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 비례대표 선거과정의 부실부정 사태 논란을 매듭짓기 위해 열린 전국운영위원회는 통합진보당의 능력과 상황을 가장 날것으로 드러냈다. 대표단은 합의된 사태 수습안을 내지 못했고, 의장이 중심을 잃고 의사진행을 방해하는 엽기적인 사태를 불러일으켰다. 또한, 특정 세력은 방청객의 명분으로 밤새 소란을 피우며 회의 진행을 방해했다.

▲ 통합진보당 이정희 공동대표가 4일 국회 도서관에서 열린 전국 운영위원회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4일 오후 2시 시작된 운영위원회는 정회를 거듭하며 19시간이 지난 다음날 오전 9시가 가까워질 때쯤 이정희 당대표가 당대표직을 사임해 유시민 당대표가 사회봉을 넘겨받았다. 유시민 대표는 그동안의 토론을 종결하고 사태수습과 관련된 안건의 표결 처리를 시도했다. 허나, 안건처리는 밤새 회의장에 있던 일부 당권파들의 야유와 고함으로 무산되었다. 유 대표는 정회를 선언하고, 문자 등의 방법으로 오후 3시 운영위의 속개를 알렸다.

그러나 3시경 다음 회의 장소에 들어가려던 대표단은 당권파 70명 정도의 젊은 당원들에게 제지당했다. 근처에서 대책을 논의한 대표단은 전자투표 등의 방법으로 표결을 강행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속개 예정인 전국운영위원회에서는 제출된 사태수습 원안에 '진상보고서가 당원의 명예를 위한 구체적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는 데 미흡함을 일부 인정하고 충분한 조사가 이루어 지도록 노력한다'는 새로운 안을 추가하고, 비대위의 임기를 '6월말 까지'로 내용변경을 한 수정동의안을 처리할 예정이었다. 당권파의 문제제기를 일부 받아들인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21명의 운영위원들이 제출한 원안은 ▲ 사태수습 방안을 마련하여 중앙위 보고 후, 공동대표단 총사퇴 ▲ 전략공천을 제외한 비례대표 당선자 및 후순위 총사퇴 ▲부실선거 관련자 당기위 회부 ▲ 당헌ㆍ당규 제정, 선거시스템 구축, 새지도부 선출을 임무로 하는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은 중앙위원회 인준한다 등의 내용으로 이루어졌다.

대표단의 사퇴

이 날 이정희 대표는 사임했고, 유시민 대표는 책임을 지고 비례대표 순위를 반납했다. 그리고, 유 대표는 이 대표 대신, 의장을 맡으며 "이것이 마지막이 될것이다"고 사퇴를 예고했다. 조준호, 심상정 공동대표도 회의가 끝난 후 사퇴를 표명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회의는 4인의 공동대표단이 합의, '사태수습방안'을 내놓지 않은 채 진행되어 난항을 예고했다. 결국 논란을 일으킨 조준호 대표, 중심을 잃은 이정희 대표, 회의에서 인식의 차이를 느낀 듯한 심상정, 유시민 대표는 사태를 말끔하게 처리하지 못했다.

봉합할 수 없는 인식의 차이

'지갑을 열어본 행위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부실하게 조사해서 명예를 훼손당한 당원들이 있다. 그래서 이 조사는 무효다. 그 사람들의 명예를 지켜달라' <당권파 - 선 재조사 후 사태수습>

'자기 것이 아닌 지갑을 열었다는 행위는 있었으나, 지갑의 무엇을 훔쳤는지는 알 수 없다. 지갑을 열었다는 자체가 문제다'<반대의견 - 선 무한책임 후 조사확대 및 해결책 마련>

진상보고서를 둘러싼 기본적인 인식 차이도 드러났다. 한쪽은 상식과 국민의 눈높이로 볼때, 사실로 인정되는 진상보고서의 내용만으로도 당은 무한 책임을 져야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당권파는 한 명의 당원 명예도 지키기 위해 진상조사보고서를 인정할 수 없다는 태도이다. 무한책임을 져야한다는 입장도 진상보고서의 내용에 대해 일부 부실함을 인정은 했다.

굳이 언론의 표현을 빌리면, 경기동부와 광주전남 지역의 당권파와 인천지역 다함께 국민참여당세력 진보신당 탈당파로 확연히 나뉘었으며, 어중간한 포지션은 울산지역의 당권파 정도가 취했다.

