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 부정선거 사건을 놓고 한겨레와 경향의 색깔이 다르다. 한겨레는 부정선거를 문제삼기보다 당내 갈등을 조명하고 경향은 부정선거 자체를 문제시 삼는다. 왜 이런 차이가 있을까? 잘 생각해봐라.”

“한겨레 1면을 봐라. 이정희 “당권부탁” 유시민 “자신없다” 이청호 “비례대표 1~3번 사퇴시켜야” 1·2·3번 무효땐 7·8·9번이 그자리 승계받아 부정선거 문제점보다는 어떻게 해결할까 수습 방안에 대한 이야기만 1면에 있다.“

“한겨레 까기도 지치지만 저 꼼수들을 그냥 넘길 수는 없지. 이정희의 자기희생 vs 무능한 겁쟁이 유시민을 대비시키는 저 타이틀과 사진배치, 개인책임은 없다는 중간 타이틀에 노출된 기사첫머리는 패권파의 해명 요약본”

어제 조간신문에서 단연 화제가 될 수밖에 없는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 부정 파문에 대한 양대 진보언론 보도를 비교한 몇몇 트윗들이다. 이 트윗들은 한겨레는 진영논리에 충실하고 경향신문이 그나마 그에서 자유롭다는 인식을 담고 있다. 이 인식은 어느 정도까지 사실일까? 사실 어제 신문에서 경선 부정 파문을 더 대대적으로 다룬 것은 한겨레였다. 그러나 보도기조를 보면 이들의 지적에 일견 수긍이 가는 것도 사실이다. 한겨레 기사가 비판보다는 수습책 제시에 더 치우친 느낌이 있고, 특히 인용된 마지막 트윗에서 지적되었듯 인터넷 편집에선 그런 경향성이 더 확연하게 보였다.

익명의 한겨레 기자는, “한겨레 입장에선 억울한 측면이 있다. 우리는 그저께 신문에서 경향신문보다 한발 먼저 이미 통합진보당을 세게 비판했다. 세게 비판한 다음에 어제 수습책을 고민하자고 얘기한 건데 어제 신문만 비교해서 얘기하면 그런 편견이 작동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겨레가 다른 사안에서도 경향신문보다 한 박자 빠른 비판을 한 후 그 후엔 정연한 근거를 가진 비판보단 민주통합당이나 통합진보당에 대한 충고를 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느냐는 기자의 지적에 대해선 “그렇게 보일 소지가 있다”고 인정했다. 익명의 경향신문 기자 역시 “우리가 좀 느린 부분이 있다. 느리기 때문에 오히려 원칙적 비판을 한 면이 있다. 근데 세부적으로 보면 한겨레 기사와 기조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설명한다.

▲ 오늘자 한겨레 1면(왼쪽)과 경향신문 1면(오른쪽) 비교. 한겨레가 '부정'의 내용보도에 치중했다면 경향신문은 좀더 적극적으로 당권파의 현실인식 수준을 까발리고 공격하고 있다.

오늘자 신문에서 그 차이는 좀 더 확연하게 드러난다. 물론 양 신문 모두 1, 2, 3면을 동원해 통합진보당 상황을 심층 취재하고 비판한 만큼 한겨레가 이 문제를 가벼이 여긴다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경향신문의 1면과 사설이 명백하게 ‘당권파’를 지목하고 있다면 한겨레는 ‘우리 모두의 책임과 자기반성’을 말하려는 느낌이다. 이에 대해 양 언론사 상황을 모두 잘 아는 관계자는 “한겨레는 무슨 사건이 터지면 ‘우리가 중심을 잡지 않으면 진보진영을 옹호할 세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경향은 사건이 터졌을 때 ‘진보의 내부비판이 없으면 일이 안 된다’고 보는 쪽이다. 진보진영의 ‘맏형’ 노릇을 하려는 한겨레의 태도가 그런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 같다”고 설명한다.

이번 사건에서 한겨레의 그런 분위기를 드러내는 것으로 많이 거론되는 칼럼은 성한용 정치부 선임기자의 칼럼이다. 그는 5월 3일자에 실린 <통합진보당 당당하게 거듭나야 한다>에서 통합진보당에 대한 애정어린 비판을 시도한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구절은 그 애정과 신뢰가 굳이 이 국면에서 이렇게까지 표출되어야 할까라는 의문을 던져준다.

“같은 말이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맥락이 달라진다. 통합진보당에서 난 사고는 민주적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아 벌어진 일이다. 박근혜 위원장의 독선적 리더십으로 똘똘 뭉친 새누리당이 과연 민주적 절차의 부작용에 대해 언급할 자격이 있을까?

