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얘기하기 어려운 주제다.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부정선거 의혹에 대한 얘기다. 한국의 진보정당운동을 고민하는 세력의 일원으로서, 한 때는 함께 하나의 진보정당 안에 있던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집단의 일원으로서, 내가 지지하는 정당을 등록취소에 이르게 하는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어낸 정치인들이 선택한 정당의 치부에 대해 말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동시에, 지금까지 내부에서 비판하고 이것에 대한 극복을 이야기해왔던 문제가 국민의 다수 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책임있는 정치세력으로서 당연히 져야 할 책임을 지지 않는 것처럼 비춰지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안타까움과 함께 ‘참 변하지 않는구나.’ 하는 구질구질한 감정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 통합진보당 부정경선 의혹 조사 발표 ⓒ연합뉴스

소위 패권주의 문제는 2007년 민주노동당 분당의 결정적 사유였다. 여기서 패권주의 문제란 단순히 한 정파가 당의 모든 권한을 독점하고 있다는 그 사실 자체에서 나타난 것이 아니다. 특정 정파가 당의 모든 권한을 독점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기 때문에 불거진 문제이다. 이로 인해 당내 소수파들이 ‘무슨 수를 써도 당의 중요한 결정에 개입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없겠구나’라는 좌절감을 안게 된 것이 분당의 시발점이었다.

지금 벌어지는 상황도 그 때와 똑같다. 진보대통합 논쟁이 벌어질 때 분당의 기억으로 과거 민주노동당 자주파들도 변했을 것이라는 여론이 있었으나 그들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이번 비례대표 부정선거 논란은 이런 점을 문제는 왜 하필 진보를 이야기 하는 그들이 계속 이런 일들을 벌이냐는 것이다.

첫 번째로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이런 종류의 다툼들이 오직 진보정당에서만 일어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권을 취하기 위해 규율을 지키지 않거나 교묘하게 악용하는 행태는 포털 사이트의 동호회에서도 종종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 집단의 규모가 매우 작아서 다소의 의도된 일탈이 받아들여지고 해소될 수 있는 분위기를 형성하기에 용이하면 이런 일들은 지속적으로 반복된다. 그러나 그래도 상관이 없는 것이 또 이런 집단의 특성이다.

이 경우가 아니더라도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 않은 조직의 경우에도 이런 일이 일어나곤 한다. 이것은 구성원들이 서로 합의한 규율을 지키지 않았을 때 조직이 감당하게 되는 리스크에 대한 판단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경험의 부족 때문이고 조직을 계속 운영하다 보면 이러한 미숙함은 차츰 나아지기 마련이다. 이런 모든 절차는 ‘시행착오’라는 이름으로 합리화 될 수 있다.

문제는 통합진보당의 사례는 이런 경우에 맞는 것이 아니라는 거다. 통합진보당은 자전거 동호회가 아니라 전국적인 조직망을 갖추고 있는 진보정당이다. 또, 통합진보당이 비록 신생정당이긴 하지만 여기에 참여하고 있는 주체들은 최소한 2년은 정당 활동을 해본 세력들이다. 더군다나 이번에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들인 소위 ‘자주파’들은 민주노동당 활동을 이미 10년을 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도대체 이런 심각한 사고를 친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자주파’로 불리는, 최근에는 ‘경기동부’라는 이름으로 화제가 됐던 그룹의 역사적 경험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조직을 보호하고 이것을 도모할 수 있는 권력을 지키는 일이다. 왜냐하면 이들이 가진 북한에 대한 특정한 태도가 국가에 의한 탄압의 대상이 되어 왔기 때문이다. 즉, 보통의 조직에서 조직을 통제할 수 있는 권력을 놓친다는 것은 자기가 가져야 할 이익의 일부를 포기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에 불과하지만 이들의 역사적 경험에 있어서는 권력을 놓친다는 것은 법적 제재, 불법적인 구금과 고문, 생명의 위협 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강철서신’으로 유명한 김영환이 전향하고 나서 자신의 전향에 동조하는 사람들을 이용해 조직망을 차례로 붕괴시켰을 때 이들이 느꼈을 만한 불안과 공포는 쉽게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다. 이번에 언론에 의해 비웃음 당한 ‘경기동부연합’이라는 집단은 이러한 조직적 배신에 맞서 싸워오는 과정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들을 지키는 방법을 체득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이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조직적 특성을 갖게 된 두 번째 이유가 있다. 그것은 이들이 가지고 있는 사상의 전술적 교범인 ‘통일전선론’에 관계된 것이다. 통일전선론이란 다른 여러 세력들과 연대해서 지금 당장 약화시켜야 할 세력에 대한 연합전선을 펴는 것이다. 그런데 여러 세력이 모인 전선에서 자신들의 정치적 지향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이 전선 내에서 정치적 행보의 향방을 결정한 중요한 단위를 틀어쥐고 놓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일단 전선을 형성할 때에는 소수파적 위치에서 다른 세력에게 선의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지만 일단 이것을 통해 전선의 다수적 위치를 점하는 순간 이러한 선의의 정치는 폐기되고 전선의 전체 운명을 실질적으로 관리하는 역할을 고수하려 하게 되는 것이다.

이들은 진보정당 이전의 다양한 대중조직 안에서도 그랬고, 민주노동당 때도 그랬으며, 지금 통합진보당에서도 똑같은 행동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위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때문에 이들이 자신들의 운명을 새롭게 개척하기 위해 해야 할 첫 번째는 이러한 역사적 경험과 낡은 사상들로부터 결별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는 그들 스스로 지금과 같은 행동양식을 고수해서는 국민들로부터 선택받을 수 없으리라는 확신을 가지게 됨으로서도 가능한 것이지만 이들을 비판하고 변화시키려는 다른 세력들의 의지와 이것을 실질적으로 추동할 수 있는 힘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선택일 것이다. 그러므로 통합진보당 내의 소위 참여당계와 통합연대계가 이러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서로 정치적 협의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이로 인해 야기될 것으로 예상되는 이후 정치일정의 혼란은 논외로 하더라도 말이다.

다음으로 이들의 쇄신을 위해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국가보안법’의 폐지이다. 이상하게 들릴 지도 모르겠다. 진보정당의 비례대표 선거 부정을 얘기하는 데 웬 국가보안법인가. 하지만 이들의 행동 양식을 비판하기 위해 반드시 언급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이들의 ‘낡은 사상’인데, 이것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국가보안법의 적용 대상이 되는 경우가 생긴다. 이미 민주노동당 시절에 이러한 상황이 일어났었다. 이 악법 때문에 우리가 진보정당의 근본적 문제를 교정하는 데에 필요한 생산적 논쟁을 공개적으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들의 이런 행태를 그냥 내버려 두어도 상관이 없을지 모르겠다.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8번, 10번이 뒤바뀌었던 상황처럼 문제가 벌어졌을 때 정파 간의 정치적 합의에 의해 리더십을 유지해가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보수정치도 똑같이 하는 것으로 당 내에 진보적이고 민주적인 기풍을 포기하면 쉽게 용납할 수 있는 문제가 된다. 물론 나는 이들이 그런 선택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통합진보당이 진보의 이름을 독점하고 진보를 망신시키는 현실이 길게 이어지기를 어떤 진보주의자도 바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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