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노조의 파업이 오는 8일로 100일을 맞는다. 노조는 “김재철 사장을 몰아내지 않으면 끝날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장기화된 파업으로 노사 모두 적지 않은 상흔을 입은 게 사실이다. 더욱이 조직개편, 인사 등 김재철 사장의 행보가 날이 갈수록 강경해지고 있어 파업을 이끌고 있는 노조로서는 적지 않은 부담을 느낄 것으로 보인다.
당초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는 지난달, MBC 대주주이자 사장 선임 권한을 갖고 있는 방송문화진흥회 구조 개혁 쪽으로 투쟁 방향을 변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최근 김재철 사장이 친사장 행보를 보였던 간부들의 파격 승진 인사를 내는가 하면 구성원들의 격한 반대에도 조직 개편을 강행해 노조의 투쟁 방향 변화 자체가 머쓱해졌다. 더욱이 MBC는 특보를 내어 “이제 결단을 내릴 때”라며 거듭 업무 복귀를 호소했지만, 현 상황에서 노조가 아무런 명분 없이 파업을 접고 복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MBC “결단할 때”라며 업무 복귀 거듭 호소
MBC 역사상 최장기 파업 기록인 52일을 넘어 100일 가까이 이어지고 있지만 회사 쪽은 여전히 강경하다.
MBC는 지난 2일, 사장·부사장 및 본부장 이름으로 특보를 내어 “노조원들이 투쟁을 계속하는 동안 올 초 상승세를 타던 MBC의 프로그램 경쟁력은 급전직하 추락했다”며 시청률 하락, 광고 사정 악화 등을 언급했다. 더 나아가 “이것이 여러분들이 바라는 결과”냐고 물은 뒤 “MBC 51년 역사 동안 수많은 선배님들이 쌓아온 전통이 2012년 노조의 최장 파업으로 크게 훼손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MBC ‘윗선’에서 나온 것으로 추측되는 온갖 흑색선전들도 난무하는 등 고도의 심리전(?)까지 펼쳐지고 있는 모양새다. 새누리당의 압승 이후 이 같은 소문들은 더욱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최근 MBC 내부에는 “회사 쪽이 노조와 물밑에서 협상중이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이에 노조는 구성원들에게 단체 문자메시지를 보내 “거짓선전에 절대 속지말라”며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특히, 예능 프로그램 폐지가 자주 거론되고 있다. “<무한도전> 폐지 이야기가 임원회의에서 거론됐다”는 설에서부터 <놀러와> <황금어장- 라디오스타> 폐지까지 한 번씩 언급되는 등 MBC 주요 예능 프로그램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이에 대해 한 노조원은 “실제로는 아닌 거 같은데 유독 예능 부문에 대한 마타도어(흑색선전)가 심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용마 MBC노조 홍보국장도 이와 관련해 “조급증의 발로라고 본다”며 “여당 승리로 총선이 끝난 뒤 곧 파업이 끝나려니 기대를 가졌다가 지금 전혀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니까 흑색선전을 하고 있는 거 같다”며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회사도 그만큼 자기들이 힘들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변수는 ‘여론’ … 대구-경북 새누리당은 ‘싸늘’
구성원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MBC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김재철 사장이지만 변수는 있다. 여론이다. 특히, 현재 대구-경북 그 가운데서도 새누리당 일부 의원들이 김재철 사장에게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는 점은 김 사장 쪽에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김재철 사장은 지난달 19일 인사를 통해 대구MBC 사장에 차경호 전 보도본부장을 내정했으나, 명확한 이유 없이 현재까지 주주총회는 열리지 않고 있다. MBC는 “소액 주주 관련 서류로 인해 주주총회가 연기됐다” “주주총회 사무국인 대구MBC 경영국 소속 보직자들이 보직을 사퇴하면서 업무가 마비됐다”고 밝혔지만, 주주총회가 열리지 못하고 있는 속사정은 이와 다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실제, 대구에서는 대구에 아무런 연고가 없는 차경호 전 보도본부장을 신임 대구MBC 사장에 내정한 김재철 사장의 행보에 대해 대구 경북 쪽 일부 새누리당 의원이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하면서 주주총회가 열리지 못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즉,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의 정치적 밑바탕인 대구MBC에 대해 일방적으로 인사를 단행한 것은 MB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은 지역 정서상 불편한 일이라는 것, 동시에 박근혜 위원장의 대선 행보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견해가 실제 지역 의원들 사이에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파업 100일, 녹록치 않은 현실
강경 행보들이 잇따르고, 파업을 둘러싼 흑색선전이 난무하고 있는 이 같은 상황에서 파업을 이끌고 있는 노조 집행부의 고민은 클 수밖에 없다. 3달 넘게 월급을 받지 못하면서 구성원들의 생활고도 극심해 졌다. “MBC 근처 은행들이 대출을 받기 위해 온 사람들로 성황을 이루고 있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올 정도다.
