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총선 출구조사 결과를 보며 두 주먹을 불끈 쥐던 유시민 통합진보당 공동대표. ⓒ연합뉴스

통합진보당 조준호 공동대표 및 비례대표 선출 부정 의혹에 대한 진상조사위원장이 국회 정론관에서 진상조사위의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발표내용의 핵심은 오프라인 투표에서 광범위한 부정 사례가 발견되었고, 온라인 투표에선 소스코드 열람 사례가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오프라인 투표에선 실제로 부정이 있었고 온라인 투표에선 부정의 ‘가능성’이 확인되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진상조사위의 조사 결과는 통합진보당 내 일부 당원들의 불신과는 달리 사건을 객관적으로 조사한 것으로 판단된다. 통합진보당 관계자는 “국참당계의 반발이 상당하고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검찰 고발이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진조위가 상황을 은폐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조사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보안업체 관계자도 “소스코드 변경으로 정확히 무슨 일을 했는지는 백업을 하지 않았다면 확인되지 않는다. 그저 접근을 했기 때문에 결과를 조작할 기회가 있었다는 가능성만 제기할 수 있을 뿐이다”라고 설명한다. 통합진보당 관계자는 “사실 심증으로는 온라인 투표 부정까지 있었을 것 같지는 않다. 안 해도 (당권파 측이) 이기는 상황이었다. 오프라인에서는 민주노동당 시절 하던 대로 한 건데 이게 국참당계가 있어서 과거보다 검증이 세게 들어오니까 그쪽도 당황한 것 같다”고 전한다.

그렇다면 통합진보당 측의 향후 대응은 어떻게 될까. 조준호 대표는 그 부분에 대해선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아직 당내에서 논의된 바가 없고 결론도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대표단도 현재 진상조사위 결과를 받아들고 고민을 하고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책임을 지는 방식으로 두 가지가 거론되고 있다. 하나는 당대표이고 다른 하나는 비례대표 의원이다. 당권파 측 생각으로는 당대표 사퇴 정도로 일을 끝내고 싶겠지만 외부의 여론은 비례대표 의원의 조정까지 요구할 상황이다. 비례대표 사퇴를 요구한 동양대 진중권 교수 트위터가 벌써부터 각 언론사의 보도를 타고 있다. 내일자 조중동에 다시 진중권의 이름이 등장할 가능성이 200%다.

통합진보당 관계자는 “조중동 보도는 상관없다. 당권파는 조중동에게 비판받는 것은 오히려 즐기는 측면마저 있다. 그걸 자신들의 정치적 자산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 사안으론 진보언론에게도 비판받을 수 있다는게 문제다. 당장 한겨레 사설이 오늘 아침 우리당을 ‘조졌다’. 대책이 미비하다 싶으면 한겨레 경향신문 프레시안 오마이뉴스 모두 당을 비판할 것이다. 그래서는 버티기 어렵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당대표 문제와 비례대표 의원 문제가 동시에 얽혀 있어 변수가 많고 어떤 대책이 나올지 예측이 어렵다는 후문이다. 일단 당대표 문제에 대해선 비당권파는 이정희 대표의 단독 사퇴를 주장하는 반면 당권파는 당대표단 일괄 사퇴를 주문하고 있다. 당 관계자는 “지금 당대표를 사퇴하면 사실상 이 다음 당권선거에 안 나오겠단 얘기다. 경기동부에서 몇 년간 공들여 만들어낸 대중정치인이 이정희다. 근데 의원도 아닌데 대표까지 사퇴하면 이제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그걸 쉽게 받아들일 수는 없다”라고 전한다. 그래서 일종의 ‘벼랑 끝 전술’로 당대표단 일괄 사퇴를 주장하고 그러면서 비례대표 의원 사퇴론을 함부로 제기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게 그들의 계산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국참당 계열의 경우 비례대표 의원 사퇴를 강하게 주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비례대표 1, 2, 3번이 사퇴해 후순위인 7, 8, 9번이 의원직을 승계받게 되면 참여당계 9번 오옥만 후보가 당선이 되긴 하지만 국참당계가 이 정도로 만족하지 않을 것이라는 시선이 있다. 국참당 계열의 경우 요구를 최대치로 가져갈 경우 1, 2, 3번 사퇴 및 12, 14, 18번의 의원직 승계를 요구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례대표 12, 14, 18번은 전략공천이다. 당 관계자는 “7, 8, 9번도 어차피 부정이 있었던 그 선거에서 뽑힌 사람들이다. 선거에 부정이 있었으니 모든 당선자를 전략공천 명부로 채워야 한다는 주장이 성립할 수 있다. 4, 5, 6번 당선자는 전략공천이었으니, 1, 2, 3번만 전략공천 받은 12, 14, 18번으로 교체하면 국회의원 전원이 전략공천자가 된다. 그렇게 처리할 경우 대외적으로도 명분이 서게 되지 않을까”라고 설명한다. 원칙대로라면 비례대표 후보가 사퇴하면 후순위 후보자가 승계해야 하지만 줄줄이 사퇴할 경우 이런 식의 '조정'이 가능하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결단이지만 검찰 고발 및 분당 불사란 카드가 있는 이상 조직 간의 타협에 의해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 경우 국참당 계열은 자신들의 구심점인 12번 유시민이 원내 입성하는 기쁨을 누리게 된다. 얻을 것은 다 얻는 것이다. 14번은 서기호 전 서울북부지법 판사이며 18번은 삼천리 철도고문 강종헌이다.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 등이 소속된 진보신당 탈당파인 통합연대의 경우 이 상황에서 사태를 관망하거나 국참당 계열과 함께 행동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제안은 당권파가 받기엔 너무 과도한 요구로 추정된다. 경기동부연합의 경우 몇 년 간 키워낸 대중정치인인 이정희의 사퇴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이석기의 의원직을 포기해야 한다. 진보신당 쪽 사람들은 "경기동부가 김재연 정도의 사퇴는 받을 수 있어도 이석기의 사퇴는 절대로 안 받을 것 같다"고 예측했다. 인천연합도 윤금순의 사퇴를 순순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서기호의 경우 대학시절 NL운동권이었고 이정희가 섭외한 사람이긴 하지만 십 년 동안 판사 일을 하면서 ‘리갈 마인드’가 강하고 당내 계파문제나 현실정치에 대해선 무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이 발언하는데 서기호가 ‘저 사람은 누군데 위에서 발언하느냐’라고 물어본 적도 있다고 전한다. 당 관계자는 “경기동부와 이정희 사이는 한 다리지만 서기호까지는 말하자면 두 다리다. 경기동부 입장에서도 통제가 어려운 사람이다. 이석기를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결국 “이정희만 사퇴하고 끝내자”와 “비례 1, 2, 3번 사퇴하고 12, 14, 18번으로 가자”의 양극단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타협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전망인데 그 타협이 어떤 조합일지를 예측하기엔 경우의 수가 제법 복잡하다.

진보신당이 등록취소되자 마자 ‘통합’자를 떼고 ‘진보’의 명칭을 독점하려 하는 통합진보당이 ‘진보’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회의하게 만드는 가운데, 책임 논란은 민노당계와 국참당계의 ‘자리 나눠먹기’ 다툼과 병행될 전망이다. 한국 정치사에 존재한 적이 없었던 기이한 '정파'연합당의 권력분점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면서, ‘국회의원 유시민’을 또 한번 볼 수 있는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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