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영위 결과를 설명 중인 유시민(좌), 사퇴를 거부하는 김재연(가운데), 재검증을 요구하고 있는 이정희(우) ⓒ연합뉴스

통합진보당 운영위원회가 사태수습을 위한 쇄신책을 5일 결정했다. 당 쇄신을 위한 신호탄은 쏘아올린 것으로 평가된다. 조준호 대표가 통합진보당의 비례후보 선출 선거과정을 '총체적 부실부정선거’로 규정한 진상보고서를 내놓은 지 3일만이다. 중앙당 당권파인 경기동부지역 중심의 당원들과 광주전남 등 일부지역의 당권파들의 조직적 반발에도 불구하고 통과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수습은 시작됐지만, 진행이 순탄치는 않을 전망이다. 통합진보당의 앞에는 '쇄신을 통한 수습', '봉합을 통합 수습', '분당을 통한 파탄'의 길 정도가 놓여있다. 유시민 대표, 노회찬 대변인는 분당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하지만, 다가올 현실은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이다. 가장 중요한 지점은 중앙위원회 회의 결과와 비례 당선인과 후순위 명부자들의 '사퇴수용여부'이다.

이날 쇄신파는 운영위원 21명이 현장 발의한 원안이 그대로가 아니라, 삭제와 삽입, 추가한 수정안을 의결했다. 쇄신에 대해 반발하는 세력과의 20시간에 가까운 토론을 거치며 변화한 대목이다. 우선, "이번 비례후보 선출과정에 대한 진상조사위원회의 보고서에 근거하여 통합진보당은 국민들이 납득하고 신뢰할 수 있는 과감한 쇄신책과 대안을 다음과 같이 결정한다"는 원안에서 "진상보고위원회의 보고서에 근거하여"라는 대목을 삭제했다. 보고서의 일부 부실을 수용하면서도, 국민의 눈높이를 강조하는 복합적 의도로 평가할 수 있다.

통과된 수정안에는 "진상조사위원회의 보고서가 당원의 명예를 지키고 구체적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는데 일부 미흡함을 인정하고, 향후 보다 충분한 조사가 이뤄지도록 노력한다"는 조항이 추가됐다. 당내 반발 세력에게 숨을 쉴 여지를 준 대목이다. 다만, 반발세력이 진상보고서의 부실측면을 불순한 의도로 본다면 쇄신파는 조사기한의 짧음으로 인한 불가피한 측면으로 본다는 차이가 있다. 유시민 대표도 운영위 결과에 대한 기자 간담회에서 “그 분들이 지난 시기 주로 당을 책임지고 이끌던 분들이다. 원래 책임을 많이 지고하다 보면 비판을 많이 들을 수 있다. 설거지를 많이 한 사람이 접시도 많이 깨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보통 설거지 한 것 보다 접시 깬 것만 묻는다. 그래서 억울할 수 있을 것이다”고 밝혔다.

또한, 제 4조의 "차기 중앙위원회에서 당의 쇄신과 차기 당직선거를 엄정하고 공정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혁신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한다. 비대위는 현재 당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집약하고 당원의 의견 수렴을 거쳐 당헌, 당규제정, 선거관리위원회 구성, 선거시스템 구축 등을 마련하여 (6월말까지) 새 지도부 선출을 마친 뒤 해산한다"는 수정안에는 원안에 없던 '6월말'까지가 삽입됐다. 쇄신파는 긴 운영위 회의동안 입장 차이의 깊음과 더불어 향후 계획에 대해서는 구체화시킨 것이다.

쇄신파가 넘어가야 할 산 '중앙위원회, 비례 당선인과 후순위의 거취'

통합진보당의 쇄신파가 통과해야 하는 공식 일정은 5월 12일의 중앙위원회, 그리고 6월의 당 지도부 선출 선거이다. 이 과정에서 쇄신파는 당원들의 지지를 획득하여 강력한 비대위를 구성하고, 시스템 전반에 대한 쇄신책을 내놓아 지지자들의 돌아선 마음을 돌려야 한다. 또한, 비례 당선인과 후순위 명부자들의 사퇴도 이끌어내야 한다. 인천지역의 당권파와 국민참여당세력 그리고 진보신당 탈당세력, 민주노총 등의 지지단체의 연합군으로 엮여있는 이들은 지난 운영위원회에서는 '비례대표 선거 진상조사위원회 결과보고에 대한 후속조치의 건’만 의결했기 때문에, 남은 강령 및 당헌당규 개정안 등을 결정해야 한다.

