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종종 광주 이야기를 할까 한다. 10개가 넘는 지역신문이 있지만 그렇게 많은 지역신문들은 광주를 담아내지 못하며 오히려 지역신문을 통해 본 광주는 왜곡돼 있을 확률이 크다. 어떤 경우에는 정신 건강을 크게 해칠 수 있으니 임산부나 노약자는 가능하면 멀리 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전국지에서 광주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전국지는 전국을 담지 못한다. 종종 광주 이야기를 전하겠다는 이유다.

시청사 앞에서 짓밟히는 인권

▲ 18층의 위용을 자랑하는 시청사 앞. 시청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시위대와 시청사 사이를 전투경찰이 막고 있다. '원직복직'이란 소망을 담은 리본만이 나뭇가지에서 흔들린다.ⓒ광주드림 황해윤 기자.
5·18 정신을 형상화 했다는 광주시청사. 5층 시의회동과 18층 행정동이 항해하는 배의 형상으로 위용을 자랑하며 서있다. 5월 항쟁의 도시답게 시청사마저도 18층이다. 그런데 그 시청 앞에 접근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얼마 전까지 시청사에서 청소일을 했던 여성 노동자들이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용역업체가 바뀌는 과정에서 모두 해고된 이들은 시청사 앞에서 원직복직을 요구하는 집회를 해왔다. 광주시는 이들을 상대로 업무방해금지 가처분을 신청했고 법원은 광주시의 손을 들어줬다. 광주시민이기도 한 여성노동자들은 시청사 주변 100미터 이내로 접근할 수조차 없다. 한 번 어길 때 마다 벌금이다.

이들 뿐 아니다. 시청사 건물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배신감을 느낀다. 인권은 시청사 앞에서 짓밟히기 때문이다.

최근 광주에서는 시청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던 시민이 광주시청 직원들에 의해 사지가 들린 채 끌려나오는 일이 벌어졌다. 민주 인권의 도시 광주시에서 벌건 대낮에 자행된 일이었다. 하고 싶은 말을 하면 위해가 가해질 수 있는 곳, 어느 누구나 그런 일을 당할 수 있는 곳. 바로 시청사 앞이었다.

어찌 보면 표현의 자유가 폭력적으로 침해된 대단히 심각한 사안이었음에도 대부분의 지역신문은 침묵했다. 광주시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장에도 기자들은 오지 않았다. 민망한 기자회견이었다.

그래서 그럴까? 시는 더욱더 용용해졌다. 얼마전 시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려던 이들도 어김없이 광주시 공무원들에 의해 방해받았다. 사회자의 마이크를 뺏으려는 공무원 때문에 사회자의 얼굴이 마이크에 맞기도 했다.

정보과 형사 못지 않은 장비(녹음기와 카메라와 비디오카메라)를 가지고 1인시위자를, 기자회견을 하던 시민단체 활동가들의 얼굴을 근거 없이 촬영하고 채증하는 시청 직원들을 보는 것은 이제 신기한 일도 아니다.

"당신들 배후 조정자가 누구야?" "남의 집 앞마당에 와서 왜 난리야?" "시민도 시민나름이지" "이거 불법인거 몰라?"

하는 말들도 늘 같다. 광주시의 논리에 따르면 세금도 조금내는 시민은 시민도 아니고 광주시장과 시청 직원들이 주인인 광주시청사 앞에서 시끄럽게 떠들면 불법이다.

여성의 날 내몰린 여성노동자

시간을 거슬러 1년 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 광주시청사에서 일했던 여성노동자들이 역시 시청 공무원들에 의해 이불에 싸여 쫓겨났다. 광주시청에서 청소일을 했던 나이든 여성 노동자들이었다.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고용승계서 배제된 이들 노동자들은 "다시 일할 수 있는 방법이 없겠냐"고 광주시장을 만나 하려던 질문을 끝내 하지 못하고 거리로 쫓겨났다. 이날 아비규환이었던 현장엔 인권은 없었다. 일할 권리, 말할 권리, 인간답게 살 권리는 폭력적으로 짓밟혔다.

