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겨레 내부에서 삼성 관련 기사가 해당 기자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수정된 사례가 잇달아 발생한 것을 두고 담당부장과 기자 사이의 갈등이 공개적으로 드러나 한겨레 내부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해당 기사를 수정한 담당 부장은 “데스크의 권한”이라는 입장이지만, 담당 기자는 “삼성과 같이 민감한 (사안을 다루는) 기사였다면 담당 기자에게 확인하는 게 당연하다”고 반발하고 있다.

“삼성에서 이의 제기한 부분 통째로 실종”

지난 18일치 한겨레 2면에 실린 <이건희 “한푼도 못줘…대법원 아니라 헌재까지라도 갈 것”> 기사는 제작 과정에서 해당 기사를 쓴 기자와 협의없이 관련 기사가 수정됐다. 이에 대해 해당 기사를 쓴 경제부 김진철 기자는 18일 오전 사내게시판에 글을 올려 “기사에서는 정확히, 삼성에서 이의를 제기한 부분이 통째로 실종됐다”며 강하게 문제를 제기했다.

▲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사옥. ⓒ한겨레
삼성가의 유산 소송을 둘러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발언을 담은 이 기사에서 삭제된 부분은 다음과 같다. “삼성물산·삼성전자 직원의 이재현 씨제이 회장 미행으로 사회적 비난이 이는 가운데 분위기 반전을 위해 이 회장이 직접 발언에 나섰다는 해석도 나온다. 삼성그룹이 미행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이는 상황에서 더는 밀릴 수 없다는 인식이 커졌다는 얘기다”

논란이 일자, 데스크를 맡고 있는 정남기 경제부장은 같은 날 사내 게시판에 글을 올려 “편집회의에서 지적이 있었다. 내가 보기에도 합리적인 추론이 아니라고 봤다. 그 정도는 데스크가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고 밝혔다. 즉, 데스크의 권한으로 기자와 상의없이 기사를 수정할 수 있다는 취지다.

그러나 이 같은 해명에 대해 담당 기자는 강하게 문제를 제기했다.

김진철 기자는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데스크가 기사를 손을 보게 되면 기사를 쓴 기자에게 최종적으로 확인하는 게 원칙”이라며 “10년 기자 생활을 했는데 데스크가 기사를 고칠 때 이런 식으로 확인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고 반박했다.

그는 특히 “일일이 전화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삼성과 같이 민감한 (사안을 다루는) 기사였다면 더더욱 담당 기자에게 확인하는 게 너무나 당연한 얘기”라고 강조했다. 현재 경제부 소속으로 삼성, LG 등을 담당하고 있는 김 기자는 삼성이 아닌 다른 기업과 관련한 기사의 경우, 데스킹 과정에서 무리하게 기사가 수정된 적이 없었다고 밝혔다.

▲ 2012년 4월18일치 한겨레 2면

최근 들어 한겨레 내부에서 삼성과 관련된 기사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해당 경제부장이 삼성 관련 기사 데스킹 과정에서 기자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기사를 손 보고 있다는 점에서 기자들은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지난 3월6일, 경제면에 실린 <삼성가 소송 뒤엔 ‘이재용-이재현’ 후계 다툼> 기사는 “2000년 손댔다가 실패한 e 삼성은 아직도 그의 꼬리표다” “3세 승계가 어려워질 가능성도 있다”는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과 관련한 문장이 야간 데스킹 과정에서 기자와의 협의 없이 삭제된 채 지면에 실렸다.

또, 지난 11일치 경제면에 실린 <에어컨 효율 높여라…삼성-엘지 ‘인버터’ 기술 격돌> 기사도 담당 부장의 판단 아래 기사가 수정된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기사를 쓴 김진철 기사는 “쓰고자 했던 ‘야마’(핵심)와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가 인버터 기술이 달려 시스템 에어컨을 단종했다는 단독 기사의 후속 보도였음에도, 한겨레 기사 때문에 새 제품 양산을 앞당겼다는 게 당초 기사의 핵심이었음에도, ‘삼성과 LG의 인버터 기술 경쟁’을 핵심으로 기사가 출고됐다는 것이다.

이번 사안을 바라보는 한겨레 안팎의 시선은 엇갈린다. 먼저 그 동안 한겨레와 삼성의 순탄하지 않았던 관계를 고려해 “한겨레가 최대의 광고주 삼성에 불복해 알아서 기사를 수정한 것 아니냐”는 의혹의 눈길이 있다. 실제 한겨레는 지난 2007년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리 의혹 제기와 편법 상속 문제 등을 적극적으로 보도하면서부터 삼성 광고를 받지 못했고, 이 때문에 극심한 경영난을 겪기도 했다. 그러다 지난 2009년, 한겨레 지면에 드문드문 전면 광고가 실린 이후 2010년 광고 정상화가 이뤄졌으며, 한겨레는 이 해 협찬 형태의 광고로 삼성으로부터 약 80억 정도를 받았다.

“삼성 압력 아닌, 담당 부장과 해당 기자의 소통 부재때문”

반면, 이 같은 의혹은 지나친 기우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삼성이 사회의 거대 권력이기에 민감한 측면이 분명 있지만, 이번 사안의 경우 데스킹 과정을 둘러싼 담당 부장과 해당 기자의 소통 부재로 인해 발생한 사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박찬수 편집국장은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만약 삼성으로부터 기사의 압력을 받았으면 기사를 줄이거나 했을 텐데 그런 게 아니다. 이번 사안에 대해서는 (삼성으로부터) 전화가 없었고, 광고국도 삼성 전화를 받지 않았다고 하더라”며 “삼성이 우리사회의 거대 권력이라 민감한 측면이 있지만 (이번 사안은) 삼성의 압력으로 인한 문제가 아니다. 데스킹 과정에서 삼성 문제를 다루는 부장과 기자 사이의 의사 소통 문제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또 “최근 한겨레가 삼성 기사를 어떻게 보도했는지 봐라. CJ미행에 삼성물산이 개입했다는 기사도 쓰는 등 (한겨레만큼) 크게 쓰고 많이 쓴 곳이 없다”며 “내가 국장으로 있으면서 삼성의 압력을 받아 기사를 고치거나 한 적은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한겨레의 최대 광고주인 ‘삼성’과 관련한 기사에 대한 수정이 잇따르는 것과 관련해, 최근 40여명의 기자들은 기명 성명을 내어 “무뎌진 ‘상식의 선’이 회복되길 바란다”며 우려를 표했다.

한겨레 공채 16기부터 21기까지 기자들은 19일 실명으로 성명을 내어 “데스크는 현장 기자와의 동의없이 기사의 일부를 삭제했고, 마침 그 내용은 취재원이 현장기자에게 이의를 제기한 부분이었다. 문제의 취재원은 한겨레 최대 광고주 삼성”이라며 “삼성의 요구와 무관하게 경제부장 본인이 판단해 그와 같은 결정을 내렸더라도 이는 문제가 될 수 있는 사안”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데스크와 현장 기자의 의견이 엇갈릴 때, 현장 기자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채 기사가 수정되는 과정을 ‘데스크 권한’이라는 말로 쉽게 정리할 수는 없다”며 “한겨레 많은 구성원들이 삼성-CJ 미행·소송 관련 기사의 보도방식과 과정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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