운영위원회에 대한 인준권을 갖는 중앙위원회에도 가장 중요한 대목이다. 노회찬 대변인이 7일 오전 CBS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비례당선인이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미궁으로 빠져든다고 본다. 당이 위기를 다시 반전의 기회로 삼아 제대로 된 진보정당으로서 거듭날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가 이번 운영위운회의 결정사항이기 때문에 중앙위원회에서 좀 깊은 논의를 통해서, 이것이 당원전체의 뜻으로 확인되는 것이 필요하다”는 발언도 같은 맥락이다.

통합진보당의 수습정도는 남은 회의결과와 비례명부 당선인과 후보자들의 거취결과 등에 따라 판단할 수 있다. 공직선거법 제191조의2(당선인 사퇴의 신고)는 비례당선인의 사퇴는 본인의 결정과 중앙당의 승인으로만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임기 개시 이후에는 자진탈당만이 유일하다. 19대 개원 이후의 사퇴는 불가능하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통합진보당 쇄신파가 어려운 점은 새누리당처럼 강력한 권한과 조직력도 없고, 민주당처럼 강력한 세력과 떠오르는 주자도 없다는 것이다. 결과론적으로만 볼때, 흥미로운 점은 쇄신을 통한 수습의 예는 새누리당이 보여줬고 봉합을 통한 불편한 상황의 지속은 민주통합당이 보여줬다는 점이다.

새누리당은 1인결정체제인 점과 상대세력이 두고보자를 가능케 했던 총선이라는 시험대가 있었고, 민주통합당은 권력분점상태이나 강력한 세력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반면, 통합진보당은 권력분점상태는 민주당과 비슷하나, 중앙당의 권력을 잡고 있는 당권파가 쇄신의 반발세력이다. 또한, 새누리당과 다르게 집단지도체제이다. 새누리당은 한지붕한가족, 민주통합당은 다가구주택, 그리고 통합진보당은 한마당 세집으로 비유할 수 있다. 새누리당은 바깥에 큰 집이 있어 싸워도 파장은 없고, 민주통합당은 큰 집이 없어 내부에서 어떻게든 정리를 하며 살아야 한다. 통합진보당은 대문은 같은데, 들어가면 집이 세 개라 들어가는 문이 다르다. 제일 큰 집은 한지붕 네 가족정도가 모여산다.

반발세력의 태도와 넘어가지 말아야 할 강 "법에 기대지는 말아야"

당권파와 일부 지역 당권파가 중심인 반발세력은, 6일 비례명부 3번인 김재연 당선인의 ‘비례의원 사퇴 불가’ 의지 표명에 이어 7일 이정희 대표는 ‘진상조사위의 철저한 재검증과 진상보고서 검증을 위한 공청회을 제안’으로 쇄신에 맞서고 있다. 당권파의 국면전환시도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소속비례의원의 버티기와 진상보고서 흠집내기와 원점으로 되돌리기는, 중앙위원회 등 모든 과정에서 이들의 주장으로 나타날 것을 예고하고 있다.

여론동향 파악의 목적도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6일 김 당선인의 입장 표명과 달리, 이 대표의 입장 표명은 당권파의 입장이 정리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같다. 김 당선인의 사퇴불가는,‘손수조’의 뻔뻔함과 ‘문대성’의 버티기를 보는 것 같다는 등의 부정적인 의견이 더 많이 나타났으나, 이 대표의 주장은 중앙위원회에서 결판 날 것으로 보인다.

당권파의 기억은 아마도 2007년의 분당전 상황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쇄신파에 속하는 비당권파 핵심관계자는 “어찌보면 2007년 분당 전 상황의 재판처럼도 보인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많이 다르다. 그때는 중앙당 당권파와 대부분 지역의 당권파들이 같은 입장이었고, 지금은 아니다. 그때의 문제는 이념적인 부분도 있었지만, 지금은 '상식'과 '몰상식'의 싸움으로 내용은 많이 다르다고 볼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재연의 사퇴불가에 대해 이 관계자는 “운영위결정은 비례명부 4,5,6번과 12,14,18번은 전략공천은 그대로 두고, 나머지 사퇴였다. 그래도, 3번의 청년명부대표로 등재된 김재연과 7번의 장애인명부로 등재된 조윤숙 정도는 상황따라 변동의 여지가 있었을 것이다. 당원과 지도부가 선택한 전략명부로 볼 수 있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어쩌면 타협지점이었을 지도 몰랐다”고 파악했다. 그는“이렇게 되면 타협카드일 수 있었던 '김재연'은 당권파가 스스로 버린 카드가 된 셈”이라고 평가했다.