세계여성의 날에 끌려나온 여성노동자들은 대신 업무방해 등으로 벌금 50만원을 물어줘야 할 판이다. 1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길에서 싸우고 있는 그들이지만 광주시는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 용역업체와 해결하라"는 입장이다.

1년이 지났지만 그들의 인권은 여전히 없다. 공무집행이나 업무가 인권을 우선한다.

▲ 2007세계여성평화포럼.jpg=광주시청사 로비에 전시된 사진들. 007 세계여성평화포럼이 열리던 그 때 시청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은 단식농성을 벌였다. 상징조작이란 이런것이다.ⓒ광주드림 황해윤 기자.
민주인권 이용하는 관료들

사회적 약자들의 할말에 대해선 귀를 막거나 업무방해로 고소고발을 남발하는 광주시가 민주 인권의 타이틀을 자신들의 것인양 이용하고 있다. 가만 보면 민주 인권의 도시는 시장 혼자 다 만든 것 같다.

광주시청사 로비의 벽면엔 지난 2006년 광주시가 개최한 노벨평화상수상자 광주정상회의 때 사진과 역시 광주시가 지난해 열었던 2007 세계여성평화포럼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해 역대 노벨평화상 수상자들과 나란히 서서 웃고 있는 시장, 역시 세계 여성 인권 운동가들과 나란히 서서 웃고 있는 시장. 그럴듯하다.

▲ 시청사 앞에 접근할 수 없는 이들의 이름이 나열돼 있는 공시서. 오월 정신을 상징하는 시청사 건물에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다. ⓒ광주드림 황해윤 기자.
하지만 광주시가 10억을 쏟아부어 세계여성포럼을 개최하던 날, 한달에 50~60만원의 월급을 받고 일했던 시청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은 단식농성 중이었다.

LA 시내 흑인 중심의 민간단체인 전미문화재단(NCF)은 올해 초 광주시장에 국제평화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광주시는 대단한 사건인 양 광주시장의 국제평화상 수상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도대체 왜? 비정규직 문제나 표현의 자유 탄압 등으로 얼룩진 광주 상황을 아는 사람들은 의아해 했다. 시민단체들이 후에 확인해 본 결과 정치권과 닿아있는 한인 단체 한 인사의 추천이 수상의 계기였고 수상자 선정 절차가 정교하진 못했다는 결론이 났지만 당시 광주시의 홍보는 말 그대로 '경축' 분위기였다.

최근 2013년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유치하겠다고 한참 열을 올리고 있는 광주시는 대회유치 근거로 "민주 인권의 도시"를 내세우고 있다. 생산유발 9,500억여원, 부가가치효과 4,500억여원, 고용효과 3만여명 등 근거가 의심스러운 수치들을 내세우며 온 도시를 U대회 유치 홍보물로(그것도 현행법상 불법으로) 도배하고 있다. 고작 20명도 안되는 시청 비정규직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 광주시가 말하는 고용효과 3만은 어떤 고용일까? 그들이 말하는 민주인권은 또 어떤 민주 인권일까?

광주에 붙여진 민주 인권이란 수식어는 그냥 생겨난 것이 아니다. 80년 5월 군부의 총칼 앞에서도 할말은 해야겠다던 수많은 민중들의 피와 희생을 통해 얻어진 것이다. 그런데 그 민주 인권의 가치가 마치 관료들이 만든 것인양 포장하는 행태는 역겹다. 광주시는 겸손해져야 할 일이다. 적어도 518민중항쟁과 민주 인권을 입에 담으려면 말이다. 518 정신을 상징한다는 그 커다란 시청사 안에서 왜 오월 정신을 생각하지 못하는지 미스테리일 뿐이다.

지역일간지 <광주드림>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광주드림은 한때 지역 문화잡지 <전라도닷컴>과 한몸이었으나 자본의 문제로 각각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지역신문이 지역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을 몸으로 체감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신문법 한 조항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정기간행물은 상대적으로 소수이거나 이익추구의 실현에 불리한 집단이나 계층의 이익을 충실하게 반영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신문법 <제5조> 3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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