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조현옥 수필가] 오랜만에 남양주로 종주 산행을 떠났다. 전에는 거의 매주 친구들과 10km 이상 산행을 했다. 코로나19가 전파되면서는 집 근처에서 혼자 한두 시간 걷곤 하였는데, 작년부터는 그조차 뜸해졌다. 작년 봄 삐끗한 발목이 회복되지 않고 수개월을 가는 동안 햇빛을 받으며 걸었던 시간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몇몇 산우들은 방역수칙 내의 인원을 꾸려 산행을 계속했다. 산우들이 예봉(禮峰), 적갑(赤甲), 운길(雲吉)산행을 떠난다는 공지를 들을 때면 가보고 싶다는 마음 반, 산이 험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반 교차하여 몇 번의 기회를 놓쳤다. 이번에는 한 친구가 예봉산은 흙산이라고 하는 말에 이끌려 용기를 내었다.

등산로가 계단으로 다듬어졌거나 바위가 많은 산은 단련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무릎에 무리가 갈 수 있다. 흙산이라면 무릎이나 발목에 부담이 덜 가고, 오월의 신록 아래 걸으면 몸과 마음에 에너지가 충전될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팔당역으로 향했다. 산우들을 거의 이 년 넘게 못 보았어도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쓴 나를 알아보고 반겨주니 고마웠다.

산행 안내도에서 거의 13km 되는 등산코스를 확인하고 예봉산 입구로 들어섰다. 등산로는 생각했던 것보다 만만치 않았다. 돌 틈 사이의 좁은 흙길을 걷는 것은 좋았지만 예봉산 봉우리에 도착할 때까지 가파른 경사가 계속되었다. 오랜만에 산행하는 나를 배려하여 자주 쉬어 가서 버거운 발걸음에 힘을 내며 걸었다.

(사진=조현옥)

한 시간쯤 올라가 시원하게 트인 한강과 두물머리의 풍경을 조망하니 상쾌한 바람이 온 몸에 묵은 기운을 밀어내는 듯했다. 두 시간 남짓 걸어 예봉산에 있는 강우 레이더 관측소 옆에서 점심을 먹었다. 산에서 이런 첨단 장비를 보니 새로웠다.

나는 소풍 가는 마음으로 김밥을 싸갔다. 여러 사람이 싸 온 도시락은 다양한 메뉴로 산상 만찬이 될 때가 있다. 산우들을 위한 마음은 잡채와 보온도시락에 담아온 따뜻한 두부에 담기기도 하고, 야채가 듬뿍 들어간 전이 산 정상에서 고소함을 더하기도 하였다.

오늘의 특제 요리는 즉석 골뱅이무침이었다. 어느 솜씨 좋고 맘씨 넉넉한 친구가 갖가지 야채에 골뱅이무침 재료를 준비해 왔다. 고추장 양념 소스도 따로 담아와서 즉석 골뱅이무침을 해 먹었다. 산우들에 대한 애정이 아니면 이른 시간 출발하며 준비하기 어려운 일이다. 힘든 산행에서 이런 맛난 음식은 준비한 사람의 따뜻한 마음과 맛이 함께 하는 기쁨의 에너지가 되었다. 급하게 혼자 결정하고 생활하는 것이 익숙한 나에게 이들과의 산행은 이런 마음 씀도 배우는 시간이 되었다.

귀한 음식으로 대접받은 마음을 안고 적갑산으로 향했다. 그때까지 걸었던 길과 달리 오르막 내리막이 있는 길과 큰 바위가 있는 길도 지났다. 언제 평지가 나오나 하며 발걸음을 계속하니 철문봉(喆文峰)이라는 안내판이 나타났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저서 목민심서를 딴 ‘목민심도’라는 이름도 함께 적혀 있었다.

「...철문봉은 정약용, 정약전, 정약종 형제가 본가인 여유당(남양주 조안면 능내리 마재)에서 집 뒤 능선을 따라 이곳까지 와서 학문(文)의 도를 밝혔다[喆] 하여 철문봉이라는 명산이 전해지고 있다.」라고 쓰여 있었다.

(사진=조현옥)

아, 여기가 그런 뜻이 있는 길이었구나. 그 정도로 올곧고 학문의 깊이가 깊었던 분들이 진정한 배움의 깨달음을 위해 이 길을 걸었구나. 그 길에 서 있으니 그분들의 가르침을 직접 듣고 있는 것 같은 감동이 밀려왔다.

지나간 역사 속에서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고 각오와 포부를 밝히던 사람들이 욕심을 떨치지 못하고 불법한 행동을 저질렀다는 기사를 볼 때마다 다산 정약용 선생 생각났다. 공직 임용 전에 소양교육을 의무로 하여 목민심서 읽기를 필수조건으로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 마음을 조금만 본받는다면, 그분의 뜻을 조금만 기억하였다면 하는 안타까움이 일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철문봉에서 다산 선생의 마음을 생각하며 발길을 옮기는데 초록색 풀잎 사이로 연보라색 꽃잎이 한들거리는 것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지난해 광교산 자락에서 처음 만났던 각시붓꽃이었다.

