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탁종열 칼럼] 지난해 4월 비준된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이 지난 20일부터 발효됐다. 1996년 OECD 가입 당시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노동법 개정을 약속한 이후 26년이 지났다. 하지만 여전히 특수고용노동자와 플랫폼노동자 등 ‘노조할 권리’는 온전히 보장되지 않고 있다.

ILO 협약이 발효되자 대기업과 이해를 함께하는 기업신문들은 ‘노동조합에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기 위해 법과 제도를 뜯어고쳐 기업 방어권을 보장하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매일경제는 20일 사설 <파업권 강화한 ILO협약 20일 발효, 사용자측 대항권도 넓혀야>에서 “노조의 파업권을 견제할 수 있는 사용자측의 조업권과 대항권은 거의 없는 상태다”면서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과 ‘부당노동행위 형사처벌’ 규정을 노동조합에 적용할 것 등을 주문했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는 대체근로를 허용하고 있다는 것이 주요 근거다. 매일경제는 사설에서 이들 나라는 사업장 점거 행위를 철저히 금지하고 있으며 부당노동행위 처벌 조항이 아예 없거나 노조에도 동일하게 적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매일경제의 주장은 전혀 새롭지 않다. 전경련 산하의 한국경제연구원(이하 한경연)은 2016년 이후 여러 차례 G5 국가와의 비교를 통해 대체근로 허용과 사업장 점거 금지 등 ‘단체행동권’을 근본적으로 제약하는 법 개정을 주문해 왔다. 한경연은 2021년 10월 25일 <무리한 파업관행으로 반복되는 산업피해…대체근로 도입하고 사업장 점거 금지해야> 제목의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한경연은 이 보도자료에서 “대체근로를 가장 적극적으로 허용하는 미국은 임금인상·근로조건 개선 목적의 경제적 파업의 경우 영구적인 대체근로까지 허용하고 있으며 추후 파업참가자의 사업 복귀도 거부할 수 있고, 일본·영국·독일·프랑스의 경우 신규 채용 및 도급 방식으로 대체근로를 활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같은 한경연의 주장은 기업신문들에 의해 반복적으로 재생산되면서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매일경제 4월 20일 자 보도

과연 사실일까?

권오성 성신여대 법학과 교수가 페이스북에 ‘대체근로’ 관련한 미국과 독일, 프랑스 등 다른 나라의 사례를 자세하게 소개했다.

미국에서는 사용자가 행한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항의·대항을 목적으로 하는 파업의 경우(부당노동행위 파업)에는 사실상 파업기간 중 한정된 임시적인 대체근로자를 사용하는 것만 가능하다. 부당노동행위 파업의 참가자는 파업을 종료한 후 조건 없이 직장 복귀를 신청함으로써 언제라도 원직에 복귀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사용자가 영구적 대체근로자를 고용한 경우에도 이를 거부할 수 없고, 대체근로자를 해고해서라도 파업참가자를 복귀시켜야 한다. 반면, 경제적 파업에서는 영구적 대체근로자를 고용한 경우 파업참가자는 대체근로자를 밀어내고 원직에 복귀할 수 없다(‘Mackay Rule’). 권오성 교수는 페이스북에 “AFL-CIO(미국노동총동맹·산업별조합회의)는 1990년 영구적 대체근로자를 허용하는 것에 대해 ILO에 제소하였고,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는 미국의 노동법제에 문제가 있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면서 최근 미국에서 ‘영구적 대체근로자 허용(경제적 파업)’ 규정에 유의미한 변화가 있다고 소개했다. 2016년, 미국 연방기관인 노동관계위원회가 “대체근로자 사용이 파업참가자들을 처벌하려는 사용자 측의 열망이나 향후 파업을 저지하려는 욕구가 포함된다면 영구 교체의 사용은 불법으로 간주된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권오성 교수는 다른 페이스북 게시물에서 독일의 경우 우리 법처럼 명시적인 규정은 없지만, ‘파업시 대체근로가 허용된다’고 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밝혔다. 독일 근로자파견법은 파견근로자에 의한 대체근로를 금지하고 있지만 파업기간 중 신규 채용 등에 의한 대체근로를 금지하고 있는 법 규정은 없다고 한다. 하지만 “독일연방헌법재판소와 독일연방노동법원의 판결을 통해 파업으로 인해 멈춘 일을 다른 근로자에게 시키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자 하는 입장은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는 파업으로 근로가 중단된 근로자를 대체하기 위해 기간제 근로자를 채용하는 것을 금지하며, 파견근로를 금지하고 있다. 다만 예외적으로 대체근로를 사용할 수 있다. 파업에 불참한 기존 근로자의 대체근로는 가능하지만 해당 근로자의 동의를 얻어야 하며 대체근로를 유인하기 위해 인센티브를 제공할 경우 처벌된다, 정규직 근로자를 채용한 대체근로는 가능하지만 실제 이런 사례는 없다고 한다. 파업 종료 후 파업참가자들이 복귀할 경우 파업 이후에 채용된 정규직 노동자들을 해고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예외적인 경우는 가능하지만 실제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어 ‘파업 시 대체근로가 허용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고용노동부는 20일, <매일경제, ‘파업권 강화한 ILO협약 20일 발효, 사용자측 대항권도 넓혀야’ 기사 관련> 설명 자료를 통해 매일경제 주장을 반박했다. 하지만 어느 언론도 이를 주목하지 않았다.

언론이 노동문제에 대한 여론을 악의적으로 왜곡하기 위해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외국의 사례를 들어 국내 노동환경의 현실과 구조적 문제를 은폐하는 것이다. 그리고 언론은 자기들 보도에 대한 반박이나 해명은 국민들에게 알리지 않는다. 이후 동일한 기사를 반복해 보도할 경우에도 반박이나 해명은 반영되지 않는다.

이들 기업신문에게 ‘진실’은 전혀 관심 없는 딴 나라의 이야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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