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OC위원을 박탈당할 위험에 처한 문대성(왼쪽)과 차기 IOC위원의 포부를 밝히던 김연아(오른쪽)

인터넷에서 촉발된 문대성 논문 표절 의혹을 본지가 앞장 서 차근차근 검증해 나가기 시작했을 때 인터넷의 가장 표준적인 비판 여론의 양상은 이랬다. “왜 국제적으로 유명한 IOC 위원인 문대성을 국내 언론이 검증하여 망신을 주는가?” 이는 이 정부 들어 특히 더 맥락없이 운위되기 시작된 ‘국격’이나 ‘국위선양’과 같은 것을 위해 다른 모든 문제를 덮어야 한다는 논법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위와 같은 주장에 반대한다고 스스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면 이런 주장은 어떤가? “결국 표절 사실조차 사전점검하지 못한 새누리당의 엉터리 공천이 IOC 위원직 박탈이라는 국제적 망신을 초래한 형국이다.” 이는 IOC가 윤리위원회를 통해 문대성 문제 진상조사에 착수했다는 사실을 보도한 한 인터넷언론 기사의 마지막 문장이다. 기사의 부제는 아예 <새누리의 엉터리 공천이 결국 국제적 망신 초래>로 되어 있다. 이외에도 많은 인터넷언론과 여론이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이것은 만일 새누리당이 문대성을 공천하지 못해 표절문제가 불거지지만 않았더라면, 기왕 IOC 위원이 된 문대성이 과거의 문제를 들킬 일이 없었을 거란 현실판단을 함축한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일지라도 적어도 언론이 그러한 판단기준으로 새누리당을 비판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정확히 말한다면 새누리당은 자신들의 잘못된 공천에 대해서 정치적 책임을 져야할 뿐 그로인해 파생된 ‘국제적 망신’에까지 책임을 질 필요는 없다. 문제는 문대성이 잘못된 경로로 학위를 받고 교수가 되었다는 것이지 지금 IOC위원을 상실할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이 아니다.

사실 저 주장에 숨겨진 함의는 “비리가 드러나지만 않는다면, 한국인이 IOC위원을 맡는 쪽이 더 낫다”는 것이다. 새누리당 내부조사에서 이런 사실이 밝혀졌다면 굳이 이걸 공개해서 IOC위원 문제에까지 영향을 미칠 필요가 없었을 거라는 판단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인 IOC 위원’에 대한 스포츠계의 편견이 생겨난다면 문대성의 행위 때문이 아니라 바로 이와 같은 사고방식 때문일 것이다. 그런 사고방식이 한국인들은 명예와는 상관없이 어떻게든 자리를 차지하려 들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믿지 못할 사람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는 ‘편견’(?!)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차라리 우리가 문대성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IOC위원 박탈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처신해야 세계인들이 ‘문대성’과 ‘한국인 IOC 위원’을 분리해 낼 수 있다.

표절 문제는 복사와 돌려차기에 능한 문씨 국회의원의 IOC위원 박탈 없이도 이미 국제적 망신거리다. 당장 이를 보도한 외신들이 한국 대학 학위들의 공신력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나 여기서도 문대성이 ‘국제적 망신’을 초래한 것은 아니다. 당장 사건을 조금만 추적해봐도 이것이 문대성이란 어떤 특출한 악역의 문제는 아님을 알 수 있다. 비록 체육대학만큼은 아닐지라도, 한국의 대학들이 이런 문제에 있어 외국 학계만큼 제대로 된 처신을 하고 있지 못하단 게 진짜 문제다.

‘국격’이나 ‘국위선양’이란 말이 의미를 가진다면 자기 사회의 문제를 대면하고 해결하는 데에서 나올 것이다. 외국인 앞에서 감추고 숨긴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우리는 정돈된 평양 시내를 보면서 북한에서 살고 싶다고 느끼지 않는다. G20대회를 맞아 ‘쥐벽서’ 그린 사람을 잡아가고 강정마을에서 평화활동가를 탄압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외국인들이 느끼는 감정도 비슷했을 것이다. 그러나 새누리당 공천이 국제적 망신을 초래했다고 비판하는 것은 여전히 이런 종류의 ‘치장’을 해야 한단 의식에 갇혀 있다.

사람들이 보고 감탄할 수 있는 것은 내적 규율이지 바깥 사람들 보기 좋으라고 가끔 내놓는 특산품은 아니다. 선물로 받은 바가지 한 두 개야 장식품으로 걸어둘 수 있겠지만, 그 동네 바가지를 계속 쓰다 보면 결국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 새는’ 것을 발견하게 될 뿐이다. 아시아에서 악명 높은 삼성의 노동탄압도 결국 국내에서 하던 짓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 밖에서 문제 일으킨 이를 비난하기 전에 안의 문제를 해결할 방도를 찾아야 하는 이유다.

경향신문은 문대성의 IOC위원 낙마가 차기 IOC위원을 지망하는 김연아의 프로젝트까지도 좌초시킬 위기로 몰아넣었다고 보도했다. 올바른 지적이고 대놓고 ‘새누리당 공천 책임론’을 주장하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선후가 바뀐 분석이 아닐 수 없다. 삼성을 세계시장에서 성공한 기업으로 만들기 위해 내부에서 온갖 특혜와 반칙을 용인했듯, ‘큰 인물’을 밀어주기 위해 한국 사회가 무슨 짓을 집단적으로 하는지 세계에서 안다면 그것이 더 쪽팔린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문대성이나 김연아와 같은 개인을 떠나 ‘한국인 IOC위원’에 대한 반감이 실제로 객관적인 근거를 가지고 실체화될 수도 있는 이유도 그것이다.

김연아 역시 고려대에서 그녀가 출석·과제·시험 없이 학점을 취득하는 ‘관행’에 대해 한 시간강사가 이의를 제기했다 오히려 이의제기한 당사자만 학교 당국 및 세인들에게 비판받은 일이 있다. 물론 이 상황은 문대성의 표절문제와는 격이 달라, 김연아 개인이 도의적 책임을 질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학위’를 어떤 종류의 내적기준으로 수여하는 게 아니라 어느 영역이든 일정한 ‘업적’을 수행한 이들에게 ‘작위’를 내리듯 남발하는 이 문화에서, 문대성의 박사학위 논문 표절 같은 사건도 나타났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김연아 사례’는 세계인들이 알더라도 김연아 개인보다는 고려대학교의 학위를 평가절하하는 것으로 그치겠지만, 이 사회의 시스템이 어떤 식으로 돌아가고 있는지 알려주는 지표 정도는 된다. 미셸 위가 스탠포드 대학에 다니느라 바빠 LPGA 투어에 불참한다는 종류의 얘기와 비교해서 함께 듣는다면 말이다. ‘문대성 IOC위원 박탈’이나 ‘김연아 IOC위원 프로젝트 불발’에 아쉬워하기 전에 우리가 고민해야 할 지점은 바로 이 부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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