진상보고서는 인정할 수 없다. 새로이 진상조사위원회 구성하여 보고서를 만들어 재논의해야 한다 <당권파>

‘진상보고서에서 반박의 여지가 없는 부문만으로도, 지도부 총사퇴 경선비례후보 사퇴해야 한다’ <반대의견>

사태수습을 둘러싼 기본적인 해결방식에서도 차이는 확연했다. 당권파가 회의에서 내세운 논리들은 안건자체의 당헌위반이었다. '현재의 지도부는 5월 말까지로 임기가 못박혀 있는 과도기의 임시지도부다. 고로, 사퇴를 운영위가 다룰 수 없다'는 논리였다. 또한, '비례후보는 전국의 당원이 뽑은 것인데, 운영위원들 개개인은 당원이 뽑은 사람이 아니다'는 논리로 전국운영위는 그러한 권한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하려면 당원총투표를 하자는 것이었다.

특정계파는 있었다

‘당내에 특정계파는 없다’. 이정희 당대표가 4ㆍ11총선 야권연대 후보 선출과정에서, 자신이 속한 관악을 지역의 부정선거에 대한 책임을 지고 후보를 사퇴하며 한 발언이다. 이날 운영위원회에서는 특정계파의 존재가 적나라하게 확인됐다. 회의의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킨 일단의 방청객들, 이정희 당대표, 우위영 대변인 등은 자기의 논리를 관철시키기 위해 역할 분담 속에서 행동했다. 회의의 마지막까지 방청객이란 이름으로 자리를 지킨 이들은, 당권파의 발언 등에 환호와 박수를, 자기와 다른 발언 등에는 야유와 고함 등으로 대응했다. 이정희 당대표는 운영위원들의 방청객 자제 및 회의장 밖으로 내보내는 요구에 대해 '나가세요'란 말 뿐 현실적인 제지는 없었다. 우위영 대변인은 시종일관 반대 운영위원들의 의견을 반박하거나 무시하거나 당대표를 보호, 지지하는 역할을 자임했다. 당의 입인 대변인은 기본적으로 당의 회의에서 발언을 자제하는 게 관례면 관례다.

이정희의 몰락

인터넷방송을 본 당원 및 일반지지자들을 가장 당혹스럽게 한 이는 이정희 대표였다. 이정희 대표는 세 가지 정도의 상식적이지 않은 태도를 보임으로써 반대파와 인터넷으로 시청하던 지지자들의 공분을 샀다.

먼저, 이정희 당대표는 회의 시작 후 14시간이 지난 새벽 1시경부터 나오기 시작한 운영위원들의 표결처리 요구를 무시하며 계속 회의를 진행해 나갔다. 조승수, 윤난실, 한정희 등 운영위원들의 표결처리 요구를 계속 무시한 상태에서 우위영 등 당권파들은 당헌위반 안건불성립 등 같은 말을 반복하거나, 수정안을 제시하는 등으로 시간을 끌었다. 결국은 참지 못한 인천지역의 핵심으로 알려진 김성진 운영위원이 “이러면 나도 집에 갈지 말지를 결정해야겠다”며 “의장, 계속 이런 식으로 회의를 진행할 것이냐”고 묻자, 이정희 당대표는 “생각을 모아보자”며 표결을 통한 회의 정리를 우회적으로 거부했다.

또한, 당권파 당원과 지지자들로 보이는 방청객들의 환호, 박수 그리고 야유 등의 회의방해는 밤새 진행됐다. 운영위원들이 방청객들을 내보낼 것을 요구하자 이 대표는 ‘나가세요’, ‘하지마세요’란 말을 반복할 뿐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더욱이 결국 참지 못한 박상철 금속노조위원장이 ‘방청객을 다 내보내고 회의를 진행하자’는 안을 내놓았으나 무시되고 방청객들의 소란은 계속되었다.

새벽 3시경이 되어서 이정희 대표는 표결은 없으며 자신은 생각을 하나로 모았으면 좋겠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속마음을 드러냈다. 이정희 대표의 요구는 진상보고서 불인정과 새로운 진상보고서 작성, 이후에 재논의로 요약된다. 회의의 의장이 표결처리를 통한 의사진행을 방해하면서 시간을 끈 모양새다. 결국 이정희 대표는 대표직을 사임하며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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