잎은 가늘고 길며 곧게 뻗은 것이 난초에 비할 만하며, 키가 작아 낮은 자리에서 곱게 핀 것이 백성의 노고를 가까이서 살피는 다산 선생을 닮은 꽃이라고 생각되었다. 산행을 같이하던 친구도 그 꽃에 반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촬영하였다. 문득 다산 선생도 이곳을 걸으며 이 꽃을 보셨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만일 그랬다면 다산 선생도 이 꽃을 무척 사랑하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늘고 긴 꽃잎은 잎이 넓고 꽃송이가 큰 꽃들이 주는 화려한 이미지와는 달리 서민적이다. 하지만 은은한 연보라색 꽃잎은 밋밋하지 않고 세 개의 내피는 곧게 서 있어 심지 굳은 선비를 닮기도 하였다. 일반 붓꽃보다 키도 작고 잎도 작아 각시붓꽃, 또는 애기붓꽃이라고 하나 작고 여려 보이는 제비꽃이나 양지꽃과는 다르다.

각시붓꽃 (사진=조현옥)

각시붓꽃은 군락으로 한곳에 많이 모여 피지는 않고 한두 포기 또는 몇 포기씩만 듬성듬성 떨어져 핀다. 각시붓꽃이 모여 있는 모습은 나라를 위한 뜻을 의논하는 청빈한 선비의 모임 같기도 했다. 문득 책에서 읽은 다산 선생의 일화가 생각났다.

다산 선생이 곡산 땅에 관리로 부임했을 때의 일이다. 관청에 세금 문제로 백성 천여 명을 이끌고 관청에 항의한 이계심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당시로서는 민란이라고 할만하다. 체포령이 내려진 이계심이 백성의 고초를 10개 항목으로 정리하여 내밀며 자수하는 것을 체포하려 하자, 다산은 그가 이미 자수하였으니 스스로 도망치지 않을 것이라 하며 관리들의 잘못을 말하는 것은 돈을 주고라도 들어야 할 일이라고 하며 잘못된 세금 문제를 바로잡았다.- 『다산의 마음』 박혜숙 저, 돌베개-

다산 선생은 그를 시기한 세력 때문에 죽을 고비를 넘기고 18년의 유배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분통을 터뜨리거나 원망의 시간을 보내기보다, 500여 권의 다양한 분야의 저술 활동을 하였다. 이는 자신의 학식을 과시하거나 명예를 위한 것이 아닌 백성의 풍속과 언어, 삶을 살피고 도움을 주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저술이었다.

다산은 어려서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의원 몽수에 대한 기록을 하며 감사의 마음을 표하기도 했다. 강진 유배 시절에는 자신에게 어머니의 노고가 큰데 왜 유교에서는 아버지를 더 중시하느냐고 묻는 노파의 말을 경청하기도 했다. - 『다산의 마음』 박혜숙 저, 돌베개-

이토록 인간에 대한 애정이 깊은 다산 선생이 가정을 떠나 아버지나 남편으로서 가족을 살피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어찌 없었겠는가. 다산 선생의 가족에 대한 애틋한 마음은 하피첩에 쓰인 두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와 시집가는 딸에게 보내는 매조도(梅鳥圖)에 잘 나타나 있다. 가까이에서 가르치듯 자상하게 실생활에서 근면한 태도를 가질 것과 갖추어야 할 덕목 등을 아들들에게 당부했다. 양반가의 근엄함과 권위만을 내세우는 아버지가 아니었기에 그의 아들들에 대한 가르침은 우리가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진지하게 와 닿는다.

각시붓꽃 (사진=조현옥)

각시붓꽃의 꽃말은 기별, 존경, 신비한 사람, 기쁜 소식이라고 한다. 홀로 산길을 걷다 각시붓꽃을 처음 만난 날, 정말 귀한 사람을 만난 듯 행복하고 그 잔잔한 아름다움이 그리움으로 남아 있었다. 오랜만에 떠난 친구들과의 산행에서 다시 만난 각시붓꽃은 철문봉을 걸었던 다산 선생을 떠오르게 하며 그분의 가르침을 향기로 전하는 것 같았다.

각시붓꽃은 여름이 되면 꽃과 잎이 땅에서 모두 없어지는 하고(夏枯) 현상이 있다고 한다. 또한 옮겨심으면 잘 자라지 못한다고 하니 욕심을 내어 자기 집 마당으로 옮겨심기보다는 자생지에 그대로 두며 보는 것이 좋다고 한다[지식백과 야생화 도감 (봄)]. 각시붓꽃의 하고 현상에 대해 알고 나니 애민정신이 깊지만 해서는 안 될 일, 지켜야 할 일에 단호했던 다산 선생의 성품을 닮은 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친구들과 13km 종주를 함께하며 산을 오를 수 있는 다리의 근력에 감사했고 다산의 마음을 잔잔하게 느낄 수 있는 각시붓꽃을 만날 수 있음을 감사했다. 없는 것을 탐하지 말고 어쩔 수 없이 닥친 일을 원망하지 않으며,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한 가지라도 하여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다산 선생의 가르침을 그 일부라도 실천하는 삶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다산 선생의 추억이 깃든 운길산 수종사를 돌아 산길을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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