지금 통합진보당 구성원들 중 상당수는 젊은 시절 공동체의 가치를 개인의 출세보다 우선순위에 두고 투쟁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이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고 노동 현장에 뛰어들었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민주화는 앞당겨졌다. 통합진보당을 비난하는 사람들 중에는 대학 시절 동료들이 불의한 권력에 맞서 싸울 때 개인의 영달을 위해 도서관에 틀어박혀 고시 공부를 했던 사람들도 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기 바란다.“

▲ 5월 3일자 한겨레 성한용 칼럼. 이런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서도 굳이 통합진보당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그 구성원들이 새누리당보단 낫다는 사실을 강변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한겨레의 상황을 ‘맏형 콤플렉스’로 볼 수 있다면 경향신문의 상황은 이대근 편집국장과 연결지어 생각해 보아야 한단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취임한지 일 년여가 되었어가는 경향신문 이대근 편집국장은 진보적 정치학자인 최장집의 제자이며 레디앙에 진보정당 운동에 관한 글을 기고하는 등 기본적으로 민주당보다는 정치적으로 좀 더 왼쪽 성향이다. 그래서 그가 취임했을 때 경향신문이 한겨레와는 조금은 다른 길을 갈 거라는 예측이 많았다. 트위터리안들의 반응은 경향신문이 그런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일정 부분 성공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앞서 비교했듯 통합진보당 경선 부정 파문에 대한 비판에서 경향신문이 한겨레보다 더 선명하게 각을 세운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총선 이후 보도가 아닌 선거보도 국면에서 실질적으로 경향신문이 얼마나 한겨레 보도와 차별화를 꾀했는지를 평가하자면 애매한 구석이 많다.

일단 경향신문의 차별화를 지지하는 논거는 논조보다는 스타일이다. 특히 1면 기사의 파격이 별도의 분석대상이 될 만큼 한겨레와는 다른 느낌이다. 유권자들에게 널리 회자된 총선날 1면의 파격도 있고, 사내에서도 “대체 이게 왜 1면인지 모르겠다”는 비판을 받은 나꼼수 비판 삼국카페 성명서를 1면에 실은 사건도 있었다. 전반적으로 다소 정론지라는 중압감에 경직된 한겨레와는 달리, 종종의 일탈을 통해 영향력을 확보하려는 마이너언론의 전략을 드러내는 파격이 있었다. 경향신문 기자들은 “그런 것이 이대근 편집국장의 스타일인 건 맞다”라고 입을 모은다.

▲ 4월 11일자 경향신문 1면. 총선날 아침 경향신문은 1면의 대부분을 여백으로 남기고 중간에 투표를 독려하는 이미지만을 삽입하는 파격적인 편집을 보여줬다.

그러나 특히 총선 국면의 정치 관련 보도에서 경향신문이 얼마나 한겨레와 차별성을 보여줬는지는 의문이다. 사설의 수준에선 민주통합당이나 통합진보당에 대해 정치공학적 충고보다 좀 더 원칙적인 비판을 하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기사의 영역에선 크게 차이가 없었다는 시선도 많다. 한 기자는 “이대근 편집국장 취임은 경향신문의 방향을 결정한 하나의 선택이라기 보다는 ‘기수’별 인력을 생각해 볼 때 주어진 유일한 길이었다. 신문은 결국 부장들이 만드는 건데 이대근의 색깔이 부장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는 힘들다”라고 주장했다. 이대근의 색깔이 지면에 반영되기는 하지만, 친노 성향 부장들의 색깔도 함께 반영되니 지면에 일관성이 없어진다는 시선이다. 다른 기자 역시 ”이대근 편집국장의 기조나 노선은 젊은 기자들이 많이 동의한다. 그러나 다른 데스크들의 생각이 그렇지 않다 보니 보도가 혼란스러운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어떤 기자는 “이대근 국장은 야권연대만 중시하는 게 아니라 진보신당이나 녹색당 등도 주목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고 설명했지만 이 기조가 경향신문의 총선 보도에 반영되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사실은 진보언론들이 ‘통합진보당’을 ‘진보당’으로 표기해달라는 요청에 부응한 것 자체가 진보신당의 입지를 결정적으로 훼손했는데, 이 점에 있어 경향신문이 한겨레보다 나은 점은 없다. 또 미디어스가 총선 국면에서 줄곧 지적했듯 ‘진보당’으로 표기된 통합진보당조차 선거 보도에선 민주당에 대해 크게 소외받았던 것이 객관적인 현실이다. 진보신당과 녹색당에 관한 기사는 일간지가 아니라 주간경향에서 겨우 다뤄졌다. 그러나 그렇게 따지면 한겨레21 역시 일간지 한겨레에서의 ‘배제’에 비하면 소수정당을 충실하게 다뤘다.

