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방영된 MBC 뉴스데스크의 한 장면 ⓒMBC
어젯밤 친구와 술집에 앉아 있는데 스마트폰의 트위터 어플이 진동을 했다. 내 트윗이 MBC 뉴스데스크에 등장했다는 제보가 트윗 멘션으로 동시다발적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것도 이자스민을 비판하는 인종차별주의자의 맥락으로. 누군가는 금세 그림파일을 만들어 내게 제보를 해주었고, 캡쳐를 본 나는 웃었다. 아이디나 실명이 나온 것은 아닌지라 심드렁하게 여겼고 오늘 아침에 출근을 했는데 출근하자 마자 다른 회사 기자에게 전화가 왔다. 상황이 이런데 내가 트윗을 쓴 맥락을 설명해줄 수 있느냐고 했다. 명색이 매치비평지 기자인데 다른 매체에 의해 왜곡당한 내 발언을 다른 언론에 대고 해명하게 되었다. 그 매체는 기사를 만들지는 않았다. 대신 오전이 지나기 전에 오마이뉴스에서 기사를 만들었다. "정치평론가이자 진보매체인 <미디어스> 기자로 활동 중인 한윤형(@a_hriman)의 글"을 이자스민을 비판한 트윗으로 왜곡했다는 지적이었다. 실명을 쓰지 않는 트위터 계정이었는데 이제 아이디를 바꿔야 하게 생겼다.

이자스민이란 사람이 새누리당 당선권 비례대표 후보로 공천된 것을 봤을 때 대단하다 생각했다. 민주통합당이나 통합진보당에서 마땅히 제기했어야 했던 주제를 선점 당했다 보았다. 사람들이 ‘학력위조’에 대해 난리를 쳤지만 동의하지 않았다. 예능프로그램은 극적 감동을 위해 사실을 왜곡하기 마련이다. 사실대로 말했지만 방송에서 바꾸었고 그 뒤로는 그 컨셉으로 나가야 했다는 그녀의 해명을 받아들여야 한다 보았다. ‘타진요’도 예능프로그램에서 왜곡된 타블로의 말에 진실의 잣대를 들이대며 탄생하지 않았던가. 선관위에 실제 학력을 정확하게 보고했다는 점에서, 문대성이나 손수조와는 차원이 다른 의혹이라 생각했다.

선거가 끝난 후 내 타임라인에서는 이자스민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옹호한다는 것은, 내 타임라인에는 거의 보이지 않았지만 누군가들이 이자스민에게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그런 이들이 새누리당 지지자로 보이지는 않았다. 나는 한국 사회에 개혁시민을 자처하는 이들 중에도 인종주의자가 섞여 있고, 그 중 꽤 많은 이들이 폐쇄적 민족주의자란 점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놀라지는 않았다. 심지어는 정당투표를 진보신당에 던졌단 이들 중에서도 이자스민이 4.19나 5.18을 모를 거라고 비난하는 이가 있었다.

재밌는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주류 보수언론들이 일제히 한국 시민들의 인종차별주의와 고루한 민족주의를 규탄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조선일보의 활약이 눈부셨다. 나는 그에 대한 기사도 썼다. (링크) 나는 이에 대해서도 별로 놀라지는 않았다. 진보주의자들이 쓸데없이 불법체류자에게 우호적이라는 세간의 오해와 달리, 보수세력도 ‘다문화’ 담론을 받아 안아야 하는 상황이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의 최저임금이 생활임금을 넘는다면 대부분의 업주들이 같은 돈이라면 말이 통하는 내국인을 선호할 것이다. 하지만 이 사회에서 대기업에게 약탈당하는 중소기업을 떠받치는 저임금 노동은 몇 년 고생하다가 자기 나라로 돌아가면 그만이라는 희망을 품은 외국인들을 요구하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도농 불균형 발전 때문에 생겨난 농촌의 나이 든 총각들을 결혼시키려면 이주여성이 필요하다. 이것은 종종 국제문제로 비화되지만 한국 정부가 이를 금지하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처럼 노동이주와 결혼이주가 엄연히 요구되는 실정에서 '다문화' 담론은 보수주의자들이 이 사회를 지키기 위해서 요구되는 것이다. 보수적인 시민들은 외국인 추방을 얘기할 수 있을지언정 주류 보수 담론이 '다문화'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다만 그들이 말하는 '다문화'는 이주민들을 '한국인'으로 동화시키는 측면만을 강조한다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간 보수적 대중의 ‘오해’를 굳이 교정하지 않던 조선일보가 작정하고 ‘계몽’에 나서는 상황은 낯설고도 우습게 보였다.

