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자 중앙일보 1면 기사. '팩트'인지 '초치기'인지 의견이 엇갈린다.

중앙일보가 안철수가 대선행보를 시작했다는 단독보도를 냈다. 이 보도의 신뢰성에 대한 의구심이 꽤 있지만 정치평론의 관점에서 볼 때는 그가 지금쯤 무언가 행동을 개시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지금부터 움직이지 않으면 대선에 역할을 하기가 어렵고, 그가 대선에 어떠한 역할도 하지 않으리라는 기대는 합리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야권이 패배하고 박근혜가 전면에 부각된 이상 사람들은 더 이상 그의 ‘탈정치적 행보’를 긍정적으로만 보지 않을 것이다. 만약 지금 링 위에 오르지 않으면 자칫 더 이상의 기회가 없을 수도 있는 형국이다.

이 보도를 왜 하필 중앙일보가 먼저 질렀는지를 알려면 이미 본지가 한 분석을 참조하면 된다. <중앙일보, 안철수에 줄 서기 시작했다?> 요약하자면 대선 정국에서 홍석현 회장이 안철수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데, 전례를 봐도 중앙일보는 참여정부와도 밀월관계를 지닌 적이 있는 만큼 운신의 폭이 자유롭다는 것이다. 중앙일보는 대선행보를 시작했다는 보도만 낸 게 아니라 그의 정치행보가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본따고 있다고 설명했는데, 이러한 보도는 오늘자 다른 보수언론들의 보도와 확연히 구별된다. 반면 조선일보는 안철수가 아직 고민에 빠져 있다 보도했는데, 그와 별개로 안철수가 권력의지·자기세력·정치경험이 없는 3無 상황을 극복해야 한다 말하며 비판적인 시각을 보여줬다. 동아일보는 아예 김순덕 논설위원의 칼럼 <안철수와 나꼼수>를 통해 ‘안철수 흠집내기’에 나섰다.

중앙일보가 다른 보수언론과 다른 ‘수 싸움’을 시작했다는 사실은 오늘자 신문의 구성을 조선일보와 전격 비교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총선이 며칠 지난 후 다시 출근을 시작하는 이번 월요일은 호흡을 한번 가다듬은 여론의 향방이 갈리는 중요한 국면이다. 그런데 조선일보의 오늘 신문 구성을 보면 1면은 김정은의 대중연설 관련 기사를 크게 가져갔고, 2면과 3면에서 북한 정세를 소상하게 다루면서 대북문제를 부각시켰다. 북이 다른 방향을 갈 때까지 고립시킨다는 오바마 발언을 소개하면서 사실상 민주당과 통합진보당 대북정책에 대한 ‘공세’로 해석될 수 있는 입장을 보여줬다. 야권연대 공동 타결 행사에 참석한 인사들의 무단 방북에 관련한 기사를 굳이 또 한 번 4면 하단에 조그맣게 배치하면서 ‘공세’의 초점이 어딘지 친절하게 보여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 오늘자 조선일보 33면에 실린 칼럼

그러면서 4면에선 새누리당 비례대표 당선자 이자스민에 대한 ‘인종차별성 화풀이 폭주’를 보도하면서 야권 지지자들의 치졸한 행태를 비판했다. 이자스민 기사와 무단 방북 기사 사이엔 <나꼼수, 근신 끝>이란 제목으로 나꼼수 멤버들의 발언을 기사화했다. 전반적으로 1면에서 4면까지가 모두 야권에 대한 공세로 볼 수 있는 기사였는데, 그 의도는 4면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안철수의 정치참여 가능성에 관한 기사는 6면이 되어야 나온다. 오피니언란에선 강인선 국제부장이 한국 사회의 ‘외국인 혐오증’을 지적했다. 이자스민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았지만 조선일보가 갑자기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신기한 것이 사실이다. 만물상에서 박해현 논설위원은 <인종 차별 ‘막말’>이란 제목의 칼럼을 통해 세계의 인종 차별 문제를 언급하다가 결국 이자스민 문제를 거론하고야 만다. 야권 지지자들 일부가 인터넷에서 보여준 추한 모습을 마음껏 활용하며 ‘공세’를 펼친 것이다.

그러나 중앙일보의 보도 기조는 사뭇 다르다. 1면은 <안철수 “대선 출마 마음 굳혔다”>라는 제목의 예의 기사이며 3면에 상세한 내용이 나온다. 조선일보가 각 잡고 가져간 김정은과 대북문제는 1면과 2면, 6면, 8면에 배치되어 있는데 6면과 8면 기사는 비중이 결코 작지 않지만 1면과 2면 배치의 경우 조선일보에 비하면 크기가 매우 작다. 김용민의 활동재개와 SNS의 영향력에 대한 의구심을 말하는 기사는 12면에 배치되었다. 사설에선 통합진보당 논평을 비판했으되 이정재 경제부장은 <정치 테마주 관전법>에서 정치 관련주 소개를 하며 안철수 관련 주가가 올랐단 소식을 소개하는 여유를 보였다. 분명히 중앙일보도 ‘공세’를 펼치긴 했지만, 야권을 끝까지 밟겠단 게 아니라 ‘경쟁력 있는’ 안철수를 등판시켜 대선 정국의 상업적 흥행을 꾀해 보자는 심사가 느껴진다.

▲ 오늘자 중앙일보 3면. '안철수의 길'을 '아이젠하워의 길'로 분석했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차이는 조선일보가 현재의 정국에서 새누리당과 박근혜의 정치적 확장성을 위해 노력하는 일종의 이념지 역할을 하고 있고, 중앙일보는 통합진보당이나 나꼼수 등은 비판하면서도 안철수를 불러내어 더 큰 싸움이 벌어지기를 바라는 상업지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바탕에는 예전에 분석했던 대로 정권이 바뀌어도 우리는 크게 상관이 없다는 중앙일보의 자신감이 깔려 있다. 중앙일보 사정을 아는 한 기자는 “1면 기사는 내부 입장 조율을 거쳐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팩트인지 ‘초치기’(크게 거짓말은 안 하면서 원래 자기가 생각하던 큰 그림에 맞게 살짝 바꿔서 쓴 기사)인지 알기 어렵다”라고 말한다. 안철수가 어떤 식으로 정치에 개입할 것인지에 대한 관심과 함께, 미디어스가 예측한 대로 움직이는 중앙일보의 향후 행보에도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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