있다. 야권연대가 성사된 핵심적인 요인은 물론 양당의 정치공학적 이해관계의 일치겠지만, 경기동부 연합과 민주당 내 NL의 유대관계도 무시할 수 없다 생각한다. 근데 이런 유대관계를 잘 활용하는 것이 경기동부연합 같은 집단이다. 울산연합이나 인천연합 같은 경우는 민주당과 어울리기를 싫어한다.

▲ 이택광 교수 ⓒ이데일리

한: 모르는 분들 위해 다시 한번 정리하자면, NL정파는 전국연합이라 해서 각 지역별 연합이 모여서 만든 연대체로 구성되어 있는데, 경기동부 연합이 광주전남 연합과 사실상 합친 후 경기동부연합, 울산연합, 인천연합이 NL 내부의 대표적인 세 개의 정파라 알려져 있다. 그리고 지금 당권파로 분류되는 것은 경기동부연합이고, 울산연합과 인천연합은 비당권파로 유시민의 참여당계 및 노회찬·심상정의 통합연대 쪽과 연합하여 이석기와 김재연의 사퇴를 압박하고 있다. 다른 NL정파들이 당권파를 함께 압박하는 걸 보고 다른 NL 정파에 대해 합리성의 희망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

울산연합이 경기동부연합보다 더 교조적이다

이: 난 동의 못한다. 사상적으로는 울산연합이나 인천연합이 경기동부연합보다 더 경직되었다 본다. 오마이뉴스 손병관 기자가 트위터에서 한 지적처럼, 과거 경향신문에서 북한 3대세습을 어떻게 보는지 답하란 논쟁을 제기했을 때, 가장 먼저 경향신문 절독운동에 들어간 곳이 울산연합이었다. 북한 편향성 문제에 대해선 울산연합과 인천연합이 더 심하다고 보면 된다. 야권연대과정을 보더라도, 더 적극적으로 야권연대를 추구한 게 경기동부연합인데, 이건 이념적으로는 그들이 그나마 다른 연합보다 유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까 말했듯 그들이 민주당 내 NL과의 관계를 잘 활용하는 거다.

한: 그건 좀 이상하게 들린다. 원래 PD들과 함께 국민승리21을 만드는데, 그러니까 진보정당 독자노선에 가장 먼저 동의했던게 경기동부연합이고, 그 당시 울산연합이나 인천연합은 비판적 지지 노선 아니었던가?

이: 그때는 그때고. 당시는 비판적 지지가 본래의 NL 노선에 더 충실한 거였다. 그들이 생각하는 ‘자주적 민주정부’는 김대중 정부였으니까. 그런데 민주정부 출범 이후 국가보안법 폐지도 안 되고 한미FTA 추진도 되고 하면서 민주당도 미제의 앞잡이란 의식이 생겼다. 그들이 왜 북한 비판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겠는가. 미제국주의자를 타도해야 하는데, 미제국주의에 투쟁하는 유일한 해방구가 '북한'이라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민주당과 협력할 수 있겠는가.

한: 이념적 측면도 있겠지만 정치공학적 분석도 있다. 경기동부연합 인사들이 있는 수도권과 호남의 경우 민주당과 협력하면 권력을 훨씬 수월하게 쟁취할 수 있다. 하지만 울산의 지역구들은 상황이 다르지 않겠나.

▲ 질문하는 기자 ⓒ이데일리

이: 물론 그렇다. 나는 주로 울산에 있었기 때문에 울산 얘기를 하겠는데, 울산연합은 경기동부연합 인사들과 정서가 사뭇 다르다. 오랫동안 노동자들과 함께 활동했고, 어느 정도 진실인지 모르지만 87년 노동자 대투쟁을 그들이 주도했다고 믿는 그런 의식이 있다. 그들이 왜 PD를 우습게 여기겠는가. 혼자 힘으로 아무것도 해본 게 없는 책상물림들에 불과하다 보기 때문이다. 근데 그들이 경기동부연합을 보는 의식이 그것과 유사하다. 경기동부연합은 관악(서울대) 멤버들을 중심으로 한 서클과 유사한데, 울산연합에서 보기엔 학출(대학생 출신) 운동권으로만 보이는 거다. 근데 울산연합은 사상적으론 과격하더라도 노동자들과 함께 활동했기 때문에 대중운동 노선에 철저하다. 대중과 함께 가려고 하고, 뭔가 문제가 생기면 자기들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재빨리 처리하려고 한다. 그들은 그런 측면에서도 경기동부연합이 우스울 것이다. 문제가 생겼으면 도려내야 하는데 경기동부가 버티느라 일이 안 되는 상황 아닌가. 비당권파의 연대는 그런 차원에 있는 거라 생각한다. 일종의 동상이몽이다.

통합진보당 비판은 민주주의의 요구, 진보담론이 따라가야

한: 일단 통합진보당이 정상화되려면 이석기와 김재연이 사퇴를 해야 할텐데, 그것만으로 문제가 안 끝난다는 그런 얘기가 되는 것 같다. 많이 갑갑한 상황이다.

이: 이번 기회에 이 문제를 더 드러내고, 철저하게 공론화시켜야 한다고 본다. 당권파의 옹호자들은 ‘조중동 프레임’에 빠졌다고 비난하는데, 그러기는커녕 이들을 비판하는 방식이 무엇인지에 따라 지금 한국 사회의 보수와 진보가 갈리고 있다. 보수 쪽은 친북문제를 비판하는 거고, 진보 쪽은 민주주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한국 사회가 그간 성취해낸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수준에 NL이 미달하고 있다는 게 문제의 핵심이다. 민주주의가 미국 것이라 해서 거부할 건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진보정당 처음 시작한 90년대 말에 비교해서도 사람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가 크게 자라났다. 만약 진성당원제가 지금의 몰골이 아니라 취지에 맞는 모습을 하고 있었더라면, 통합진보당이 흥행한 이 국면에 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당원이 되려고 했을 게다.

한: 그래서 말인데 통합진보당 경선부정 사태가 ‘진보’란 어휘나, 정치개혁에 필요한 비례대표제의 취지, 그리고 진성당원제라는 정당 운영 구조에 대한 회의와 냉소를 증폭시키지 않는가 하는 우려가 있다.

이: 분명히 한국 사회의 시민들은 소통과 민주주의를 요구하고 있다. 그런 사람들이라면 경선부정 문제를 비판하면서 비례대표제나 진성당원제를 무시하게 되는 종류의 우를 범하진 않으리라고 믿는다. 사람들이 요구하는 바에 맞춰서 진보진영의 수준이 올라가야 한다는 게 문제다.

한: 그러나 ‘진보’란 명칭에는 분명히 타격이 올 것 같다. 앞으로 진보정당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겠는가?

이: 사실 세계적으로 보면 ‘진보’란 말을 사용하는 쪽이 대부분 보수다. ‘진보’란 말엔 생산력중심주의와 성장에 대한 함의가 있다. 앞으로의 진보적 기획은, 새로운 것을 요구해야 하는데, 그 새로운 것은 시간적으로 새로운 것이 아닐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이미 가지고 있고 알고 있는 것들도 이 체제를 바꾸는 것이라면 ‘새로운 것’일 수 있단 것이다. 가령 100m를 후진하는 자세도 그간 우리가 취하지 않으려고 했다면 ‘새로운 것’이다. 그런 차원까지 보면서, NL 문제를 끌어낸 이후 한국 사회의 진보 담론이 어떤 방향을 취해야 할지를 근본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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