▲ 진보신당 홍세화 대표가 어제 올린 트윗

위 이미지는 한겨레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던 진보신당 홍세화 대표가 어제 올린 트윗이다. 홍세화 대표는 총선 전에도 진보신당과 사회당의 합당 소식을 전혀 전하지 않는 ‘진보언론’의 현실을 개탄했다. 익명의 한겨레 기자는 “사내에 홍세화 선배를 존경하는 이들이 많고, 젊은 기자 중에선 그의 비판에 울림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데스크는 아닌 거 같다. 우리 데스크가 저쪽(경향신문)보단 좀 더 동질적인 거 같다”고 말했다. 민주당 지지, 친노, 야권연대 중시 성향이 한겨레를 특징짓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향신문 역시 이대근 편집국장을 필두로 그 흐름에 동의하지 않는 조류가 일부 존재한다는 것이지 저 성향을 크게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한겨레의 분발을 촉구하기 위해 경향신문의 분전을 평가할 수 있는 소지가 없는 것은 아니나 큰 틀에선 ‘오십보 백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 진보신당 홍세화 대표는 이미 3월에 진보신당과 사회당의 합당소식을 전혀 다뤄주지 않는 진보언론에 대한 섭섭함을 표시한 바 있다.

한 익명의 한겨레 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한겨레가) 정치허무주의와 냉소주의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선거 때만 되면 진보정당은 사라지고 민주당만 남는다. 그렇다고 민주당을 찬양만 할 수 없으니 충고도 하고 비판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에겐 민주당에 대한 불만족스러움, ‘그 놈이 그 놈이다’란 감정만 남는다. 민주당에서 진보정당으로 이탈하는 표를 안간힘을 다해 막는 게 당장 먹기엔 단 곶감일지 모르지만 그런 보도행태를 반복한 결과가 지금의 허무와 냉소 아니겠는가”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한겨레만의 책임일 수 없다는 것이다. 경향신문이 그와는 다른 기조로 한겨레와 경쟁하려 하지만, 그렇다고 한겨레의 영향력을 반전할 만한 유의미한 차이를 드러내지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의 기자들은 그런 부분에서 미디어스와 같은 매체비평지들의 각성을 주문했다. 한 기자는 “자꾸 한겨레와 경향만 비교하고 비평하니 두 신문사가 진보언론은 자기들 밖에 없다는 자뻑에 빠진다. 사실 최근 신문을 두고 보면 한국일보나 머니투데이가 진보의 관점에서 볼 때도 더 잘 만든 경우가 있었다. 이런 시도, 조류를 매체비평지가 평가해주면서 한겨레 경향의 활동을 비판적으로 평가해야 하는데 두 신문 보도만 관성적으로 비교하니 긴장감이 없다”고 설명했다. 확실히, 굳이 편집국장을 비교한다면 최근 편집국장에서 해임되면서 논란이 된 ‘이충재 체제’의 한국일보가 ‘이대근 체제’의 경향신문보다 더 선명한 변화를 보여주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머니투데이의 경우 총선 국면에서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분석하지 않은 진보신당 총선주자에 대한 분석기사를 썼는데 이는 진보신당 측에서 두고 두고 인용하는 기사였다. 진보언론들이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 야권연대, 친노 정도의 정치공학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다른 언론들의 이와 같은 참신한 시도들을 조명해 주는 작업이 필요했는데 시민들도 매체비평지도 그런 역할을 잘 해주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당연히 미디어스도 이런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기자도 매체비평을 하다 보면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조중동’과 ‘한경’까지 읽게 되는 경우가 많고 '한국일보'조차도 별러야 겨우 읽게 된다.

▲ 머니투데이 3월 12일 기사. 오히려 한겨레와 경향신문에서 진보신당은 이런 초점으로 보도된 적이 없다.

1988년 창간 때부터 사실상 사회운동에 가까웠던 한겨레와 1998년 사원주주회사로 새출발한 후 나름의 고민과 부침을 거듭했던 경향신문의 활동을 폄하할 수는 없다. 그러나 2001년 김대중 정부의 세무조사 이후 ‘조중동’이 하나로 묶이게 되면서 한겨레와 경향신문이 ‘진보’의 포지션을 다소 손쉽게 점유하게 된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동아일보와 한국일보가 점유하던 중도파 담론은 사라지고 ‘조중동 vs 한경오’의 구도로 매체의 당파성이 극단화되었다. 이 와중에 한겨레와 경향신문의 경쟁도 관성화되고 있고 기타 언론의 시도 역시 포털사이트와 트위터를 통해 뉴스가 소비되는 시대에 제대로 된 주목을 못 받고 있는 상황이다. 트위터리안들이 하듯 한겨레와 경향의 차이를 드러내고 한겨레를 비판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단순비교를 넘어 좀 더 폭넓은 맥락을 고려하는 비평과 고민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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