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시중)가 옥션, 다음, LG텔레콤 등 잇따라 발생하는 개인정보유출 관련 대책을 24일 발표했다. 인터넷사업자에 대한 감독 강화를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당장 주민번호 유출 피해자에 대해서는 이렇다할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어 '사후약방문'이 아니냐는 빈축을 사고 있다.

방통위는 24일 오후 행정안전부, 한국정보보호진흥원, 대검찰청, 금융감독원 등 관련기관들과 대책 회의를 가진 후 '인터넷상 개인정보 침해방지 대책'으로 △옥션에서 유출된 개인정보로 인한 후속 피해의 최소화 대책과 △개인정보 수집·저장·이용 등 단계별로 통신사업자, 인터넷사업자의 책임성 강화 위한 제도적·기술적 대책 △사업자 자율적 개인정보보호 활동 강화 및 인식 제고 △해킹에 대한 기술적 대응 강화 △개인정보 침해사고에 대한 유관기관 간 협력체계 강화 방안 등을 발표했다.

▲ 경향신문 4월24일자 10면.
구체적으로는 주민등록번호, 전화번호 등 개인정보를 유출시킨 인터넷 및 통신 업체에 대한 처벌 강화로, 사업자의 기술적 조치 미비에 따른 개인정보 유출에 대해서 2년 이하의 징역 등의 벌칙과 1억원의 과징금 부과를 뼈대로 하는 정보통신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 주민번호 대체수단인 인터넷개인식별번호 아이핀(i-PIN) 도입 의무화 등의 개정안도 제출할 예정이다. 그밖에 이용자 피해에 신속 대응을 위해 한국정보보호진흥원(KISA)에 상황실을 설치 운영하고 인터넷사업자들과 '핫라인'을 구축하여 1일 4회 이상의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등 피해 방지계획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번 방통위 발표에 대해 '사후약방문'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근본적인 조치가 아닌 미봉책이라는 지적이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 정책실장은 "2004년 리니지 가입자 정보유출 당시에도 옛 행자부 및 정통부는 '명의도용 강력 처벌' 등 사후대책만 내놓았다"면서 "2006년 국민은행, 2007년 국민건강보험공단 등 민간과 공공 영역 싸이트에서 정보유출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은 정부의 책임"이라고 지적했다.

또 오 실장은 주민번호 대체수단인 인터넷개인식별번호 아이핀(i-PIN) 도입에 대해서도 '눈가리고 아웅'이라고 평가하면서 "오히려 아이핀(i-PIN) 관리업체에서 개인정보가 유출되면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이핀 사업자들이 모으게 될 개인별 사이트 가입 내역 등도 역시 중대한 사생활 정보이므로 대규모 집적 자체가 문제의 핵심이라는 말이다.

진보신당도 "언제까지 “민증” 까라고 할 텐가?"라며 "정부가 눈 가리고 아웅"한다고 비판했다. 진보신당 측은 "지난 3월 21일에도 행정안전부가 ‘공공기관 개인정보보호 종합대책’을 내놓았다"면서 "변죽만 울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진보신당은 또 정작 중요한 것은 '주민등록번호의 운영체제를 완전히 바꾸고, 그 사용범위를 제한해야 하는 것'이라면서 "당장 시급한 것은 유출피해를 당한 사람부터 주민등록번호를 변경해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진보신당은 민간영역의 주민번호 사용 금지를 주장하면서 "전 세계적으로도 한국과 같은 주민등록번호를 가지고 있는 나라는 극히 드물 뿐만 아니라, 민간에서까지 널리 활용되도록 정부차원에서 보장하고 있는 나라는 찾아볼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구글, 유튜브 등 해외 싸이트의 경우 주회원가입 절차에서 단지 본인 이메일 주소 등 최소한의 정보만을 요구하고 있다.

▲ 서울신문 4월24일자 3면.
이와 관련해 '개인정보보호는 독립된 기구에서 전담해야 한다'는 시민사회단체들의 주장이 다시금 부각되고 있다. 옛 정보통신부와 현재 방송통신위원회 등 정부부처가 정보통신 산업의 육성과 개인정보보호를 모두 관리하는 것 자체가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업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정보인권 관련 시민사회단체들은 민간과 공공 영역을 동시에 감독하는 독립적인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설립을 요구해왔다.

이를 반영해 17대 국회에는 이미 2004년 말 노회찬 의원 등이 발의한 '개인정보보호기본법' 등 각 정당별로 관련 법안들이 제출되었으나 임기말을 앞둔 현재까지 계류중이다. 개인정보 유출 피해가 확산되자 정치권에서도 '법개정' 등이 재론되고 있다. 24일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 등이 '하나로텔레콤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면서 '특단의 대책 마련'에 입을 모았다. 이에 이번 4월 임시국회에 그간 미뤄두었던 관련법안이 처리될 것인지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편 방통위는 하나로텔레콤의 개정정보 무단판매와 관련 옛 정보통신부 및 통신위원회 측 직원이 연루되었다는 경찰 수사 내용에 대해서는 공식적인 언급을 하지 않아 논란을 빚고 있다. 경찰은 담당 공무원이 경찰의 개인정보유출에 대한 단속정보를 미리 하나로텔레콤 측에 흘려준 것으로 보고 수사중이다. 한 정보통신분야 관계자는 이번 정부 발표에 대해 "정부측 관리감독의 잘못에 대한 해명도 없이 수개월이 소요되는 법개정을 내놓으면 사태가 해결되겠느냐"면서 이번 발표에 대해 '신뢰성도 실효성도 의문'이라고 회의적인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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