당권파에게 남은 카드가 많지 않아 보인다. 회의장에서의 격렬한 토론과 개인적인 토론들은 얼마든지 열려있는 상태다. 이들 세력이 하지말아야 할 행동은 소속 비례당선인들과 후보의 무한정 버티기와 법에 판단을 요청하는 정도다. 비례당선인의 무한정 버티기는 당원들의 탈당과 지지자들로부터의 버림을 불러 일으킬 것이고, 운영위결정 효력정지 가처분신청 등의 법에 기대는 방식은 상황전체를 공멸상태로 몰아갈 것이다.

실망하며 돌아서는 당원, 지지자, 지지단체

이번 사태해결 과정에서 최대변수 중 하나는 당원과 지지자(단체)의 태도이다. 다수의 여론과는 다르게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의 쇄신파와 반대파의 세력분포는 6:4 전후로 알려졌다. 패권적 성향은 여론을 무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지금까지 보여준 태도로 볼 때 통합진보당 당권파는 패권적 성향이 두드러진다.

통합진보당 중앙당 게시판, 다음 아고라 등의 인터넷과 트위터에는 간간히 ‘실망’이라며 ‘지지’를 접고 탈당한다는 의견이 간간히 올라오가 시작했다. '쇄신파에 힘을 몰아주며 끝까지 지켜본 후 판단하겠다‘는 일부 당원들의 태도에 비해서는,연합군으로 이루어진 쇄신파에게 불리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통합진보당은 "벌써 며칠째 탈당멘션 주시는 분들이 날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습니다. 너무 죄스럽고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허나, 건강하고 상식적인 당원이 한분이라도 더 계셔야 지금의 혼란 잠재우고 진정한 통합진보당 쇄신 이룰 수 있습니다. 부디 떠나지 말아주십시오"고 트윗을 남겼다.

참 아이러니 한 것은, 탈당입장을 밝히는 당원들의 대부분의 이유는 이정희 당대표에 대한 실망이다. 이정희 당대표는 지난 운영위원회에서 자기의 결정은‘당원’에 대한 존중과 ‘당원’을 위하여 라고 거듭 되풀이하여 강조했었다. 결과적으로 그가 말하고 있는 '당원'은 '당원'일반은 아닌, 자파'당원'일 뿐인 것이다.

최대 지지단체인 민주노총의 거취도 주목된다. 민주노총은 3일 “통합진보당 역시 인적쇄신은 물론 모든 것을 바꾼다는 각오로 재창당 수준의 고강도 쇄신을 촉구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민주노총은 ”만약 통합진보당이 미봉책으로 당면 사태를 수습하려 한다면 진보정당으로서의 정체성과 민중에 대한 희망을 상실한 것으로 간주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강도 높은 조치를 취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얼렁뚱땅 넘어가면, 배타적 지지를 접고 탈당하겠다는 경고인 셈이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현장의 목소리를 트위터로 전했다. 김 지도위원은 ‘현장에 가보면 활동가들 어깨가 바닥까지 쳐져있다. 조합원들이 후원금 돌려달라, 탈당한다 난리란다. 가족들한테도 '쪽팔린다' 한단다. 회사관리자들까지 비웃는단다. 도대체 언놈 말이 맞는건지 입달렸으면 말이나 해보라 한단다. 현장이 무너진 자리, 종파만 독버섯처럼 자란다‘고 트위터에 남겼다.

권영길 전 의원은 ‘머릿속이 하얗게 뻥 뚤려 있는 것 같네요. 멍합니다’ ‘통합진보당이 지금 걸어야 할 길은 딱 하나입니다. 죽는 길이 사는 길이고 살려고 하는 길이 죽는 길입니다. 죽어야 삽니다’고 트윗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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