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한겨레에 ‘감정조절’과 ‘거리두기’가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왔다. 한겨레는 16일 창간 34주년을 맞아 저널리즘책무위원회 좌담회 내용을 지면에 게재했다. 저널리즘책무위원회는 외부 전문가 3명과 사내 인사 4명으로 구성된 저널리즘 점검 기구다. 위원회 좌담회는 지난 6일 실시됐다.

(사진=미디어스)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는 “윤석열-추미애, 검찰개혁 공방 등을 거치며 한겨레의 온도가 점점 올라가는 느낌을 받는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객관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정서적 판단을 배제하고 차분하고 냉정하게 보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될 것”이라고 주문했다. 심 교수는 “문체, 기사 선정 등이 정치적 맥락에서 읽힌다”며 “촛불집회, 대통령 탄핵 등 일시적으로 나타난 현상이면 모르겠는데, 장기간에 걸쳐 계속된다. 제목에서 오버(과장)가 나온다든지, 기사의 팩트가 정확하지 않은 게 나온다든지 하는 게 엿보인다”고 지적했다.

정은령 서울대 SNU팩트체크 센터장은 한겨레가 인권과 관련된 기사에서 일방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지적했다. 정 센터장은 “한겨레가 특정 사안에 대해 ‘폭력, 차별, 혐오’라고 판단을 내리면 컨센서스가 형성되는 것 같다”며 “기사는 집단사고를 벗어나 다른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의견과 사실이 구분이 잘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정은령 센터장은 “기자들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 폭력이나 혐오를 고발하는 것이 역할’이라고 생각하면서 기사를 쓰는 건 아닌가”라면서 “기자는 그런 마음을 억제하고, 거리를 두고 보는 훈련을 해야 할 것 같다. 제목이 많이 흥분하는데 일방적 비방을 담거나 분노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정 센터장은 “사설과 칼럼에서 의견을 충분히 이야기하고 있으므로 기사에선 그래서 안 된다”며 “사실과 의견이 분리되지 않는 이유는 목소리를 직접 내려 하기 때문인데, 이는 기사의 질을 떨어뜨린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은주 콘텐츠총괄은 “일부에선 ‘기사가 너무 드라이하다”고 묻기도 한다“며 ”특히 1면에는 한겨레의 시각을 넣어야 된다고 하는 사람들이 내부에서 다수라고 본다. 취재를 촘촘히 해 기사 구성이 탄탄해지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권태호 한겨레 저널리즘책무실장(논설위원)은 “신문은 방송과 달리 독자들이 선택하는 매체”라면서 “‘다른 사실’을 갖고 있으면 드라이하게 ‘사실’만 쓰면 되지만 그런 날은 거의 없다. 그래서 ‘같은 사실’에 ‘다른 의견’을 넣게 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권태호 실장은 “검찰의 수사-기소 분리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을 때 (사실관계만으로) 기사를 끝내면 한겨레 독자들이 항의할 수 있다”며 “‘조중동은 <검수완박 끝내 통과>라며 저리 난리치는데 너네는 지금 뭐하냐’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 실장 발언에 대해 정은령 센터장은 “그래서 한국 언론이 같이 망하고 있다”며 “한겨레 편집권을 조선일보가, 조선일보 편집권을 한겨레가 갖고 있다. 취재를 더 치밀하게 하는 게 아니라 목소리를 더 높이는 것으로 자기 색깔을 보인다”고 말했다.

한겨레 취재보도준칙 전문 화면 갈무리

“보도준칙은 비용이 아닌 투자”

정은주 총괄은 한겨레가 취재보도준칙을 준수하기 위해선 기사 수를 줄어야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정 총괄은 “현재 한겨레는 종이신문 28면, 디지털 기사 160개를 출고하는데, 이를 절반으로 줄일 수 있는가”라면서 “보도준칙을 제대로 지키기 위해 이를 포기한다면 독자들이 수용할 수 있을까, 아니면 기자 인력을 대폭 늘릴 수 있는가”라고 되물었다.

권태호 실장은 “(디지털 기사 출고량은) 지금도 조선일보·중앙일보의 절반 수준”이라며 “기사 수는 수익과도 연계된다. 편집국 차원을 벗어나 경영까지 같이 논의해야 된다”고 설명했다. 권 실장은 “(준칙) 작성과 이행을 톱다운 방식으로 해온 게 사실”이라며 “구성원의 동의와 이행을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힘들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권 실장은 “‘반론 없는 보도는 없다’, ‘상급자에게 공개 못 하는 익명 보도는 보류한다’ 등의 조항은 지금 당장이라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재영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보도준칙을 희생이나 비용이 아닌, 투자로 봐야 한다”며 “뉴욕 타임스는 준칙을 잘 지키는 게 비즈니스 전략이다. ‘이래서 한겨레’라는 느낌이 오게끔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정은령 센터장은 “언론은 유튜브와도 경쟁하는데, 준칙을 지키는 보도가 아니면 정체성을 가질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나”라고 말했다.

한편 정은주 총괄은 16일 <신뢰의 저널리즘, 멈추지 않고 한발 더> 칼럼을 통해 권력감시·불평등 관련 보도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정 총괄은 “권력 감시는 언론의 책무”라면서 “윤석열 정부의 첫 내각을 구성하는 고위공직자 후보자에 대한 검증 보도에 한겨레가 힘써온 이유다. 한동훈 후보자 등은 한겨레 취재기자를 고소·고발하며 압박해왔지만 권력 감시를 멈추지 않겠다”고 했다.

또한 정은주 총괄은 “불평등데스크를 신설했지만 코로나19 이후 두드러진 불평등 이슈를 집중적으로 다루지 못했다”며 “올해 전문가와 협업하며 불평등 해소 방안을 모색하는 데 앞장서려 한다”고 말했다. 정 총괄은 뉴스룸 내부 성평등을 이뤄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정 총괄은 “한겨레 뉴스 속 젠더 불균형은 여전하다”며 “오피니언 내·외부 필진 구성만 보더라도 남성이 여성보다 배 이상 많다. 프로그램 출연자의 성비를 50 대 50으로 동등하게 맞추려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영국 BBC에 견주면 더욱 분발해야 할 과제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BBC가 2017년 실시한 ‘50:50’ 프로젝트는 방송에 출연하는 기자, 논평가, 전문가, 학자의 성비를 동등하게 맞추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프로젝트는 뉴스뿐 아니라 음악, 스포츠 프로그램에도 적용된다. BBC는 ‘50:50’ 프로젝트를 인종, 장애인 분야로 확대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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