그때 나는 문득 "한국 사회에서 ‘개혁’이란 건 새누리당만이 할 수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했다. 참여정부 시절 내 생각으로는 엄청난 우향우가 있었지만 그런다고 조중동이 노무현을 칭찬하지는 않았다. 한미 FTA 협상이 타결된 다음날 정도가 그들이 노무현을 칭찬한 단 하루였다. 민주정부는 아무리 오른쪽으로 가도 ‘좌파’ 정책을 편다고 비판받고, 새누리당의 ‘개혁’에 대한 일부 보수적 대중의 저항은 조중동이 ‘진압’하는 세태에 대한 좌절감이 느껴졌다. 딱 그 시점에 김용민이 총선 과정에서 했던 ‘막말’에 대한 사과의 진의를 무색하게 만드는 ‘국민 욕쟁이’ 선언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강간' 발언의 폭력성을 욕설이나 음담패설 정도로 생각하는 인권의식의 발로였다. 심정이 우습고도 참담했다. 그때에 두 개의 상황에 대한 냉소가 만나 하나의 트윗이 만들어졌다.

"한국 주류 사회의 인권감수성을 높이기 위해선 국민욕쟁이가 이자스민에게 쌍욕을 퍼부으며 제 나라로 돌아가라고 하는 게 제격일 것 같습니다...그렇게 되면 새누리당이 아큐파이 다문화사회!!!"

이게 문제의 트윗에 숨겨진 맥락이며, 내 생각이다. MBC 기자가 내 트윗을 읽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자스민’을 검색했을 때 나온 트윗의 홍수 속에서, 뭔가 그녀를 욕한 것 같은 트윗을 찾아냈을 그 기자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이해하기 어려운 냉소적인 문장의 뜻을 분명히 하기 위해 뒷부분을 떼어낸 그의 편집에도 칭찬을 보낸다. “한국 주류 사회의 인권감수성을 높이기 위해선 국민욕쟁이가 이자스민에게 쌍욕을 퍼부으며 제 나라로 돌아가라고 하는 게 제격일 것 같습니다” 안타깝지만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세상은 그런 일이 생겨야 간신히 조금만 좋아질 거란 막연한 예감이, 나를 자꾸 괴롭힌다.

나는 여전히 ‘이자스민 의원’을 응원한다. 그녀가 좋은 의정활동을 펼치길 바라고, 야권 지지자들에게도 합당한 대우를 받길 바란다. 야권 지지자들이 그녀를 욕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야권 지지자가 이자스민을 미워하는 것도 아니라 생각하고, 트위터가 이자스민에 대한 반감을 표출하는 가장 대표적인 장인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걸 찾으려면 포털 사이트 댓글이나 각종 커뮤니티를 뒤지는 쪽이 훨씬 빠를 거라고 본다.

하지만 방송에서 맥락에 맞지 않는 트윗일 가능성을 감수하며 굳이 트위터를 뒤진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와중에 내 것도 내 것이지만 맥락이 전혀 다른 트윗 내용들이 인종차별주의자의 것으로 둔갑해 버렸다. 좌든 우든 트위터를 물신화하고 있는 셈이다. 트위터 여론을 일반적인 국민여론으로부터 분리해서 생각하고, 트위터를 심지어 다른 인터넷 매체와도 분리해서 생각한다.

물론 상황에 따라 그럴 필요성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기성매체가 공신력을 원한다면, 인터넷 루머에 기댄 트래픽 장사나 트위터 무단 도용 등을 일삼다가 무슨 사건만 나면 인터넷에 대해 훈계모드가 되는 이중적인 모습만큼은 지양해야 한다. 자기 입맛에 맞는 트윗을 가져다 쓰며 그걸 여론으로 둔갑시키고, 인터넷 여론에 영향을 미치려고 의도하거나 여론을 침소봉대하여 지지자들에게 자기만족을 제공하는 보도행태도 개선되어야만 한다.

미디어스 기자된 입장으로도, 오래된 매체와 새로운 매체가 얽히고 설켜 복마전을 연출하는 이 복잡하고 지리멸렬한 시대에, 매체비평지의 역할도 막중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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