더욱이 예외적이라고는 하지만 각 부문 별로 업무에 복귀하는 구성원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특히 아나운서 부문의 경우, 최근 양승은 아나운서와 최대현 아나운서 등 두 명이 개인적인 이유를 들어 파업을 접고 업무에 복귀했다. 이 가운데 양승은 아나운서는 회사로부터 자리 제안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MBC는 이에 대해 “부문 별로 (복귀자들이) 많지는 않다”면서도 “다행스럽게도 일부 직원들은 MBC가 망가지는 것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면서 업무로 복귀하고 있다”며 크게 반기는 분위기다. 그러나 현재까지 파업 장기화에도 불구하고 구성원들의 집단 이탈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파업 참여 인원에 대해 MBC는 “대외비”라며 구체적인 언급은 피했지만, 노조에 따르면 파업 돌입 초반 570명에서 줄곧 늘어 최근까지 750~770명이 파업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럼에도 MBC노조는 “노선의 변화 없이 투쟁을 이어겠다”는 입장이다.
이용마 노조 홍보국장은 “김재철 사장이 조직 개편과 인사를 통해 사실상 퇴로를 막았다고 생각한다. (파업을 풀고) 복귀하려고 해도 더 이상 갈 수 없도록 한 상황”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복귀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오히려) 김재철을 몰아내지 않으면 끝날 수 없다는 인식이 노조원들 사이에 확실해 졌다”고 말했다.
MBC노조는 더 나아가, 무용가 J씨와 관련한 김재철 사장의 개인 비리 의혹을 계속해서 공개하는 동시에 KBS노조와 함께 공동문화제를 하는 등 대내외에 김재철 사장을 압박하는 쪽으로 투쟁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그는 “노조에 무용가 J씨와 관련한 제보가 계속 이어지고 있어 꾸준히 취재해 공개할 것이고, 그 동안 우리만의 집회에서 투쟁을 했다면 향후에는 외부와 적극적으로 결합하는 등 양방향으로 투쟁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외연을 확장하기 위한 움직임, 언론노조 소속 KBS 새노조 뿐 아니라 KBS 기존 노조와의 연대도 눈에 띈다. 정영하 MBC본부장은 지난 3일 열린 KBS 기존 노조의 파업 출정식에 참석해 “이제 KBS노동조합까지 명실상부 정권의 방송에서 벗어나겠다고 일어났다”며 “MBC와 KBS가 똘똘 뭉치면 어떤 난관도 극복할 수 있다”고 연대를 강조했다.
하지만 MBC노조가 KBS 기존노조와 협력을 하려는 행보에 대해서는 '지배구조개선'이란 공동의 목적을 관철시키기 위한 연대전략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지배구조개선'을 명분삼은 출구전략을 위해 공정방송투쟁을 외면해온 KBS 기존 노조측에 기대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적 시각도 언론운동진영 내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파업 100일을 앞둔 MBC노조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